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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채찍과 지팡이가 감옥에

운영자 2017.06.22 11: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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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찍과 지팡이를 써서 감옥에 

  

오전 11시경 지하철3호선 오금역 4번 출입구를 나왔다. 초여름을 알리는 하얀 태양이 한적한 인도위로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오륙층의 빌딩일층에 목재합판을 파는 가게, 철판을 가공해 파는 공작소들이 보였다. 네거리의 신호표지 위에 ‘성동구치소’라고 적혀 있었다. 담쟁이로 덮인 구치소의 긴 담이 보였다. 담 뒤로 이층의 낡은 장방형의 감옥 윗부분이 조금씩 보였다. 30년 전 변호사 일을 시작할 때부터 드나들던 구치소다. 나이 먹은 지금은 똑같은 길을 걷는데 숨이 가쁜 걸 느낀다. 그래도 감옥에 갇힌 사람을 찾아가 위로하고 변호해 주는 일은 내게 소명이고 축복이라는 생각이다. 내가 지금 찾아가고 있는 친구는 정말 이럴 수 있나 할 정도로 인생의 말년에 빛도 없는 죽음의 골짜기에서 방황하고 있는 것 같았다. 26년 전 부도를 내고 필리핀으로 갔다. 그러다 잡혀왔다. 그동안의 도망자 인생은 처참했던 것 같다. 노년의 현실역시 감옥 안에서 한치 앞이 보이지 않는 답답한 어둠속에 있는 것 같았다. 내가 그의 입장이라면 어떤 생각을 했을까. 고통뿐인 이 세상을 자살로 마치려고 하지 않을까. 그는 솟아날 구멍이 없는 냉기서린 우물의 밑바닥에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었다. 

  

구치소의 변호인접견실 유리박스 안에서 그를 만났다. 볼이 홀쭉해지고 광대뼈가 튀어나왔다. 몸 전체가 뼈만 남은 것 같았다. 그에게는 영치금 한 푼 넣어줄 사람이 없을 것 같았다. 밖에 있는 그의 어머니는 치매를 앓고 있었고 아버지역시 팔십대 몸을 쓰기 힘든 노인이었다. 그가 환한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오늘 네가 올 줄 알았어. 아침에 일어나서 성경을 읽고 기도하는데 오늘 네가 온다고 내면에서 누가 가르쳐 주는 거야. 그런 느낌이 오는데 교도관이 와서 변호사 접견이라고 대기하라고 하는 거야. 요새 그렇게 내면에서 내게 가르쳐 주는 존재가 있어.”

죽어있던 그의 얼굴에서 원인모를 빛이 흐르는 느낌이었다. 얼마 전 까지만 해도 그렇지 않았었다. 그가 말을 계속했다.

“감옥에 들어오는 첫날 신체검사를 했는데 내가 나이를 먹었는데 혈압이 너무 높고 당이 있으니까 바로 병동에 배치하더라구. 그런데 같은 병동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신실한 크리스챤이야. 내게 성경도 주고 다른 책자도 주면서 같이 기도하고 성경을 읽자는 거야. 그래서 그 사람들을 따라서 성경을 신약부터 읽기 시작했어. 그런데 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이상한 현상이 일어나는 거야. 조금만 읽어도 거기에 나오는 게 바로 나의 얘기인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거야. 그 성경속의 말들이 살아서 나한테로 스며드는 것 같아. 그리고 내게 메시지를 전해주기도 해. 검찰청에 소환되어 갈 때도 성경 속에서 ‘흔들리지 말라’라는 말이 튀어나와 내 심장으로 들어오는 거야. 가서 조사를 받아도 마음이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어. 성경이 살아서 내게 말을 걸어오는 것 같아. 이상해.”

고난의 가장 어두운 곳에 있는 그에게 빛이 비치기 시작하는 걸 나는 직접 목격하고 있었다. 그는 더 이상 세상에 대해서 그리고 판결결과에 대해 연연하지 않는 것 같았다. 

“맞아 일제시대를 살았던 남강 이승훈 선생도 감옥 안에서 신약을 백번 이상 읽었고 구약도 마흔 일곱번 읽으셨다고 하더라구. 머슴 살 때 경험을 살려서 아침에 일어나면 남들이 싫어하는 똥통을 청소하고 빈 시간이면 간수들이 주는 봉투 만들기나 새끼 꼬기를 열심히 했다고 하더라구. 석방될 때 쯤이 되니까 새로운 맑은 영혼으로 나올 수 있었다는 걸 글에서 봤어.”

“나도 감옥안의 생활이 전혀 힘들지 않아. 아침에 일어나 청소를 하고 성경을 읽고 기도하는 생활이 오히려 마음이 정화되고 즐거운 것 같아. 오후에도 그런 생활을 할 수 있어. 틈이나면 오히려 남을 위로해 줘. 어제 옆방에 나같이 필리핀으로 도망갔다가 잡혀와 형을 선고받은 사람이 있었는데 중형이 선고됐어. 이제 다른 구치소로 이감을 가는데 운동시간에 내가 위로를 해줬어.”

“그래 간디나 그 제자들은 수행을 하는 인도의 아슈람보다 감옥안이 더 좋은 수행 장소였다고 해. 거기서 성경도 읽고 바가바드 기타도 읽고 했다고 그래.”

내가 그렇게 위로의 말을 전했다. 그의 영혼에 전기가 흐르듯 성령이 들어간 것 같았다. 성령이 흘러오면 우리의 영혼은 필라멘트같이 환히 빛을 발하고 마음이 밝아지는 지도 모른다. 말하는 그가 연신 하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너는 이제 진정한 축복을 받은 것 같다. 하나님은 인간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어둠속에 있을 때 찾아오시는 걸 너를 통해 보는 것 같다.”

내가 그의 눈물을 보면서 말했다.

“마음속에서 기쁨이 올라오는 것 같아. 이제 이 감옥생활도 아무렇지도 않아. 그리고 인생 다 살았는데 미래에 대한 어떤 걱정도 없어. ‘새벽기도’라는 작은 잡지를 다른 사람이 주길래 봤어. 시편 23편에 대한 해석이 나와 있는데 그 중에 주의 지팡이와 채찍이 나를 지켜주신다는 말이 있잖아? 그게 바른 길로 가지 않을 때 하나님이 지팡이와 채찍을 사용해서 안전한 곳에 가게 해서 보호하신다는 뜻이래. 엄변호사 네가 쓰라고 해서 시편23편을 천 번 쓰면서도 그 걸 이해하지 못했었는데 이제는 알 것 같아. 주님은 채찍을 써서 나를 이 감옥에 들어오게 하시고 이 안에서 나를 만나주신거야.”

나는 그가 구속이 되기 전에 시편23편의 시를 천 번을 써 보라고 권했었다. 그걸 쓰면서 어떤 은총이 그에게 내리기를 희망했기 때문이다. 그가 천 번을 다 썼다고 하면서 공책을 내게 전해주었을 때 그에 대한 구속영장이 신청이 되고 그는 감옥에 가게 됐다. 나는 이게 뭔가 하고 의아해 졌다. 이제 그 해답을 받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가 활짝 핀 얼굴로 내게 말했다.

“친구가 이렇게 무료변호해 주는 것에 대해 그동안 감사인사가 없었어. 미안해. 정말 고마워.”

그가 내게 정중하게 인사말을 했다. 그의 몸은 고목같이 늙어가지만 영혼은 이제 파릇한 연두색 새싹을 틔우며 살아나고 있는 것 같았다. 그걸 보는 나는 또 다른 축복을 받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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