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시인사이드 갤러리

갤러리 이슈박스, 최근방문 갤러리

갤러리 본문 영역

[해병문학] 어느 아버지의 소회 - (中)

ㅇㅇ(49.174) 2022.07.12 00:13:44
조회 1134 추천 77 댓글 21


[해병문학] 어느 아버지의 소회 - (上) : https://gall.dcinside.com/board/view/?id=marinecorps&no=268765&page=3



시끄럽게 울리는 핸드폰 알람소리에 A씨는 나지막하게 신음을 흘리며 손을 뻗어 핸드폰을 더듬거렸다.


늦저녁에 술 한잔하고 옛 생각에 잠겨 거실 소파에 누워 부지불식간에 잠든게 이번까지 몇 번째인지 이제는 A씨도 익숙한지 자연스레 마른 입맛만 쩍쩍 다시며 일어났다. 이리저리 금간 핸드폰 액정 너머로 보이는 시간은 위태로이 아침 6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아직은 1월의 한겨울이었기에 겨울의 새벽 6시는 아직 어두컴컴했다.

6시. 비록 몸담고 있던 해병대를 전역한지 10년 이상이 지났음에도 A씨의 생체리듬은 여전히 10년 전의 그 시절에 맞추어져 있었다. 아직 군인시절을 잊지 못했던 탓일까, 다른 전역자들은 한때 자랑스레 여기던 군복이며 정복이며 전부 장롱 한구석에 쳐박아 버렸건만 A씨는 자랑스레 거실 벽면 한켠에 해병대 부사관 시절 입던 정복을 걸어둔 것이었다. 비록 정복에 달린 중사 금속제 휘장도 세월이 지나며 군데군데 도금이 벗겨지고 빛바래지긴 했지만 A씨는 그 시절을 회상하면 늘 자부심에 도취하곤 했다.


A씨는 오늘 다시금 아들놈이 있을 포항의 6974부대에 가볼 생각이었다. A씨가 사는 경주에서 그리 멀지 않은 데다 부대의 위치도 포항의 외곽에 위치하여 차로 내달리면 금방 닿는 거리였다. 그러나 그 가까운 거리가 무색하게도 A씨는 매번 6974 부대에서 아들놈 면회 해본 적이 없었다. 아니, 정확히는 할 수가 없었다. 아들놈과의 사이가 틀어진 "그 날" 이후로 소원해진 부자관계는 뉴스에서 늘상 떠드는 남북관계에 버금갈만큼 경색되었고 입대한 이래로 집에 전화 한통 안하던 아들놈이었기에 그래도 아비된 도리로서 면회를 가려 하였으나 무슨 이유에서인지 면회신청을 넣어도 6974부대에서는 묵묵부답이었던 것이다.


처음에는 뭐가 잘못되었나 하여 직접 찾아가 보려고도 하였으나 이상하게도 6974부대로 향하는 국도 곳곳은 폐쇄되어 있었고 더러는 보안 상의 이유로 군경에서 출임을 제한하고 있는 것이었다. 처음 한두 번은 그러려니 하여 하릴없이 발걸음을 돌려야 했으나 이번 세번째에는 아들놈을 꼭 한번 보리라 마음먹은 A씨였다.


겨울 아침바람은 아직 살을 에는 듯 매서웠다. 가는 도중 행여나 아들놈을 보게 되면 통닭 한마리라도 먹일 요량으로 포항 인근의 한적한 읍내 길가에 위치한 한 통닭집으로 들어섰다. 평일 오전이었기에 가게는 한산했고 주인은 기지개를 피며 A씨를 맞이했다.


"후라이드로 1마리 주시오."


주방에서 흘러나오는 고소한 냄새를 음미하며 A씨는 창가에 서서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이 읍내는 포항 해병대와도 거리가 그리 멀지 않아 외출 나온 해병들이 눈에 띌만도 했건만 무슨 연유에서인지 군인은 코빼기도 보이질 않았다.


"후라이드 1마리 나왔습니데이"


"네, 여기 돈 있습니다. 근데... 여기 읍내에서 주로 통닭 사다 먹을 사람들이 아무래도 외출 나온 군인들일텐데 다들 다른 곳으로 놀러가는가보죠?


A씨의 질문에 주인은 흠칫 놀라는 눈치였다. 멀뚱히 A씨를 바라보다가 조심스레 입을 여는 것이었다.


"저기... 타지에서 오셨는교?


"아, 예. 아들놈이 여기 인근의 6974부대에 있는데 면회 좀 가보려고 가는 길입니다."


"면회예?"


주인은 눈이 휘둥그레져 되물었다. 그러고는 말없이 머리를 긁적이더니 한숨을 내뱉는 것이 아닌가.


"하... 아드님이 6974부대에 있다고예... 아이고 마... 이를 우짜노..."


"아니, 왜 그러십니까? 6974부대가 왜요?"


주인은 혀를 끌끌 차며 아무것도 모르는 A씨를 안타까운 눈길로 바라보며 그간 있었던 사정을 얘기해주었다. 주인의 말에 따르면 현재 A씨가 가려는 6974부대는 근래 들어 갖은 민폐와 온갖 만행을 저지르는 범죄집단으로 전락하였으며 그 곳으로 자대배치 받은 이후로 몸 성히 전역하여 나온 놈들이 없다라는 것이었다. A씨로서는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때 A씨가 몸담았던 자랑스러운 집단이 그렇게 전락해버렸다라는 것도 그렇거니와 국가의 공권력마저도 무시하는 행위를 저지르고도 부대가 멀쩡히 운영되고 있다라는 사실이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심각한 주인의 표정을 보노라니 헛소리 말라고 쏘아붙이려던 A씨도 입을 다물 수 밖에 없었다.


"선상님도 엥간하믄 가지 마이소, 거기 가면 큰일 납니데이!"


A씨는 이 황당한 상황에 뭐라 말을 잇지 못하고 그대로 몸을 돌려 가게를 뛰쳐나왔다. 그리고는 다시금 차에 올라타서 6974부대로 향했다. 아무리 곱씹어봐도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냥 직접 가서 보는 것이 나으리라. 20분 후, A씨는 6974부대 인근에 도착하였고 갓길에 차를 세웠다. 그러자 내리자마자 웬 고약한 냄새가 코를 찌르는 것이 아닌가. 인근 축산농가의 냄새나 퇴비냄새이겠거니 하고 발걸음을 재촉하였고 5분 쯤 걸었을까. 6974부대의 흰 철문이 그의 눈 앞에 우뚝 서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간만에 보는 군부대여서 그런지 슬몃 반가운 마음도 드는 A씨였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아무리 대낮이라도 웬 민간인이 다가오면 수하라도 하거나 멈추라고 할 법도 하건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위병소에 서있는 초병 두 놈이 우두커니 서서 A씨를 바라보기만 할 뿐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A씨는 내심 혀를 끌끌 찼다. '흘러빠진 새끼들... 내 현역시절이었으면 너넨 반쯤 죽었어' 이라고 뇌까리며 A씨도 초병들에게로 다가갔다.


"아, 저기 여기서 복무하는 아들놈의 아비되는 사람인데, 면회 좀 가능하겠습니까?


A씨의 질문에도 두명의 초병은 서로를 멀뚱히 바라볼 뿐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는 것이었다. 마치 이런 일을 처음 겪기라도 하는 듯 이 생소한 광경에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A씨를 바라만 보고 있었다. 이런 흘러빠진 것들을 보고 있노라니 날고기던 A씨의 해병대 부사관 현역시절의 추억을 자극하기라도 하듯 A씨는 슬몃 짜증이 치솟았다.


"아니... 사람이 말을 하면 좀 대답을 해주셔야죠."


그러자 왼쪽에 서있던 초병 한 놈이 기괴한 웃음을 지었다. 아니, 정확히는 우는지 웃는지 분간도 안되는 표정이었다. 보는 A씨도 순간 흠칫했다. 그리고 그 초병은 탄띠에 걸려 있던 무전기를 꺼내 들었고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여기 누가 와있지 말입니다."


의아하게도 무전기에서는 답신이 흘러나오지 않았다. 상식대로라면 누가 왔냐라고 물어볼 법도 하건만 아무런 답신도 없었다. 그리고 몇분 후, 누군가가 철문을 열고 나오는 것이었다. 문을 열고 나온 거구의 사내는 특이하게도 이 매서운 겨울날씨 따위는 아랑곳 하지 않는다는 듯 상의는 탈의한 상태였으며 하의는 해병대에서만 입는 붉은 각개바지만 걸친 상태였다. 깊게 눌러 쓴 팔각모 챙 아래에서는 날카로운 눈빛이 번뜩이고 있었다. 그가 어릴 적 동경하던 해병들의 모습과 빼다박은 모습에 익숙함을 느꼈으나 A씨는 사내를 보며 이유 모를 위압감을 느끼고 있었다. 사내는 팔짱을 낀 채 말없이 A씨를 바라보고 있었고 사내의 시선이 빠르게 A씨의 위아래를 훑고 있다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윽고 사내는 입을 열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사내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힘이 실려 있었다.


"아.. 다른게 아니고 우리 아들놈이 여기에 복무 중인데 면회 좀 하려고 왔습니다.."


자기도 모르게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A씨가 대꾸하자 사내의 입가가 꿈틀거렸다.


"면회...?"


"예.. 물론 사전에 예약 했던건 아니지만 그래도 아들놈이 연락이 잘 안되서... 한번 보려고 하는데 될런지요..?"


사내는 말없이 A씨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팔각모 챙 아래에서 번뜩이는 그 시선이 어찌나 매섭던지 A씨는 발가 벗겨진채로 자신의 머릿속을 이 사내에게 모조리 까발려지는 듯한 기분이었다. 사내는 미동도 없이 몇 분 동안 A씨를 바라보더니 이윽고 다시금 입을 열었다.


"아드님은 잘 있습니다, 그러니 걱정 말고 돌아가십시오."


"예..? 아니, 저는 아직 제 아들놈의 이름도 밝히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알고 잘 있다고 하시는겁니까...?"


"아드님은 당신의 바람대로 훌륭한 해병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돌아가십시오."


A씨는 무어라 말을 덧붙이려고 하였으나 사내는 자신이 할 말은 이미 다했다라는 듯 몸을 돌렸고 뒤에 서있던 두 명의 초병에게 말했다.


"이 사람은 예외로 한다, 행여나 우리의 감시망에 포착되어도 그냥 보내라고 일러라."


"악! 알겠습니다 박철곤 해병님!"


이윽고 사내는 철문을 열고 영내로 들어섰고 A씨는 어안이 벙벙한채로 멀어져가는 사내의 뒷모습만 바라볼 뿐이었다.



- 계 속 -

추천 비추천

77

고정닉 10

0

댓글 영역

전체 댓글 0
등록순정렬 기준선택
본문 보기

하단 갤러리 리스트 영역

왼쪽 컨텐츠 영역

갤러리 리스트 영역

갤러리 리스트
번호 제목 글쓴이 작성일 조회 추천
설문 힘들게 성공한 만큼 절대 논란 안 만들 것 같은 스타는? 운영자 24/06/10 - -
이슈 [디시人터뷰] 웃는 모습이 예쁜 누나, 아나운서 김나정 운영자 24/06/11 - -

게시물은 1만 개 단위로 검색됩니다.

갤러리 내부 검색
제목+내용게시물 정렬 옵션

오른쪽 컨텐츠 영역

실시간 베스트

1/8

뉴스

디시미디어

디시이슈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