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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중세이슬람의 인도 침략과 대학살, 불교 말살 만행

ㅇㅇㅇ(210.107) 2014.10.17 11:45:37
조회 4683 추천 3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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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람의 인도 침입과 델리의 노예왕들

 

이슬람교가 손에 칼을 들고 인도에 쳐들어오자 인도인이 격렬하게 반발하여 예전의 관용이 증오와 항쟁으로 변한 것은 11세기의 일이었다.

인도에 들어와 방화와 학살을 자행한 자는 가즈니의 마흐무드였다. 그는 무용이 출중한 장군이며 용감한 지휘관이었고, 그의 아버지 세뷔크 테긴의 왕위를 계승했다.

 

그는 매년 인도에 침입하여 약탈과 학살을 자행하고 엄청난 재보와 숱한 포로를 잡아서 데려 갔다. 그는 모두 17번이나 인도에 침입하여 그 가운데 오직한 한 번카슈미르에 침입했을 때 패했을 뿐 싸울 때마다 승리를 거두었다.

 

이리하여 마흐무드는 북부 일대에서 공포의 대상이 되었다. 그는 멀리 남쪽의 파탈리푸트라, 마투라, 솜나트까지 공략했다. 타네사와라에서는 20 만 명의 포로와 거액의 부를 약탈해 갔다고 한다. 그러나 마흐무드가 더 많은 재보를 약탈해간 것은 솜나트에서였다.

이 곳에는 카다란 사원이 있고, 몇 세기 동안 받은 봉납품이 쌓여 있었기 때문이다. 마흐무드가 솜나트에 다가오자 수만 명이 사원으로 숨어 들어갔다고 한다. 저희들이 섬기는 신이 기적을 일으켜 보호해 주리라 믿었던 것이다.

 

그러나 기적이란 신자의 공상 속에서라면 몰라도 실제로 일어나지는 않는다. 사원은 허무하게 파괴되고 약탈당했으며, 5 만 명이 근거 없는 기적의 출현을 기다리다가 몰살당하고 말았다.



 


마흐무드는 1030 년에 죽었다. 이 무렵 펀자브와 신드는 전부 그의 지배 아래 있었다. 그는 인도에 들어와 이슬람교를 전파한 이슬람교의 지도자로 숭앙 받고 있다. 이슬람 교도들은 대개 그를 숭배하지만 대부분의 힌두 교도들은 그를 증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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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흐무드는 인도의 수많은 건축사와 목수를 가즈니로 데려가 아름다운 모스크를 짓고 '천후원'이라 칭했다. 그는 정원을 매우 좋아했다.

마흐무드 이후 새로운 정복의 파도가 서북쪽에서 밀려온 것은 12세기 말엽(1186 년 전후)의 일이었다. 아프간인의 한 족장이 아프가니스탄에서 부흥하여 가즈니를 점령하고 가즈니 제국을 멸망시켰다. 그의 이름은 샤하부딘 구르(구르란 아프가니스탄의 한 작은 마을 이름이다)라 했다.

 

그는 라호르로 치고 내려와 그 곳을 병합하고, 다시 델리로 진격했다. 당시 델리의 왕은 프리트위 라즈 차우한이었는데, 북인도의 많은 족장들은 그의 지도 아래 침략군에 대항하여 마침내 이를 격퇴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깐뿐이었다. 다음해에 샤하부딘은 대군을 이끌고 다시 쳐들어와 승리를 거두고 프리트위 라즈를 처형했다.

 

이렇게 1192 년 샤하부딘이 최초의 대승을 거둔 결과 인도에 이슬람교도들의 세력 기반이 확립되었다. 침략자는 서서히 동쪽과 남쪽으로 세력을 확장해 나갔다. 그로부터 1백 50 년 동안(1340 년까지) 이슬람 세력은 남부 지역까지 광범위하게 미쳤다.

한편 아프간인 샤하부딘이 프리트위 라지를 쓰러뜨린 후 델리에서는 노예 왕조라 일컬어지는 술탄의 한 계열이 뒤를 이었다. 초대 술탄은 쿠트부딘 아이바크였다. 그는 원래 샤하부딘의 노예였지만, 노예라도 높은 지위에 오를 수 있는 길이 열려 있었기 때문에 델리의 초대 술탄으로 추대될 수 있었다.

 

그의 후계자 가운데 몇 명도 노예 출신이었으며, 이로써 노예 왕조라는 이름이 생겨났다.

노예 왕조의 술탄들은 모두 난폭하여 건축물이나 도서관의 파괴, 살상을 자행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건축을 좋아했고 특히 웅장한 건축물을 좋아했다.

 

쿠트부딘은 너도 알고 있는 델리 부근의 큰 탑, 쿠트브 미나르의 건립에 착수했다. 그의 후계자 일투트미슈가 이를 완성하고, 그 근처에 지금도 남아 있는 몇 개의 아름다운 아치를 세웠다. 이들 건축물에 쓰인 재료는 거의 모두가 낡은 인도의 건물, 주로 사원에서 뜯어낸 것이었다. 건축가는 물론 인도인이었지만, 이슬람 교도가 전파한 건축 양식에 크게 영향을 받았다.

이슬람 교도의 인도 침공은 많은 저항을 불러일으켰다. 이 침략자가 아랍인, 페르시아인 또는 서아시아의 높은 교양과 문화를 지닌 이슬람 교도가 아니라 아프간인이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문명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이들 아프간인은 인도인보다 뒤떨어져 있었지만, 그들은 정력에 넘쳐 있었으며 그 무렵의 인도에 비해 훨씬 발랄하였다. 인도는 지나치게 틀에 박혀 있었다. 그리하여 변화와 진보를 잊어 가고 있었다. 낡은 옛 관습에 사로잡혀 발전을 향한 의욕이 없었던 것이다.

 

전쟁 역량에서도 인도는 낙후되어 있었으며, 아프간인 쪽이 훨씬 잘 조직되어 있었다. 그리하여 용맹과 커다란 희생에도 불구하고 노쇠한 인도는 결국 이슬람 침략자 앞에 굴복하고 말았다.

 

이 이슬람 교도들은 초기에 매우 흉악하고 잔인했다. 그들은 유화의 덕이란 찾아볼 수조차 없는 거친 나라에서 온 자들이었다. 게다가 이제 막 정복한 곳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언제 반란을 일으킬지 알 수 없는 적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상황이었다.

항상 반란의 조짐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한 불안은 흔히 잔학과 공포심을 낳는다. 그래서 인도 민중을 위협하기 위해 끊임없이 학살을 자행했던 것이다.

 http://www.budreview.com/news/articleView.html?idxno=703



이슬람 교도가 힌두 교도를 학살한 것은 종교적인 이유 때문이 아니라, 외래의 정복자가 피정복민의 의기를 꺾기 위해서였다.

 

마흐무드는 17회에 걸쳐 북인도를 원정하여 물탄, 타네스와르, 마투라 등 북인도 서쪽을 완전히 함락시켰다. 마흐무드가 인도를 원정한 주요 목적은 노예와 물자의 약탈이었지만 불교와 힌두교 사원과 성지를 파괴하고 보물을 약탈하고 스님들을 학살하는 등 온갖 만행을 저질렀다. 이 원정에 의해 아프가니스탄의 여러 도시는 인도인 노예와 약탈물로 흘러 넘쳤다고 한다.


마흐무드가 죽은 뒤 가즈니 왕조는 서쪽의 살주크(Salju?) 세력에 밀려 점차 동쪽으로 이동하다가 뒤이어 일어난 고르(Ghu?) 왕조의 기야스 우드 딘 무하마드(Ghiyas-ud-dl? Muhammad)에게 멸망당하였다(1173∼1174). 그러나 가즈니 왕조의 마흐무드는 아프가니스탄, 신드 및 펀잡 지방을 그의 영토에 병합시켰지만 마치 폭풍처럼 몰려와서 모든 것을 파괴하고 지나가는 데 그쳐 지속적인 영향은 미치지 못하였다. 그렇지만 그가 인도의 서북 국경지방을 장악한 일은 다음의 무슬림 침략자들이 인도에 들어오는 길을 쉽게 만들어 놓은 셈이 되었다.1) 1) 曺吉泰, 《인도사》, 민음사, 1995, pp. 180∼182 참조.


고르 왕조는 가즈니와 헤라트 사이에 있는 고르 지방에 살고 있던 터키계 무슬림으로서 고르 왕인 무하마드는 1173년에 가즈니 왕조를 그 본거지로부터 쫓아내고 동생 무하마드(Shihab-ud-dl? Muhammad)를 총독으로 임명하였다. 그는 1175년 이후 여러 차례에 걸쳐 펀잡과 구자라뜨 지방을 정벌하고, 또 1191∼1192년에 델리 북쪽 따라인에서 두 번에 걸친 전쟁 끝에 인도 연합군을 무찔렀다. 두 차례에 걸친 따라인 전투는 무슬림들이 인도를 지배하게 되는 중대한 사건이었다.2) 이들의 인도 침략 목적은 가즈니 왕조와 달리 약탈보다는 이슬람 왕국을 세우는 데 있었기에 1202년에는 벵갈만까지 그 세력을 확장시켰다. 2) 조길태, 위의 책, pp. 182∼184 참조.


무슬림 군대는 수백 년 동안 번영해 왔던 날란다 대학을 파괴하고 나아가 벵갈 지방까지 공격하였다. 그들은 인도에 침략해 들어와서 아프가니스탄과 간다라 등의 서북 인도에서 불상의 얼굴을 깎고 머리를 부수는 일을 자행하였다. 북인도에 들어와서는 인도의 각 종교 사원과 조각을 파괴하였다. 그리고 13세기초에는 벵갈과 비하르 지방의 주요 사원들을 철저하게 파괴하였다.


3. 무슬림의 인도불교에 대한 만행의 역사


1) 날란다 대학의 파괴

날란다 절은 왕사성 북쪽에 위치하며, 부처님의 제일 제자였던 사리불(S첺?iputra)과 목건련(Maudgalya?ana)의 고향으로서 부처님께서 열반에 든 지 몇백 년이 지나 이곳에 거대한 불교대학이 세워져 불교 역사에서 중요한 곳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페르시아 왕과 다르마 짠드라 왕은 여러 차례 전쟁을 하기도 하고 강화를 맺기도 하였다. 언젠가 한번은 동맹을 맺고 있는 동안 두 나라에서 몇 명의 스님들을 각각 사절단으로 보냈다. 그때 페르시아 왕은 말과 보석 등을 중인도의 왕에게 선물하고, 중인도의 왕은 페르시아 왕에게 코끼리와 아름다운 비단을 선물하였다.


그 뒤 언젠가 다르마 짠드라 왕은 페르시아 왕에게 바느질 자국이 없는 아주 귀하고 질 좋은 비단으로 만든 옷을 선물하였는데도 불행하게도 허리 부분의 직물에 발자국과 같은 모양이 있었다. 이것은 악주(惡呪)라는 의심을 낳게 하였다. 또 언젠가 다르마 짠드라 왕은 페르시아 왕에게 과일을 선물로 보내고 싶어했는데 어떤 바라문이 자작나무 껍질에 많은 주문을 써서 그것들과 함께 과일을 상자에 넣어 페르시아 왕에게 보냈다. 페르시아 왕은 이것은 반드시 사악한 주문을 사용한 것이라고 확신하고 투루슈카 군사들에게 마가다 국 전역을 정벌하게 하였다. 그때 많은 가람을 파괴시키고 날란다 절이 심하게 파괴되니 많은 스님들은 멀리 도망가 버렸다고 한다.3) 3) TA?ANA?HA’S HISTORY OF BUDDHISM IN INDIA (translated from the Tibetan by LAMA CHIMPA ALAKA CHATTOPADHYAYA), Calcutta, K. P. Bagchi & Company, 1970, pp.137∼138.


또 타라나타의 《인도불교사》 제20장에 따르면, 언젠가 붓다빡샤 왕(Buddhapaks.a)의 대신이던 까꾸다싱하(Kakudasin?a)가 날란다 대학에 가람 하나를 세우고 개당식을 거행하려 할 때 외도의 교리를 지지하는 두 명의 수행자가 걸식하러 왔다. 품행이 방정치 못한 젊은 수행자들이 그들에게 구정물을 뿌리고 널빤지로 만든 문안으로 집어넣고 사나운 개를 풀어놓자 그 두 사람은 크게 분노하였다. 그 중 한 사람은 먹는 양을 줄이고, 다른 사람은 일상관(日相觀, su?ya-sa?hana?을 성취하고자 땅 속에 굴을 파고 9년 동안 수행을 하였지만 그때까지 그것을 성취하지 못하자 그 굴에서 나오려고 하였다. 그때 그의 친구가 “그대는 진언을 성취하였는가, 아직 성취하지 못하였는가?”라고 묻자, 그가 아직 성취하지 못하였다고 말하였다. 그때 “다른 사람들은 온통 기근 상태에 빠져 있는 데도 나는 그대를 위해 난행으로 음식물을 얻어왔다. 그러므로 그대가 진언을 성취하지 못하고 나온다면 언제든지 그대의 목을 잘라 버릴 것이다.”라고 말하며 예리한 칼을 휘두르며 위협하였다. 그는 이것이 두려워 다시 3년을 더 수행하여 12년 만에 진언을 성취하였다. 그는 호마(homa) 의식을 행하고 그 마법에 걸린 재를 사방에 흩뿌렸다.


그런데 그 재는 곧장 기적적으로 발화되어 가람 82개를 완전히 태워 버렸다. 그 불은 날란다 대학의 다르마간자(Dharmaganja)에 소장되어 있는 불전(佛典)들을 태우기 시작하였다. 특히 수많은 불전을 소장하고 있는 큰 사원인 라뜨나사가라(Ratnasa?ara), 라뜨노다디(Ratnodadhi)와 라뜨나단다까(Ratnadan.d.aka) 등 3대 가람이 불에 탔는데, 그들 안에는 대승장부(大乘藏部)의 모든 경권이 보관되어 있었다.


그때 9층으로 된 라뜨노다디 가람 상층에 소장되어 있는 어떤 경권에서 큰 폭포수가 쏟아져내려 불을 끄고, 그 폭포수는 계속 흘러내려 모든 경권들에 미쳐 소실되는 것을 막았다. 나중에 그 경권을 조사해 보니, 비전(秘典)의 탄트라 5부 경전이 들어 있었다. 어떤 것에는 비밀집(秘密集, Guhya-sama?a)에 관한 것만이 있었고, 또 어떤 것에는 무상탄트라부(無上坦特羅部, Anuttara-tantra)에 속한 경권들이 있었다.4)4) 같은 책, pp.141∼142.


그러나 타라나타의 《인도불교사》 제21장에 따르면, 그 뒤 여러 곳으로부터 학식 있는 스님들을 소집하여 그들이 기억하고 있는 사항과 경전을 넣어둔 함에 보관된 것들을 모두 문자로 기록하였다. 그리고 붓다빡샤 왕, 바라문 샹꾸(S첺n?u)와 브리하스빠띠(Br.haspati), 그리고 많은 재가 신도들이 화재로 손상을 입은 사원들을 복구하였다.


여러 왕들과 불교신도들에 의해 번영의 불꽃이 꺼지지 않았던 날란다 대학은 그러나 1200년 초 아프가니스탄의 고르 왕조의 무하마드가 북부 인도에 침공해 들어 왔을 때 철저하게 파괴되어 버렸다. 스님들은 죽임을 당하거나 먼 곳으로 달아나 버렸고 대학은 6개월 동안이나 계속해 불탔다고 한다. 그 이후 날란다는 사람들의 눈앞에서 사라졌다고 한다.5) 5) 같은 책, pp.142∼143.


그 후 날란다가 다시 우리 앞에 그 모습을 나타내기 시작한 것은 1861년부터였다. 커닝햄이 현장 스님의 《대당서역기》를 근거로 해서 날란다의 가람터를 확인해 냈고, 1916년 인도 고고국과 영국 정부에서 체계적인 발굴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지금까지도 그때의 원형을 다 발굴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슬람의 불교에 대한 박해는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그 뒤 인도에서 불교교단이 무너지는 데 결정적인 타격을 주었다.


2) 벵갈과 비하르 지방 불교 사원의 파괴와 승려 살상

8세기 초(730∼740년 무렵) 고빨라(Gopala) 1세가 벵갈 지방의 왕으로 추대됨으로써 빨라(Pa?a) 왕조가 시작되었다. 빨라 왕조의 역대 왕들은 독실한 불교도로서 열렬하게 불교를 지원하였다. 그 때문에 인도 주변에서 불교가 점차 소멸해 가고 있었는데도 왕가의 지원으로 벵갈과 비하르 지방에서는 불교가 마지막까지 존속할 수 있었다. 이러한 사실은 그 시대에 발견된 많은 비명(碑銘)에서 알 수 있다. 《빨라시대비명목록》에 따르면, 비명은 서쪽의 사위성, 꾸시나가라, 보디가야 등에서 많이 발견되고, 그 비문에는 고빨라, 데바빨라, 라즈야빨라, 비그라하빨라, 마히빨라 등 10명 이상의 빨라 왕조 왕들의 이름이 보인다.



빨라 왕조 시대에 번영했던 이 절들은 무슬림이 중인도에 침입하기 전까지 존속하였다. 1203년 비끄라마쉴라 절이 무슬림들의 약탈로 파괴되었다. 그때 수많은 스님들이 살해되고, 위기를 면한 나머지 스님은 네팔이나 티베트 등지로 피난함으로써 인도불교는 본토에서 그 생명력을 잃게 되었다. 4대 절의 나머지 오단따뿌리, 날란다, 바즈라사나 등의 절도 마찬가지로 피해를 입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타라나타의 《인도불교사》 제37장에 따르면, 세나 왕조의 4번째 왕 라티까세나(Ra?hikasena)가 죽은 뒤 라밤세나(Lavam.sena)가 나와 왕국을 수호했기 때문에 몇 년 동안은 평화로웠다. 그 뒤 갠지스 강과 야무나 강에 사이에 안따라비다(Antarabhida) 국의 터키계 월왕(月王)이 나왔다. 어떤 비구는 왕의 사신이 되어 재앙을 일으키고, 안따라비다는 방갈라 등 다른 나라들과 다른 곳에 머무는 터키계의 여러 작은 나라 왕들이 연합하여 마가다 국을 전역을 정복하였으며, 오단따뿌리 절의 많은 스님들을 살상하고, 오단따뿌리와 비끄라마쉴라 절을 태웠다.


특히 오단따뿌리 절터를 대식국(大食國)의 요새로 만들었다. 또 비끄라마쉴라 절의 마지막 좌주였던 까쉬미르 출신의 샤끼야쉬리(S첺kyas쳑l?는 동 벵갈의 오디비샤 국의 자갓달라 절로 피신했다가 3년 만에 티베트로 건너갔고, 라뜨나끄쉬따(Ratnaks.ita)는 네팔로 갔으며, 즈냐나카라굽타(Jn?na?karagupta) 등 대학자와 소장학자 100여 명은 인도 서남쪽으로 갔고, 대학자 붓다슈리미트라(Buddhas쳑l?itra)와 다샤발라(Das첺bala)의 제자 바즈라슈리(Vaj- ras쳑l?와 그 밖의 많은 소장학자들이 멀리 남인도로 도망갔다.


236년 귀국 길에 올라 비끄라마쉴라 절을 들렀을 때는 이미 그곳은 잿더미가 되어 자취를 감추었다고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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