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시인사이드 갤러리

갤러리 이슈박스, 최근방문 갤러리

갤러리 본문 영역

노년의 작은 성취

운영자 2020.10.12 10:23:16
조회 141 추천 2 댓글 0
노년의 작은 성취 

 

동네 야산을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길에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보았다. 아무 때나 거리낌 없이 찾아가는 고등학교 대학 시절부터 지금까지의 우정을 계속하고 있다.

“지금 뭐하고 있어?”

“뭐하긴? 방에 틀어박혀 있지.”

“그러면 나와 저녁이나 같이하자.”

“그래 청계산 밑에 곤드레밥집이 있는 데 거기가서 먹자”

우리 둘은 청계산 아래 음식점에서 막걸리를 반주로 나누면서 밥을 먹으면서 얘기했다. 그는 오랫동안 판사 생활을 하고 인권위원회에서 일을 하기도 했다. 나는 그의 인생도정을 어느 정도 까지는 알고 있었다. 즐거운 일도 같이 겪고 힘든 일도 함께 했었다.

“노년의 요즈음은 어떻게 보내냐?”

내가 물었다.

“벌써 오카리나를 분 지가 십 년이 돼. 팀을 이루어 공연도 다니고 했는데 이제야 음악성이 없는 걸 확인했어. 나는 음악 쪽에는 재능을 타고나지 못한 거야. 그리고 댄스교실에도 몇 년을 나가 열심히 연습을 했는데 몸이 도저히 따라가지 못해. 아침마다 인터넷으로 설교를 듣는데 아무래도 나는 제대로 믿는 것 같지가 않아.”

“하나님이 동시에 여러 가지 은혜를 주지는 않지. 악기 하나도 잘 불려면 인생을 바쳐 올 인해야 하는 거 아니겠어. 전해 들은 소리지만 정경화씨는 한 소절을 억번이나 연습을 했다고 하더라. 트롯가수인 나훈아도 끊임없는 연습을 한다고 하더라. 그러니 늙어서 여기로 하는 음악이 가야 어디까지 가겠어? 욕심이지. 그래도 너는 젊어서 판사를 했잖아? 판사도 아무나 하는 게 아니지.” 

“맞아. 그때는 잘 몰랐는데 지금 생각하면 사회에서 과분한 대접을 받은 것 같아. 감사한 일이지. 그렇지만 사표를 쓰고 나올 때는 속으로 만세를 불렀어. 항상 조직에 누가 되지 않게 행동하려고 조심하니까 얼마나 스트레스가 쌓였었는지 몰라.”

그는 판사 생활을 하면서도 그 일에 전념했었다. 젊은 시절 수술을 하고 입원실에 있는 그를 문병 간 적이 있었다. 그는 피가 흐르는 거즈를 코에 막고 대법원의 최근 판례를 공부하고 있었다. 그런 친구였다. 같이 대학도서관에서 고시공부를 하던 시절이었다. 독감이 걸렸는지 그가 힘들어 하는 모습이었다. 어느 순간 그가 도저히 견디지 못하겠는지 책을 놔두고 일어서서 도서관을 나갔다. 몇 시간 후 그가 다시 돌아왔다. 용인에서 개인의원을 하는 아버지에게 가서 링겔을 맞고 돌아온 것이다. 자기가 계획한 공부하는 시간은 고열이 나고 아파도 포기하지 않는 성격이었다. 그의 집요함과 노력을 도저히 따라갈 수 없었던 나는 그를 따라갈 수가 없었다. 그는 판사가 되어 내가 치르는 고시장에 따라와 걱정을 하며 지켜보기도 했었다.

“인권위원회에서 일할 때는 어땠어?”

내가 그의 앞에 놓인 노란 양재기에 막걸리를 부어주면서 물었다.

“판사를 할 때는 감겼던 눈이 열리더라구. 진짜 인권이 보이고 운동권 출신들의 생각을 알게 됐었지. 우리들은 체제에 순종하고 세상의 양지쪽을 걸으려고 했었어. 그런데 운동권 출신들은 그렇지 않았어. 자기를 희생하면서 독재의 담을 허물라고 했던 거야. 물론 그들 중에도 또 다른 권력지향적 출세주의자들도 있지만 말이야.”

인생의 기나긴 노정을 여러 단계로 나누어 끊임없는 작은 성취의 기쁨을 만끽한다면 삶 자체는 늘 축복일 것이다. 그는 그런 친구였다. 공부만이 아니라 운동도 잡기도 열정을 가지고 했다. 일본영화 ‘쉘 위 댄스’를 보면 중년의 남자가 쑥스럽게 댄스교실의 문을 기웃거린다. 그러다 열정이 불붙은 그는 밤의 조용한 공원에서 스텝을 밟으며 연습을 한다. 친구도 그런 스타일이었다. 누구나 열정은 있다. 다만 어떤 이는 그 열정을 삼십분 밖에 유지하지 못하고 어떤 사람은 삼십일 밖에 유지하지 못한다. 그러나 친구는 삼십년을 능히 가고도 남을 집념의 남자였다. 나는 친구에게서 성공의 비결을 보았다. 청계산 밑의 밤길을 걸어오면서 친구가 유튜브에서 노래 하나를 찾아 틀어주면서 말했다.

“이 노래의 가사를 봐. 어떻게 이렇게 아름답고 좋은 시가 있을수 있어? 멜로디도 그렇고. 기가 막혀.”

검은 하늘에는 하얀 보름달이 우리를 내려다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추천 비추천

2

고정닉 0

0

댓글 영역

전체 댓글 0
등록순정렬 기준선택
본문 보기

하단 갤러리 리스트 영역

왼쪽 컨텐츠 영역

갤러리 리스트 영역

갤러리 리스트
번호 제목 글쓴이 작성일 조회 추천
설문 주위 눈치 안 보고(어쩌면 눈치 없이) MZ식 '직설 화법' 날릴 것 같은 스타는? 운영자 24/04/29 - -
3337 당신은 꽂히면 바로 내 지르는 사람이야 운영자 24.04.29 30 0
3336 아들의 좋은 친구가 되어 주세요 운영자 24.04.29 19 0
3335 도대체 저의가 뭡니까? 운영자 24.04.29 21 0
3334 기억 사진첩 속 어떤 재판광경 운영자 24.04.29 20 0
3333 내가 체험한 언론의 색깔 운영자 24.04.29 18 0
3332 변호사란 직업의 숨은 고뇌 운영자 24.04.29 19 0
3331 저세상으로 가는 법 운영자 24.04.29 19 1
3330 인권변호사의 첫걸음 운영자 24.04.22 55 0
3329 깨어있는 시민의 의무 운영자 24.04.22 43 0
3328 죄수가 전하는 사회정의 운영자 24.04.22 57 1
3327 이민자의 슬픔 운영자 24.04.22 56 1
3326 강도에게 성질을 냈었다. 운영자 24.04.22 50 1
3325 외국의 감옥 운영자 24.04.22 50 1
3324 벗꽃 잎 같이 진 친구 운영자 24.04.15 80 1
3323 조용한 기적 운영자 24.04.15 80 2
3322 감옥은 좋은 독서실 운영자 24.04.15 67 1
3321 앞이 안 보이는 사람들 운영자 24.04.15 63 1
3320 미녀 탈랜트의 숨겨진 사랑 운영자 24.04.15 79 1
3319 두 건달의 독백 운영자 24.04.15 67 1
3318 명품이 갑옷인가 운영자 24.04.15 57 1
3317 나는 될 것이라는 믿음 운영자 24.04.15 66 1
3316 오랜 꿈 운영자 24.04.08 82 2
3315 그들은 각자 소설이 됐다. 운영자 24.04.08 90 1
3314 나이 값 [1] 운영자 24.04.08 124 1
3313 검은 은혜 [1] 운영자 24.04.08 111 3
3312 실버타운은 반은 천국 반은 지옥 [1] 운영자 24.04.08 125 2
3311 늙어서 만난 친구 운영자 24.04.08 68 1
3310 그들을 이어주는 끈 [1] 운영자 24.04.01 234 2
3309 그가 노숙자가 됐다 [1] 운영자 24.04.01 146 3
3308 밥벌이를 졸업하려고 한다 [1] 운영자 24.04.01 155 2
3307 허망한 부자 [1] 운영자 24.04.01 167 2
3306 죽은 소설가가 말을 걸었다. [1] 운영자 24.04.01 149 2
3305 개인의 신비체험 [2] 운영자 24.04.01 159 2
3304 나는 책장을 정리하고 있다. [1] 운영자 24.04.01 142 2
3303 노인의 집짓기 [1] 운영자 24.04.01 141 1
3302 똑똑한 노인 [1] 운영자 24.03.25 178 2
3301 곱게 늙어간다는 것 [1] 운영자 24.03.25 182 4
3300 두 명의 교주 [1] 운영자 24.03.25 176 1
3299 영혼이 살아있는 착한 노숙자 [1] 운영자 24.03.25 164 1
3298 팥 빵 [1] 운영자 24.03.25 155 0
3297 얼굴 [1] 운영자 24.03.19 188 1
3296 이별의 기술 운영자 24.03.19 135 1
3295 노년에 맞이하는 친구들 운영자 24.03.19 131 1
3294 노년의 진짜 공부 운영자 24.03.19 124 0
3293 주는 즐거움 운영자 24.03.19 109 1
3292 장사꾼 대통령 운영자 24.03.19 138 1
3291 나는 어떻게 크리스챤이 됐을까. 운영자 24.03.19 151 1
3290 태극기부대원과 인민군상좌 운영자 24.03.19 120 2
3289 결혼관을 묻는 청년에게 [4] 운영자 24.03.11 333 0
3288 손자의 마음 밭 갈기 운영자 24.03.11 152 1
갤러리 내부 검색
제목+내용게시물 정렬 옵션

오른쪽 컨텐츠 영역

실시간 베스트

1/8

뉴스

디시미디어

디시이슈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