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동기 몇 명이 한 달에 한 번씩 모여 기도를 하고 서로 간증을 하는 모임이었다. 평생 선생님을 하다가 정년퇴직을 한 친구가 말했다.
“갑자기 건물이 휘어 보이는 거야. 안과에 갔더니 황반변서이래 치료를 받았는데 아직도 눈이 시원치 않아. 나머지 한쪽 눈 가지고 그럭저럭 살아야지 뭐. 이제 책은 못읽어 조금만 봐도 골치가 아파.”
그 자리에 있던 목사를 하던 친구가 말했다.
“엊그제 새벽기도를 하고 나서 신문을 보는데 갑자기 어지럽고 속에서 구역질이 나는 거야. 그래서 동네의원에 갔더니 뇌의 핏줄이 터졌는지 의심스럽다고 큰 병원에 가서 정밀검사를 받아보래.”
그는 근심이 가득한 표정이었다. 그래도 친구들의 모임에서 설교를 하기 위해 그 자리에 나온 것이다. 모임의 멤버였던 친구 중에는 신장이 나빠져 투석을 하느라고 참석하지 못한 친구도 있었다. 인생의 초겨울을 맞은 우리들의 모습인지도 모른다. 독일에서 힘든 박사학위를 따고 오랫동안 학계에 있던 친구가 입을 열었다.
“나는 며칠 전에는 갑자기 구구단이 생각이 나지 않는거야. 팔팔이 몇이더라?하고 멍하게 있었어. 직장에서 작년에 정년퇴직을 했는데 그게 절묘해. 나이라는 게 어쩔 수 없는 건가봐.”
“독일에서 박사를 한 사람이 구구단도 잊어버려?”
다른 친구가 말했다.
“그러게 말이야”
그 말을 들은 눈에 황반변성이 온 친구가 되받아 말했다.
“이제부터 우리가 아무것도 안하고 있으면 바로 바보가 된 데 손가락을 쥐었다 폈다 하는 운동이라도 계속해야 기억감퇴를 늦출 수 있다는 거야.”
그게 인생의 나뭇가지 끝에서 낙엽으로 떨어지는 순서를 기다리는 우리들의 모습이기도 했다. 햇빛이 쨍쨍 내려쬐는 인생의 여름시절 우리는 이렇게 가을이 올지 몰랐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최고의 명문학교를 다닌다고 자부심을 가졌었다.
영원할 것 같던 청춘이 어느 순간 잦아들 듯 소멸하고 노년을 맞이한 것이다. 늙고 병들고 죽는 인생의 현상이 모두 고해라고 했다. 그냥 담담히 받아들여야 하는게 아닐까. 눈이 침침하면 이제 하나님이 그만 보라고 하는 메시지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병드는 것도 쉬라는 걸로 알아차려야 한다. 고통인 험난한 이 세상에서 그분이 데려가실 때가 되면 정확히 데려가실 것이다.
나는 요즈음 노년의 풍요함을 느낀다. 이제는 삶의 의무의 굴레에서 벗어난 느낌이다. 새벽이면 종종거리면서 바쁘게 출근하는 사람들의 물결에 섞이지 않아도 된다. 조용하고 느긋한 그리고 적막한 하루를 보내도 아무도 상관하지 않는다. 홀로 ,천천히, 자유롭게 사는 노년을 맞이한 것이다. 나사가 풀어지고 녹물이 나오는 것 같은 몸이지만 그래도 아직 걸을 수 있고 침침해도 책을 읽을 수 있고 약간의 글을 쓸 수 있는 삶에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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