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도 결코 넉넉하지 않았고 지금도 마찬가지임

고등학교 때도 부모님이 남들 다 해주는 거 못 해준다는 마음을 가지실까봐 그게 무서워서

학원 그런것도 사실 다 거품이고 필요없고 인생은 독학이다 운운하며 웃으면서 정시 공부했다

부모님이 학교에 따박따박 공물 갖다바칠 여력 없는 우리 집이었기에 정시밖에 답이 없었음

어쨌든 난 첫 번째 성공을 했다. 누구나 학벌만 말해도 대하는 태도가 바뀌는 국내 굴지의 명문대 그 중에서도 이름값 있는 최고의 과에 입학했고

전역 후 열심히 준비해 CPA 뚫었다. 이게 내 두 번째 성공

대학에 와 보니 입이 떡 벌어지게 잘 사는 친구들이 널리고 널렸더라

물론 나처럼 허리띠 졸라매며 단칸방에서 낮에는 공부하고 밤에는 일하며 버티는 친구들도 제법 된다

하지만 난 여기에서 가난을 탓하며 무너지는 친구들은 봤어도 가난을 이겨낸 came from bottom 정신을 부르짖는 놈들은 본 적이 없다

우리가 얻은 이 최소한의 기회, 그 기회조차 얻지 못했던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알기에

그런 게 실례가 될 수 있음을 알기에 다들 아무 말 하지 않음. 가난을 핑계삼는 것도 추하지만 가난으로 유세부리는 건 그보다 더 추하니까

사이렌이라는 노래는 사실 얼마 전에 접했다.

어릴 적에는 힙합을 정말 좋아했는데 뭔가 이래저래 안 듣게 됐었거든

호미들이라는 그룹이 인기가 많다고, 특히 사이렌이 그렇게 띵곡이라고

유튜브를 통해서 처음 접했고 그 후로 호미들이라는 녀석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좀 알아봤다

그리고 유튜브 댓글창도 봤음. 한숨밖에 나오지 않는다

나는 솔직히 호미들의 성장배경을 대충 알고 나니 그 노래에 대해 진정성을 느끼는 게 너무 힘들었다

그런 걸로 게토 울부짖을거면 나 어린 시절 경상도 촌구석에서 살아온 얘기도 꺼내도 된다. 시발 거기가 더 게토지. 그리 따지면 너도나도 징징대는 게 끝도 없어진다

댓글은 더더욱 가관이다

'이 노래가 이입되는 건 한국 청소년들의 현실을 너무 잘 담고 있어서다...'

'이 가사에서 못 참고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이 노래에서 느껴지는 진정성이 너무 좋다...'

유튜브 댓글 웬만하면 안 다는데 한 마디 했다가 뚜드려 맞았다. 니가 각박한 삶을 아냐, 가난해본적 없으니까 공감 못하고 배부른 소리 한다...

나도 그 호미들이 살아온 삶을 제대로 모르면서 재단한 주제에 너나 쟤들이나 똑같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최소한 우리 집은 중학교 들어서 수지 정도로 잘 사는 동네로 이사가지도 않았고 아직도 부모님은 결혼하실 적 마련한 신혼집, 8천만원짜리 빌라에 계신다

근데 최소한 청소년 들어서서는 잘 사는 동네에서 멀쩡하게 살아온 놈들이 기믹질 해놓은 가사에 이입을 못한다고 나를 가짜로 만드는 게 맞냐?

사이렌에는 기믹도 일부 섞여 있다는 식의 인터뷰도 본 것 같은데

일부? 그러면 어쨌든 저 가사의 팩트 부분은 죄 그놈들 초등학생 때 얘기라는 소리냐? 솔직히 하나도 전혀 하나도 와닿지 않는다

난 살아남기 위해서 모두에게 믿음을 줘야 했다

그와 동시에 누구도 믿으면 안 됐었다

지금 내 주위에는 좋은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지만 난 그들을 딱히 믿지 않는다

과거의 상처에서 기인한 자기방어기제다

그렇지만 예전에도, 지금도 난 가난한 게 부끄럽지 않다

더 부끄러운건 그거 때문에 주저앉고 시스템 탓만 하는 게 부끄러운거지

그런 의미에서 역경을 이겨내고 성공한 아티스트가 된 호미들에게는 찬사를 보내지만

나도 피눈물 흘리며 힘들게 공부했고 이제 잔여학기 다 끝내면 회계사가 되어서 성공할 길이 눈 앞에 놓였다

나는 공사장에서 일하시는 아버지의 자랑이고 마트에서 바코드 찍는 어머니의 기쁨이다

그렇지만 난 내 가난을 이유로 남의 성공을 폄하한 적도 없고, 힘든 환경에서 성공했기에 나의 성공이 더 값지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최소한 힘들게 살아온 내 삶에 msg를 쳐서 기믹질을 하고 싶진 않다. 나에 대한, 그리고 나보다 더 힘들게 성공하신 분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니까

그런 의미에서 호미들 이놈들은 힙합이 뭔지 잘 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영향력 큰 거 지들도 알 거 아냐? 잼민이들한테 이상한 기믹 가지고 좆같은 사상 좀 주입하지 마라 제발

아버지가 람보르기니 못 모니까 지들 삶도 게토라고 생각할 놈들이 부지기수다

문제가 있지 않냐? 솔직히 호미들보다 내가 더 힙합이다. 난 내 삶에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그리고 미고스 좀 그만 들어라

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