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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친일마녀사냥 59 - 재산추적

■x 2019.06.24 10:32:08
조회 80 추천 0 댓글 0
친일마녀사냥


59


재산추적


진상규명위원회는 먼저 김씨가(家)에서 오랫동안 일한 사람들을 조사하기로 결정한 것 같다. 그 얼마 후 직원들에게 소환장이 날아왔다. 나는 직원들의 조사에 변호사로 입회하기 위해 광화문의 삼양염업사 사무실로 갔다. 조사대상자가 된 조한갑 씨와 성영제 씨가 불안한 표정으로 그곳에 앉아 있었다. 그곳에 있던 종가집 큰사위인 김선휘 씨가 그들에게 말했다. 

“아무 거리낄 게 없어요. 가서 사실대로 다 말해요.”

김씨가 사람들의 입장이 대부분 그런 것 같았다.

잠시 후 위원회로 가는 차 안에서 두 사람의 긴장을 풀어주기 위해 내가 말을 걸었다. 

“요즈음 염전사업이 어떻습니까?”

“지금 위원회에서 가처분을 하고 재산을 몰수한다는 바람에 사업이 올 스톱된 상태입니다. 일본에서는 천일염이 인기를 누리면서 최고의 가격으로 가고 있어요. 그런데 우리 염전은 휴업상태입니다.”

감사인 조한갑 씨가 대답했다. 잠시 후 우리는 위원회 빌딩 앞에서 내려 조사실로 갔다. 네 명의 조사관이 대기하고 있었다. 김도훈 조사3과장도 참석했다. 해방 후의 반민특위 조사관은 항일투쟁 경력자들이 많았다. 그러나 60년이 지나 만들어진 위원회의 조사관은 역사학자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것 같았다. 반백의 머리인 김중석 조사관이 키보드에 손을 올려놓고 물었다. 

“두 분은 삼양사에 언제부터 근무하셨죠?”

성영제 씨가 먼저 대답했다. 

“저는 1974년 3월12일부터 근무했는데 지금까지 35년 근무했습니다. 저의 아버지는 어르신 윗대부터 그댁에서 일을 하셨고 저의 할아버지도 또 그 윗대 어르신의 재실(齋室)을 돌보셨습니다.”

이번에는 감사인 조한갑 씨가 말했다. 

“저는 1977년 8월16일 삼양염업사에 입사해서 지금까지 32년 동안 어르신을 모시고 있습니다.”

“어르신 어르신 하는데 그게 누구요?”

조사관은 거슬린다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김연수(金秊洙) 회장님의 아드님인 김상돈(金相敦) 회장님을 말하는 겁니다.”

“삼양염업사에 대해 말씀해 주시죠.”

조사관의 다음 질문이었다.

“선대인 김연수 회장님이 1939년 해리(海里)에 간척사업을 한 땅을 6·25동란 때 염전으로 만드셨죠. 부산 피란시절 설탕공장을 만드셨구요. 김연수 회장님이 돌아가시면서 염전은 큰아드님 김상준(金相駿), 둘째 아드님 김상협(金相浹) 그리고 넷째 아드님 김상돈에게 주시고, 설탕공장은 셋째 아드님인 김상홍(金相鴻) 어른과 다섯째 아드님인 김상하(金相廈) 어른에게 주셨습니다. 모두 삼양사 거였죠.”

“농지 개혁으로 모든 전답(田畓)이 국가에 귀속(有償 몰수)됐는데 어떻게 일제시대 간척지가 김씨가의 재산으로 남아 있게 됐죠?” 

“농지 개혁 때 전답만 그 대상이 됐지 갯벌은 예외였어요. 그래서 그 간척지가 남은 거죠.”

성영제 씨가 대답했다.

“간척지가 다 논이나 밭이 된 거 아닙니까?”

“일부는 소금기가 많아서 농사를 지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안 빼앗긴 거죠.” 

“일부러 그 땅을 빼돌린 거 아닙니까?”

“안 그래요.”

조한갑 씨가 고개를 흔들면서 부인했다. 

“이번에 위원회에서 조사를 하기 직전에 염전의 토지를 다른 사람에게 일부 빼돌렸죠?”

조사관이 성영제를 보고 물었다.

“그게 아닙니다. 6·25 때부터 어르신 땅에 염부들 집도 지어주고 땅도 빌려주어 살게 했죠. 그런데 세월이 흐르면서 어르신도 代가 바뀌고 염전 사람들도 아들, 손자로 代가 이어졌어요. 그러다 보니 아직도 염전 근처의 부락에는 염부로 일하던 사람들의 자손들이 그냥 살고 있죠. 그런데 그 사람들의 소원은 자기네 집하고 땅을 가져보는 거라고 그랬어요. 염전에서 지어준 집이 낡아가니까 자기네 집을 새로 짓기 위해 집터를 팔라고 사정을 한 거죠. 그래서 계약체결을 하게 된 겁니다. 빼돌린 게 아니죠.”

“그런 결정은 누가 합니까?”

조사관이 조한갑 씨에게 물었다.

“어르신이 하십니다. 평당 4만 원으로 아주 싸게 판 겁니다.”

“염전 부근에 김씨家 토지가 많습니까?”

조사관이 이번에는 조한갑 씨에게 물었다.

“부락 일대가 다 어르신 땅이죠. 그 외에도 땅이 어떻게 많은지 관리하는 우리도 다 모를 정도예요. 농지 개혁 때 다 빼앗겼는데도 여기저기 누락된 게 있어요. 우리도 다 파악하지 못합니다. 그래도 요즘에는 과세(課稅)하는 전산망이 잘 되어 있어서 재산세를 내라고 통보가 오면 그제야 ‘김씨家 땅이 거기 있구나’ 하고 아는 정도입니다.”

“삼양염업사는 회사인가요?”

“개인기업입니다. 선대 회장님이 회사를 만들지 말라고 했어요. 회사를 만들어 남들이 끼면 골치 아픈 일이 생기니까요. 개인 명의로 등기를 하라고 했어요. 선대 김상준 회장님이나 김상협 총장님이 다 돌아가시고 그 자손들이 수십 명입니다. 땅을 조금이라도 팔면 우리 같은 직원은 수십 명한테 연락해서 인감증명서 받고 도장 받으려니까 애를 많이 먹는다구요. 그래서 우리 입장으로는 절대 안 파는 게 나아요.”

조한갑 씨의 대답이었다. 

“지금 염전에서 돈은 잘 들어와요?”

“이 위원회 때문에 사실상 휴업상태입니다.”

“저희 위원회도 김씨가에 어떤 땅이 있는지 너무 많아 다 조사하지 못했습니다. 그 땅에 관한 서류들을 넘겨주실 수 있어요?”

조사관이 두 사람에게 물었다. 

“….”

조한갑 씨와 성영제 씨는 어떻게 대답할지 몰라 당황한 얼굴이었다. 

“잠깐만요.”

변호사인 내가 끼어들었다. 

“위원회는 김씨家 땅을 조사해서 환수하려는 단체입니다. 이쪽에서 정보까지 제공하고 환수당할 입장은 아닙니다. 위원회에서 스스로 조사하셔야 하지 않습니까?”

이번에는 내가 삼양염업사의 두 직원들에게 말했다.

“그런 요청에는 답변하지 마십시오.”

그 말에 조사관이 불쾌한 듯 한마디 내뱉었다. 

“솔직히 말해서 김연수가 친일반민족행위자인 건 기정사실 아닙니까? 우리가 재산조사를 하는데 좀 편하게 협조하면 안 됩니까?”

“저는 다르게 생각합니다. 김연수 회장은 철저한 민족기업인이고 애국자로 생각합니다. 무늬만 독립투사인 엉터리들보다 훨씬 이 나라를 위해 많은 일을 이룬 존경해야 할 존재라고 확신합니다.”

조사관들의 얼굴이 일제히 불쾌한 표정으로 변했다. 그중 한 명이 격앙된 표정으로 이렇게 외쳤다. 

“우리 위원회는 김씨가를 대리해서 온 변호사와는 전혀 견해를 달리합니다.”

조사관들을 지휘하는 김도훈 조사3과장이 분위기를 진정시키면서 질문을 계속했다. 

“저희는 삼양사가 1940년 이후 어떤 활동을 했는지 궁금합니다. 그때부터 해방 때까지의 활동상황에 관한 자료를 주실 수 없습니까?”

함정이 깔려 있는 질문이었다. 당시 미곡통제령은 모든 생산되는 쌀은 당국에 바치게 되어 있었다. 그걸 친일로 몰아버릴 수도 있었다. 조사관들은 철저히 자신들의 신상을 비밀에 부치고 있었다.

“저는 조사관들이 누구인지 그 신분을 분명히 알고 싶습니다. 오늘의 이 조사 자체가 하나의 역사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앞에 계신 분들이 누구신지 말씀해 주시죠. 당당하게 밝힐 수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앞에 앉아 있던 여성조사관이 신분을 밝혔다. 

“저는 손영실 변호사입니다. 위원회에 들어와 일하고 있습니다.”

“그 옆에 계신 분은 누구십니까? 지난번 김씨가의 종손을 조사할 때 저보고 김연수의 여러 친일행적이 있으니까 잘 살펴보라고 권유하면서 자신은 밝히시지 않던데.”

“유성환입니다. 근대사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그때는 제가 역사를 몰라서 멈칫하고 아무 말 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그날 이후 여러 논문도 보고 역사서적도 봤는데 그날 암시하시는 것처럼 그렇게 생각되지는 않네요.”

“엄 변호사님은 이런 상황 자체를 즐기시면서 따라다니는 분 아니세요?”

여성 변호사가 나를 비꼬았다. 공적(公的)인 임무를 수행하는 그들은 특정한 역사관과 감정으로 중심을 잡지 못하는 느낌이었다. 이건 역사였다. 조사관들의 행동 하나 말 한 마디도 남겨야 할 의무가 있었다. 내가 대표인 김도훈 조사과장에게 물었다. 

“위원회는 친일파의 재산들을 조사해서 환수하는 업무 맞죠?”

“그렇습니다.”

“부동산만 해당합니까?”

“그렇지는 않습니다. 다 할 수 있습니다.”

“김연수 회장의 재산은 염전뿐 아니라 오늘날 삼양사 그룹이 되어 엄청나게 확장됐습니다. 환수범위가 어디까지인가요?”

“다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구체적인 건 우리가 여기서 답변하지 않겠습니다. 그 이유는 짐작하시라고 믿습니다.”

조사과장은 의미 있는 웃음을 지어보였다. 

“저는 회의가 있어서 가봐야겠습니다.”

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조사는 계속됐다. 재산환수를 기계적으로 다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조사과장이 주는 힌트가 바로 그것이었다. 중요한 정보였다. 논리와 명분을 제공하면 받아들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방 후 토지 개혁 때도 갯벌은 전답이란 법조문에서 빠져 그 땅이 보존됐다. 그렇다면 위원회의 환수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어떤 사유가 필요할 것인지 연구해야 할 과제였다. 직접 부딪쳐 보면 방법이 생기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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