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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친일마녀사냥 30 - 金秊洙의 유학

운영자 2019.05.09 16:08:29
조회 95 추천 0 댓글 0
친일마녀사냥


30


金秊洙의 유학


김연수는 한일합방이 되던 1910년 12월 8일 열다섯 살의 나이로 결혼을 했다. 그 무렵 형의 친구 송진우(宋鎭禹)가 갑자기 일본에서 돌아왔다는 소식이 들렸다. 김연수는 송진우의 집을 찾아가 물었다.

“일본 유학이 어땠어요?”

“일본에 가니까 군산에서 배웠던 일본어가 하나도 통하지 않았어. 그래서 시모노세키에서 동경까지 가는 기차 안에서 군인하고 필담(筆談)을 했지. 기차 안에서 파는 ‘벤또’를 ‘별똥’이라고 잘못 발음을 했다니까. 동경역 앞에서 인력거를 탔는데 나는 의자 말고 그 발 놓는 단이 앉는 자리인 줄 알고 거기 궁둥이를 걸치기도 했었어. 그냥 막무가내로 가니까 정신이 없더라구. 홍명희(洪命憙)와 같은 집에서 하숙을 했지. 홍명희가 동경을 안내해 주는데 입이 쩍 벌어지더라구. 우리와 너무 차이가 나는 거야. 

일본이 쇄국정책(鎖國政策)을 버리고 서양문명을 받아들인 건 우리보다 20년밖에 앞서지 않았는데 그 결과가 너무 컸단 말이야. 너희 형이나 나는 모두 압도당했고 풀이 죽었어. 우리는 세이소쿠 영어학교에 입학했지. 중학교 입학시험 준비를 하는 곳이었어. 거기서 영어와 수학을 배우고 일어는 따로 개인지도를 받았지. 우선 일본어가 돼야 공부도 할 수 있으니까 밤잠도 못자고 했지. 영어는 성수(性洙)가 잘하고, 수학은 내가 잘했지. 삼각형이니 정방형이니 그런 걸 배우는데 재미있었어. 성수는 신문명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영어를 열심히 해야 한다고 하더라구.”

“안중근 의사가 통감인 이토 히로부미를 죽였을 때 일본은 어땠어요?”

당시 최고의 뉴스였다. 여러 가지 평가가 있었다. 이토가 죽는 바람에 한일합방이 급격히 이루어졌다는 얘기도 있었다.

“이토 히로부미는 우리에게는 원수지만 일본에서는 대단히 존경받는 정치가야. 이토가 죽자 일본인 중에는 우리 조선사람들을 때리고 일본 신문들도 우리를 나쁘게 써갈기면서 적개심을 일으켰어. 안중근은 우리에게는 의사(義士)지만 일본인들은 그를 테러리스트라고 세계에 선전을 하더구만. 일본 놈들은 깡패를 동원해서 우리 궁중으로 들어가 국모(國母)를 살해했으면서 말이야. 한일합방이 되던 지난해 동경은 대단했어. 한일합방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가 매일 신문 잡지에 보도가 됐지. 

우리보다 먼저 유학을 온 최린(崔麟)이나 허헌(許憲)을 중심으로 한 대한흥학회(大韓興學會)란 학생조직이 있었는데 총회를 열어서 합방에 반대하기로 하고 그 뜻을 본국정부와 국민에게 전달하려고 했어. 일본경찰이 그걸 알고 조선인 유학생 단체를 해산시켜 버렸지. 그 뒤로 한국인 학생 두세 명만 모여도 일본순사가 감시를 하는 거야. 조선에서는 합방이 되면 대접받는 일본 시민이 될 줄 아는 일진회 사람도 있지만 절대 그게 아냐. 망국(亡國)이란 건 단순히 국적이 없어지는 게 아니라 인간 이하의 존재로 굴러 떨어지는 거야. 세계 역사를 보면, 다른 나라를 치면 그 국민들을 끌어다 노예로 사용하잖아? 나는 한일합방 소식을 듣고 고향으로 돌아오겠다고 결심했지. 나라가 망한 판에 공부는 해서 뭘 하겠어?”

“우리 형은 왜 안 왔죠?”

“성수는 거기 남아서 공부를 더 하겠대. 나라가 망할수록 더욱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는 거야.”

한 달쯤 후였다. 아직 줄포의 바닷바람이 찼다. 송진우가 느닷없이 김연수를 찾아와 말했다. 

“나 다시 일본에 가서 학업을 계속하기로 했다.”

“왜? 나라가 망해서 이제 소용이 없다고 하더니?”

“아니야 비록 나라는 망했지만 우리 젊은이들이 더욱 분발해야 해. 그것만이 나라를 다시 찾을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해.”

그 말을 들은 김연수가 결심한 듯 이렇게 말했다.

“형, 나도 유학을 갈랍니다. 이제 장가도 갔으니 아버님도 반대하시지 않을 거야. 아버님한테 말씀드려줘요.”

김연수는 송진우와 함께 아버지 김경중의 사랑채로 들어갔다. 송진우가 절을 하고 김경중 앞에 꿇어앉았다. 김경중은 이미 아들의 뜻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다. 

“일본 유학은 돈이 얼마나 드나?”

김경중이 송진우에게 물었다. 그 무렵 송진우는 집안의 형편이 기울어지고 있었다. 

“12원 안팎이 되는 하숙비를 비롯해서 수업료, 교통비 등 고정적으로 25원 정도가 듭니다.”

“자네가 허락한다면 앞으로 그 돈은 내가 댐세.”

김경중이 제의했다.

“아닙니다. 어르신.”

송진우가 당황해서 말했다.

“아니네, 내 오래 전부터 자네를 내 아들같이 생각해 왔네. 그리고 나라가 망한 입장에서 뒷방 늙은이가 된 내가 할 일이 뭐겠는가? 자네같이 신문물을 배우는 우리 젊은이들을 뒷바라지해서 강한 민족을 만들어야 할 게 아닌가? 다행히 내게는 재물이 약간 있네. 염려 말게. 그 대신 모두들 열심히 공부해서 일본인 이상으로 실력을 쌓아야겠지.”

잠시 말을 끊었던 김경중이 덧붙였다.

“우리 연수를 자네 편에 딸려 보낼 생각이네. 자네만 믿겠네.”

1911년 전국 자산가(資産家)를 조사한 ‘시사신보’에 의하면 아버지 김경중은 재산 10만 엔 이상의 한국인 자산가 32명 중에 들어 있었다. 

보름쯤 후인 1월29일 김연수는 배를 타기 위해 군산으로 갔다. 군산은 이미 일본인들이 들어와 있었다. 잡화상이 있고 포목점이 있었다. 빨갛고 파란 사선(斜線)을 친 양철간판의 이발소도 보였다.

“머리부터 자르자.”

송진우가 김연수에게 말했다. 두 사람은 함께 군산 거리의 이발소로 들어갔다. 김연수는 처음 들어가 보는 이발소가 신기했다. 의자 앞에 대형 거울이 붙어 있었다. 하얀 가운을 입은 일본인 이발사가 반짝거리는 가위로 상투꼭지를 싹둑 잘라냈다. 이어서 이발사는 바리깡이라는 이발기계로 머리를 밀기 시작했다. 잠시 후 그는 파란빛이 도는 빡빡머리가 되었다. 

너무 어색해서 자신도 모르게 손이 머리로 갔다. 그걸 본 송진우가 놀렸다.

“와, 김연수도 이제 완전히 신식꾼이 됐네. 처음에 자네 형 성수와 일본으로 조선 두루마기를 입고 갔는데 우리를 둘러싸고 모두 신기한 듯 구경을 하더구만.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일본사람같이 하고 가는 거야.”

그들은 군산의 선창에서 목포로 가는 똑딱선을 탔다. 아직 호남선이 놓이기 전이었다. 그들이 탄 배는 목포를 지나 다시 숱한 섬들을 이리저리 맴돌아 부산항으로 향했다. 한밤을 파도에 흔들리면서 가던 작은 배가 다음날 아침 부산항에 도착했다. 며칠에 한 번씩 관부연락선(關釜連絡船)이 부산과 시모노세키를 오가고 있었다. 송진우는 김연수를 부산의 일본인 거리로 데리고 갔다. 새로 생긴 일본인 양과자점, 양품점, 약방들이 길가에 줄지어 있었다. 송진우는 그중 ‘오복상’이란 간판을 단 일본옷 상점 쪽으로 김연수를 데리고 가면서 말했다.

“자아, 이젠 복장을 갖출 차례야. 네 형이랑 내가 일본에 처음 갈 때 말이지, 그 행색이 가관이었다구. 나는 흰 두루마기를 입었고, 네 형은 꽃자주빛 두루마기를 입었었어. 그런 차림에다 관부연락선을 타기 직전에 길거리에서 산 아동모를 버젓하게 쓰고 신발은 왜놈 군대들이 신던 헌 편상화를 사서 신고 있었지. 발목까지 올라오는 신발을 말이야. 그러니 사람들이 얼마나 웃었겠냐 말이야. 우리야 그런 촌놈 노릇을 했지만, 연수 너야 그래서 쓰나.”

송진우는 일본옷 상점에 들어가서 일본남자들이 입는 하오리와 유카타를 샀다. 

“형 이게 뭐야? 정말 이상하네.”

김연수가 하소연했다.

“참아, 일본유학을 하려면 그런 이상한 자신의 모습도 꾹 참고 인내할 줄 알아야 하는 거야.”

송진우는 일본을 이겨내려면 일단 그들에게 겉으로 승복하고 실력을 키워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전국에서 들고 일어났던 수많은 의병들은 이미 막강한 일본군 부대에 초토화됐었다. 애국계몽운동도 소리 없이 사라져 버렸다. 송진우는 실력 없이 명분만으로는 이길 수 없다는 생각이었다. 드디어 1000톤이나 되는 거대한 화륜선(火輪船)이 검은 연기를 뿜어 올리며 부산 앞바다로 들어오고 있었다. 김연수가 타 봤던 똑딱선과는 비교가 안 되는 큰 배였다. 

관부연락선이 처음 취항한 것은 1905년 9월11일이다. 최초의 연락선의 이름은 이키마루, 1681톤의 배였다. 이어서 11월1일 1679톤짜리 쓰시마마루가 취항하고 매일 1회 부산, 시모노세키 양지(兩地)에서 출항하게 되었다. 관부연락선에서 3등 손님들은 자유로이 갑판 위를 걸어다니지 못했다. 출항하기 직전 선창의 문을 굳게 닫아버리기 때문이다. 배의 선창에는 일본으로 일자리를 찾아가는 조선 노동자들이 많았다. 그 조선의 노동자들은 창고같은 배 밑에 짐짝처럼 실려선 목적지에 이르러서야 해방이 됐다. 배를 탈 때도 내릴 때도 일본인 형사들 앞을 조심스럽게 지나야 하고, 배 안에서는 대수롭지 않은 얘기도 주위를 살펴가며 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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