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이슈박스, 최근방문 갤러리
연관 갤러리
운전면허 갤러리 타 갤러리(0)
이 갤러리가 연관 갤러리로 추가한 갤러리
추가한 갤러리가 없습니다.
0/0
타 갤러리 운전면허 갤러리(0)
이 갤러리를 연관 갤러리로 추가한 갤러리
추가한 갤러리가 없습니다.
0/0
개념글 리스트
1/3
- 우리도 저렇게 대만 되찾자... 中서 퍼지는 섬뜩한 분위기 난징대파티
- 신용카드 리볼빙의 무서운 함정 ㅇㅇ
- 싱글벙글 조만간 만날수있는것 ㅇㅇ
- 전담재판부 법 공포…윤석열·위헌 논란 격화 NiKe
- sk브로드밴드 근황 윤어게인y
- 국장 곱버스 근황 ㅇㅇ
- 일본 지진 ㄷㄷㄷ Mane
- 미에현과 나 -3- (feat.나고야) ㅇ세개
- "제2의 푸바오 만드려고?" 李정부, 中에 판다 추가 대여 제안 8갤러
- 프론트걸 14화 사가스
- 군침군침 햄버거 100년의 역사.jpg 수인갤러리
- 싱글벙글 어이없이 죽은 유명인들..jpg ㅇㅇ
- 화교 의혹 해명하는 변호사 메갤러
- 이준석 "'키보드 워리어' 전락 한동훈, 유효타 없어" ㅇㅇ
- 싱글벙글 유명한 해적판 만화가 사라진 이유 니도모에
SK하이닉스 호재에 코스피 사상 첫 4,500 돌파
- 관련게시물 : 코스피, 장중 상승 전환해 사상 첫 4,500선 돌파
https://n.news.naver.com/article/001/0015831878?ntype=RANKING하오.....- [속보] SK하이닉스 72만 돌파끝이없다 끝이없어 ㄷㄷㄷ- 전원주 개충격이네하이닉스 2만원대 때부터 싹쓸이했대지금 72만원인데 천억은 벌었겠다 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 코스피 4525.48(+1.5%) 마감...사상 최고치 또또 경신- 코스피 폭등 3일 연속…'오천피' 성큼
https://n.news.naver.com/article/001/0015832184?ntype=RANKING하오.....
작성자 : NiKe고정닉
해외주식 투자 과열에…"마케팅 자제하라" 결국...jpg
화요일 친절한 경제 한지연 기자 나와 있습니다. 한 기자, 이제 증권사들의 무료 수수료 행사가 끝나가는 모양이죠.먼저 가장 상징적인 사례죠.메리츠증권에서 어제(5일) 0시 이후에 신규 개설되는 해외 주식 투자 계좌에 대해서 미국 주식 무료 수수료 이벤트를 종료하기로 했습니다.원래는 올해 연말까지 신규 가입자를 대상으로 진행하려던 이벤트인데, 이번에 조기 중단한 겁니다.다만, 종료 이전에 계좌를 개설한 고객은 2026년 말까지 기존 혜택이 유지됩니다.왜 이 계좌를 얘기하냐면요, 해외 주식 수수료 무료 경쟁에서 이슈가 됐기 때문인데요.미국 주식 매매 수수료뿐 아니라, 달러 환전 수수료, 유관기관 비용까지 사실상 한 번에 묶어서 무료로 내세웠던 계좌였고요.기간도 길었습니다.보통 몇 달짜리 이벤트가 많은데, 2년 가까운 장기 무료 정책이었습니다.지난달에는 '혜택 막차'에 타야 한다는 글들이 온라인에서 수십만 조회 수를 기록할 정도였는데, 그 신규 혜택이 어제로 공식 종료된 겁니다.하지만 이걸 메리츠증권 한 곳의 결정으로만 보기는 어렵습니다.이미 지난해 말부터 여러 증권사들이 미국 주식 무료 수수료나 현금, 커피 제공 같은 해외 주식 관련 이벤트를 조용히 줄이거나 끝내왔습니다.그 배경에는 금융당국의 기조 변화가 깔려 있습니다.고환율 상황이 이어지는 가운데, 해외 주식 투자 열기가 과도하다는 판단이 나오면서 해외 주식 마케팅을 자제하라는 메시지가 증권사들에 전달됐고요.그 결과, 해외 주식 수수료 무료는 이제 전반적으로 정리 국면에 들어갔다고 보시면 되겠습니다.하긴 정도가 문제지 증권사들도 수수료를 받기는 해야 하잖아요.그렇습니다. "증권사가 다시 수수료 장사를 한다는 거냐"는 불평도 지금 나오고 있고요.이런 조치가 실제 도움이 되냐를 놓고도 의견은 엇갈리고 있습니다.먼저, 미국 주식 수수료 무료는 제도가 바뀐 게 아니라, 증권사들이 고객을 끌어오기 위해서 한시적으로 내놨던 마케팅 성격의 혜택이었습니다.그래서 당국 기조가 바뀌고 비용 부담이 커지자 가장 먼저 정리되는 흐름으로 이어진 겁니다.다만, 이렇게 혜택이 줄어드는 걸 두고 투자자들 반발도 적지 않습니다.온라인에서는 "환율은 거시 변수인데 왜 개인 투자자에게 책임을 돌리느냐", "21세기 금 모으기 운동을 하자는 거냐" 이런 표현까지 나왔고요.수수료 무료 혜택이 사라지면 증권사 수수료 수입은 오히려 늘 수 있다는 점에서 결국 부담은 투자자에게 돌아가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옵니다.그렇다면 이런 조치가 실제로 해외 투자 흐름을 되돌리는 데 도움이 되느냐, 이 부분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많습니다.이미 서학개미들의 해외 투자 규모는 상당히 커진 상태입니다.지난해 기준으로 해외 증권 순매수 규모가 500억 달러를 넘겼고요.게다가 해외 주식을 직접 사지 않더라도, 국내 상장 ETF를 통해 미국 시장에 투자하는 흐름도 이미 자리 잡았습니다.즉, 혜택을 줄인다고 해서 투자 방향이 곧바로 국내 주식으로 옮겨가지는 않는다는 겁니다.그래서 지금 흐름을 보면, 해외 투자를 막는다기보다는 해외 투자로 쏠리던 유인을 조금 줄여서 속도를 조절하려는 쪽에 가깝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마지막으로 이건 저번에 한 번 설명했던 얘기인데, LG전자에 이어서 삼성전자도 그렇다는 얘기군요.지난달에 LG전자가 가전 수리비를 인상한다고 말씀을 드렸었는데, 그러면서 "제가 삼성전자도 곧이다" 이렇게 말씀을 드렸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한 달 뒤인 8일부터 출장비를 인상하기로 했습니다.평절기인 1월부터 5월과 9월부터 12월은 기본 출장비가 기존 2만 5천 원에서 2만 8천 원으로 약 12% 오르고, 평절기 할증 출장비는 3만 원에서 3만 3천 원으로 인상됩니다.성수기인 6월부터 8월에는 3만 원에서 3만 3천 원으로, 할증 출장비는 3만 5천 원에서 3만 8천 원으로 오릅니다.외근 출장비는 앞서 지난해 인상된 후에 1년도 안 돼 또 오르는 겁니다.그동안 양대 가전업체는 비슷한 수준의 출장비를 유지해 왔는데요.한 곳이 가격을 조정하면 다른 쪽도 따라가는 흐름이 이번에도 나타난 셈입니다.수리 여부와 상관없이 일단 방문하면 발생하는 비용이기 때문에 소비자 입장에서는 체감 부담이 더 크게 느껴질 수밖에 없습니다.
작성자 : 빌애크먼고정닉
조선판 겨울전쟁을 선사한 7급 공무원
임진왜란 발발 8개월 후 가토 기요마사는 제2군 22,000명을 이끌고 함경도로 진군한다. 이는 고니시 유키나가보다 빠르게 명에 당도하여 공을 세우고자 하는 그의 사심이 반영된 진군이였다. 당시 함경도 관군은 여진기병을 상대로 숙련된 기병들을 보유하고있어, 함경도 병마절도사 한극함은 1차 해정창전투에서 승전하며 적에게 유의미한 피해를 입혀 가토군의 진군을 저지하나 싶었지만 2차 전투에서 패배하며 300명의 기병을 잃고 방어군 또한 와해되고만다. 관군의 패배소식을 들은 함경도는 내부서부터 무너졌다. 국세필, 국경인, 정말수 등 순왜를 자처한 인물들이 방어를 시도해보지도 않고 가토군을 받아들였으며 함경도 관직에 임하던 관원들과 임해군과 순화군을 인질로 넘긴다. 조선조정은 순식간에 함경도를 잃었고 가토는 순왜무리에게 벼슬을 내려 지역을 통제했다. 함경도는 순왜무리의 폭정과 왜군의 폭정에 시달려 지옥도로 변한다. 한편, 함경도 북평사(정6품) 정문부는 경성의 해변가에 은거하며 지내고있었는데 이는 관원임을 들킨다면 왜군에 끌려가 죽기 때문이였다. 지달원과 몇몇 경성의 유생들은 폭정에 못이겨 자신과 뜻을 같이하는 유생과 무사들을 모아 300명을 이뤘고 정문부에게 의병장을 제안한다. 정문부는 처음엔 난감해하며 거부했으나 곧 그들의 진심을 확인하며 27세의 나이로 의병장이 된다. 1.정문부의 거병 정문부는 강문우를 척후장으로 삼아 우선 경성의 국세필부터 처리하기로한다. 정문부는 북쪽의 여진을 함께 처리하자는 말로 국세필을 속여 성문을 열게한다. 경성에 입성한 뒤 국세필을 처리한 정문부는 적극적으로 순왜에 가담한 인물들만 처형한뒤 나머지 소극적 가담 순왜들은 죄를 면제해주며 경성의 민심을 얻는다. 또한 기병을 이용해 지속적으로 길주에 위치한 가토 우마노조와의 연락망을 차단하며 100명 규모의 왜군들을 토벌한다.경성을 확보한 정문부는 다음과 같은 격문을 6진에 뿌리며 순왜 처리를 호소한다. 정문부의 격문에 동요한 6진의 지역 유지들은 자객들을 준비해 밤에 회령순왜 국경인의 집에 불을 질러 포획한후 수급을 넘기며 의병에 합류한다. 국경인의 죽음과 정문부의 거병 소식은 순왜 정말수가 위치한 명천에도 빠르게 퍼진다 심지어 정문부에 투항하라는 농민들이 봉기를 일으키자 정말수는 진압에 화포까지 동원하는데 이는 곧 명천의 분노를 사게된다. 정문부는 간단히 60명의 기병으로 명천을 공격했는데 분노한 명천의 백성들이 합류하여 정말수를 몰아내게된다. 도망치던 정말수는 정문부에게 합류하러가던 길주토병에게 붙잡혀 처형된다. 배신자들의 죽음과 정문부의 거병소식은 함경도 전체로 퍼져나갔다 숨어지내던 무관들과 뜻이 있는자들은 곧바로 경성으로 모이게된다. 흩어졌던 함경도 정예기마대도 정문부에게 합류하며 다시 군세를 이뤘다. 정문부를 따르는 이들을 세어보니 그 수가 5000명이었다. 이중 3500명을 선발해 군을 3개 로 나누어 길주로 각각 남하하며 본격적인 북관전투의 막이 오른다. 2. 석성령-장덕산 전투 1592년 12월 3일 길주의 왜군 1,000명은 갯마을 가파리를 약탈하고 귀환하는 도중 석성령 고개서 원충서의 200명 규모 의병의 기습을 받으며 전투가 시작된다. 전투초반 왜군은 기습엔 당황하며 후퇴했지만 이내 자신들이 수적으로 우세하다는걸 깨닫고 진영을 갖춰 맞서기 시작한다. 직후 한인제의 기병 400명과 정문부 휘하 의병들이 합세해 포위하기 시작하자 전세는 조선군으로 기운다 왜군은 수적우세를 이용하여 정예병들로 이루어진 돌격대를 통해 해쳐나가보려했지만 조선군의 기병에게 궤멸당하고 진영이 붕괴되어 장덕산으로 도주한다. 왜군은 장덕산을 통해 길주성으로 퇴각하려하였으나 장덕산 정상은 이미 정문부가 선점해 기다리고있었다. 조총을 쏘며 정상을 오르려는 왜군들은 정문부의 기마대에 또다시 쓸려나갔으며 계곡으로 숨어들어간 왜군들은 함경도의 추위에 동사한다. 다음날 아침 산에 불을질러가며 왜군잔당을 전부 토벌하여 장덕산전투는 마무리된다. 정문부는 이 전투로 수급 600개와 많은양의 전투물자를 노획했다. 3.길주공방전과 백탑교전투 장덕산에서의 패배 이후 겁을 집어먹은 가토 우마노조와 왜군은 성문을 잠그고 나오지않았다 정문부는 공성전을 행하기보단 포위를 택했다. 길주성을 포위하여 뗄감과 보급을 통제해 많은 수의 왜군이 동사하거나 아사했다. 당시 길주성에는 3000~4000명 규모의 왜군이 주둔하고있었지만 단 한번도 포위를 뚫어보려는 시도를 감히 하지못했다. 하루는 인내심이 바닥난 왜군 1개 부대(100명)가 보급을 위해 성문을 나섰는데 얼마지나지 않아 몰려온 정문부의 기병대가 그들을 처치하고 주검을 길주성 10리밖에 걸어두었다. 이를 본 왜군은 더욱 두려워해 나서지 못했다. 길주가 위험하다는 소식에 안변에 주둔하던 가토는 "재차 관북을 평정하겠다"라는 장담을 하며 본군과 함께 북상하기 시작한다. 이후 가토군의 선봉대는 단천에 이르렀는데 정문부는 왜군의 선봉대가 도착했다는 소식에 기병을 출격시킨다. 단천군수 강찬은 왜군과 교전중 일부러 패하는척 상대를 유인했고 왜군들이 백탑교에 이르자 장덕산전투와 같이 사방에서 둘러싸는 방식으로 가토의 선봉대를 궤멸시킨다. 이때 가토의 선봉대는 단 30명만이 살아남아 길주성으로 들어간다. 선봉대의 패전 소식을 들은 가토 기요마사는 더더욱 분노하며 본대를 모아 길주성으로 진군한다. 수적열세임을 확인한 정문부는 포위를 풀고 경성 방어를 준비하는 한편 기병을통한 유격전으로 소규모 교전을 이끌어내며 함경도의 혹독한 추위를 이용해 손실을 유도해냈다. 방한대책과 추위에 익숙한 함경도 의병들과 달리 구마모토 출신의 가토의 왜군은 이 전쟁을 단기전으로 준비해 방한대책을 강구하지 않았으므로 이 길주성에 머무르는것 조차 병력손실을 야기했다. 더군다나 조선 수군에 박살나 재해권을 잃은 왜군은 보급이 말라가고 있었고 고니시 유키나가 또한 평양에서 후퇴해 전선을 물리고있었다. 만약 여기서 오기를 부려 정문부와 함경도에 묶여있는다면 조명연합군에게 포위당할 위험이 높아진다. 결국 가토는 우마노조를 구한것으로 만족하고 급히 야밤에 성을 비우고 퇴각한다. 이 과정에서 인질로 잡혔던 조선의 두 왕자도 구출해낸다. 가토군의 퇴각소식을 들은 정문부는 즉시 추격대를 편성해 함흥까지 쫒아가 마지막까지 가토군을 괴롭힌다. 가토 기요마사는 22,000명의 군사를 이끌고 함경도로 북상했는데 한양 퇴각이후 병사를 세어보니 8,500명이 사라졌다. 이후 왜군들은 연이은 패전으로 한반도 남부지역까지 후퇴하고 정문부는 함경도 전체를 수복하며 5개월간의 북관전투는 정문부의 승리로 끝이난다. 함경도는 다시 조선 조정에 합류했으며 임진왜란 이후 정문부는 북평사(정6품)에서 영흥부사(정3품)직을 받고 광해군때는 더 큰공을 인정받아 길주 목사직을 받았으며 인조반정 이후 전주부윤의 자리까지 임명된다. 사후 숙종때는 이 전투를 기념하는 북관대첩비가 세워졌으며 조선 좌찬성에 추종되며 충의공(忠毅公)이란 시호를 받는다.
작성자 : ddd고정닉
차단하기
설정을 통해 게시물을 걸러서 볼 수 있습니다.
댓글 영역
획득법
① NFT 발행
작성한 게시물을 NFT로 발행하면 일주일 동안 사용할 수 있습니다. (최초 1회)
② NFT 구매
다른 이용자의 NFT를 구매하면 한 달 동안 사용할 수 있습니다. (구매 시마다 갱신)
사용법
디시콘에서지갑연결시 바로 사용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