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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김종오사건 기적 3편

운영자 2017.02.16 12:10:53
조회 246 추천 0 댓글 0
                                                                                                          5

  

                                                                                                  본인의 항변 

  

경찰관의 증언이 끝나고 나서 내가 재판장에게 말했다.




“마지막으로 피고인 본인에게 직접 몇 가지 확인하고 싶습니다.”

“그러시죠, 피고인 증인석에 가서 앉으시죠”


재판장이 내 옆자리에 있던 그에게 명령했다. 그가 재판장의 정면 아래에 있는 증언대에 가서 앉았다. 내가 묻기 시작했다.


“한국으로 추방되어 왔을 때 처음에 무료급식소에서 묵었다고 하는데 그때 어떻게 살았는지 말씀해 주시죠”

“중랑천 변에 있는 갱생보호시설이라는 곳에서 이년 정도 살았습니다. 감옥에서 출감한 전과자들 중에 오갈 곳 없는 사람들이 묵는 곳이었습니다. 더러 서울역의 노숙자들이 들어오기도 하구요. 거기서 밥을 얻어먹고 잠을 잤어요”


“그곳에서 어떻게 나오게 됐죠?”

“옆방에 목수출신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이 어느 날 목수 보조를 하라는 거예요. 그래서 따라다니면서 목수 일을 배웠습니다. 그렇게 일해서 받은 일당을 모아 원룸을 얻어 살게 됐습니다.”


“사건 당일 왜 호프집 손님과 시비를 벌이게 됐죠?”

“다음날 새벽에 공사장에 나가야 해서 소주 두병을 마시고 일찍 자려고 누웠어요. 그런데 떠드는 소리가 나는 거예요. 나가 봤더니 술 취한 사람 둘이서 길거리에 있는 인형 뽑는 기계 앞에서 소리를 지르면서 게임을 하는 거예요. 그 동네 사는 건달 같아 보였어요. 내가 위에 사는 사람인데 조용하라고 했더니 저보고 ‘꺼져 새끼야’ 하면서 욕을 하더라구요. 그래서 내가 참을 수 없었어요.”


“그래서 어떻게 했어요?”

“화가 나서 한판 붙어 보자고 그 두 명을 따라갔더니 옆에 있는 호프집으로 들어가더라구요. 제가 그 옆으로 가서 시비를 걸었어요. 그랬더니 한명이 덤비려는 자세를 잡더라구요. 제가 먼저 주먹으로 그의 왼쪽 턱에 펀치를 먹였어요. 심하지는 않았어요. 그때 주인이 경찰에 신고하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간신히 화를 참고 구석에 있는 테이블에 가서 앉아 맥주를 시켰어요. 맥주를 기다리는데 경찰이 와서 저보고 밖으로 나가자고 했어요. 경찰관을 따라 나갔어요.”


“경찰관이 밖으로 나가서 어떻게 하던가요?”

“저를 강제로 경찰차에 태우려고 했어요. 내가 타지 않으려고 했더니 아까 그 경찰관이 제 팔을 잡아 꺽더라구요. 수갑을 채우려나 보다 하고 미국식으로 허리를 굽히고 기다렸는데 수갑을 채우지 않고 꺽은 팔을 계속 등 쪽으로 밀어 올리더라구요. 아프다고 소리쳤는데 그래도 계속 꺽어 올렸어요. 팔이 꺽어질 것 같더라구요. 그래서 저도 모르게 몸을 돌려 헤드락을 걸어서 넘어 뜨렸어요.”


“경찰관이 연행하는 이유를 말해준 적이 있어요?”

“그런 적 없어요”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다거나 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다고 말한 적 있어요?”

“처음에는 안했는데 나중에 내가 경찰관에게 헤드락을 걸은 이후에는 그런 말을 한 것 같아요”


“태어나서 한살 때 미국으로 이민을 갔던 피고인이 나이 마흔살이 되어 돌아온 한국의 모습은 어땠죠?”

“한국 와서 여러 번 싸웠어요. 내가 한국말 못하니까 택시를 타도 운전사가 속였어요. 말은 할 줄 모르고 그래서 주먹이 나갔어요. 원룸에서도 아래층 여자와 쓰레기 문제가지고 싸웠는데 내가 말은 안 되고 화는 나고 해서 그 여자한테 봉투를 확 던져 버린 적이 있어요. 무료급식소에 있을 때도 거기 있는 사람과 싸워서 쫓겨났습니다.”


그는 속에 화가 가득 찬 사람이었다. 옆에서 불씨만 제공하면 바로 폭발하는 성격으로 변한 것 같았다.

  

  

  

                                                                                                               6

  

                                                                                                         작은 기적

  

  

“그러면 마지막으로 증거로 제출된 동영상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재생 시키세요”


여성 재판장이 법대 아래 있는 주임에게 명령했다. 법정의 벽에 붙은 스크린이 밝아지면서 컴퓨터 탐색기 상에 폴더가 나타났다. 작은 화살이 움직이면서 한 폴더 위에 가서 고정됐다. 검사실에서 봤던 그 영상 같았다. ‘이제는 틀렸구나’하는 생각이 들면서 갑자기 맥이 빠졌다. 여성검사에 여성 재판장이었다. 서기도 주임도 모두 여성이었다. 폭력을 싫어하는 여성들이 특히 남에게 시비를 걸면서 그들이 먹는 음식에 코까지 푸는 걸 보면 경악할 게 틀림없었다. 


디지털 시대로 들어서면서 CCTV의 동영상들은 무서운 위력을 나타내고 있었다. 피 칠갑을 한 장면 하나 사람을 밟는 행위가 찍힌 한 장면은 결정적이었다. 그의 사건도 마찬가지였다. 변호사가 아무리 말로 채색을 해도 소용이 없었다. 

  

하얀 스크린 위로 동영상이 뜨고 있었다. 호프집 문을 열고 막 들어 선 그의 모습이 나왔다. 스크린에 나타난 그는 문 바로 앞에서 누군가를 찾느라고 두리번 거리는 장면이었다. 그 다음 장면이 나타났다. 그가 구석의 테이블 앞에 조용히 앉아 있는 장면이었다. 이상했다. 전에 봤던 동영상과는 달랐다. 경찰관 두명이 앞뒤로 서서 테이블에 앉아 있는 그에게 다가서는 모습이 보였다. 경찰관이 그에게 뭐라고 하는 태도였다.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잠시 후 그가 양같이 순하게 경찰관들을 따라가고 있었다. 내가 검찰청에서 봤던 동영상이 아닌 것 같았다. 


“됐어요. 정지 하세요”


여성재판장이 명령했다. 재판장이 시큰둥한 표정으로 덧붙였다.


“별 게 없네요. 저 이후 밖에서 경찰관들을 폭행했단 말이죠? 그 장면이 찍힌 씨씨티브이 동영상은 없나요?”


재판장이 검사에게 물었다. 


“호프 집 문밖에는 씨씨티 브이가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다행이었다. 그가 경찰관의 목을 조르는 과격한 장면은 그에게 유리할 수가 없었다. 그에게 결정적으로 불리한 동영상들이 나타나지 않은 것이다. 다시 화면 속에 탐색기가 나타나고 이미 재생시킨 폴더 아래 다른 폴더가 있는 게 보였다. 법대 아래 있는 주임이 마우스로 그 폴더위에 화살표를 고정시켰다. 그 폴더가 바로 코푸는 장면일 것 같았다. 그 걸 재생시키면 끝일 것 같았다. ​


그 순간이었다.


“동영상은 더 이상 볼 필요가 없는 것 같네요”


여성재판장의 말이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지? 이건 기적이야’


나는 속으로 의아했다. 30년 동안 변호사로 법정에 서보면 이상한 일이 많았다. 운이 나쁜 사람은 곳곳에서 악연을 만났다. 증인도 형사도 검사도 판사도 모두 그에게 증오심을 품고 덤볐다. 없어졌던 증거도 나 좀 보라고 나타났다. 중죄를 져도 천사 같은 재판장을 만나는 경우가 있었다. 어떤 보이지 않는 섭리가 움직이는 것 같았다.

  

                                                                                                - 다음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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