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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략이 승리하는 사회

운영자 2021.04.19 09:5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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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략이 승리하는 사회




눈이 덮인 교도소 안에서 오전부터 해가 설핏 해 질 때까지 나는 그의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청계천 고가도로가 있던 시절 소년이었던 그는 고가도로를 지붕 삼고 교각을 벽삼아 거지 생활을 했다고 했다. 어느 날 거지 아이들 몇 명과 뚝섬 한강변으로 나갔다가 패싸움이 벌어졌다. 그 중 한 아이가 싸우다가 물에 빠져 죽었다. 그 지역 경찰서의 형사가 사건을 만들었다. 그를 범인으로 하고 같이 있던 다른 아이들이 죽이는 장면을 목격했다고 입을 모아 진술하게 했다. 아니라고 하면 구두 발로 차고 따귀를 때렸다. 거지 출신인 그는 무기력했다. 그 누구도 도와줄 사람이 없었다. 아니라고 하면 형사의 눈에서 푸른 화염같은 잔인한 빛이 흘러나왔다. 죽이지 않았으면서도 그는 살인을 자백했다. 검사와 판사는 컨베어벨트에 실린 제품 같은 그가 그냥 형식적으로 거쳐 가는 과정이었다. 그는 그렇게 살인죄를 저지를 죄수가 되어 이십년 동안 징역을 살고 있었다. 그는 나에게 재심을 부탁했다. 현실은 드라마나 영화와는 달랐다. 거짓 증언을 했던 같이 갔던 그 아이들을 찾을 길이 없었다. 설령 찾는다고 해도 진실을 말해줄 리가 없을 것이다. 그들의 양심에 칼을 꽂는 것 같이 되기 때문이다. 늙은 형사의 참회를 바랄 수도 없었다. 거지 출신인 그는 세월이 흘러도 한 인간으로 세상에 존재할 수가 없었다. 감옥 안에서 중년이 된 그가 절규하던 이런 소리가 지금도 뇌리에 깊이 각인되어 있다.

“하나님은 사람도 아닌 나쁜 놈이야. 진짜 하나님이 있다면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가 있어. 여기를 찾아온 목사도 엉터리야. 억울하다는 소리만 하면 한번 들어줄 생각도 하지 않고 그건 자기 일이 아니라고 하면서 슬슬 꽁무니를 빼.”

변호사인 나도 무기력을 절감 할 수 밖에 없었다. 나는 감옥의 창문으로 떨어지는 눈 녹은 물만 보며 침묵할 수 밖에 없었다. 그 시절 만났던 한 고참 형사는 내게 형사 속에 숨어있는 악마에 대해 이렇게 고백했다.

“높은 놈들이 범인을 잡으라고 닥달을 하면 죄인 하나 만들기는 너무 간단하죠. 우리가 살인범으로 찍은 놈의 머리카락 하나를 슬쩍 가져다가 살인현장에 가져다 놓는 거예요. 과학 수사연구소에서 그걸 가져다 유전자 감정서를 보내면 그 증거를 거부할 판사들이 없지. 요즈음은 복사기가 어떻게나 좋은지 적당히 문서를 위조해서 증거를 만들기가 너무 쉬워. 검사나 판사들은 문서를 좋아하잖아?”

그게 이 사회의 공권력 뒤편에 감추어져 있는 파충류의 꼬리였다. 오래전 간첩을 잡는 대공 수사관 한 사람으로부터 개인적으로 이런 고백을 들었었다.

“간첩이요? 그거 우리가 만드는 거지 진짜 잡히는 경우는 드물어요. 대개 간첩으로 우리가 지목하고 싶은 사람의 집에 가면 그들이 읽는 책들이 있어요. 전환시대의 논리라든가 태백산맥이라는 소설 그런 거였죠. 사회현상을 객관적으로 알기 위해 보는 책이라는 걸 우리도 사실 알아요. 그런 책들을 압수하고 전문적인 대공 감정가라는 사람을 증인으로 세웠어요. 자칭 김일성을 공부한 전문가라고 하면서 증인이 직업인 사람들이죠. 그 사람들이 간첩이라고 진술하면 간첩 하나가 만들어지는 거예요.”

그런 시절이 있었던 것 같다. 수천년 동안 악마의 특징은 모략이었다. 인간 예수도 세상에서 모략을 당해 사형대인 십자가 위에 올랐다. 유대인들에게 매수된 증인들이 법정에 나와 별별 거짓을 다 말하고 있었다. 조선말 천주교도들은 사람의 피와 살을 먹는다는 모략을 받고 한강 변에 끌려가 목이 잘렸다. 정치판은 모략의 바다인 것 같다. 정치적 암살의 방법이 모략이었다. 대통령이 될 게 확실하던 이회창씨는 아들이 병역을 기피했다는 모략에 꺽여 버렸다. 서울시장으로 도전했던 나경원 의원은 억대 마사지라는 모략에 나가떨어졌다. 변호사를 하면서 수많은 모략들과 싸워왔다. 조사현장에 입회해서 모략을 하지 못하게 싸웠다. 고문당한 걸 법정에서 그리고 언론을 향해 폭로했다. 수사기관에서 만든 증거가 진짜인지 가짜인지 내 눈으로 확인해 왔다. 그런데도 세상은 이상했다. 모략은 쉽게 믿고 진실은 안 믿으려고 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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