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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장 돌리기

운영자 2022.05.23 10:00:53
조회 184 추천 1 댓글 0

수사에 입회하기 위해 밤늦게 경찰서에 간 적이 있었다. 내 또래의 담당 형사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나의 옷깃에 달린 뱃지를 보자 적대적인 어조로 이렇게 내뱉었다.

“너는 공부 잘해서 변호사가 됐고 나는 공부 못해서 형사가 됐다. 하지만 수사권은 나한테 있으니까 잘 봐줄까 아닌 가는 내 맘이야.”

열등의식으로 비틀어진 그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고 조심했다. 한번은 내가 직접 경찰에 고소를 한 적이 있다. 변호사인 나를 쳐다보는 나이 먹은 형사의 눈길이 떨떠름했다. 그가 이렇게 말했다.

“나는 제대가 일년 남은 형사요. 이 경찰조직에서 더 이상 나를 건드릴 사람이 없어. 무서운 게 없지.”

그는 무성의하게 수사를 했다. 법률 지식도 밑바닥 수준이었다. 평생 진급을 못한 한 서린 하급경찰의 모습이었다. 그런 경찰들은 소수만 있어도 세상은 독에 오염된다.

내가 어린 시절 국민들은 못된 경찰관을 혼내는 게 검사라고 생각했다. 많이 배웠다고 인식했기 때문에 존경도 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그런 인식이 사라졌다. 왜 그랬을까. 자유당 정권은 경찰을 권력의 도구로 사용했다. 군사정권은 정보부가 문민 정권으로 들어와서는 검찰이 그 역할을 맡았다. 내가 사법연수원시절 검사장 출신의 한 교수는 전체 연수생들 앞에서 이런 자랑을 했다.

“내가 작성한 공소장 한 장으로 재벌그룹을 작살냈어.”

또 다른 검사장은 전국의 도지사 시장 군수를 임명하는 건 국민이지만 검사는 언제든지 비리를 잡아 그들을 해임시킬 수 있다고 했다. 나를 지도했던 검사 출신 연수원교수는 이렇게 가르쳤다.

“검사는 누구에게도 고개를 빳빳하게 해야 해. 검사의 근성이라는 게 있어. 나이가 삼십년 위까지는 맞먹어도 돼.”

검찰조직에서 일하는 상당수의 영혼이 병들어 있는 것 같았다. 물론 피해자를 위해 밤낮없이 일하는 성실한 사람들이 더 많았다. 그러나 야망과 정치성을 가진 일부 검사가 조직을 망쳤다. 고위직 공무원의 변호인이 된 적이 있다. 그의 선거 출마를 막기 위해 그는 수사대상이 됐다. 담당 검사는 나에게 자기는 정무를 하는 거지 수사를 하는 게 아니라고 했다. 그의 맘에 들게 자백을 하지 않자 언론에 자료를 흘리면 망신을 당할텐데하고 협박을 했다. 끝까지 버티면 다른 걸 캐서 별건으로 기소하겠다고 겁을 주었다. 그게 정치 수사의 일반적인 행태였다. 엘리트 검찰은 세련됐다. 여론의 흐름을 살피기도 하고 언론을 관리하는 기술도 탁월했다. 검찰의 조사를 받은 후 빌딩 창에서 떨어져 자살한 재벌 회장도 있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망신당하기 검찰 조사를 받고 난 후 바위 꼭대기에 올라가 몸을 던졌다. 검찰의 오만이 하늘을 찌르면서 반발의 파도가 거세졌다. 변호사였던 문재인씨를 대통령이 되기 전 만난 적이 있다. 그는 권력을 잡으면 꼭 검찰개혁을 하겠다고 했다.

문재인 정권에서 공수처가 발족했다. 그리고 마지막이 검찰수사권의 완전박탈인 것 같다. 수사권이 경찰로 가면 정의가 이루어질까? 우리는 눈앞의 현상만 보고 그 뒤에 있는 본질에는 무심한 게 아닐까. 나는 대통령 직속기관에서 권력내부를 깊숙이 들여다 본 적이 있다. 그때 권력의 실세가 내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검찰이나 경찰같은 기관들은 어느 하나에만 힘을 실어 줘서는 안 돼. 적당히 무게 중심을 바꾸어야 해. 오만해 지거나 국민의 원성을 살 때는 목을 쳐서 국민들 속을 시원하게 풀어주어야 하는 거야. 따지고 보면 그놈이 그 놈이고 다 사냥개 역할이야. 써먹고 여차하면 죽여버리는 거야. 밑에서 보면 완장이 대단해도 위에서 보면 핫바리 일회용품 같은거지.”

새로 탄생한다는 수사기관은 권력의 핫바리 도구가 안된다는 보장이 있을까? 문제의 본질은 정의다. 민주주의 본질인 법치의 문제다. 포장과 기능을 바꾸어 장사꾼처럼 국민을 현혹시키면 안된다. 정말 중심을 잡아야 할 것은 사법부다. 판사들이 권력에 위축되지 않고 법과 원칙에 따라 수사기관을 통제했어야 했다. 교만하면 아무리 잘나도 싫어한다. ‘검수완박’의 본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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