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새끼가 이름이 유정이 뭐냐 유정이"
"유정아~ 부끄러워하지마~"

내 유년 시절은 무시와 괴롭힘의 연속이었다.
여리여리한 체격과 뽀얀 피부, 그리고 작은 목소리와 소심한 성격 때문인지, 남중 남고에서 나는 항상 급우들의 좋은 놀림감이었다. 특히 특유의 여성스러운 내 이름은 괴롭힘의 이유의 화룡정점이 되어주었다.

김유정

내가 어렸을 때 돌아가셨던 할아버지께서 지어주신 이름이다.
아버지께서는 할아버지의 유언이라고, 내가 이런 나약해보이는 이름을 바꾸자고 말씀드릴 때마다 호통을 치면서 극구 반대하셨다.

"형 이름이 뭐가 중요해. 형 이름 이쁘고 좋잖아!"

동생놈은 내 속도 모르고 애써 위로해주었다.
동생 이름은 김재정. 같은 정자 돌림인데 한글자 차이로 이렇게 달라보이는지.

여리여리했던 내가 변하기로 마음 먹은 것은 어느 겨울 날이었다.
알바가 끝나고 집에 가던 중, 골목길에서 내 동생 재정이가 남자 3명에게 맞고 있는 것이었다.
"왜 이러세요... 제발 이러지 말아주세요..."
그들은 내 애원을 비웃고는 재정이를 더욱 무자비하게 때릴 뿐이었다. 내가 매달리자 내 인중에 주먹을 꽂고는...그게 그 날의 마지막 기억이었다.

다음 날 병원에서 눈을 뜬 나는 달라지기로 결심했다.
집 앞 헬스장을 다니며 몸을 키웠고, 우유 같은 피부는 햇빛에 태웠다.
새벽 알바를 하며 번 돈으로 피티와 닭가슴살을 사는데 쓴지 어연 2년.
내 몸은 누구보다 강해져 있었고, 구릿빛 피부는 누구보다 남자다워 보였다.

그러나 트라우마 때문이었을까. 아직 그 겨울날의 골목길은 지나가지 못했다. 재정이가 형 정도면 이제 당당히 다녀도 된다고 위로했지만, 어린 시절부터 쌓여온 내면의 유약한 김유정이 나를 약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한번더 물러서면 계속 물러설 것임을 알기에.
나는 결심했다.
해병대에 자진입대하여 내면도 강인한 남자로 다시 태어나기로.

그렇게 해병대 훈련단에 입소하는 날.
가족들과 헤어지고 강당으로 들어가는 길.
나는 다시 태어난다. 강해진 남자로 다시 태어난다.
그렇게 다짐하며 입영 기록을 밟는 순간, 조교가 나에게 물어보았다.

"자네는 이름이 뭔가"

"네 제 이름은..."

순간 흠칫했다.
모든 것이 바껴야 한다.
김유정. 나약해보이는 이름마저 누구보다 강인한 이름으로 바꿔야 한다.
설령 성까지도.
왜냐하면 나는 다시 태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잠시 고민하던 나는 미소를 띄며 큰소리로 대답했다.

"악! 제 이름은 톤톤정입니다!"




1845년 톤톤정 해병의 [수양록]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