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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친일마녀사냥 76 - 백윤수상점

운영자 2019.07.22 16:10:31
조회 92 추천 0 댓글 0
친일마녀사냥


76


백윤수상점


박승직상점과 함께 포목상계를 휘어잡고 있는 회사가 대창무역이었다. 점주 백윤수(白潤洙)는 종로 육의전에서 조상 대대로 비단을 팔아온 상인 집안이었다. 조선 말과 일제 초의 혹독한 화폐개혁의 고비를 힘겹게 넘어선 그는 육의전 상인들 가운데 유일하게 남은 상인이었다. 

그는 ‘백윤수상점’을 하면서 보신각 옆에 사무실을 얻어 ‘대창무역주식회사’란 간판을 걸었다. 자본금 50만 원에 불입자본 50만 원이었다. 대창무역은 청나라에서 비단을 수입해와 팔았다. 1920년부터 총독부가 청나라에서 견직물을 수입해 오는 것을 금지하자 백윤수는 청량리에 직조기 300대 규모의 공장을 세웠다. 경성방직이나 부산에 세워진 일본인 직물공장에 뒤지지 않는 규모였다. 백윤수는 정황 판단이 빠르고 시류(時流)에 민첩하게 적응해 나가고 있었다. 

백윤수의 아들 백낙승(白樂承)은 일본 메이지대학 법학과를 졸업한 엘리트였다. 사업적인 두뇌도 뛰어났을 뿐 아니라 정치적인 수완까지 탁월했다. 그는 관동군 헌병대에 은밀하게 줄을 대서 만주로 포목을 밀수출했다. 일본의 이토추상사 같은 대기업도 백낙승의 판매망을 통해 만주에 직물을 수출할 수밖에 없도록 했다. 백윤수상점은 만주에 포목을 팔아 막대한 돈을 벌어들였고, 일본계 회사 동양면화에 투자해서 주식을 절반가량 사들이기도 했다. 

백윤수는 1911년 시사신보가 조사한 당시 조선에서 50만 원 이상 소유한 자산가 32명 중의 한 사람이었다. 백윤수를 제외한 자산가의 대부분은 왕족이거나 관료 출신의 양반계급이었다. 당시 자산가들을 보면 대원군의 장남인 이희, 고종의 아들인 의친왕 이강, 박영효, 이완용, 송병준, 민영휘, 민영달 등이었다. 백윤수는 왕족이나 양반 출신이 아닌 순수한 상인이었다.

경성방직의 김연수가 어느 날 백윤수상점을 찾아갔다. 점원이 그를 응접실로 안내했다. 점주 백윤수가 자리에 앉아 있었다.

“경성방직에서 제품을 생산하기 시작했습니다. 저희 회사 상품을 한번 취급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김연수가 바로 용건을 말했다.

“고창의 지산 선생 자제분이라고 하셨나?”

“그렇습니다.”

“일본에서는 어느 대학을 다녔소?”

“교토대학교 경제학부를 나왔습니다.”

“우리 아들놈은 메이지대 법학부를 다니는데… 왜 벼슬을 하지 않고 장사를 하시지?”

“저는 기업가가 꿈입니다.”

“지금 사업을 몇 년째 하고 있소?”

“이제 처음입니다. 나름대로는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전문 대리점을 활용하지 않고 이렇게 직접 판매를 하러 다니시나?”

“그렇습니다.”

“우리가 수입하는 영국이나 일본의 제품들보다 경성방직의 제품이 더 좋다고 생각하오?”

“아직은 미숙합니다. 모르겠습니다.”

“그러면 가격은?”

“일본의 제품들보다 오히려 면사(綿絲) 구입비용이 더 드는 편입니다. 관세도 물고 단가가 더 높습니다.”

“사람들은 줄을 서서 빗장표 일본 광목을 사려고 몰려들고 있고 또 조선제보다는 일제(日製)를 다들 선호해요. 그런데 우리가 어떻게 경성방직의 제품을 취급할 수 있겠소? 상업은 소비자가 기꺼이 돈을 내고 사는 물건만 만들어 내고 팔리는 거요.”

김연수는 어떻게든 그들의 마음을 열기로 결심했다. 상무 이강현과 함께 장안의 포목상들을 수시로 불러 최고급 요리집인 식도원에서 접대했다. 술자리에서 이강현은 연신 머리를 조아리면서 울음 섞인 목소리로 이렇게 호소했다.

“사실 일본회사 제품들은 자기네가 뽑은 실을 사용해서 광목을 짜고 또 경험도 많아 우리 경성방직 제품보다 우수한 것은 확실합니다. 그러나 경성방직의 제품은 우리 자본, 우리 기술로 짠 것이고 우리나라 어린 소녀들의 손으로 짠 것입니다. 그러니 제발 외면하지 마시고 점두(店頭)에 놓아 주시기만이라도 해주십시오.”

김연수도 그들에게 솔직한 심정을 털어놓았다. 

“외관미나 실용에 있어서 바다 건너온 상품에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조선제품인데 거들떠보지도 않아요. 조선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이라고 거들떠보지도 않는 거죠. 조선사람 자체가 거의 모두 그런 관념을 가지고 있어요. 빈약한 우리 힘이지만 피땀 흘려 만든 제품인데 조선사람을 본위로 만든 물건이 조선사람에게 멸시를 당하다니 이건 정말 억울합니다.”

삼남지방은 판로를 개척하기 불가능할 정도로 일본제품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김연수는 삼남지방은 포기하고 평양과 원산을 중점 영업지역으로 삼기로 했다. 그래도 경성시내에 얼마간이라도 판로를 개척해야 했다. 김연수는 포목상들을 공략할 구체적 대책을 세웠다. 품질, 가격, 인지도 그 어느 것도 일본제품을 따라갈 수 없었다. 판매망도 마찬가지였다. 

‘그렇다면 결국 수수료로 승부를 내 볼까?’

얼핏 그런 생각이 떠올랐다. 이익을 많이 볼 수 있다면 장사꾼들이 경성방직의 제품을 받아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었다. 당시 경성에는 일본인 면포상과 조선인 포목상의 두 조합이 있었다. 일본인들의 면포상 조합 안에는 가지하라상점, 미야바야시상점, 이데상점, 야스세이상점 등이 있었다. 조선인 상인조합의 회원에는 박승직, 김윤면, 태응선, 최인성, 이창하 등이 있었고 박승직이 조합장이었다. 김연수는 다시 배오개의 박승직을 찾아갔다.

“저희는 회사제품을 모두 조선인 포목상 조합에 맡기기로 하는 일수판매계약을 체결하겠습니다.”

조합이 독점판매를 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판매하는 만큼 별도의 수수료를 또 드리겠습니다.”

“그런 조건이라면 내 거절을 할 이유는 없겠소.”

박승직이 상인다운 특이한 표정으로 승낙을 했다. 일단 거래가 성립된 것이다.

“그 대신 조합장님께서 1년에 1500척 이상은 책임지고 팔아주셔야 합니다.”

“알겠소.”

이윤의 대부분을 수수료로 중간판매상에 주는 셈이었다. 지방도 마찬가지 방법을 택했다. 강계, 성진, 인천, 청주의 포목상조합, 안성과 예산의 유지들이 설립한 상회사들과 특약점 계약을 체결했다. 같은 내용으로 계약한 인천포목상조합의 제품구입이 활발했다. 인천지역의 대상인 정순택은 개인적으로도 경성방직에서 제품을 대량구매해 가기도 했다. 안성에서는 박필병 등 지역유지들이 안성상사주식회사를 설립하고 경성방직의 제품을 취급하기 시작했다. 

원산에서는 포목상 최수악이 중심이 되어 조합과 설립한 회사를 통해 경성방직의 제품들을 취급했다. 관서, 관북지방의 경성방직 제품시장이 형성됐다. 이 지역은 아직 일본제품이 깊숙이 침투하지 못했고 또 상인과 대중의 애국심, 민족주의 정서가 강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경성방직은 직원들을 평양과 원산 등지에 파견해 집중적으로 선전하고 각 지역별로 유력 한국인 포목상들과 교섭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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