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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친일마녀사냥 28 - 유학 가는 소년들

운영자 2019.04.22 10:34:06
조회 113 추천 0 댓글 0
친일마녀사냥


28


유학 가는 소년들


“나라가 망해 가는데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처신해야 좋을까? 지금 이완용(李完用) 내각이 들어섰고 군대도 해산됐다.”

김연수는 집에 자주 찾아오는 형 친구 송진우(宋鎭禹)가 분노하면서 열변을 토하는 걸 듣고 있었다. 송진우는 황성신문이나 대한매일신보의 사설을 오려 가지고 다녔다. 을사조약을 반박한 장지연(張志淵)의 ‘시일야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哭)’을 읽으면서 눈물을 흘리기도 한 소년이었다. 송진우가 “나는 한성으로 올라가 교원양성소에 다니려고 한다”며 결심을 얘기했다. 듣고 있던 김성수가 제의했다. 

“그러지 말고 우리 일본 동경으로 유학을 가자. 호랑이를 잡기 위해서는 호랑이굴로 들어가는 편이 낫지.”

김성수는 송진우에게 일본 중학에 다니는 홍명희에게서 들은 얘기를 자세히 해주었다.

“그래 한성으로 갈 바에야 차라리 일본으로 가는 게 낫겠다.”

송진우가 그 말을 듣고 생각을 바꾸었다. 

“백관수(白寬洙)한테도 연락을 해서 일본으로 같이 가자고 하자.”

송진우가 말했다. 백관수도 영학숙에서 같이 공부한 사이였다. 얼마 후 백관수한테서 연락이 왔다. 부모님이 허락하지 않으셔서 떠날 수 없다는 얘기였다. 둘은 상투를 잘라버렸다. 도항증(渡航證)은 한승리 선생이 구해주었다. 김성수는 송진우와 함께 일본행 시라가와마루호에 올랐다. 가을바람이 스산한 1908년 10월의 일이었다. 

다음해 여름방학 무렵 김성수가 귀국했다. 까만 학생복에 번쩍이는 금빛 단추가 반짝이는 멋있는 모습이었다. 김성수는 일본에 있는 중학교 5학년으로 편입했다. 김성수가 돌아오자 온 집안에 화기가 돌았다. 김경중은 맏아들에게 공부를 잘하라고 용기를 북돋워줬다.

“아버님, 연수(秊洙)도 일본 유학을 시켜야 되지 않겠습니까?”

성수가 아버지 김경중에게 말했다. 듣고 있던 동생 연수는 눈이 반짝였다.

“때가 오면 일본으로 공부를 시키러 보낼 생각이다.”

아버지 김경중의 대답이었다. 김성수가 다시 일본으로 돌아가고 며칠 후였다. 줄포항에서 남몰래 군산 가는 똑딱선을 타는 소년이 있었다. 열세 살의 김연수였다. 그날은 바람이 심하고 날씨가 궂었다. 똑딱선은 군산항이 바라보이는 고군산도에 기착하고 말았다. 점점 파도가 거칠어져 군산항까지 갈 수 없었던 것이다. 아버지 김경중은 궂은 날씨인데도 밤늦게까지 아들 연수가 집에 돌아오지 않자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평소 조용히 집에만 박혀 있던 아들이었다. 문득 이상한 예감이 들었다. 그가 장지문을 열고 머슴에게 소리쳤다.

“연수가 어디 갔나 찾아보아라.”

줄포 동네가 발칵 뒤집혔다. 한참 후에 머슴이 와서 이렇게 말했다.

“작은도련님이 군산 가는 똑딱선에 오르는 걸 본 동네사람이 있답니다요.”

김경중은 둘째 아들도 일본에 가기 위해 배에 오른 것으로 직감했다. 그는 서둘러 말안장을 놓게 하고 말에 올라탔다. 비바람이 거세게 불어치고 있었다. 김경중이 군산의 째보선창에 도착한 것은 다음날 아침이었다. 째보선창은 당시에는 질펀한 갯벌이었다. 아직 축항이 되지 않은 그곳에 배가 닿을 만한 곳에서 언청이인 사내가 선창을 운영하고 있다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은 것이다. 선창가 움막에 마침 째보가 있었다.

“줄포에서 떠난 똑딱선이 어떻게 됐나? 여기 도착했나?”

김경중이 째보에게 물었다.

“줄포에서 떠난 배가 풍랑 때문에 고군산도에 있는데 이제 얼마 있으면 도착할 겁니다요.”

째보의 말이었다. 김경중은 선창가에 앉아 기다렸다. 얼마 후 멀리서 통통거리는 기관의 소리가 들리면서 개울을 통해 배가 들어오고 있었다. 김경중은 내리는 손님들을 보고 있었다. 둘째 아들 연수가 노랗게 된 얼굴로 배에서 내렸다.

“풍랑 때문에 고생이 심했겠구나. 집으로 가서 푹 쉬자꾸나.”

김경중은 배에서 내려오는 둘째 아들 연수의 손을 잡고 부드럽게 말했다.

“너무 서둘지 말거라. 무슨 일이든지 다 시기가 있는 법이니라.”

어머니가 돌아온 둘째 아들 연수의 방에 들어와서 말했다.

“어서 성례(成禮)를 치르자. 그래야 일본에 건너가 공부를 할 게 아니냐?”

여기저기서 혼담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국내외 정치적 상황은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1909년 10월 일본의 내각총리대신인 이토 히로부미가 조선의 안중근(安重根)에게 암살당했다는 보도가 터져 나오고 있었다. 전 일본이 흥분했다. 이토 히로부미는 일본 국민들에게는 존경을 받는 정치가였다. 동경의 한국인들이 테러를 당했다. 일본의 언론들은 아예 야만적인 한국을 병탄(倂呑)해야 한다는 논조를 내면서 적개심을 나타냈다. 

1910년 8월 무렵 일본군 제29연대와 32연대의 병사들은 한양의 대궐과 성문, 중요기관과 대신의 저택에 배치되어 개미새끼 한 마리 못 움직일 정도로 경계망을 펴고 있었다. 일본군 병사들은 의병토벌작전 목적으로 조선에 온 군대였다. 8월에 들어서면서 그들은 저녁식사 후의 영외(營外)산책이 금지되었다. 그 며칠 후부터는 숫제 외출까지 전면 금지되고 있었다. 그 무렵 조선에는 군대도 경찰도 없었다. 해산된 조선군대의 저항을 탄압하기 위해 확충된 일본군 헌병대만이 이 땅의 유일한 무장병력이었다. 한국인들은 정치적 집회나 연설이 일체 금지되고 있었다. 

8월22일 어전회의(御前會議)가 열리고 있었다. 총리 이완용, 농상공 조중웅, 내부 박제순, 탁지부 고영희와 황족대표인 이재면, 궁내대신 민병석, 시종원경 윤덕영, 시종무관 이병무, 정계대표인 중추원의장 김윤식 등 약 10여 명이었다. 총리 이완용이 고종에게 이렇게 상주했다.

“전 대신들이 조선과 일본의 병합(倂合)에 찬성하고 있나이다.”

일진회의 이용구와 송병준이 한일합병을 정부에 건의했었다. 그 말을 들은 고종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어떤 내용인가?”

“대한제국의 황제가 통치권을 일본 천황에게 완전히 그리고 영구히 넘기며, 그 대신 일본은 대한제국의 황족과 그 후예, 그리고 병합에 공을 세운 사람들을 후하게 대접하고 일본에 협력하는 조선인들을 관리로 등용하겠다는 겁니다. 병합 후 이왕직(李王職)이라는 기구가 설치되어 황실을 재정적으로 지원할 것이며, 황족, 귀족, 합방공로자에게는 작위(爵位)와 은급(恩級)이 지급될 예정입니다.”

조선의 통치권을 넘기는 병합조약이 쥐도 새도 모르게 조인됐다. 

1910년 10월1일. 아침 햇살이 남산 기슭으로 쏟아지고 있었다. 남산 중턱의 새로 닦인 길 위로 까맣게 반들거리는 호화로운 마차 한 대가 달려가고 있었다. 마차의 앞과 뒤로 덜그럭거리는 칼을 찬 기마헌병들이 호위를 하고 있었다. 남산의 길가 곳곳에는 각반에 긴 총을 멘 일본군들이 일정 거리마다 눈을 번뜩이며 서 있었다. 제1대 조선총독인 데라우치 마사다케 일본 육군대장의 출근이었다. 

남산 기슭에 있는 목조건물은 이제 통감부에서 조선총독부로 간판을 바꾸어 달았다. 건물 앞 광장에는 일본인 관리들이 긴장한 얼굴로 정렬해 있었다. 마차에서 내린 데라우치는 수많은 훈장을 가슴에 단 육군 정장(正裝) 차림이었다. 그가 천천히 앞에 마련된 단상으로 올라섰다. 앞에 한국인들은 없었다. 전부 일본인 관리들이었다. 그가 입을 열었다.

“지금 이 감격한 순간을 귀관들과 함께하는 것을 무상의 영광으로 생각하는 바이다. 오늘부터 천황폐하의 명령을 받들어 조선민족을 돌보아주게 된 우리는 잠시라도 폐하의 적자(嫡子)인 동시에 대일본제국의 충성스러운 관리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오늘부터 한민족은 명실상부한 대일본제국의 신민(臣民)이다.” 

데라우치의 훈시 요지였다. 일본의 조선지배 목적은 무엇이었을까. 정확히 식민지의 개념은 어떤 것일까. 식민지란 그것은 어디까지나 역사적 개념이지 법적이거나 정치·경제적으로 엄밀히 정의된 개념은 아니다. 예컨대 어느 후진국이 제국주의의 정치적, 군사적 지배를 받을 때 그런 나라를 뭉뚱그려 식민지라 부르고 있지만 실제 지배의 구체적인 내용을 보면 천차만별이다. 흔히 식민지 지배의 형태를 동화주의와 자치주의의 두 가지 유형으로 분류하고 있다. 일본과 조선은 인종적으로 유사한 배경을 가지고 있었다. 지리적으로도 매우 가깝다. 일제의 조선지배는 영구(永久) 병합이 그 목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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