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게쓴 월남 패망사
- 자유지기
1973년 휴전이 체결후, 월남은 체제의 우월성과 경제력 우위를 바탕으로 월맹에 이긴다는 전략을 세웠습니다. 버뜨~~ 그거슨 너무나도 순진하고 안일한 발상이었었습니다.
티우정권의 각 부처와 총 사령부의 극비 회견내용이 24시간 이내에 월맹에 넘어가고, 야당 지도자 쭝딘쥬, 도지사 녹따오를 위시한 수많은 정치인, 관료, 군인들이 공산프락치였거나, 동조자로 밝혀졌듯이, 월맹보다 더 무서운 적은 월남에 있던 내부의 적이었습니다.
이들은 대공기관과 정보기관의 전문가들을 갖은 음모와 선동으로 몰아내고 (김대중이 집권하자 마자 제일먼저 했던일이 국가안전 기획부 대공 전문가 200명을 모조리 강제 퇴직시켜버린 일이었습니다. 어느 나라건 정보기관이 무력해지면 답이 없죠.) 월남은 월맹의 정보수집은 커녕, 월남내에서 활약하는 공산프락치들의 정보수집에도 쩔쩔매야 했습니다.
오랜 전쟁에 진저리가 났던 월남 국민들은 설마 전쟁이 또 일어나겠느냐?며 평화주의에 쩔어 있었고, 월맹에 대해 적대적이거나, 국방과 안보를 강조하는 자는 전쟁광이나 오늘날 대한민국처럼 수구꼴통, 딴나라당 알바 취급을 받았습니다.
짠후탄 신부, 뚝드리쾅 스님등 종교계 지도자들이 모여 \'구국 평화 운동\'을 전개하며 대한민국의 좃불좀비 저리가라 할 정도의 반 정부, 반 체제 시위를 벌렸고 이들은 국민들의 영웅대접을 받았습니다.
특히 문제는 언론이었습니다. 월남 정부는 민주화의 구호에 현혹되어 완전 자유취재를 허용했습니다. 전쟁중 공산 프락치 구엔 반 렘의 즉결처형 사진은 반전여론과 미군철수 여론을 불러일으켰고,(당시 구엔 반 렘은 양민 학살에 대한 응보로 죽었건만, 이 한장의 사진은 아직도 \'월남군의 잔혹한 양민학살\'로 선전되고 있습니다.) 좌파언론들은 물만난 물고기처럼 여론을 호도했습니다. (이들은 후에시에서 발생한 베트콩의 4000명 양민학살 사건은 끝까지 보도 하지 않았습니다.)
월맹은 그 잘난 언론 덕분에 힘들이지 않고 미군 완전 철수를 이루어내었습니다. 주요 작전 상황과 군사기밀은 언론과 출판의 자유라는 명목하에 술집에서 이야기 거리가 되는 수준으로 전락했으며, 특히 좌파언론들은 미군과 한국군이(월남전에서 유일하게 전승무패를 기록했던게 한국군이었습니다. 호치민도 "한국군과 만나면 공격하지 말고 굳게 지키기만 해라"고 각 전선에 하달할 정도였죠.) 양민을 학살한다고 집중 보도했습니다. 이들은 M16소총으로 민간인을 죽인뒤 한국군 시체를 옮겨놓고 좌파언론인들을 불러 찍게 한뒤에 한국군이 양민 학살을 한다고 호도했습니다.
휴전 체결뒤 미군철수, 반전 평화를 외치는 시민단체와 언론들은 자신들은 진정 민주와 평화의 투사라는 착각속에서 적화의 소모품으로써의 역활을 확실히 해 냈습니다.
반공과 국방을 외치는 자들은 수구, 어떤 극비계획이라도 국민의 알 권리를 막는다며 무조건 공개하는것이 관례가 되어 아예 국가 기밀이라는것이 사라졌습니다.
사태가 이에 이르자 미국은 손을 때고 적화되던지 말던지, 죽이되건 밥이되건 철수전에 미리 패잔병과 포로들이나 구출하자며 극비 계획을 세웠지만, 그 잘난 월남 좌파 언론들이 수개월전부터 언론에 공개를 해 버리는 바람에 구출작전의 40%가 완전 실패로 끝났고, 구출작전에 나선 미국 특수부대는 전멸당했으며, 한국군과 미군 포로들은 강제노동과 고문에 시달리다 타향에서 목숨을 잃었습니다.
특히 국경선서 한국군과 미군이 본격 철수할 당시, 미공군과 해군은 폭격으로 후퇴로를 열려고 했습니다. 그러자 월남 언론과 시민단체들은 폭격을 하는것은 월맹영토를 폭격할지도 모르며, 민간인을 죽이는 야만행위라고 비난했고 베트남 여론에 백기를 든 미군은 폭격을 취소했고, 한국군과 미군은 아군의 시체를 밟아가며 후퇴해야했습니다.
전후 미국이 월맹에 대한 경제 제제를 하려하자, 좌파언론들은 같은 민족을 도와야 한다며 난리를 쳤고, 월맹 사람과 사이좋게 어깨동무를 하고 노래를 부르는 장면을 본 많은 월남인들은 눈앞의 평화술책에 넘어갔으며, 정부가 통제하려 하면 알권리 침해라며 반발했습니다. 월남 부흥을 위한 원조물자와 무기들은 월맹으로 고스란히 넘어갔고, 2년뒤 월남은 사라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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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대한민국의 소위 진보를 자처하는 언론과 단체를 살펴보면 그 행실이 월남의 좌파 언론들의 짓거리와 전혀 다를바가 없습니다. 그들은 민족과 민주를 복날 개새끼들처럼 부르짖지만, 그들이 원하는 것이 체제전복인지 아닌지는 잠깐만 생각해봐도 답이 나옵니다.
비구니 하나가 4대강 반대 유서한장 남기고 자살했습니다. 4대강을 위해서 장렬히 소신공양을 한 경우일까요? 아니면 반정부 시위를 위한 구실과 명분, 그리고 여론 몰이를 위한 소모품으로 자살한 것일까요?
동독과 북한의 다른점은 동독은 서독의 적화를 위해 광분하지 않았다는 것이고, 북한은 오늘도 대한민국의 적화를 위해 지랄발광을 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반공과 안보를 주장하면 수구에 딴나라당 알바소리를 듣는 작금의 현실과 패망전의 베트남은 너무도 닮아 있습니다. 뭔가 좀 답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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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으로, 월남 패망후 월남에서 진보, 민주를 주장하며 민족, 민주화, 반정부 운동을 벌렸던 베트남 적화의 1등 공신인 수많은 교수, 종교인, 학생, 민주화 투사, 언론인들은 싸그리 다 체포되어 [인간개조 학습소]에 수감되어, 하루 죽 100g (3숟가락 정도)을 공급받으며 강제노동에 시달리다 죽어갔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반체제 운동을 하며 기득권을 저주할 수준의 인간들은,사회주의 사회에서는 100% 반체제 작당을 할 인간들이다. 너희들은 어짜피 널리고 널린 소모품이다. 우리들에게 적극 협조한 인간들일수록 철저히 죽여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있다-
-ㅅ- b 베트남의 좌빨들이 강제 수용소에 수감될때 처음듣는 훈시였습니다. 짠후탄, 뚝드리쾅, 탓낫한 등등 월남에서 민주화와 평화의 꽃으로 숭배받던 좌빨 세력들은 그렇게, 멍청했던 자기 자신을 저주하며 수용소에서 굶어 죽어갔습니다.
월남 패망당시의 월남 인구가 1900만명, 그리고 그 인구의 1/20 을 넘는 110 만명의 월남인들이 보트피플로 공산화된 베트남을 탈출했습니다. 하지만, 넘치는 보트피플을 감당하지 못한 말레이시아는 그들을 도로 바다 한가운데로 밀어버렸고, 월남인들은 남지나해의 풍랑에 익사하거나, 굶어 죽거나, 해적들에게 살육당했습니다.
결국 월남인들이 그렇게 증오하고 싫어하던 미국과 한국같은 소수의 국가들만이 그들의 일부를 받아들였고, 가난하던 동남아 국가들은 이들을 거부했으며, 대부분의 보트피플들은 그렇게 죽어갔습니다.
그것이 민족끼리, 반전평화, 위대한 혁명, 진보를 외치던 월남의 최후이자 무서운 역사적 교훈이었습니다.
오늘도 대한민국 체재전복을 위해, 민주화, 환경, 인권, 권리, 진보 등으로 포장된 좌빨들과 그 선동에 놀아나는 소모품들이 그래서 무섭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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