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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친일마녀사냥 46 - 고뇌하는 예비기업인

운영자 2019.06.10 18:13:25
조회 89 추천 0 댓글 0
친일마녀사냥


46


고뇌하는 예비기업인


김연수(金秊洙)는 줄포의 고향집 사랑방에 틀어박혀 있었다. 모든 게 덧없는 것 같았다. 출세와 돈에 혈안이 된 속물들만 무한경쟁을 벌이는 세상이었다. 학교 교육이란 똑같은 제품의 관료를 찍어내기 위한 빵틀 같았다. 공부가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꼬리를 물고 번민이 일어났다. 그 번민은 시험이나 운동경기에 이겨야 한다는 강박관념과는 다른 것이었다. 인생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가 들었다. 

그는 제3고(高) 자퇴 원서를 낸 뒤 학교를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울적할 때면 그는 경성으로 올라왔다. 형은 중앙학교 선생과 동아일보 경영에 참여하느라고 정신이 없는 것 같았다. 그는 어느 날 중앙학교를 찾아 갔다가 그곳에서 이광수를 만났다. 조선 유학생들 사이에 이광수는 자유인이었다. 전통관념에 얽매이지 않고 정직하고 감정에 솔직한 사람이었다. 함께 종로통의 찻집으로 들어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중에 이광수가 이런 경험을 얘기했다. 

“내가 중학교만 졸업하고 오산학교 선생으로 가서 열정을 불태웠었지. 나는 뭔가 안다고 착각했어. 그러다가 회의를 가지고 시베리아와 중국을 순례하면서 먼 길을 방황하다가 나중에 다시 와세다대학 철학과에 입학했지. 

자네는 겉으로 나타나는 인간들의 속물성만 보지 말고 일본의 고서점가에 한번 가봐. 동서고금의 책 중 없는 게 없지. 일본인들은 그처럼 많은 책을 읽고 있어. 확실히 지적 수준에선 일본인이 조선인보다 월등하게 우월해. 조선의 모든 불행을 일본 탓으로만 돌리는 건 우스운 일이야. 조선인 한 사람 한 사람이 지식을 갖추어야 해. 그리고 인간존재의 내면도 성장시켜야 하는 거야. 

자네의 자퇴원은 청춘의 한순간 객기에 불과해. 나도 홍명희도 바이런을 읽고 그런 시절이 있었어. 이제 그만 제자리로 돌아가는 게 좋을 거야. 공부란 시기를 놓치면 영영 기회가 다시 오지 않을 수도 있어. 자유와 낙오는 다른 거야.”

김연수도 나름대로 어떤 결론이 다가오고 있었다. 인생의 회의에는 해답이 없을 것 같았다. 세상에 던져진 이상 그냥 살아야 한다. 그게 실존주의다. 인간은 살아나가지 않으면 안 되는 존재다. 그렇다면 한번 살아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사는 이상 누구보다 강하게 살아나가자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이 회의에 빠졌다가 다시 극복하는 능력도 조물주가 주는 게 틀림없는 것 같았다. 인생에의 회의는 영원한 미지수이며 누구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다. 그래서 예수나 석가가 수많은 성자(聖者)들이 안내자로 세상에 왔다. 열병을 앓고 있던 그의 영혼이 서서히 회복되기 시작했다. 그동안 장남 상준이 태어났다. 

김연수는 뒤떨어진 실력으로 대학에 가기 힘들었다. 그는 교토(京都)제국대학의 선과(選科)에 청강생으로 지망했다. 졸업해도 학위는 받을 수 없지만 배우는 내용은 본과(本科)와 다르지 않았다. 그는 검정고시를 통해 정식으로 다시 대학 본과의 시험을 치러 합격했다. 교토제국대학 경제학부에는 일본근대를 연구한 쟁쟁한 교수들이 포진하고 있었다. 김연수는 에도시대부터의 상인에 관한 강의를 빠지지 않고 들었다. 가와카미 하지메 교수는 일본청년들에게 대단한 인기였다. 그는 가와카미 하지메 교수의 강의록을 빌려다 보았다. 교수는 이렇게 설명하고 있었다. 

‘에도시대 농민은 관리의 가렴주구(苛斂誅求)에 시달려 죽지도 살지도 못하는 삶을 영위했다. 쇄국정책에 의해 해외문명과의 접촉도 단절됐었다. 그러다 일본은 미국에 의해 개항됐다. 개항은 물품의 가격에 커다란 영향을 줬다. 생사(生絲), 견직물, 차의 가격은 상승하고 상대적으로 높았던 면사, 목면, 설탕의 가격은 별로 상승하지 않았다. 국제가격 경쟁면에서 열위(劣位)에 처한 산업은 곤경에 빠져 재편성이 불가피했다. 여기서 요코하마와 효고 같은 개항장에 새로운 일본상인들이 등장했다. 오사카의 쌀 시장을 중심으로 초기의 호상(豪商)들이 나왔다. 그런 초기의 호상들은 사치, 투기, 방만이 원인이 되어 몰락하게 된다. 그러다 새로운 형태의 전업 상인들이 등장했다. 한 상품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도 있고 도매상도 있었다.’

강의록은 초기의 성공기업인 미쓰비시와 미쓰이의 창업과정 쪽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미쓰비시의 창시자 이와사키 야타로는 도사(土佐·지금의 시고쿠 고치 지방)의 천대받는 하급무사 집안 출신이다. 어린 시절 지게를 지고 아버지와 함께 나무로 만든 여러 가지 수공업품을 팔고 다녔다. 그는 칼 대신 주판을 선택하고 상인이 됐다. 목재장사부터 이것저것 손을 대면서 성장했다. 그는 미쓰비시상회를 차려 기선(汽船) 2척으로 해운업으로 출발했다. 

일본정부가 타이완 출병 때 미쓰비시상회의 배를 이용했다. 1875년 조선을 개항할 때도 미쓰비시의 기선들이 이용됐다. 

미쓰비시는 막부 말경 일본 주변의 항로를 지배하고 있던 외국의 기선회사와 격렬한 경쟁을 벌여 승리를 거두었다. 미쓰비시는 요코하마와 상하이 간의 정기항로를 열었다. 미쓰비시는 같은 항로를 운항하던 미국의 퍼시픽메일사(社)보다 대폭 인하된 운임을 적용함으로써 경쟁에서 이긴 것이다. 영국의 선박회사인 P&O사가 새로이 요코하마와 상하이 홍콩 간의 항로를 개설하자 미쓰비시는 운임인하로 그들이 철수하게 만들었다. 

미쓰이의 경우 처음에는 전당포, 술, 된장장사로 출발했다. 그 다음은 포목점을 개업했다. 사용인이 10명도 못 되는 작은 가게였다. 미쓰이포목점의 경우 경영혁신을 했다. 두루마리로 팔던 옷감을 잘라 팔아 보았다. 상품마다 전담하는 점원을 두었다. 정찰제를 실시하고 현금거래를 고집했다. 포목점으로 자본을 축적한 미쓰이는 환전상을 열었다. 환전상은 독립적인 비즈니스가 되고 후에 미쓰이은행이 됐다.’

신분제 일본사회에서 천대받던 상인이 사업가로 변신하고, 양반이었던 사무라이 계급이 몰락했다. 조선의 관직을 독점하던 양반 출신들의 운명도 앞으로 그럴 게 틀림없었다. 일본 부자들의 경영형태가 강의록에 나와 있었다. 

‘미쓰이家는 상속재산의 분할을 용납하지 않았다. 일족의 총유로 공동체를 만들어 재산을 유지했다. 미쓰이家는 선조 대대로 물려받은 재산을 후손뿐 아니라 종업원도 포함하는 미쓰이 전체의 것으로 영원히 보전 유지하는 정책을 취했다. 미쓰이家의 교훈은 집안이 일어나는 것도 망하는 것도 모두 자손의 마음가짐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재산은 조상으로부터 전해 받아 관리하는 것으로 자신의 것이 아니다. 자손 한 사람 한 사람이 가업을 중시하고 열심히 일해야 한다는 것이다. 가산(家産)은 마라톤 러너와 릴레이 바통(배턴)에 비유할 수 있다. 역전(驛前) 마라톤의 목적은 바통을 어떻게 이어받아 골인점에 도달할 것인가에 있으며, 각 러너는 어디까지나 자신의 구간을 달리는 존재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러너가 열심히 달려 구간기록을 내는 것은 좋아도 정해진 구간 이외의 길을 달리는 것은 허락되지 않는다. 바통인 가산(家産)의 계승이 목적이며, 개인기록을 만드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교수는 경제의 현실에 대해서도 해박했다. 강의록은 이렇게 계속됐다. 

‘일본은 서양의 철로 된 기계들을 들여오는 데 비용이 너무 들어 고심했다. 대체방안을 강구했다. 목수들을 시켜 기계의 철제 부분을 모두 목재로 바꾸고, 가마나 파이프는 도기(陶器)로 하며, 증기력도 수력이나 인력으로 대치해 보았다. 저렴한 경비의 일본 특유 제사(製絲)공장을 만들었다. 자본이 희소하고 노동이 풍부한 일본 상황에 맞추었다. 

청일전쟁 후 그렇게 만든 면포를 조선에 수출했다. 품질이 부족한 부분은 유럽의 기술을 도입해서 보충해 나갔다. 그렇게 만든 면포 경쟁에서 유럽제품들을 조선에서 이겼다. 우리 일본의 대장장이들이 양식 총을 공부해서 직접 만들기 시작했다. 러시아 해군사관을 불러 목조범선을 설계하게 하고, 러시아인 목수의 지시에 따라 일본인 목수들이 일했다. 그 목수들이 숙련공으로 조선으로 건너가서 일을 맡았다. 일본은 외국의 기술자들을 높은 임금으로 받아들였다. 그 덕택에 철도나 배를 만드는 기술은 유럽이나 미국 본국과 동등한 기술이 이전된 것이다. 

1900년대부터 재벌이란 단어가 나타났다. 가족에 의해 출자된 지주회사가 중핵이 되어 여러 기업 다종의 산업을 지배하는 형태다. 그전에는 정상(政商)이라고 했다. 정치권력에 유착한 비즈니스였다. 적은 비용으로 큰 이익을 얻는 장사였다. 보험, 철도, 방적 등 근대산업이 들어오고 주식회사가 설립됐다. 직물업, 제사업, 제유업, 제지업이 나타났다. 방적을 중심으로 한 섬유산업이 활발하게 일어났다. 메이지정부는 면제품의 수입을 줄이기 위해 방적업과 방직업에 보조금을 지급했다. 

1882년 설립된 오사카방적회사는 주식회사제도를 채용해서 재계의 유력자들을 모았다. 국립은행에서 운전자금을 얻어 대규모 설비가 채용됐다. 증기기관이 도입됐기 때문에 공장의 안정적 조업이 가능했다. 오사카시의 근교에 공장이 설치됐기 때문에 노동력 조달이나 제품판매가 용이했다. 영국에서 방적기술을 배운 일본인이 활약을 하고 중국 면화를 사용하게 되어 원면 코스트도 절감했다. 오사카방적의 성공을 본떠 가네가부치방적이 설립됐다. 방적업의 발전으로 수입을 하던 것이 수출로 돌아섰다. 청일전쟁 후 불황이 닥치자 오사카방적과 가네가부치방적은 경쟁력 없는 방적회사들을 합병 또는 매수해서 덩치를 키웠다. 

에도시대의 부호들이 쇠퇴하고 미쓰이, 미쓰비시 등 진취적인 신흥기업가가 일본의 재벌로 등장했다. 미쓰이는 공업화를 도모했다. 주식매수를 통해 가네가부치방적을 미쓰이은행 아래에 두었다. 기간산업인 섬유산업을 중심으로 제조업에 본격적으로 착수했다. 

일본정부는 주식회사 제도의 보급에 적극적이었다. 사회적 유휴자금을 집중시킬 수 있고, 출자사원의 유한책임, 출자지분의 양도가 자유로운 증권화, 지분자본가와 기능자본가를 분리하는 특징은 매력적이었다. 새로 만든 상법은 회사가 독립재산을 소유하고 독립의 권리와 의무를 가지며 소송의 원고 피고로 될 수 있다. 미쓰비시와 미쓰이 등 일본의 재벌이 된 기업들은 해외유학을 경험한 기술자나 게이오대학 출신의 전문경영자들을 쓰고 있었다. 중역조직은 사장과 전무취체역, 취체역의 형태였다.’

김연수는 현대 경영의 세례를 받고 있었다. 그는 일본의 상법이 그대로 조선에도 적용된다는 사실을 알았다. 회계법과 재무관리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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