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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의 극복

운영자 2019.10.21 12:27:51
조회 184 추천 1 댓글 0
블로그의 댓글 하나가 눈에 띄었다. 헤어나지 못하는 운명적 가난을 내게 얘기했다. 성경 속의 예수는 가난한 사람은 영원히 존재할 것이라고 했다. 가난은 왕도 구제하지 못한다는 속담이 있다.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우리 집안도 극도의 가난을 운명같이 받아들인 집안이다. 유랑농민인 할아버지는 만주 땅에서 흉년에 흙을 먹었던 얘기를 했었다. 마치 중국소설 ‘붉은 수수밭’이나 펄벅 여사의 ‘대지’의 가난한 광경을 보는 느낌이었다. 역시 만주에 살던 어머니는 아기 때 동네에서 불쌍하다고 주는 감자 한 톨로 연명했다고 한다. 일곱 살 때 팔려갔다 돌아왔다고 한 어머니의 고백을 들으면서 나는 일본소설 ‘오싱’의 장면을 다시 떠올렸다. 신화 같은 육십년대의 가난 속에서 내가 자랄 때 주변은 온통 판자집이었다. 낙산 꼭대기나 청계천 변에 굴딱지 같이 붙어 있는 짐승 우리 같은 가난한 집 동네에서는 밤까지 악에 받친 소리가 끊기지 않았다. 가난을 극복하는 방법은 돈을 버는 것이다. 주변에서 부자가 된 사람들을 여러 명 보았다. 돈을 신으로 모시고 그 노예가 되면 그렇게 될 수 있는 것 같았다. 철공소 흙바닥에서 선잠을 자면서 선반을 돌리면서 부자가 된 경우도 봤다. 곡괭이 자루 하나로 쉬는 날도 노동판에 가서 일을 해 부자가 된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뇌에 전족같이 채워진 정신적 가난을 그들은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예금잔고가 수십억 넘쳐나도 그들은 가난했다. 쓴다는 걸 아예 배우지 못했던 것이다. 돈은 쓴 만큼만 자기 것이라는 말이 있다.

죽음이 다가오는 침대 위에서 손에 통장과 재산목록을 꼭 쥐고 저세상으로 가는 모습을 보았다. 밥 한끼 먹기 힘든 가난한 사람들과 부자였던 그들의 차이를 나는 알 수 없었다. 있어도 더 가지려고 하면 가난한 사람이었다. 멋지게 가난을 극복하는 사람을 본 적이 있다. 변호사를 하면서 원로 소설가인 정을병씨와 그가 죽기 전까지 친하게 지냈었다. 그는 이십대 무렵 평생 하루에 한 끼를 먹고 살기로 결심 했다고 했다. 문학을 위해서는 생활비가 들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었다. 하루에 쌀 몇 줌과 연탄 두 장 그리고 몇 조각의 김치면 된다고 생각했다. 가난을 두 팔 벌리고 받아들였다. 그는 성공한 작가가 되고 수 만권 책이 팔려나가도 죽기까지 자신이 젊은 시절 설정한 가난을 지켰다. 문학의 순교자가 되기 위해 만든 청빈이었다. 또 다른 가난을 보았다. 나는 삼십대 시절부터 법정 스님의 수필을 좋아했다. 깊은 산속의 오두막에서 스님은 무소유의 삶을 살다가 갔다. 마을의 가게로 갔다가 ‘거지’라는 소리를 들은 적도 있었다. 그는 스스로 만들어낸 가난이야말로 맑고 향기로운 삶이라고 글에서 말하고 있었다. 그는 거액의 시주를 받아 서울 시내에 큰 절을 짓고 나서도 설법을 하는 시간 이외에는 바로 산골의 오두막으로 돌아가곤 했다. 그는 평생 청빈을 도반으로 삼았다. 그가 조계산의 자락에서 한줄기 보랏빛 연기로 변해서 하늘로 올라갈 때 독자였던 나는 그의 몸이 마지막으로 만드는 작고 푸른 불꽃 옆에 앉아 삶이 무엇인지를 그 앞에 있는 그의 영정사진에 대고 물었다. 구한말 화순사람 이세종씨는 머슴이었다. 겨우 한글만 깨친 그는 우연히 얻은 신약성경을 읽고 또 읽었다. 그리고 거기서 머리 둘 곳도 없는 예수의 맑은 가난을 알았다. 그는 주위 사람들에게 자기 나름으로 얻은 성경 속의 진리를 전했다. 그 모임이 후일 ‘동광원’이라는 단체가 됐다. 몇 년 전 그를 아는 96세의 엄두섭 목사를 만난 적이 있었다. 엄두섭 목사는 내게 이렇게 말해 주었다.

“이세종 그 사람은 지리산 자락에서 쑥을 뜯어먹고 살았어. 작달막한 사람인데 겉으로 보기에는 영락없이 거지야. 그런데 알고 보면 성자인 거야.”

많은 사람들이 가난을 저주처럼 생각한다. 오육십년대 절대가난의 시대를 거쳐온 나는 지금의 가난은 상대적 가난이라고 생각한다. 갑자기 부자가 될 수는 없지만 가난의 고통을 극복하는 방법은 있지 않을까. 예수님도 머리를 둘 곳이 없을 정도로 가난했다. 출가한 부처님도 겉으로 보기에는 누더기를 입고 수염을 기른 채 구걸하러 다니는 거지와 다름이 없었다. 영등포역 뒷골목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침 묻은 연필을 들고 진지하게 줄을 치며 성경을 읽고 있는 노숙자를 본 적이 있다. 그의 영혼 속에 성령이 있다면 그는 노숙자가 아니라 성자다. 가난도 마음이 만들어 낸 그림자일지 모른다. 위를 보지 말고 아래를 보면 가난이 좀 없어지지 않을까. 아니면 물질보다 더 가치 있는 걸 섬기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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