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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친일마녀사냥 57 - 삼각산표 광목

운영자 2019.06.17 16:07:18
조회 74 추천 0 댓글 0
친일마녀사냥


57


삼각산표 광목


김연수(金秊洙)는 삼양사와 경성방직 두 사업장을 정신없이 뛰어 다녔다. 이번에는 경성방직의 공장 확장과 직기(織機)도입의 문제를 해결하느라고 정신이 없었다. 이강현(李康賢)이 부지를 물색하다가 노량진에서 적당한 땅을 보고는 바로 매매계약을 체결해 버렸다. 그러나 다음날 이강현이 김연수의 방으로 들어와 난감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지금 영등포에 5000평 공장부지가 싼 게 나왔습니다. 노량진땅은 평당 1원인데 그에 비하면 훨씬 싼 값이에요.”

그는 신중하지 못한 면이 있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좋겠어요?”

김연수가 되물었다.

“계약을 해지했으면 좋겠어요.”

이강현은 죄를 지은 듯한 어조로 말했다.

“그럽시다. 손해를 보더라도 차라리 영등포에서 다시 공장 부지를 삽시다.”

김연수는 손해를 감수했다. 이강현의 실수도 탓하지 않았다. 김연수는 한번 믿으면 철저히 재량권을 주는 타입이었다. 그는 기술을 위해 자금을 아끼지 않았다. 공업학교 출신인 이강현을 중심으로 철저한 기술자 집단을 구축했다. 경성직뉴에서 훈련시키던 직원들을 경성방직으로 끌어들였다. 일본의 도요타직기에 그들을 파견해서 기술을 익히게 했다. 당시 서양기술의 정수(精髓)를 체득한 일본은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이었다. 

김연수는 조선의 고등공업학교 졸업자들을 확보하고 그들을 일본으로 파견해 기술을 배우게 했다. 사원들에게도 일본의 선진 경영기법을 학습시켰다. 일본이 서양을 능가하듯 조선의 기업들도 배우면서 일본을 극복하는 게 지름길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일류과학자도 양성하겠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직기(織機) 도입의 다변화를 위해 스위스에서 기계를 수입할 것을 강구했다. 그쪽이 가격 면에서 조금 더 싸기도 했다. 그가 이강현을 불러 물었다. 

“회사의 자금사정이 어떻습니까?”

“기계구입을 해야 하는데 자칫하면 회사재정이 고갈될 염려가 있습니다. 조금이라도 싼 걸 매입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잠시 생각을 하던 김연수가 결심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그래도 직기는 도요타에 발주하세요. 역시 지금 세계적으로 가장 정평이 난 기계는 도요타에서 만든 것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도요타가 유럽까지 기계를 수출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도요타 기술자가 유럽으로 가서 기술지도를 하고 있구요.”

“도요타직기에 역직기 100대를 발주하세요, 그리고 빠른 시일 내에 설치되도록 하고 시험가동에 들어갑시다. 그리고 직기를 발주할 때 아예 사원으로 들어온 현득영과 유덕호를 도요타 직기에 보내 직기 조작법을 습득하게 하세요. 현득영은 경성공업전문학교 염직과(染織科)의 1회 졸업생이죠?”

김연수는 자신이 면접을 본 사원들의 학력을 꿰뚫고 있었다. 그가 덧붙였다.

“그리고 기술자 김만선과 기관수도 일본에 보내서 눈을 감고도 기계를 조작할 정도로 된 후에 귀국시키세요. 일본 기술자 신세를 지지 않고 공장가동에 필요한 최소한의 핵심인력을 확보해 둬야 하니까.”

김연수는 공장 숙직실에서 생활하면서 조업체제를 현대식으로 분업화했다. 구입한 원사를 경사와 위사로 쓰기에 편리하게 준비하는 해사계, 직포에 적합하게 씨줄을 늘어놓는 정경계, 실에 풀칠을 해서 강도를 높이는 호부계, 직물을 제조하는 직포부, 포목을 검사하는 검사계, 직물 표면의 꺼칠꺼칠한 실 털을 없애는 전모계, 온도와 습기를 가해 포목을 압착시키면서 건조시키는 대형 다림질을 맡은 염출계, 넓은 포목을 개는 포첩계, 그것에 상표를 붙이는 인자계, 최종제품을 필단위로 묶는 하조계로 나누어 생산 공정을 체계화했다. 

덜커덕거리는 직기에서 누런 광목이 나오고 있었다. 14번수로 만든 염색가공 전의 생지면포 상태였다.

“이게 우리 경성방직의 첫 제품이네.”

김연수는 감개무량한 표정으로 직기가 쏟아내는 광목을 보고 있었다. 그 옆에 있던 공원들이 모두 환호하고 있었다.

“이 제품의 이름을 삼각산표라고 합시다. 앞으로 더 나올 두 종류의 제품은 이름을 삼성표와 닭표라고 만들어봤어요. 가급적 조선사람들에게 친근한 이름들을 구상해서 붙입시다. 내 생각으로는 용왕, 시계, 목탁, 불로초 등 그런 단어들이 친근감을 주는 것 같은데 말이오.”

김연수가 미리 준비한 이름들을 발표했다. 김연수는 이미 일본제품들과 조선 소비자들의 취향을 꿰뚫고 있었다. 김연수는 공원들 앞에서 포부를 얘기했다.

“지금 대중은 염색하지 않은 생지면포로 옷을 해 입지만 앞으로 우리도 일본처럼 염색한 고급직물을 입게 될 겁니다. 우리 회사는 신제품개발과 연구에 최대의 노력을 기울일 겁니다. 우리는 먼저 일본 제품 중 투박한 질의 생지조포를 대체할 제품을 만들어 경쟁에 나설 겁니다. 그리고 그게 어느 정도 되면 한 품질 위인 표백염색제품, 섬세한 제품까지 따라 잡도록 도전해야 합니다. 조선사람 사이에서도 면직물 수요가 고급화, 다양화될 겁니다. 이런 흐름에 맞추기 위해서는 계속 설비를 확장하고 제품을 고급화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건 모두 직공 여러분의 숙련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열심히 회사를 위해 일해 주기 바랍니다.” 

본사 전무실로 돌아간 김연수는 임원회의를 열었다.

“원료확보 문제는 어떻게 할 예정입니까?”

그가 이강현에게 물었다.

“원료인 면사(綿絲)는 대부분 일본에서 수입해야 하는데 여러 불리한 조건이 따르고 있습니다. 면사 자체의 비용이 있고, 중개수수료, 관세, 일본으로부터의 운송비를 더해야 합니다.”

“운송에 따르는 문제점은요?”

김연수는 노트에 메모를 하고 있었다. 

“면사는 운송에 2~3주가 걸리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합니다. 열차와 선박에 인부들이 싣고 내리는 과정에서 면사가 손상을 입기 쉽습니다. 인천에 지점을 둔 오자키 기선회사를 이용해서 운송시간을 줄이고 비용과 손상위험을 최소화하는 게 필요합니다. 오자키와 장기계약을 하면 인천까지 운반하는 데는 3일이 걸리고 선적료는 절반으로 줄일 수 있습니다.”

“순조롭고 규칙적인 공장가동을 위해서는 안정적인 원료의 공급과 수중(手中)에 항상 원료재고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금문제가 대두될 겁니다. 회사는 면사를 특정한 장래에 넘겨받기로 하고 현재 가격으로 일정량의 제품을 구입해야 하니까요. 그런데 원면과 면사의 시장가격은 불안정합니다. 연중 30퍼센트나 등락이 있는 게 보통입니다. 손해를 보지 않기 위해서는 임원 여러분 모두가 시장에 대한 포괄적이고 상세한 동향파악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우리는 예측할 수 없는 갑작스런 가격하락에 대한 방벽으로서 막대한 현금잔고가 필요합니다. 한정된 자금을 가지고 경솔히 거래를 하면 회사는 선물거래의 와중에서 쉽게 파산할 수도 있으니까요. 

그리고 면사의 수입을 일본 방적회사나 그 대리점과 할 것인지 아니면 일본의 거대 무역회사를 통해 원료를 조달해야 할 것인지를 선택해야 합니다. 지금 일본의 거대 무역회사들은 섬유제품의 무역을 장악하고 있습니다. 미쓰이는 정식으로 회사 내의 섬유사업부를 독립한 도요면화주식회사로 만들어 운영하고 있습니다. 닛폰면화, 도요면화, 고쇼주식회사의 상위 세 회사가 일본 면제품 거래의 80퍼센트를 장악하고 있습니다. 세 회사들은 全 세계의 모든 면화 집산지에 지점을 두고 있습니다. 이 거대 무역회사들은 선물거래에서의 투기이익도 나누어 가지고 있습니다. 면제품시장을 독점하는 만큼 이 회사들의 콧대가 높다는 것입니다. 결제의 여유도 주지 않는 게 거대기업들입니다. 

아직 초창기에 있는 경성방직으로서는 거대 수입상들보다는 일단 한 단계 낮추는 게 어떨까 합니다. 방적회사의 대리점을 통해 안정적인 원료공급을 받도록 합시다. 제가 일본에서 있을 때 보니까 다이닛폰 방적회사의 제품이 쓸 만합디다. 거기에 사원을 보내 제품을 검수하고 통과한 면사를 들어오게 합시다. 그리고 대리점은 야기상점을 통해 안정적인 원료공급원을 찾도록 합시다.” 

“그런데 자금의 흐름상에 문제가 있습니다.”

이강현이 중간에 말했다.

“뭡니까?”

“전무님께서 잘 아시다시피 조선의 포목상들은 제품을 받은 후 최장(最長) 40일까지 지불을 미루는 것이 관습입니다. 우리도 원료 자체의 흐름을 교란하지 않으면서 수입원료 대금의 지불을 늦출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제가 교토대 동창을 통해 부탁했습니다. 오사카의 야기상점에서 우리의 조건을 전부 받아들이겠다고 했습니다. 야기상점의 주인은 일본의 명문가 출신으로 정직하고 적극적입니다. 그동안 야기상점 단골들의 말을 들어보면 그들은 이윤뿐만 아니라 거래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세세히 신경을 쓴다고 합니다. 

야기상점은 우리 경방에서 돈이 떨어지면 외상으로 물품을 인도하겠다고 했습니다. 원료조달을 위해서 일본에 갈 필요 없이 야기상점의 경성지점에 가서 지점장 이케다 도라조와 녹차 한 잔을 마신 후 주문을 내면 될 겁니다. 그리고 동시에 필요하다면 무역회사 지점과도 거래를 터놓는 방향이 좋을 겁니다.”

“그래도 어느 날 원료공급을 독점하고 있는 그들이 갑자기 가격을 올린다거나 물건을 안 보내면 어떻게 하죠?”

임원 한 사람이 물었다. 김연수가 그 말을 듣고 이렇게 덧붙였다.

“거래에는 항상 인간관계를 형성해 놓아야 합니다. 임원들이 수시로 오사카에 출장을 가서 야기상점의 임원들과 함께하십시오. 그리고 우리는 야기상점을 우리 경방제품의 일본 대리점으로 삼아야 합니다. 그리고 야기상점에서 우리 경방주식의 일부를 인수하게 해서 주주로 만들도록 해 봅시다.”

그는 타고난 사업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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