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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옷감과 염색

뷁하 2005.10.22 12:0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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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에서 놀다가 발견. A. 전통 옷감의 현재     오랫 동안 민족의 복식과 생활 용품의 재료로 사용되어 온 옷감을 포함한 개념인 직물을 전통 직물이라 일컫는다.  세계 각 자역의 전통 직물은 그 지역에서 생산되는 섬유, 풍토, 생활문화, 정치, 경제, 타지역과의 교류를 비롯한 여러 가지 여건에 이하여 기원, 발전, 변화되어 왔다.  따라서 각기 독특한 지역적 특성을 지니게 마련이다.    우리나라에서 오늘날까지 제직되어 한복 재료로 사용되는 전통 직물은 대마 직물인 베(마포), 저마 직물인 모시(저포), 면직물인 무명(목면), 견직물인 명주와 각종 주(紬), 사(紗), 라(羅), 능(綾), 금(錦), 단(緞) 등이 있다.    베와 모시는 섬세하고 청아함, 무명은 질박하고 담소함, 명주는 단아하고 온려함으로 한국의 전통적인 미의 특성을 나름대로 전승하며 제직되어 한국인들이 가장 장구한 기간을 이어 사용하여 온 전통 직물이다.    이들 직물의 제직 직기는 예로부터 사용되어 온 수직기인 베틀이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명주를 제외한 각종 주(노방주, 문주), 사(숙고사, 진주사, 관사, 국사, 갑사, 생고사), 라(민항라, 문항라), 능(문릉), 금과 직금(織金), 단과 직금단 등은 예로부터 이들 직물을 제직하던 수직기가 전승되지 못하였기 때문에 동력 직기로 제직되고 있다.    특히 직금, 금단에 해당하는 직물은 편금사로 문죽(紋竹)을 사용하여 무늬 금사를 타위(打緯)하며 예로부터 사용하였을 화루(花樓)의 문직 기구로 된 직기로 제직한 직금과 금단의 전통적 특성은 전연 전승 되지 못한 상태이다.  각종 사, 라, 능과, 금사가 직입되지 않은 금단은 전통적인 수직기가 아닌 동력 직기로 제직하여도 그 직물의 전통적인 특성에 별다른 무리가 가지 않는다.     오늘날 베, 모시가 중국으로부터 싼값에 대량 수입되고 있다.  그러나 5내지 10배의 비싼 값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모시와 베에 대한 욕구는 여전하다.  중국의 베나 모시에서는 우리나라 것에서 느껴지는 그런 쌍그런 감촉과 태가 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나라 베와 모시는 현재 생산과 수요가 함께 늘어나고 있다.   베나 모시 같은 전승 직물이지만 재래의 베틀로 짠 무명과 명주의 경우 인간문화재에 의하여 그 기능은 이어지고 있지만 수요 욕구는 많지 않아 다만 기능을 잇는 정도에 그치고 있다.  무명과 명주가 변화된 생활 양식과 생활 감정에 적합하게 적응되지 못한 때문이다.  그러나 동력 직기로 제직한 명주, 생명주는 여러 가지 색으로 침염, 날염되거나 자수를 놓아서 사용되기도 한다.  베틀로 짜는, 명주, 생명주도 잘 짜고 생산량도 늘려 간다면 동력 직기로 제직한 것과는 다른 제직 특성이 있어 수요가 증가될 가능성은 충분하다.  옛 직물 제직 기능이 무형문화재로 지정,전승될지라도 개인에 개인으로 이어지는 것보다는 그 기능이 널리 확산되고 생산과 수요가 늘어 전통 산업의 일익이 될 때 더욱 가치가 있는 것이다 .   한편 견의 주, 사, 라, 능, 단 등은 역직기, 자동 직기, 자카드 직기 등으로 대량 생산되어 과히 비싸지 않은 값에 일반에서 소비되고 있다.      전통은 항구불변적이고 보편무변성의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존재론적인 것이며 전통은 지금에서 늘 새롭게 파악된 것이라야 한다. 다양한 옛 직물이 잊혀지지 않은 이 시점에서 우리들은 우리의 전통 직물을 보존하고 발굴, 발전시키기 위하여그 직물들에 대한 바른 지식을 가져야 할 것이다.  바른 지식 위에서 우리는 돌이켜보고 또 앞질러 보며 우리의 전통 직물을 바로 계승시켜야 하겠다.                                                        <빛깔있는 책들> - 대원사-에서  발췌. B. 옷감의 역사와 세부 종류 및 용도. ◎ 마직물 마에는 상자엽식물 줄기의 인피를 벗겨 섬유로 사용하는 연질 섬유인 다년생 심마과의 저마, 일년생 아마과의 아마, 상과의 대마, 전마고의 황마, 금규과의 양마, 청마, 로젤 등과 단자엽식물의 줄기.잎, 잎줄기를 섬유로 벗겨 사용하는 경질 섬유인 다년생 파초과의 마닐라마, 석심과의 사이잘삼(Sisal hemp),  마게, 백합과의 뉴질랜드마 등 그종류가 많다. 우리나라에서 예로부터 의복 재료로 사용하여 온 것은 대마, 저마이다. 우리나라와 중국, 일본에서느 모든 인피 섬유를 통칭하여 마라 하지만 구미 각국에서는 인핀 섬유의 이름을 반드시 구분하여 명명한다. 우리나라의 여러고문헌에는 대마와 저마를 구분하지 않고 다만 마로 기록한 경우가 많고 이들 직물의 경우도 다만 포라고 기록한 경우가 많다    ◎ 전통직물 - 견직물   오랜 동안 우리 민족의 복식과 생활 용품의 재료로 사용되어 온 옷감을 포함한 개념인 직물을 전통직물이라 일컫는다. 우리 나라에서 오늘날까지 제직되어 한복 재료로 사용되는 전통직물은 대마 직물인 베(마포), 저마 직물인 모시(저포), 면직물인 무명(목면), 견직물인 명주와 각종 주, 사, 라, 능, 금, 단 등이 있다. 이중에서 견직물에 대해 살펴보자. Ⅰ. 견직물     견직물은 누에의 고치에서 풀어낸 실로 제직한 직물이다. 문헌 기록과 유품을 통하여 우리나라에서 사용 제직한 견직물은 주(紬), 사(紗), 라(羅), 능(綾), 금(錦), 단(緞), 곡(穀), 겸, 시, 초 등과 각종 천연 염료로 침염된 직물, 힐염된 문양 직물, 그림이 그려진 회(繪) 등이 일반적인 종류였으며, 백(帛), 견(絹), 수(繡), 금니(金泥) 등 견직물과 관계된 종류도 다양하였다.   이들 가운데 오늘날까지 제직되어 사용되고 있는 것은 주, 사, 라, 능, 단, 금 등이다. 이들 가운데 주(紬)만이 명주로 명명되어 재래의 베틀 즉 수직기로 극소량이 제직되고 있고 나머지는 현대화된 직기로 대량 생산 될 뿐 전통적인 직기로 제직되는 것은 전혀 없는 상태이다.   누에의 품종은 원산지, 화성(化性), 면성(眠性) 등과 사육시기, 색, 반문 등 여러 관점에서 분류된다. 원산지에 따라 중국종, 일본종, 구주종, 동남아시아종 등으로 분류된다. 화성으로는 1화성, 2화성잠으로 보통 분류되고 다화성잠도 있다. 면성으로는 3면잠, 4면잠, 5면잠 등이 있는데 상고시대 우리 나라의 것은 3면잠이라고 한다. 면성은 누에가 유충기에 뽕잎을 먹지 않고 잠을 잔 뒤 변태하는 시기를 말하는 것인데 잠을 자는 횟수에 따라 분류한 것이다. 보통 일반적으로 4면잠이 많이 사용되고 있으며, 3면잠은 4면잠에 비해 견사(繭絲)가 가는 것이 특징이다. Ⅱ. 전통 견직물의 종류    1. 주(紬)       역사적으로 조선시대는 각종 직물들이 색, 문양, 제직, 야식, 산지, 용도 등 여러 조건에 의하여 다양하게 명명되었다. 조선시대에는 근년까지 사용된 주의 종류는 상당히 다양한데 주(紬), 토주(吐紬), 정주(鼎紬), 수주(水紬), 반주(班紬), 아룡주, 면주(綿紬), 춘주(春紬), 분주(粉紬), 생주(生紬), 쌍주(雙紬), 방사주(方絲紬), 명주(明紬), 공주(貢紬), 내주(內紬), 삼팔주(三八紬), 해동주(海東紬), 저주(紵紬), 산동주(山東紬), 문주(紋紬) 등이 있었다.   거의 모든 주는 견사의 단순한 평조직 직물로 보는데 오늘날에는 이 많은 주의 명칭이 다 없어지고 다만 명주로 명명된 한 종만이 재래식 베틀과 자동직기로 제직되고 있다.   오늘날 명주는 가을, 겨울의 한복감으로 많이 쓰이고, 색명주는 여름 한복감에 사용하며 생견의 명주만을 생명주라고 한다. 문주는 얇고 보드라운 촉감이며 얌전한 감각이 있어 남녀의 한복감으로 많이 사용된다. ·노방주 : 노방주는 주의 일종이나 오늘날의 명주, 생명주와는 아주 감각과 태가 다른 것이다. 오늘날에는 생노방과 숙노방이 있다. 고급품은 여름 한복감에 사용하며, 하등품은 한복의 안감으로 사용한다. 2. 초    초에 대한 옛 기록을 종합하면 견직물에 대한 통칭으로 사용된 것 같기도 한데, 생견 직물, 연견 직물, 각색의 염색 직물, 쌍올로 제직된 결실한 직물, 소사·은조사와 같은 사직물 또 문직물인 경우 등 다양한 견직물의 호칭으로 사용된 것 같은데 확실하지는 않다.   영초는 영초단이라고 하였는데, 문은 주자 조직이고 지는 평지의 두꺼운 직물이라고 하였다. 세문영초는 문양이 세(細)한 것이라고 하였으며 생초는 경은 생사, 위는 생사급 연사 교직의 익직물이라고 하였다. 나방초는 경사, 위사의 색이 다른 연려(練  ) 즉 숙항라와 같은 것이라고 하였다. 초는 오늘날에는 이름조차 없어진 듯하지만 근년까지도 영초가 고급직물로 귀하게 사용되었고 유물도 꽤 남아있다. 3. 사(紗) (숙고사)    우리 나라 전통직물 가운데 가장 종류가 많은 것이 사(紗)이다.  문헌에는 많은 사 종류가 나오는데, 오늘날까지 제직되어 사용되고 잇는 것은 관사, 국사, 숙고사, 진주사, 갑사, 순인, 생고자, 은조사 정도이다. 문헌 `재물보'에는 사는 경증(輕繒) 곧 가벼운 견이라고 하였는데, 비단 중에서도 가벼운 것이라는 뜻이다. ·관사(官紗) : 생관사, 숙관사가 있으며, 문양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이 있다. 지가 평조직이고 문은 경주사 또는 경사 방향의 부문인 것이 대부분이다. 이른봄, 늦가을의 한복감으로 태가 아주 고운 직물이다. ·숙고사(숙고사) : 무연(無撚:꼬지 않은)의 연사(練紗)로 지는 평조직, 문은 사조직으로 제직한 것인데 지와 문의 비율이 거의 같아 관사보다 더 투명하다. 봄철 옷감으로 적당하다. ·국사(菊紗, 局紗) : 경생사, 위연사로 무연사를 써서 제직하는 것이 원칙이다. 지는 평직, 문은 사직인데 숙고사보다 평직의 부분이 좀 적어서 숙고사 다음 계절에 사용된다. ·진주사 : 지가 사직이고 문이 평직, 사직이 혼합된 형태로 제직되는데 국사보다 더 투명한 사직물로 초여름에 적당하다. ·갑사(甲紗)·순인 : 순인은 사조직과 평조직이 인문으로 조합된 같은 사직물이고 순인에 무늬가 같이 놓여 제직된 것을 갑사라고 한다. 경생사, 위연사의 무연사로 제직된다.   갑사는 진주사보다 사조직의 비율이 많아서 더 투명하여 진주사보다 좀더 더운 때 쓰며, 추석빔 옷감으로  많이 사용하기도 하였다. ·생고사(生庫紗) : 경사, ㎉怜?생사인 무연사로 제직되며 지는 사조직이고 문은 평조직인데 사조직 비율이 거의 80%를 차지하여 아주 투명하다. 모시와 같은 시원한 감각이 나는 사직물로 한여름에 사용된다. ·은조사 : 원칙적으로 경생사, 위연사로 된 소사(素紗)의 직물이다. 사직물 가운데 가장 더운 여름에 사용되는  것이다. ·문사(紋紗) : 지는 사직, 문은 평직으로 제직된 것이다. 오늘날에는 이와 다르게 제직되고 있다. ·금사(金紗) : 지는 사직이고 문은 평금사로 부직으로 제직된 것이다. 4. 라(羅) (7족항라)    라는 사(紗)와 같이 경사가 익경되어 제조된 옷감으로 경사 4올이 일조가 되어 익경된 것을 말한다. 문헌에는 `라는 새그물과 같은 것'이라고 하였다. 민길자는 2경이 익경된 것은 사(紗), 3경·4경이 익경된 것은 라(羅)로 분류하였다. ·민항라·문항라 : 항라는 평직과 사직이 조합된 여조직(  組織)의 직물이다. 3족 항라( 평직 3단 제직하고 경사 2올로 일조로 하여 익직, 여목을 제직하여 투명한 직물로 제직한 것)는 생사로 제직하여 시원한 한여름 옷감으로 사용되고, 7족 항라(평직 7단 제직하고 여목을 제직한 것)는 숙항라로 제직되어 봄가을의 한복감으로 사용된다. 문항라는 여자의 봄가을 두루마기 감으로 적당하다. ·을라(乙羅) : 조선시대 문헌에 자주 등장하는 것으로 오늘날의 직물명에는 없는 것이다. 모두 평직으로 제작된 것이며 약간 띄운 간격으로 인하여 마치 여직물 같아 보인다. ·소라(素羅)와 문라(紋羅, 花羅) : 오늘날에는 절멸된 전통 직물의 하나이다.    5. 능(綾)    능은 우리나라에서 삼국시대부터 문헌에 나타난다. 오늘날에도 한복감 가운데는 능지, 능문의 전통 직물은 보이지 않는다. 능지, 능문의 얇은 비단은 한복의 태도 아름답게 나고 광택도 조직의 특성상 은은하고 조촐하게 나서 참으로 아름다운데 언제부터 어찌하여 이와 같은 전통 직물이 절멸 상태가 되었는지 궁금하다. 6. 기(綺) (기)    기는 무늬가 있는 비단이며 금과도 같지 않고 능과도 같지 않은 것으로 각종 고문헌의 기록을 통하여 나타난다. 중국의 하정(夏鼎)은 은허에서 발견된 평조직에 능조직으로 능형문을 조직한 직물 흔적을 기의 흔적이라 말한다. 또 남송에서는 기는 평조직이고 문은 4매경능직으로 된 직물도 기라고 하였으니 기의 개념은 평지릉문의 직물인 셈이다. 7. 단(緞) (도류불수단)     단은 주자 조직으로 제직된 직물로서 주자 조직은 직물 조직 가운데 가장 늦게 태어난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공단, 양단으로 간략화되어 명명되어 있다. 양단은 조선시대 말 개항이 되어 영국에서 들어온 단의 명칭이었다. 오늘날 우리나라에서 현재 제직되고 있는 단은 단색 문단류가 가장 많고 다음으로 금단류와 직금단류가 있다. 단은 주자 조직으로 제직되는 것이므로 평직, 능직으로 제직된 직물보다 광택이 좋아 화려하다. ·공단(貢緞, 公緞) : 공단은 직문되지 않은 경주자 직물이다. 공단은 광택이 화려하나 단조롭다. 오늘날에는  합성 섬유사로 제직된 각색의 공단이 아주 많이 제직되어 사용되는데 비단으로 된 공단은 얇고 보드라우며 태가 좋은데 합성사의 공단으니 두껍고 뻣뻣하여 태가 좋지 않다. ·단색문단(單色紋段) : 같은 색의 경사와 위사를 사용하여 무늬를 제직한 단이다. 단색문단의 조직은 대부분 지는 경주자직이고 문은 위주자직이다. 그래서 문단의 광택이 나서 밝아 보이고, 반면 문은 광택이 덜 나고 어둡게 보인다. 그리하여 중국에서는 암화단(暗花緞)이라고 한다. 오늘날에는 이와 같은 단도양단이라 하고 있다. 앞으로는 조선시대와 같이 색과 무늬를 형용하여 단의 이름을 지어 불러야겠다. ·이색문단(二色紋緞) : 경사와 위사의 색을 다르게 써서 지는 경주자, 무늬는 위주자로 제직한 문단이다. ·중직문단(重織紋緞) : 북을 3개 또는 그 이상 써서 각기 다른 색을 북에 넣어 무늬의 색을 2가지, 3가지 또는  그  이상으로 다채하게 제직하면 위사가 중첩되어 제직한다. 이것이 중위문단이다.    8. 금(錦)    금은 다채한 색사 또는 금은사를 사용하여 제직한 문직물의 일종으로 평직 또는 능직으로 제직된 문직물이다. ·직금 : 문위사에 금사[片金絲·撚金絲]를 사용하여 직문한 문직물이다. 직금의 제직 양식은 평지에 금사로 직문한 것, 눙지에 금사로 직문한 것과 주자지에 금사로 직문한 것이 대표적이 것이다. 라와 사에도 금사가  직입된 것이 있다. 9. 곡    곡은 축면 직물에 대한 고대인들의 총칭으로 오늘날의 조오젯과 같다. 견사를 강연하여 평직으로 제직함으로써 견의 광택이 없어져 버린 것이 이 직물의 특성으로 이러한 것이 오히려 소박한 느낌을 준다. 이러한 축면 가운데는 오늘날까지 많이 전승된 것으로 뉴똥이 있다. 참고문헌 : 민길자, "전통옷감", 대원사, 1998. C. 전통 염색이란?    전통 염색이란 자연 염료인 식물성, 동물성, 광물성 염료를 사용하여 섬유, 종이 등에 물들이는 것을 말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여러 가지 천에 물들인 것과 종이, 벽화 등에 쓰인 것으로 보아 오래 전부터 여러 종류의 염료가 사용되어진 것으로 보인다.  많은 염료 중에서 식물성 염료가 두드러진다.  이런 전통 염료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식물 염료로느 식물의 잎과 꽃, 열매, 껍질, 나무의 속 부분과 뿌리 등을 주로 사용한다.    식물 염료는 한 가지 염료로 색상을 나타내는 단색성 염료와 매염제의 종류, 색소를 추출하는 온도나 염색 공정에 따라 각기 다른 색을 내는 다색성 염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이러한 식물성 염료는 색소 추출과 염색에 많은 시간이 요구되고 염색 과정이 매우 복잡하여 같은 염료라도 염료의 산지나 채취 시기, 보관 상태 또는 염료의 추출 방법에 따라 여러 가지로 다르게 나타난다.   우리나라의 전통 염색 수준은 예로부터 사용되었던 기술, 곧 자연 상태의 천연 재료로부터 추출한 염료를 천연 매염제와 함께 오래 전부터 사용한 도구를 이용하여 염색하는 방법을 그대로 답습하는 정도이다.   전통 염색 기술은 지역별로 약간씩 차이가 있는데, 각 지역의 자연 환경에 따라 염료의 채취 시기부터 염료 색소 성분의 추출 방법이나 염색 방법이 조금씩 다르다.  또한 염색을 하고 있는 분들의 생활 방법이나 알고 있는 방법에 따라서 약간씩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그 기본적인 방법에는 큰 차이가 없다.   천연 염료에는 섬유 제품에 합성 염료로는 나타낼 수 없는 아름다운 색체와 다양한 밝기, 중간 정도의 아름다운 색상을 나타내 준다.  때문에 천연 염료로 염색한 것에서는 누구나 친금감을 느끼게 된다.  아울러 합성 염료가 갖는 단점인 인체에 대한 유해성, 공해 및 폐수문제 등이 거의 없어 환경 보호에도 큰 기여를 한다는 점에서 그 사용 범위가 점점 늘어날 전망이다.   21세기를 눈앞에 둔 상황에서 과학의 총아인 합성 염료를 두고 다시 천연 염료를 왜 찾는지는 개인에 따라 다르겠지만,  지금 우리가 사는 20세기의 출구에서 찾을 수 없는 진짜 우리 것에 대한 본능적인 회귀라 생각된다.             "빛깔있는 책들 - 쪽물들이기" -대원사-   에서 발췌... D. 전통 염색의 역사적 배경     사람이 염색을 시작한 이유는 무엇이며 왜 이렇게 힘든 일을 꼭 해야만 했을까?  최초의 염색은 누구를 위해서 사용했으며 그것을 사용한 사람의 사회적인 지위는 무엇이었을까?    원시 공동체 사회에서 색은 주술적인 의미로 사용되었을 것이다.  그때의 사회 최고 신분은 물론 샤먼(무당)이다. 아마도 부정을 막기위한 방법으로 색이 사용되어졌으리라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이다.  성경에 "문설주에 붉은 피를 칠한 집에는 아들이 죽지 않는다" 고 쓰여 있는 것으로도 이러한 생각을 읽을 수 있다.   그러다가 점차로 사회가 복잡해지고 샤먼 혼자만의 힘으로는 공동체 유지가 어려워지기 시작하면서 그 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새로운 규칙이 생겨나고, 그 규칙을 위반하는 사람이 생기면 또 그것을 벌하는 사람도 생겼을 것이다. 이러한 집행자와 피집행자와의 신분을 구별하기 위해서는 입고 있는 옷의 색깔을 다르게 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이렇게 상층과 하층의 구별이 생기고, 점점 더 발전하다 보면 하나의 커다란 국가 공동체가 형성된다.  그렇게 되면 통치자의 역할이 샤먼에서 탁월한 힘을 가진 정복자로 바뀌게 되고 그 신분의 위용을 자랑하기 위하여 새로운 색깔의 복장이 필요하게 되지 않았을까?  그래서 사회 지배 계급의 복식이 항상 눈에 빨리 띄는 화려한 색상으로 변해가고 계급에 따라서 옷의 색깔이 다르게 되었을 것이다.   선사시대 염료의 사용 역사를 찾아보면 천연 염료인 동물성, 광물성, 식물성 염료를 이용한 염색은 인류의 탄생과 함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필요에 의해 발생되었다고 볼 수 있다.   아름다움을 추구하기 위한 염색의 최초 증거를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천연 안료를 이용한 동굴 벽화로 후기 구석기시대가 되면 보편화되는 경향을 보인다.  이 시기의 그림들은 주술적인 의도가 분명히 드러나며, 지금까지 발견된 그림이 그림이 그려진 장소가 모두 동굴이었던 것을 보면 그곳은 매우 성스러운 장소였다고 여겨진다. 구석기시대 예술의 주제는 매우 다양했으며 그림을 그리는 데는 천연 안료를 이용하여 붓처럼 만든 깃털이나 모피를 이용하거나 직접 손으로 그린 것으로 보인다.  천연 안료로는 대체로 광물성이나 식물성을 사용하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러한 기술이 신석기 시대가 되서 가죽이나 천으로 된 의류에 아주 초보적인 염색을 가능하게 하였을 것이다.  청동기시대에 바위에 그려진 그림이나 흙을 주물럭거려서 만든 물건 또는 청동기에 새겨진 무늬 등이 발견되고 있다. 그렇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아직까지 염료로 예술적인 표현을 한 물건은 발견되지 않고 있다.   역사시대인 철기 시대로 들어서면서 활발한 염료 기술을 볼 수 있는 자료들이 나타나는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의장 다호리 유적이다.  이 유적은 목관묘, 독무덤, 등에서 동으로 된 여러 가지 모양의 유물과 쇠로 된 칼이나 창을 비롯하여 칼집, 활,  화살, 두(豆), 배(杯), 합(盒), 소쿠리, 부채, 붓 등의 칠기류가 많이 나왔다. 특히 목태칠기의 용기류가 많으며 일부 주칠의 문양과 흑칠을 한 것도 발견되었다.   평양의 낙랑 유적에서 발견괸 칠기류에서 청동기 시대 이후부터 기원전? 후 시대까지 발달된 염색 기술을 볼 수 있다.  이 때부터 염색에 관한 기록들을 문헌에서 찾아볼 수 있다. 『삼국지(三國志)』 권30 <위지> '동이전' 부여 변진조에 보면 삼한 가운데 변한과 진한에서 '폭이 넓고 가는 베'를 짜서 만든 청색 의복을 착용하였으며 청색·적색·자색 등의 색실로 문양을 넣어서 짠 비단이 사용되기도 하였다.  또한 부여의 염색 기술은 매우 훌륭하였던 것으로 나타나는데 흰옷을 좋아하여 나라 안에서는 베로 만든 흰옷을, 나라 밖에서는 증(繒), 수(繡), 금(錦), 계 등을 착용하였다고 한다.   삼국시대가 정립되면서 염직 공예가 발달되어 상당한 수준을 이루었다고 한다.  고구려 왕은 오채(五彩)라 하여 색깔있는 옷을 착용하였으며 대신은 푸른 비단 모자, 그 다음 계층에서는 붉은 비단 모자에 누런 색의 가죽신을 착용했으며 서민은 갈옷을 입었다.  또한 대신은 물론 악공 무용가들도 모자, 옷, 신발 등에 붉은색, 자주색, 노란색, 푸른색, 갈색 등을 염색하여 착용하였다.  고구려 고분 벽화에서는 뛰어난 색채 문화를 볼 수 있는데 현재 까지 알려진 고분 벽화는 60기 정도로 집안과 평양 지방에 주로 많이 분포한다.   백제는 고이왕 27년(260) 정월에 품위를 제도화하고 2월에는 의복의 색깔을 정하여 6품 이상은 보라색, 11품 이상은 붉은색, 16품 이상은 푸른색을 입게 하였으며 뒤에 대신들과 관리들의 옷 색깔과 품위를 색 띠로 구별하게 하였다고 한다.  이와 같은 기록에서 붉은색, 푸른색, 자주색 등의 색채를 엿볼 수 있는데 일찍이 염색 기술이 발달하였음을 알 수 있다.  특히 부여 능산리 고분 벽화에서는 주, 황, 청, 흑색의 색채가 보여 이를 더욱 분명히 하고 있다.   신라의 염색 기술은 일찍부터 발달한 것으로 보이는데 법흥왕 1년(514)에 육부인 색존비의 제도를 정하여 그 직위에 따라 자색, 비색, 청색, 황색  즉 태대각간으로부터 대아찬까지는 자주색, 아찬에서 급찬까지는 붉은색, 대나마에서 나마까지는 푸른색, 대사에서 선저지까지는 노란색을 착용케 하였다. 『삼국사기』권40<위지>9 직관(職官)조에도 법흥왕 7년(520) 정월에 율령을 반포하고 처음으로 백관들의 공복을 정하여 옷 색깔의 순위를 정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삼국사기』권39 <위지>8 직관조를 보면 특히 신라에서 염색 기술을 전문적으로 담당하는 공영 공장을 두었다.  또 『삼국사기』에 의하면 염궁, 홍전, 능색전, 소방전, 조로방, 찬염제, 금전, 기전이 있었고, 침방 장인이 옷을 만들었다고 한다.  이런 기록 외에 염색 기술을 살펴 볼 수 있는 자료들이 경주 천마총에서 출토되었는데 천마도와 기마 인물, 봉황 등이 그려진 채화판(彩畵板)등을 들 수 있다.   채화판은 자작나무 껍질 위에 그림을 그린 것으로 특히 흰색, 붉은색, 갈색, 검정색으로 인동당초문을 장식한 점에서 신라의 발달된 염색 문화를 엿 볼 수 있다.  또한 이렇게 발달된 염색 기술은 통일신라 이후에 더욱 발전하여 찬란한 염색 문화를 꽃 피웠던 것이다.   『고려사』<세가> 권2    정종 무신 3년 9월조에 보면 삼국의 우수한 염색기술을 바탕으로 하여 사영 공장과 관영 공장에서 염직물을 생산하였다고 한다.  이들 생산품은 귀족의 수요에 충당되는 외에 조공품과 교역에 주로 사용되었다.  특히 염색을 관장하는 관영 직조 수공업자인 '도염서(都染署)등에 전문 장인인 염료공과 염색공을 두어 염색을 담당하게 하였다. 『고려도경』권 23 <잡속>을 보면 고려에서는 조관복의 비색, 서민복의 녹색을 제외한 모든 관복에 자색의 문양이 든 비단이 도포를 만드는데 사용되었다. 고려의 염색 기술 중 특히 지초에 의한 자색염은 중국에까지 알려질 정도로 뛰어난 기술을 갖고 있었다. 자색염이 발달한 것은 보라색이 동서양의 역사에서 보면 권위의 상징으로 여겨지기 때문이었던 같다.   조선시대 염색도 고려시대에 이어 발전하였는데 특이한 것은 쪽물 염색과 홍화 염색의 비약적인 성장이다.   조선 건국 초기에는 태종이 백색 옷의 착용을 금하고 관복의 색을 정했던바 결과적으로 염료의 개발이 많이 이루어졌고 조선 후기에는 관복, 제복, 관, 장신구 등에 염료가 두루 사용되었다.  또한 계급 의식과 금기가 많아 일반 백성에게 널리 보급되지는 못했지만 관의 제재를 받지 않는 이불, 댕기, 화관 등에는 화려한 염색 기술이 다양하게 사용되었다.   조선 후기 영, 정조 시대 이후에는 산업이 발달하고 실학이 들어옴에 따라 나라 전체의 문화 수준이 수직 상승을 일으켜 염색의 수요가 늘어났다.  따라서 관청에서 관리하는 염색장으로는 그 수요를 따라 잡기 어렵게 되고 일반 가정에서 개별적으로 염색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건국 초기 공조에 각종 장인들을 두는 제도를 정조 13년에 전부 폐지하였다.   영, 정조 이후 많은 발전을 이루었던 조선시대의 염색법은 그 뒤 국운의 쇠락과 함께 하나 둘 없어지기 시작하여 개화기 이후 서양에서 합성 염료가 도입되면서부터 거의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빛깔있는 책들 - 쪽물들이기" -대원사-   에서 발췌... E. 쪽물 들이기     쪽(학명: Persicaria tinctoria H. Gross)은 마디풀과에 속하는 한해살이 풀이다.  보통 키는 60내지 1미터 50센티미터까지 자라고 줄기는 다소 연질이고 곧게 섰으며, 가지는 갈라졌다.  꽃은 8, 9월에 피며 색은 엷은 분홍색이 대부분이나 가끔 흰색도 있다.  잎을 쪽물 들이는데 사용하는데 잎에는 남색 색소(Indigo)가 들어 많이 들어 있어 염료로 사용된다.  잎을 건조시키면 짙은 남색을 띤다.  중국 또는 인도차이나가 원산지로 환경이 비슷한 한국의 중남부 이남 지방에서 쉽개 재배할 수 있다.  쪽이 어떤 경로로 우리나라에 전해지게 되었는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쪽은 불교가 전래되면서 함께 들어왔다고 한다.   쪽물이란 말은 짙은 청색이라는 '색'의 개념으로 사용된 우리 고유의 언어이다. 쪽빛, 남빛 등의 용어가 동일한 개념으로 함께 사용되고 있지만 이는 모두 '쪽이라는 식물의 빛깔'이라는 의미와 '짙은 청색'이라는 의미를 동시에 지니기 때문에 빛깔만의 개념으로 사용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쪽 자체의 빛깔은 녹색이지 청색은 아니기 때문이다. 쪽물이라는 용어는 '쪽으로 물들인'이라는 의미를 지니기 때문에 '염료'로서의 성격을 용어 자체에 지니고 있다.   쪽은 인류 역사상 가장 먼저 사용된 식물 염료 가운데 하나이다.  고대 산스크리트의 기록에 쪽 염료 제조 방법이 나오는데 이때의 연대가 대략 기원전 4000년대로 추정되므로 적어도 이때부터 쪽염료를 썼다고 볼 수 있겠다.   쪽물은 일찍이 세상에 알려진 염료이며 우리나라에서도 사용되어 온 전통 염료이다.  문헌에는 우리나라에서 기자조선 때에 중국의 복식을 본받았다고 했으니.  그때부터 쪽물이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높으며 보다 확실한 것은 삼한시대부터 사용되었다는기록이다.   1897년 쪽의 인공적인 합성이 가능해져서 점차 함성람이 생산되자 가격에서 천연람과 경쟁이 되지 않으므로 재배는 점차 감소하고 현재는 세계적으로 일부 지역의 천연람 염색법이 남아 있다.  우리나라도 간신히 몇몇 사람들에 의해 쪽물 염색법이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현재는 전통과 자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쪽 염색에 노력을 기울이는 사람이 늘어나서 많은 사람들에 의해 전승되고 있다.   전통 염색은 글자 그대로 우리 조상들이 '자연에서 얻어지는 온갖 염료들로 의복이나 다른 것에 물을 들이는 것'을 뜻한다.  그 일을 하는 사회 경제의 구조는 물론 농어 경제 사회였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에서 말하는 염색일도 농경 사회의 한 일부분이다.  현대적인 생활 환경에서도 할 수는 있겠지만 아직까지도 쪽물 염색만은 시골에서 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쪽물 들이는 순서 1. 쪽 기르기 쪽씨 뿌리기 : 1년 전에 받아 놓은 씨앗을 3월 중순부터 4월 초순 사이에 파종한다. 파종은 밭에다 1m 정도의 두덕을 만들어 모판고, 모판은 만든 후 덩어리가 없게 흙을 아주 잘 게 부숴 부드럽고 고르게 정리한 다음 매우 부드러운 거름(퇴비)을 뿌린다. 이렇게 만든 모판 위에 쪽씨를 뿌리고 그 위에 덮는 듯 마는 듯 얇게 흙을 덮는다.  파종 후 일주일이 지나도 싹이 나오지 않으면 물을 준다.  싹이 10Cm정도 자라면 잡초를 뽑아 주어야 한다. 모판에서 뽑아내기 : 모판에서 20Cm정도 자라면 본밭으로 옮겨 심는다. 모판에서 쪽을옮겨 심을 때는 비가 오는 날을 고르면 좋다. 쪽은 햇빛에 약하기 때문에 뽑아 놓고 1시간만 지나도 시들시들하고 잎이 말라 버린다. 본 밭에 옮겨 심기 : 5월 말이나 6월 초가 되면 본 밭에 옮겨 심기를 해주게 된다. 밭에 옮기기 전에 밭을 갈아 이랑을 만들고 거름과 물을 많이 준다. 쪽은 물을 좋아하는 식물이다.  뽑아 온 모종은 2, 3포기씩 호미로 심는데 20 내지 30Cm 간격으로 심는다.  너무 드물 게 심으면 잘 크지도 않고 새,끼도 잘 치지 않는다. 또 너무 촘촘하게 심으면 키만 커서 밑에 있는 잎이 누렇게 뜬다. 잡초 제거하기 : 쪽을 옮겨 심고 10일쯤 지난 뒤에 완전히 자리를 잡으면 잡초를 제거한다.  이때 제초제를 사용하면 쪽도 같이 죽게 되니 주의해야 한다.     이렇게 쪽을 기르면서 시간이 날 때마다 염색에 필요한 도구나 매염제 또는 여러 가지 준비물을 만들거나 구해 놓는다. 2. 잿물 만들기   잿물의 용도 : 염색할 때 촉매제의 역할. 재 만들기 : 쪽대나 콩대, 찰볏짚 같은 것을 태워서 재를 만든다.  메밀대를 태워서 만든 잿물은 독해서 쪽물 들이는데에는 사용하지 않고 한지 만드는데 사용한다. 잿물이 독하면 표백제(세제)역활을 한다. 물끓이기 : 큰 솥에다 물을 붓고 끓인다.  이 물을 재가 담긴 시루에 부어 재물을 내리게 한다. 잿물 내리기 : 시루 바닥에 짚을 두껍게 깔고 그 위에 모아 둔 재를 소복이 담고 끓는 물을 붓는다.  그러면 시루 밑으로 떨어지는 액체가 있는데 이것이 잿물이다. 잿물의 세기 조절 : 잿물은 너무 진해도 좋지 않고 너무 약해도 좋지 않다. 잿물을 손으로 만져 보아 미끈미끈한 정도가 심하면 물을 더 부어서 내리고, 미끄러지는 소리가 뿌드득하면 약한 것이니 내려진 잿물을 다시 한 번 내려야 적당한 농도가 된다. 3. 석회 만들기   석회의 용도 : 쪽물 속에 들어가서 색소를 빨아들인 다음 밑으로 가라앉힌다 석회만들기 : 석회는 굴 껍질이나 조개 껍질로 만든다. 조개 껍질에 묻어 있는 이물질을 제거하고 깨끗이 씻어서 말린다.  항아리에 조개 껍질을 담고 가마에 넣고 굽는다. 구운 조개 껍질에 물을 조금 뿌려 항아리에 다시 담고 뚜껑을 덮어 놓는다. 이때 많은 열과 함께 김이 발생한다.  항아리의 열이 식어서 열어보면 조개 껍질으 하얗게 가루가 되어 있는데 이것이 조상들이 만들어 사용하던 석회이다.  요즘은 시중에서 석회를 구입해서 사용하는데 그러면 좋은 색을 얻기가 힘들고, 사서 쓴다면 소석회를 사다 쓰는 것이 좋다.  조상들은 석회를 염색하는 곳 이외에 세제, 위장병 치료제 등으로 사용했다. 4. 색소 만들기    쪽 베기 : 장마철에 비를 맞은 쪽은 쑥쑥 자라고, 7월의 햇볓은 식물의 광합성을 재촉하고 쪽은 꽃을 피운다. 쪽이 꽃을 피우기 전이 쪽을 베는 가장 좋은 시기이다. 쪽은 이른 새벽 이슬이 많이 내렸을 때 일찍 나가서 베어낸다.  이것은 햇빛을 많이 받으면 쪽잎이 빨리 시들어 손실이 생기기 때문이다. 쪽 담그기 : 적당량씩 쪽을 묶어서 항아리에 담는다.  담을 때에는 빈틈없이 꽉꽉 눌러 담는다. 그리고 물을 부어도 솟아오르지 않도록 돌로 눌러 놓는다. 물 붓기 : 쪽이 담긴 항아리에 물을 부어야 하는데, 이 때 물이 매우 중요하다.  흐르는 깨끗한 냇물을 쓰는 것이 제일 좋다.  수돗물은 절대로 안되고 물을 구하기 어려우면 깨끗한 지하수를 대신 사용한다.  항아리에 물을 가득 채워 3~4일 정도 기다린다(비가 내리면 5~6일).  그 뒤에 항아리를 보면 아주 맑고 파랗게 물이 고여 있다. 쪽 건져내기 : 항아리 속의 쪽대를 천천히 건져낸다. 담글 때 함께 담근 것은 같은 날 같은 시기에 건져낸다.  날짜가 부족하게 해서 건진 것은 색소가 다 빠져 나오지 않아서 아깝고 너무 지나면 잎이 문드러져서 항아리 속의 물이 걸죽해져 나중에 색소가 뭉쳐지지 않는다. 쪽대 말리기 : 건져낸 쪽대는 잘 말려서 다음 해에 잿물을 만드는데 사용한다. 쪽대를 태워 만든 잿물이 가장 좋다. 체에 받쳐 거르기 : 쪽을 건져낸 물을 체에 받쳐 거른다.  쪽대가 남아 있지 않도록 깨끗하게 걸러낸다. 석회 타기 : 항아리의 물이 양동이로 10개 정도 된다고 하면 석회를 한 되 정도 넣는다 .석회를 처음부터 너무 많이 넣지 말아야 한다. 석회를 넣고 쪽물과 석회가 잘 섞이도록 고무래로 저어준다. 고무래로 저어주는 요령은 고무래를 항아리 밑바닥까지 내렸다가 세게 위로 뽑아 올리듯이 젓는 게 요령이다.  석회는 자꾸 밑으로 가라앉으려고 하기 때문에 자꾸 위로 올려서 쪽물과 잘 섞이도록 해야한다. 처음 쪽물과 석회가 만나면 물색이 황토색이지만 점차 옥색으로, 옥색에서 하늘색, 하늘색에서 점점 더 푸른색으로 변해간다.  색이 변하지 않으면 석회를 조금 더 넣고 계속 저어준다.  가지색이 되어 거품(꽃거품이 일어났다고 함)이 일어날 때 까지 고무래로 계속 저어준다. 거품이 일어난다는 것은 석회와 쪽물과 공기가 화학 반응을 보이면서 기포가 발생하는 것이고 이 반응의 결과로 쪽물은 가지색을 띠게 된다. 석회는 쪽물 속에 들어가서 먼저 물을 흡수하고 용질 상태로 있던 색소는 석회에 달라붙게 된다. 고무래질을 멈출 때는 색소가 다 석회에 달라붙었다고 느껴질 때이다. 5. 잿물 붓기 윗물 따르기 : 석회를 넣고 고무래질을 마친 뒤 하루가 지나면 항아리 속의 쪽 색소는 석회와 함께 모두 밑으로 가라앉는다. 항아리 속의 맑은 물을 최대한으로 따라내어 버리고 나면 그 속에 팥죽처럼 생긴 파랗고 보라빛이 도는 색소 앙금이 남는다. 색소 앙금 모으기 : 항아리의 물을 전부 따라낸 다음에는 쪽 색소 앙금을 한 곳으로 모아야 한다.  물이 20말들이 항아리라면 항아리, 4~5개의 항아리에서 앙금을 모으면 1개의 항아리에 넣을 분량의 색소를 모으게 된다. 잿물 붓기 : 수분이 완전히 제거된 쪽 색소 앙금에다 잿물을 붓는다.  끓인 잿물을 부으면 항아리 속의 쪽 색소 앙금 위로 거품이 살짝 올라온다. 이 거품에 많은 양의 색소가 들어 있다. 붓는 재물의 양은 앙금의 4~5배 정도가 좋다. 고무래질 : 잿물을 붓고 아주 천천히 고무래질을 하는데 고무래를 항아리 속까지 집어 넣었다가 다시 천천히 위로 올려 주는 동작을 반복한다. 잿물과 고무래질의 관계 : 잿물은 석회에 붙어 있던 색소를 떼어내는 촉매제 역할을 한다.  석회에서 떨어진 색소는 잿물과 밀도차에 의해 저절로 떠오르고, 떠오른 색소가 공기와 만나서 색소층을 형성해 가면서 쪽물이 완성되는 것이다.  고무래질은 색소가 석회로부터 분리되는 것을 도와주기 위한 것이다.  고무래질은 비가 와도 계속 해주어야 한다. 위쪽에 색소층이 형성되었어도 항아리 전체가 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항아리 전체가 될 때까지 하지 않고 방치하면 잿물이 썩는 경우가 있다. 6. 물발 세우기      색소를 만들었어도 쪽 항아리에 물발이 서지 않는다면 염색을 할 수 없다.  잿물을 부어 놓고 고무래질을 계속하다가 일주일이 지나 뒤부터는 항아리를 자세히 살펴야 한다. 쪽 색소가 많이 올라올수록 항아리 안의 물빛이 달라진다.  색소가 많이 올라오지 않으면 색소와 잿물이 층이 져서 위에는 맑은 잿물만 있고 색소는 아래 모여 있게된다. 고무래를 넣고 저어 보면 위에는 항상 잿물만 있고 색소는 아래에서 위로 올라오지 못한다. 이때 색소 앙금과 잿물의 비율이 1:4 내지 1:5 정도로 잘 맞춰졌는지를 생각해 보고 이에 맞춘다.  잿물을 붓고 2주일이 지나도 쪽물이 일어나지 않으면 집에서 담근 막걸리(술이 다 되어가는 물타지 않은 젖내기 술)를 항아리 하나에 술 1리터 정도 붓는다. 2~3일 간격으로 상태를 봐 가면서 두 세 번 더 부어 준다. 이렇게 하면 조건이 잘 맞을 경우 일주일 만에 일어나지만 두 달 이상 걸리기도 한다.     겉과 속의 물 색깔의 변화가 없으면 고무래질을 하면서 계속 기다린다.  만약 속에 있는 물이 녹색을 띠기 시작하면 물발이 돌고 있다는 증거이다.  이 때부터는 더욱 조심스럽게 고무래질을 한 시간에 한 번 정도 해준다.  그러면 3~4일 정도 후에는 완전히 물발이 일어난다.  항아리 속의 쪽물이 온통 배추색으로 변해 있으면 쪽물이 제대로 된 것이다.  이로부터 며칠을 더 두고 쪽물이 완전히 농익기를 기다려 사용한다. ------- <염색 전 준비 사항>    염색 재료는 전통적인 방법으로 직조된 모시, 삼베, 명주, 무명 등으로 이것들에 염색을 한다. 요즘 시중에서 파는 것들에는 표백제나 풀이 먹여져 있다.  이것들에 그대로 쪽물을 들이면 염색이 잘 안되거나 얼룩 등이 생기게 된다.  각 재료에 맞는 손질법에 따라 표백제와 풀을 완전히 빼내고 염색을 해야한다.  물에 사흘 정도 담갔다가 몇 번을 행구고 경우에 따라서는 삶기도 한다. -------- 7. 쪽물 들이기 첫물들이기 : 농익은 쪽물은 녹색(배추색)을 띤다.  적당량의 쪽물을 그릇에 담고, 천을 넣어 손으로 계속해서 손질하다보면 쪽물 속에서 나온 천은 녹색을 띠고 있다. 그 녹색이 공기와 만나서 푸른색으로 변하는 것이다. 처음 쪽물에 천을 담글 때는 접히지 않게 잘 넣어야 고루 물이 든다. 천이 모두 파랗게 변하면 꺼내서 꼭 짜서 빨랫줄에 넌다.  널 때에는 주름이 잡히지 않도록 넌다. 널어 놓은 천은 수시로 위 아래를 바꿔 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염료가 아래쪽으로 흘러 위 아래의 색깔이 달라진다. 완정히 건조 시킨다. 두 번째 물들이기 : 첫 번째와 같은 방법으로 건조된 천을 다시 염색한다. 잿물 빼기 : 물들인 천이 다 말랐다고 그대로 주지 말고 솥에 물을 끓여서 60~70도가 되면  그 물에 물들인 천을 30분 정도 담가 둔다.  그러면 잿물만 빠지게 된다.  잿물을 제대로 빼지 않으면 잿물 성분 때문에 천이 삭는 경우가 있다.   세 번째 물들이기 : 뜨거운 물에 잿물을 뺀 다음 다시 찬물에 행궈 완전히 제거하고 건조시킨 뒤 다음날 다시 염색한다.  이렇게 횟수를 거듭할수록 처음의 연한 색에서 점점 더 진한 색으로 만들어진다. 8. 손질과 마무리   염색이 다 된 천은 풀을 먹이고 다듬질을 하는 손질과정을 거친다. 천의 종류에 맞는 손질과 마무리 과정을 거쳐 사용한다. F. 쪽물 염색의 과학적 우수성 1. 쪽물들인 천의 우수한 방균성        한국원사직물연구소에서 KBS와 공동으로 쪽물들인 무명과 물들이지 않은 무명에 곰팡이균을 넣어 본 실험에 의하면  온도는 20℃ 습도는 98%로 하고 2주일 동안 보관하였다.  이 온도와 습도는 자연상태라면 장마가 2개월 이상 지속되는 상태와 같다고 한다.       실험 결과, 물들이지 않은 무명은 곰팡이가 창궐해서 못쓰게 되었고 쪽물들인 무명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는 쪽물의 우수한 방균성을 입증하는 것이다.       우리 선조들은 꼭 장롱 속에다 쪽물들인 천을 한 필씩 넣어두었다.  그렇게 해서 장롱 속의 다른 섬유에 좀이 슬지 않게 했다. 2. 고려 불화와 쪽물 염색        고려시대 경전들은 금니 등으로 사경할 때 쪽물 들인 종이를 이용하였다.  고려시대 감지사경의 짙푸른 청색은 전통적인 염색 기법으로 볼 때 쪽물을 들인 것이다.   14세기의 [감지은니대방광불화엄경] 권 37을 '분광색도계'로 측정해 본 결과 만셀국제표준기호로 짙은 곳은 색상 1.4P(Puple), 명도 2.5,  채도 1.1 ,  옅은 곳은 색상 6.7PB(Puple Blue),  명도 2.6,  채도 1.3 의 측색치가 나왔다.   옅은 곳의 측색값은 무명에 7~8회 반복하여 쪽물을 염색했을 때와 색의 속성이 비슷하다.  측색값의 차이가 3.0 이내일 경우에는 육안으로 식별되지 않는 동일색에 해당한다.   고려 감지사경의 염색 상태가 지닌 비법은 무엇일까?   7~8회 이상 반복해서 쪽물을 들일 수 있는 것은 천이라야 가능한데 과연 종이도 그 같이 쪽물을 반복하여 물들일 수 있는가?   종이에 물을 들인 탓에 천 염색과 달리 전체에 정교하게 물감이 들지 않았지만 시각적으로는 비교적 고른편이다.  7~8회 이상 쪽물을 들여도 손상되지 않을 만큼 고려  종이의 섬유질이 좋은 것인지 또는 고려 종이는 방망이로 표면을 두들기는 가공 방법을 썼다는데 그 도침(搗砧- 종이, 피륙 등을 다듬잇돌에 다듬어 반드럽게 하는 것) 효과 때문인지 아니면 고려 종이의 쪽물 염색 비법이 따로 있었는지 현재로선 명확히 알 수 없는 형편이다       감지사경의 보존 상태는 그 이전이나 이후 시기의 서적이나 그림 등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양호하다.  그 이유 가운데 하나가 쪽물 염색의 효과일 것으로 추정된다. G. 쉽게 구할 수 있는 염료 식물 소개하기 앞서 덧붙여, ¤ 매염제     염료가 천이나 실에 잘 흡착되도록 도와주는 약품을 매염제라 한다.  대부분의 식물 염료는 다색성 염료이다.  그러므로 매염제의 종류에 따라 색상이 달라지게 될 뿐만 아니라 색의 견뢰도(빛이나 마찰에 대해 견디는 힘)도 달라진다.     주변에서 손쉽게 구할 수 있고 또 주로 쓰이는 주된 매염제로는 알루미늄[Al(CH3COO)3],  동[銅,(CH3COO)2 · CuH2O], 석[錫, NaSnO3], 철[鐵, Fe(CH3COO)2],  크롬[Cr(CH3COO)3], 명반(明礬)이 있다.  이 중 크롬은 독성이 매우 강하므로 가급적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다.  석을 이용할 때는 같은 양의 구연산을 첨가한다.  일반적으로 석과 명반, 알루미늄을 쓰면 밝은 색조를 내고 동은 녹색 계통의 색조가 되며 철을 사용하면 어두운 색조가 된다.     매염제의 양은 피염물의 무게에 대해 알루미늄은 5%, 석은 2%, 동은 3%, 철은 1.5 ~2% 정도가 적당하다.  동과 철은 피염물을 약화시키므로 주의해야한다. (전통적인 식물 염료로 염색하는 법은 복잡하고 손이 많이 가는 고도의 숙련을 요구한다. 위의 매염제는 누구든지 주변에 있는 도구를 이용하여 쉽게 해볼 수 있는 간단한 염색 과정에서 쓰이는 것이다.) 개나리 꽃이 지기 시작한 5월 줄기의 잎을 채집하여 사용.  추출된 염료는 탁한 미색으로 뿌연 침전물이 생긴다. 이는 염색 도중 얼룩지게 하는 원인이 되므로 다른 식물에 비해 특히 주의해야 한다.  봄부터 가을에 채취한 것의 색상이 짙으며 반복 염색하여 짙은색을 얻는다.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고 매염제를 쓰지 않고도 짙은 색을 얻을 수 있는 좋은 염료이다. 무, 동, 철 개망초 빈터에 무리지어 자라는 잡초이지만 어디에서 나오나 싶을 정도로 고운 색을 낸다. 적은 양으로도 물이 잘 들고 매염제에 대한 반응이 좋아서 다양한 색을 얻을 수 있다. 개망초의 지상부를 잘라서 흰꽃과 함께 잘 썰어 염액을 추출한다.  많은 양을 이용하면 짙은 색을 얻을 수 있다. 무, 동, 철 능소화 능소화는 꽃이 드문 장마철에 주황색의 나팔꽃 같은 꽃을 계속해서 피운다.  8월 담장의 능소화에서 잎을 따 모아서 염액을 추출한다. 잎에 물기가 많아 보통보다 약간 물을 적게 잡는다.  의외로 염색이 잘 되며 동과 철을 매염제로 반복 염색하여 짙은 색을 얻는다. 무, 동, 철 동백 동백은 염료보다는 매염제로 널리 쓰여 왔다. 지치나 꼭두서니로 물을 들일 때에는 알루미늄 매염제로 동백잎을 태운 재를 사용하였다.  동백을 잎과 꽃은 염료로 이용할 수 있다.  계절에 따른 염색 정도의 변화는 없고 꽃만으로도 짙게 잘 물들으며 매염제에 대한 반응도 좋아서 다양한 색을 얻을 수있다. 꽃/잎,  동(잎), 철(잎) 등나무 등나무는 손쉽게 구할 수 있고 적은 양으로도 짙게 염색되는 좋은 염료 식물이다.  등나무의 잎을 채취하여 20분간 끓여서 얻은 염액을 색을 낸다.  계절에 따라 색상이 조금씩 다르다. 가을의 등 잎에서는 붉은 빛이 많고 봄 잎보다 색상이 짙게 나온다.  매염제에 대한 반응도 좋아서 다양한 색을 얻을 수 있다. 봄잎/가을잎, 동, 철 뚱딴지 뚱딴지는 훌륭한 염료식물이다. 꽃이 피어 있을 때 좋은 색을 얻을 수 있다.  잎을 따 모아 잘 게 자른 다음 20분간 끓여서 염액을 만든다. 반복 염색하여 짙은 색을 얻고 매염제에 대한 반응도 좋다. 봉선화 봉선화의 꽃잎으로 물을 들일 때에는 매염제로 명반을 사용한다.  잎과 꽃을 함께 믹서에 간 다음 끓여서 염액을 낸다.  매염제를 쓰지 않은 상태에서도 곱게 물든다.  매염제에 대한 반응도 좋아서 각각 짙고 깊은 독특한 색으로 염색된다. 명반, 동, 철 서양민들레 우리 주변에 있는 큰 노랑 민들레는 전부 서양민들레이다.  뿌리에서는 염료가 나오지 않고 잎과 꽃을 염료로 사용하며 둘의 차이는 색상에서는 큰 차가 없으나 꽃에서 얻어진 색은 백화색으로 매우 옅다.  추출된 염액은 짙은 밤색이나 염색이 잘 되는 편은 아니므로 재료의 양을 늘리거나 같은 과정을 반복해서 염색하는 것이 좋다.  매염제에 대한 반응이 좋아서 다양한 색을 얻을 수 있다. 꽃, 동(잎), 철(잎) 석류 10월 석류 열매를 얻어 분쇄기에 넣어 잘 게 자른 뒤 끓여서 염액을 얻는다.  7월에 잎을 채취한다.  잎과 열매 둘 다 짙고 좋은 색을 내지만 잎보다 열매에서 밝은 색상이 나온다.  추출된 염액은 갈색이 섞인 붉은 색으로 약간 뻑뻑하며 매염제에 대한 반응이 좋아서 특히 동에서 짙은색이 나온다.  껍질이나 뿌리에서도 마찬가지 색을 얻을 수 있다.  제철에 석류 열매를 사서 속은 먹거나 술을 담그고 껍질은 말려서 갈무리 해 두면 두고두고 쓸 수 있다. 열매/잎,  명반(열매), 철(잎) 쑥갓 6월 잎과 꽃을 채취하여 염액을 만든다. 잎의 염액은 매우 짙으나 생각보다는 물이 잘들지 않는다.  매염제에 대한 반응이 좋아서 다양한 색을 얻을 수 있다.  꽃의 염액이 잎의 염액보다 훨씬 진하게 물들일 수 있다.  생화를 이용하는 것보다 말린 꽃의 염액이 보다 짙다.  특히 면에서도 염색이 잘 된다. 꽃/잎, 동(꽃), 철(잎) 애기똥풀 애기똥풀이라는 이름은 식물체에 상처를 내면 짙은 노랑색의 즙이 나오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지상부만을 잘라내어 잘 게 썰어 끓여 염액을 얻고 매염제를 쓰지 않고도 짙은색이 나온다.  매염제에 대한 반응은 그다지 좋지 않다. 무, 동, 철 작약 8월 작약의 잎을 따서 잘 게 썬 다음 끓여서 염액을 얻는다.  염색이 잘되는 식물이고 매염제에 대한 반응도 좋아서 각각의 색이 뚜렷하다. 알루미늄, 동, 철 [쉽게 구할 수 있는 염료 식물] 대원사, 글/사진 - 임형탁, 박수영  에서 인용 ============================== B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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