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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자연인

운영자 2022.04.25 10:12:45
조회 131 추천 1 댓글 0

나는 종종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프로를 봤다. 깊은 산속의 움막이나 무인도에서 텐트를 치고 혼자 사는 사람들이었다. 사연도 가지가지였다. 아파트 관리소장을 했다는 사람도 있었다. 그는 갑질을 하는 세상 사람들이 싫었던 것 같다. 세상의 차디차고 거센 물결에 밀려 그들은 강가의 조약돌 같은 존재가 되어버린 것 같았다. 십년 가까이 그들을 찾아다녔던 사람이 그들과 함께하면서 느낀 소감을 말하는 걸 들었다.

“그들을 찾아가는 나의 잠재의식 속에는 우월감이 있는 것 같았어요. 나는 행복하고 그들은 나보다 못하다는 것이죠. 그래서 몰래 ‘정말 행복하세요?’라고 묻기도 했어요. 어느날 그중 어떤 사람이 내게 되묻더라구요. 왜 자기를 행복하지 않다고 생각하느냐는 거죠. 그 순간 내가 선입견과 편견이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사람마다 자기 생각을 판단의 잣대로 하기때문에 세상의 문제가 생기는 것 같다. 이십대 중반 점촌 근처 사불산 깊은 산속의 절에 묵었던 적이 있다. 재래식 화장실에 전기도 수도도 없는 곳이었다. 저녁이면 뒷방에서 촛불을 켜놓고 책을 펴놓고 있었다. 열어놓은 장지문 밖으로 하얀 달이 허공에 매달려 은은히 빛을 뿌리는 어느날 한밤중이었다. 원인모르게 갑자기 몸속에 어떤 희열이 솟아올랐다. 사람의 지각을 초월한 어떤 마음의 평화라고 할까. 나는 그냥 그 상태대로 살아도 행복할 것 같았다. 그때 순간적인 희열은 지금 생각해도 독특한 감정이었다. 자연인을 찾아갔던 방송인은 이런 말도 했다.

“사람마다 마음의 평화를 누릴 수 있는 장소가 각각 다른 것 같았어요. 자연에서 살아도 어떤 사람은 계곡의 물소리가 들리는 곳에 있어야 편해하고 어떤 사람은 산 정상에 있어야 좋아했어요. 같은 산이라도 다 달랐어요.”

그 프로를 오랫동안 하면서 그는 많은 걸 깨달은 것 같았다. 그가 자신의 의견을 덧붙였다.

“자연인들을 찾아다니면서 느낀 건 사람의 마음이 편해지는 장소는 굳이 산이나 물에 한정되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았어요. 어떤 사람은 와글대는 시장 한복판의 구석 좌판이 자기마음에 평화를 주는 장소일 수도 있다는 걸 알았어요. 어떤 사람에게는 화장실이라는 나만의 공간이 자기만의 평화를 누릴 수 있는 장소가 될 수도 있죠. 그런 것 같았어요.”

아무도 없는 동굴이 그런 장소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글을 보면 그런 심리를 나타내는 장면이 자주 나오는 걸 봤다. 사람들에게 잊혀진 물이 마른 우물 속의 깜깜한 바닥에 일부러 내려가 한참 앉았다고 오는 인물이 있었다. 한밤중에 오래된 고분속에 들어가 느껴보는 존재도 있었다. 인간의 원형질에는 그런 요소들이 있는 것 같다. 내게도 오랜 세월 저쪽의 아련한 유년의 기억이 있다. 어린 시절 내가 살던 변두리 동네는 온통 집을 짓는 공사장이었다. 잘린 드럼통 속에서 끓고 있는 해인초 냄새가 비릿하고 나는 공사장에 쌓여있는 굴속 같은 토관속에서 놀기를 좋아했다. 짓고 있는 주택의 지하실 나무창 틀을 넘어가 흙벽돌 사이의 검은 공간에 가만히 있다 나오곤 했다. 적막이 흐르는 검은 공간이 내게 평안을 가져다 주곤 했다. 벌레나 짐승들이 어두운 굴이나 껍질 속에서 편해하듯 인간도 그런 본능이 있는 것 같았다. 변호사를 하면서 그 굴은 나의 사무실이었다. 퇴근 시간이 지나고 직원들이 가면 텅 빈 내 방에서 불을 끄고 적막 속에서 혼자 있을 때면 따뜻한 검은 물이 내 가슴에 스며들어오는 것 같았다. 사람들에게는 자기에게 가장 편한 공간이 있는 것 같다. 선배 변호사 한 분은 사십년이 넘게 한 사무실에서 일을 하면서 늙었다. 머리가 새하얗고 팔십이 된 그는 지금도 새벽 다섯시면 사무실에 나가 앉아 있어야 마음이 편하다고 했다. 그가 해야 할 일은 별로 없는 것 같다. 그래도 그렇게 해야 마음이 편하다는 것이다.

세월이 가고 나는 늙어가고 있다. 나는 마지막으로 마음이 편하게 지낼 수 있는 장소를 찾아 나섰다. 어린 시절 내가 살던 변두리 동네를 가보았다. 더러운 개천물이 흐르던 안암천 부근은 소년 시절의 추억과 삶의 질감이 묻어있는 곳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관념 속에만 존재하는 곳이 되어 버렸다. 소년시절 어린이 놀이터의 파이프 졍글 꼭대기에 앉아 보던 환한 보름달은 더 이상 없을 것 같았다. 젊은시절 가수가 고래 잡으러 가자던 동해로 와서 잠시 둥지를 틀어보고 있다. 늙음의 특권이다. 검은 바다위로 붉게 피어오르는 새벽빛을 보면서 나는 지금 편안한가 즐거운가 스스로에게 물어보고 있다. 문득 오늘은 다른 생각이 깊은 내면에서 물방울 같이 보글보글 떠오르는 것 같다. 자연인이 찾아가는 푸른 산과 물 흐르는 계곡도 좋지만 정말 편안한 나의 둥지는 내면 깊숙이 숨어있는 그분이 계시는 골방안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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