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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사 박은주 사장

운영자 2020.12.21 09:5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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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사 박은주 사장


여름을 예고하는 유월의 태양이 쨍쨍하게 내려 쬐는 오래전 어느 날이었다. 나는 화동에 있는 ‘달개비’식당으로 들어가 예약된 이층 방으로 올라갔다. 국내 최고의 출판사인 김영사의 사장 박은주씨가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출판계에서 그녀는 입지전적인 인물이었다. 직원으로 출발해서 큰 출판사의 사장이 됐는데 어느 순간 모든 걸 접고 외국으로 떠났다는 얘기를 잡지에서 읽었다. 그녀는 외국에서 출판에 관한 공부를 하고 돌아와 그가 다니던 김영사를 한국 최고의 출판사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삼성경제연구소의 발표에 따르면 직원 한 사람당 연 매출이 국내기업중 최고라고 했다. 그 기록을 연속 삼 년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농사로 치면 최악의 돌밭에서 최고의 소출을 낸 능력가였다. 나는 그녀에게 소설계의 원로 정을병씨의 작품을 제시했었다. 보통은 그 분야의 최고 인물이면 무조건 받고 보는게 출판계의 일반적 풍토였다. 저자의 이름만으로도 어느 정도 팔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녀는 정중히 출판을 거절했다. 원고를 돌려받는 자리에서 그 이유를 알고 싶어 만나자고 했다. 간단한 인사가 끝나고 몇마디를 나눈 후에 그녀가 이런 말을 했다.

“제 출판사에서는 문학작품은 하지 않았어요. 먼저 사장인 제가 문학작품을 읽을 줄을 모릅니다. 문학이라는 게 뭔지를 모르는 거죠. 그래도 욕심이 생겨서 한번은 문학을 하는 편집장을 구해서 책을 내 봤죠. 결국은 그 편집장에게 휘둘리게 되고 실패를 했습니다. 거기서 사람은 자기가 확실히 잘 할 수 있는 일을 계속해야지 모르는 건 하지 말자는 걸 깨달았습니다. 이번에 욕심이 나서 정을병선생님 원고를 받았었는데 결국 문학에는 손을 대지 말자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그 말에 나는 그녀의 특기인 경영이 궁금해져서 물었다.

“출판사는 어떻게 운영하십니까?”

“최대한 살빼기를 하고 대부분 아웃 소싱을 합니다. 두뇌부분인 기획파트와 영업, 홍보만 회사에 남겨뒀죠. 나머지는 모두 외주를 주고 있습니다. 이번에 생각한 건데 장애인들 중에서 똑똑한 사람들을 모아 교정과 교열만을 보는 회사를 만들면 어떨까 합니다. 저희 회사에서 기술을 가르치고 그 사람들이 전문적으로 교정을 보면 장애인 복지도 되고 우리도 경제적으로 일을 할 수 있어 여러 면에서 좋은게 아닌가 해요.”

그녀의 머릿속에는 순간순간 아이디어가 넘치고 있는 것 같았다.

“어떻게 최고의 수익을 올리는 회사를 만들었습니까?”

내가 물었다.

“외국에 가서 여러 기업의 직원복지실태를 살폈습니다. 저는 일단 직원들의 대우를 대한민국 기업 중 최고로 해보려고 노력했습니다. 파격적으로 유학까지 보내면서 그들이 주인의식을 가지고 일을 할 수 있도록 시도했습니다. 제가 경험해 보면 어떤 일과 마주칠 때 자신이 직원이 아니라 사장의 입장이 되어야 하는 겁니다. 직장이나 조직의 일들은 항상 어느 쪽에서 할 일인지 경계가 불분명한 경우가 많죠. 주인의식을 가지면 그게 없어지는 겁니다.”

짧은 점심시간에 수 십년 간 경험한 출판업의 농축된 경영철학을 들은 것 같았다. 책을 여러 권 내면서 여러 종류의 출판업자를 여럿 만났다. 문학작품은 물론이고 글을 읽을 능력 자체가 안되는 출판업자가 많았다. 저자의 지적허영심을 노리고 사기행위에 가까운 일을 벌리는 업자도 있었다. 출판기념회나 싸인회는 책을 팔기 위한 출판사의 연출인게 보통이었다. 책을 만든다는 것은 인간들의 영혼을 살리기 위해 정신적인 떡을 만드는 숭고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옛날의 선비들은 매일 책을 소리 내어 읽었다. 그게 그들의 기도였고 수행방법이기도 했다. 성경 속의 많은 예언자들 자신이 저자였고 직접 책을 만들었다. 모세가 광야에서 한 연설 들이 모아져 신명기라는 책이 나왔다. 의사 누가가 예수의 일생을 추적해서 쓴 단편소설이 누가복음이다. 사도바울이 쓴 편지들을 모아 책을 만든 것이 신약이다. 책이란 것은 사람이나 어떤 사회나 캄캄한 어둠을 헤치고 가야 할 때 멀리서 등불 역할을 하는 선인들의 지혜다. 책을 만드는 좋은 장인을 본 즐거운 초여름날의 오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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