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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직후 남한에 남아있던 일본 항공기들은 어떻게 되었는가?

SV-001/R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16.06.13 02:4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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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얘기가 밑에 나와서, 제가 최근에 책에서 읽었던 내용들이 떠오르길래 적어봅니다.


광복 직후에 분명 우리나라에도 일본제 항공기들이 남아있었습니다. 일본군이 남기고 간 군용기의 현황에 대해서는 저도 지금 잘은 모르겠지만, 적어도 한반도내에서 운영되었던 비행학교나 항공사가 운용하던 비행기 가운데서는 일본군에게서 불하받은 경비행기나 훈련기류가 있었다고 합니다. 일본이 항공장려라는 명목으로 군에서 도태되는 구식 항공기를 보조금까지 지원해 주는 식으로 민간 비행학교 등에 넘겼는데 그중 일부가 한반도에도 들어온 것이지요. 대표적으로 살무송(Salmson; 1차대전 무렵 쓰였던 프랑스제 복엽 2인승기)이나 융구망(Bücker Bü 131 Jungmann; 독일제 복엽 훈련기) 같은 기체들 말입니다. 그외에도 일제강점기 말기 당국에 의해 학생들에게 실시되었던 활공훈련을 위한 글라이더도 있었다고 하고요.


그런 기체들은 대부분 미군이 진주하게 된 남한 지역에서 광복 직후까지는 보존되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광복 이후 한반도에 세워진 항공단체가 이렇게 일본측이 남기고 간 항공기들을 접수하려는 시도도 했었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45년 말 항공금지령이라고 할 수 있는 '연합군 총사령부 지시각서"(Supreme Commander of Allied Power Instruction Note) 제301호, 이른바 SCAPIN 301이 발령된 것입니다. 이 각서의 주요 내용은 군사항공, 민간항공, 일반항공을 통틀은 일본 내의 모든 항공활동을 완전히 금지한다는 것인데, 이 내용은 일본 본토뿐만 아니라 한반도에도 똑같이 적용되었습니다. (당시 미군이 한반도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는지 대강 엿보이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무렵 여의도비행장과 대구 동촌비행장(지금의 K-2)에서 몇몇 조종사들이 무단으로 비행을 하는 사태가 벌어졌고, 결국 이런 일련의 사건으로 인해 일본이 남겨둔 항공기 가운데 남한에 있던 것들은 모두 폐기처분되고 말았다고 합니다.


이제 이것에 관해서 제가 읽은 것들을 보여드리도록 하겠습니다.




1. 조선항공협회 발족


한민족이 빈부 귀천을 막론하고 꼭 같이 순수한 애국심을 품었던 한 순간이 있었다면 그것은 1945년 8월 15일 일제의 기반에서 벗어나 조국이 광복을 맞는 그 순간이었다.


이 애국심은 곧 국가건설의 의욕으로 승화되어 정치적인 역량이 있는 사람들은 정당을 만들었고, 사회 발전에 뜻을 둔 사람들은 사회단체를 만들었다.


일제 치하에서 어려운 시련과 고난을 극복해 가면서 비행사의 꿈을 이루었던 항공인 서웅성, 윤창현, 김석환, 이정희 등은 해방되던 날 장덕창에게로 달려가 "해방이 되어 모두가 국가건설을 하려고 열의에 불타고 있는 이때 우리 항공인들도 조국의 재건을 위해서 이바지해야 될 것이 아니냐"하는 데 의견을 모아 8월 16일 상기 항공인을 포함한 일본군 출신 비행사 10여 명과 조선활공인회 회원 30여 명이 근간이 되어 조선항공대를 발족시켰다.


조선항공대를 발족시키는 데 주도적 역할을 한 위의 항공인들은 조선항공대로 하여금 신생 한국의 민항공 내지는 공군 건설에 이바지하고자 해서 이런 단체를 결성하였다.


그러나 민항공 및 공군을 건설하려면 무엇보다도 기재와 시설을 확보하고 후진을 양성하는 일이 급선무였다. 이의 한 방안으로 일본군이 보유하고 있던 시설을 접수하자고 합의를 보았다.


이 무렵 서울 여의도비행장에는 일본군 정찰용 비행기 '붉은 잠자리'(주: 요코스카 K5Y를 일컫는 것 같음)가 30대 가까이 있었고 그 밖에 대구, 부산, 울산 등지의 비행장에도 도합 30여 대의 정찰기와 수 대의 DC-3이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구상도 한낱 공상에 그치고 말았다.


왜냐하면 전승국가인 미군이 진주하지 않아 비행장과 시설물들은 무장한 일본군과 경찰이 경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의 접수를 건국준비위원회의 힘을 빌어 강행할 것도 구상해 보았다.


그러나 건준은 조선총독부 정무총감의 권고에 따라 조직된 것으로서 패전으로 살기 등등해 있는 소위 조선군사령부에서는 건준을 인정치 않고 있는 실정이어서 무장한 군인들을 상대로 실력행사를 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더욱이 조선항공대 관계자들을 암울케 만든 것은 미 군정의 특별포고였다. (중략) 서울로 진주해 온 미 극동군사령부 예하 제24군단은 군정을 실시함에 즈음해서 특별포고를 발표, 미 군정이 시행되는 남한 전역에서는 미군기를 제외한 여하한 항공기의 비행도 이를 전적으로 금지한다고 선포했다. 따라서 비행기가 있다고 해도 띄울 수 없는 형편이 되었고 미군 진주에 한 가닥 희망을 걸고 기대에 부풀어 있던 조선항공대를 실망의 나락으로 몰아넣었다.


(중략)


어느 정도 체제가 갖추어진 조선항공협회는 1945년 10월 18일 협회의 취지와 사업계획 등을 미 군정을 비롯한 각 요로에 제출하고 협회 사업에 적극 협조해 줄 것을 요망했다.


항공협회는 우선적으로 일본군의 기재와 시설을 인수해서 비행학교를 설립, 후진을 양성하려 했다.


이러한 목적 밑에 미 군정과의 접촉은 상호 이해부족으로 다소의 우여곡절은 있었으나 협회 대표들의 열성으로 미 군정의 관심을 불러 일으키는 데 성공, 협회와 미 군정 당국자는 11월 12일 대좌(對坐)에서 협회에서 제출한 사업계획을 진지하게 검토하기까지 했다.


이날 양자의 회담결과는 매우 고무적이었다. 즉 협회의 사업계획에 대해 대해 미 군정 당국은 긍정적으로 받아들였을 뿐만 아니라 일본군이 보유하고 있던 기재와 시설을 협회에 제공할 용의가 있음을 밝히기까지 했기 때문이다.




2. 항공인들 암중모색


1945년 11월 16일, 미 군정의 호의에 고무된 조선항공협회가 서웅성, 김석환으로 하여금 조선비행학교의 설립인가 신청서와 일본군이 보유하고 있던 기재와 일본항공 경성지사의 시설 등에 대한 인수신청서를 제출케 했다.


그런데 일본군에서 복원하는 길로 서울로 와 있던 이근석이 조선항공협회를 발족시키고 나자 곧 대구로 내려가 김영수가 경영하고 있던 조선비행학교의 교관으로 활약하고 있었다.


일제 말기 대구에 조선비행학교를 설립해서 이미 제1기 수료생까지 내놓은 김영수는 해방이 되자 대구에 진주한 미군과 교섭해서 일본군이 보유하고 있던 수송기 1대를 비롯해서 아직 뜯지 않고 포장된 채로 있는 '붉은 잠자리' 정찰용 비행기와 그 부품 20여 대 분을 인수받아 제 2기생을 훈련중에 있었다.


교관은 1기생 출신인 김영환(6.25 때 행방불명, 전 공군참모총장 김정렬의 동생, 공군준장)과 이근석이었다. 특히 평양 출신인 이근석은 중일전쟁 때 중국군 전투기 10여 대를 격추시킨 역전의 용사로서 항공에 대해서는 열정적인 인물이었다. (1950년 7월 2일 여흥 상공에서 산화)


이근석과 김영환은 날을 수 있는 비행기를 두고도 날지 못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조국의 하늘을 처음 날으는 행운을 기록하고자 대구비행장에서 수송기를 타고 날았다.


이것이 뜻하지 않은 화근을 초래했다. 두 사람은 미군의 허가 없이는 비행할 수 없다는 것을 잠시 망각하였던 것이다.


이 비행이 문제가 되어 미 군정은 즉시 일본군이 보유하고 있던 기재를 협회측에 인수하는 것을 거부하고 모조리 파괴해 버릴 것을 명령했다.


이에 따라 전국의 모든 비행기는 파괴되어 식기용 재료로서 민간업자에게 불하되어 협회의 사업계획은 무산되었다. 설상가상으로 협회의 장래를 또 한번 암담하게 만든 것은 모든 사설 군사단체는 해산하라는 미 군정의 명령이었다.


(후략)



- <대한항공십년사>, 대한항공사사편찬위원회, 1979





1945년 8월부터 1948년 8월까지 3년간 38선 이남의 한반도에는 민간항공이란 존재하지 못했다. 그 이유를 추적하기 위하여 연합국의 일본점령정책과 그 시기의 한반도 내부실정을 살펴 볼 필요가 있다.


(가) 연합국(미국)은 일본의 무조건 항복을 요구하였고 군항공은 물론 민간항공까지도 그 뿌리까지 완전파기를 명령하였다. (SCAPIN 301)

(나) 한반도는 일본영토의 일부분으로 간주하여 일본 본토점령과 같은 맥락에서 한반도에 진주했다.


(중략)


이상과 같은 세계국제정세(미소냉전체제)와 국내의 무질서 혼돈 속에서 군정이라는 통치체제하에 들어갔으니 민항공이 움트고 발전할 수 있는 여건은 거의 없었던 것이다. 더욱이 항공에 관한 한 연합군의 일본점령 정책이 그대로 한반도에도 적용이 되었으니 민항공의 활동은 연목구어 격이라 할 수 밖에 없었다. 그 내용을 알아보자.


우선 미국의 일본점령정책을 알아보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왜냐하면 적어도 항공에 관한 한 일본에 부과된 연합군의 점령정책이 그대로 해방된 남한지역에도 적용된 흔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 기본이 되는 것은 미국이 일본의 항복에 대비해서 마련해 놓았던 『항복 후의 일본에 관한 미군의 최후정책 <일본관리정책>』인 것이다. 이것은 미 국무성, 육군성, 해군성이 공동으로 결정하고 대통령의 재가를 얻어 놓은 미국의 최고정책으로서 1945년 9월 22일 미 국무성에 의해 발표된 것이었다. 그 내용 중 항공에 관련된 부분 가운데 「<제3부> 정치편의 제1절 '무장해제 및 군국주의의 말살'」에서 발췌해 본다.


(전략) - 일본은 육해군의 비밀경찰 조직 내지는 여하한 민간항공도 보유할 수 없다. (중략) 육해군의 자재, 선박, 제시설 및 육해군과 민간의 모든 항공기는 인도될 것이며 최고사령관의 요구하는 바에 따라 처분된다.


이에 앞서 맥아더 연합군 사령관은 8월 21일 그를 마닐라로 급거 방문한 일본 대표단에게 「연합군이 일본에 진주하기 전까지 일본이 이행해야 할 사항」의 지시각서를 수교하였다. 그 내용의 일부에는 "일본국적의 모든 항공기(군관민)의 운항은 1945년 8월 24일 18:00를 기해 금한다. 이 시각 이후에 운항하는 항공기는 격추한다"라는 비행금지령이 포함되어 있었다.


또 연합군사령부는 9월 2일 미주리 함상에서의 항복 서명식 직후 소위 연합군 최고사령부 지시각서 SCAPIN 1호를 시달했다. 이는 "비행장을 포함한 모든 항행보조시설을 양호한 상태에서 보존유지할 것" 이라는 내용이었으며 연합군 항공기의 일본영내 항행에 지장을 주지 않기 위한 조치였다.


그 후 1945년 11월 18일에는 SCAPIN 301호를 발령, 『민간항공 폐지에 관한 지시각서』를 하달하였다.


(중략)


무조건 항복한 일본은 SCAPIN 301호 지시에도 불구하고 GHQ의 허가를 받아 '종전 사무처리 연락항공' 통칭 녹십자비행이라는 항공운송업무를 항공국 주도로 1945년 9월 14일부터 10월 10일까지 운용했지만 해방되었다는 한국에서는 총독부 경무국 소관 국경경비대 소속 경비행기(Beechcraft C-17E, Fokker Super Universal 등)를 가지고 남한 각 도청 소재지간의 연락비행을 근근히 지속하다 이 역시 10월 10일을 기해 중지되었다. 교통국 항공과 소관이었던 쌍발여객기 MC-20은 해방직전에 시험비행 중 추락사고로 운송용무에도 사용치 못했었다.


이렇게 해서 일본본토나 38선 이남의 한반도에서는 1945년 10월 10일을 기해 특별 항공운송업무도 끝이 나고 모든 항공기(군용기, 민간기, 국유 또는 사유)는 파괴되거나 소각되어 폐기 처분되고 말았다.


이보다 앞서 45년 9월 하순 어느 날, 여의도비행장에 한 가지 해프닝이 벌어진다. 해방된 기쁨도 크고 할 일이 없어 무료하던 조선항공사업사 정비사들은 격납고에 있던 융구만 연습기를 끌어내어 엔진정비를 하는 한편, 대형 태극마크를 동체 옆에 그려 붙였다. 이 비행기는 해방을 경축하는 뜻에서 전명섭의 조종으로 영등포 상공을 일주하고 여의도 비행장에 착륙했다. 8월 25일을 기해 비행금지령이 내린 것을 모르고 비행한 것이었다.


사이렌 소리도 요란하게 미군 MP가 나타나 허가없이 비행한 것을 몹시 꾸짖고 비행기는 압수당하고 말았다. 항공사 직원들은 씁쓸한 가슴을 쓰다듬으며 진주군 MP의 지시대로 따를 수밖에 없었다.


이와 비슷한 일이 같은 시기에 대구 동촌비행장에서도 벌어졌다. 일제말기부터 경영하던 김영수 비행사의 '조선항공연구소' 소속 95식 연습기가 대구 상공을 일주하고 내렸다. (조종사는 일본육군출신 이근석, 김영환)


주기장에 정지하기 전에 이미 미군 MP가 나타났다. MP의 호된 꾸지람을 받은 것은 물론이고 비행기는 분해되어 창고에 처박혔다. 그들 역시 해방의 기쁨에 들떠 있기만 했지 비행금지 명령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해방된 한국에서의 민항공은 완전히 사라졌다. 한국은 교전국이 아니었기에 이 강토에 남은 일본의 항공기(군용기 포함)나 조선항공사업사 또는 경무국 소관 민항공기들은 잘 보관유지해서 대한민국의 항공재건에 이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한 항공관계당사자들(항공협회)의 꿈은 어이없이 깨지고 말았다. GHQ의 지령각서 SCAPIN 301호는 총독통치를 받았다는 이유로 해방된 이 강토에도 고스란히 적용이 된 것이었다.


(중략)


8.15 당시 조선항공사업사가 소유하였던 Beechcraft, 가스덴, Fokker Super, 살무손 등 몇 대의 항공기는 여의도비행장에서 그리고 14식 수상기는 부산 남항에서 각각 폐기처분되고 말았다. 융구만 연습기 한 대와 가스덴 여객기 한 대만이 진주군 몰래 숨겨 두었다가 가스덴은 신용욱 사장의 호의로 일본인 조종사(성명 미확인)의 귀국에 제공되었고 융구만은 이미 기술한 대로 이 역시 여의도에서 폐기처분되어 이로서 조선항공사업사도 단 한 대의 비행기도 없는 빈털털이 항공사가 되고 말았다. 한반도 내의 모든 적산재산(군관민)은 정부수립 후 정부에 인계되었지만 유독 비행기만은 개인 신용욱 소유까지도 SCAPIN 301호에 따라 진주군에 인계되어 폐기처분되고 말았으니 "민항공이 무슨 죄인가?"라고 반문하고 싶은 심정이었을 것이다.


총독치하의 갸냘펐던 민항공은 해방을 맞아 이렇게 그 종말을 고하고 말았다.



- <노고지리의 증언>, 송석우, 1999



1945년 8월 16일, 국내에 있던 항공인 서웅성, 윤창현, 장덕창과 총독부 항공과에서 주관하던 민간단체 조선국방항공단 소속 김석환, 김광한, 안동석, 이상목, 김양욱, 서철권, 박영권, 김홍기, 이정호 등 10여 명이 만나 민간항공의 재건, 군항공 창설, 운송사업체 설립, 항공기술자 양성 등 장차 조국의 항공 업무에 중추적인 역할을 하기로 뜻을 모았다. 이튿날 이들은 조선항공대를 조직하고 회장에 서웅성, 부회장에 윤창현과 장덕창을 선출하였다.


(중략)


이들이 항공협회 결성을 서두른 것은 해방이 되었음에도 여의도비행장에 있던 항공기와 시설을 일본군이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항공인들은 패전국 일본이 국내에 있는 항공기를 본국으로 가져가기 전에 서둘러 인수해야만 향후 우리나라 항공 관련 사업의 명맥을 이어갈 수 있다고 판단하였다. 회원들은 독립정부를 구상하뎐 여운형의 조선건국준비위원회를 방문하여 항공 재건을 후원해달라고 요청하였다. 그러나 30개 이상의 정당이 난립한 상황에서 무기력해진 건준은 항공분야에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하였다.


그해 9월 18일 13시 미 제7함대와 함께 서울에 입성한 하지 중장은 9월 19일 미군정을 선포하고 군정청장에 아놀드 육군 소장을 임명하였다. 그는 연합군 총사령부에서 발령한 SCAPIN 제1호에 의거하여 국내에서의 비행과 항공 관련 업무를 전면 금지시켰다. 이러한 막막한 상황에서 항공인들은 군대 냄시 짙은 조선항공대의 명칭을 조선항공협회로 바꾸고 항공 재건의 첫발을 내딛었다. 이들은 총독부 운수국 항공과에서 운영해오던 국방항공단의 재산을 인계받기로 하고 서철권과 안동석을 보내 군정청 관리들과 본격적인 교섭에 나섰다.


10월 10일 서웅성, 장덕찬, 김석환 등은 군정청에 여의도비행장에 남아 있는 일본군 비행기와 일본항공 서울지사 소유였던 시설의 인수를 요청하였다. 그러자 10월 12일 항공협회원들에게 여의도비행장 출입이 허가되었다.


당시 여의도비행장에는 비행기 약 70여 대가 주기되어 있었다. 협회의 현장책임자로 임명된 최홍기는 정비사들과 함께 트럭을 타고 여의도비행장에 가서 일본군이 남긴 각종 비행기와 대한국민항공사(주: 이때 당시는 신용욱의 회사명이 대한국민항공사가 아니라 조선항공사업사였기 때문에 이것은 책의 오류로 생각됨) 여객기, 총독부 연습기, 경찰항공대 연락기 등을 점검하고 연료를 분리하는 등 분주한 나날을 보냈다. 최홍기, 한찬동, 김우석 등 항공협회 회원들은 온전한 비행기 3대에 태극마크까지 그려 넣어 언제라도 이륙이 가능한 상태로 만들어놓았다.


이제 항공인들은 부푼 꿈을 안고 조국의 하늘에서 자유롭게 비행할 그날만을 기다렸다. 그런데 예상치 못했던 사태가 발생하였다. 10월 말경 군정청 광공국에서 협회에 내주었던 비행기 불하증을 회수함과 동시에 여의도비행장의 비행기를 모조리 파괴한 다음 신용욱을 통해 영등포구에 있는 화승주물공업사에 고철로 매각해 버린 것이었다. 이 사건으로 항공협회의 활동은 마비되었다. 얼마 후 각 도시와 농촌에 양은 냄비 홍수가 일어났다. 모두가 비행기에서 뜯어낸 알루미늄 재료로 만든 것이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11월 18일 연합군 총사령부에서 SCAPIN 제301호를 발령하자 군정청은 그 해 12월 31일부로 한국 내 모든 항공 활동을 금지하고, 항공과 관련된 모든 조직단체에 해체를 명령하였다. 어울러 해체되는 조직단체의 간부와 전문 인력, 항공기 승원 명단을 보고하게 했을 뿐만 아니라 항공 관련 연구와 연구실 운영은 물론이고 글라이더를 포함한 모든 항공기나 항공기 부품을 소유하는 것까지 전면 금지하였다.


이 일로 국내 항공의 재건을 꿈꾸던 항공협회의 노력은 수포로 돌아갔다.



- <대한민국항공사>, 대한민국항공회, 2015



(여기에 언급된 인물들이 대부분 한국 항공역사에서 중요한 인물들인데 시간관계상, 그리고 아는 것이 적어 자세히 설명드리지 못함을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이것 말고도 임달연 박사님이 쓰신 <한국항공우주사>라는 책에도 이 부분과 관련된 내용이 있는데 그 책을 지금 다른 분께 빌려드려서 적어 드릴 수가 없네요.


그외에도 <대한민국항공사>에 언급된 내용으로는, 조선비행학교 교장 김영수는 이렇게 항공금지령이 내려진 시기에도 격납고에 훈련기 1대를 감춰놓고 몰래 비행했었다고 합니다.





아무튼 결론적으로 광복 직후 남한 지역에 일본이 남기고 간 항공기가 다수 남아 있었고 (정확히 어디에 어느 기종이 얼마나 남아있었는지는 출처마다 다르게 언급함) 광복 후 설립된 한국 내 항공단체가 이를 인수하려고 했지만, 연합군 총사령부로부터 내려진 항공금지령과 일부 조종사들의 돌출행동으로 인해 폐기처분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결국 이 사태로 인해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전까지는 사실상 항공활동이 억제되었습니다. 왜냐면 비행기가 한 대도 없으니깐요.


그런데 이 와중에도 항공활동을 이어오던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게 바로 서울대학교 조선항공공학과 출신 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결성한 조선학생항공협회였습니다. 이들은 항공금지령이 내려져 있던 기간 중에도 글라이더를 가지고 서울 어린이대공원 자리 등지에서 활공훈련을 하거나, 모형항공기 대회 등을 여러 차례 열기도 했었다고 합니다. 기성 항공인들이 비행기 단 한 대도 없는 암울한 나날을 보내고 있을 때 오히려 학생들이 대견한 모습을 보여주었던 것이죠.


그런 걸 보면 일제강점기 말기에 조선내에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실시되던 활공훈련을 위해 있었던 글라이더들은 폐기되지 않았고 미군정도 이것까지 금지하지는 않았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광복이후 북한 지역에 남아있던 일본군 항공기들은 어떻게 됐는지는 저도 잘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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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국민 가수' 인순이, 5월 9일 신보 발매 디시트렌드 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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