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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늡갤문학] 22편 - 젖과 꿀이 흐르는 땅, 주사위는 던져지고

릅참마속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17.05.18 13:11:57
조회 4338 추천 134 댓글 42

...날씨가 화창한 날을 골라 들판에 나갔다.

몸통이 유난히 긴 방아깨비 한 마리를 잡았는데 실수로 다리를 부러뜨렸다. 채집통에 넣어 치료해주고 이름은 케빈 듀란트로 붙였다.....(중략).....어제는 집 앞의 나무에서 하늘소 한 마리를 잡고 카와이 레너드란 이름을 지어주었는데, 또 발목을 부러뜨렸다. 자꾸 팔짝팔짝 뛰어다니길래 채집통의 영역을 침범했던 것이 잘못이었다. 고의는 아니었지만 유감이 아닐 수 없다. 앞으로는 더욱 조심해야겠다... 다음에는 메뚜기를 한 마리 잡을까 하는데 이름은 미리 생각해 두었다. 바로 르...(후략)


- <파출부 곤충기>중에서.


조지아의 곤충학자 파출부가 곤충계의 떠오르는 신성 카와이 레너드의 발목을 부러뜨렸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매니아의 백만 릅퀴들이 거세게 들고 일어났다. 중립팬들이 가만히 사태를 관망하는 사이, 그들은 악의 무리 골든스테이트를 성토하며 '카와이를 사랑하는 릅퀴들의 모임', 줄여서 카이사릅을 결성하고 자신들의 우상인 황야의 메뚜기 르브론 제임스에게 응징을 요청했다. 르브론이 이를 받아들여 먼저 동부 릅갈리아 땅에서 휘하의 3점 말벌 군단을 이끌고 보급에 나서니, 인근의 곤충 무리들이 하나같이 벌벌 떨며 두려워 마지않았다.


그러나 그 중 비교적 규모가 큰 TD 가든의 벌집. 매년 르브론에게 맛있는 아카시아꿀을 자진하여 상납했던 보스턴 셀틱스의 여왕벌 브래드 스티븐슨은 헛된 마음을 품고 있었으니, 이빨이 부러진 난장이 꿀벌 아이재아 토마스를 필두로 에이버리 브래들리, 켈리 올리닉 등이 주변의 브루클린을 털어먹으며 남다른 용맹을 뽐내자 이전에는 쳐다도 보지 못했던 르브론에 감히 맞서고자 한 것이다. 허나 아직은 그의 무식한 돌파를 막아낼 힘이 부족하다 여겨 망설이고 있던 스티븐스의 앞에 웬 졸개 하나가 한 줌의 씨앗을 건넨다.


"이걸 심는다면 골밑을 방비할 수 있습니다."


"자세히 설명해보게."


"이 식물의 이름은 알 호포드. 애틀란타의 이름난 끈끈이주걱입니다. 끈끈한 팀워크를 분비하여 우리 꿀벌 군단의 공격력을 크게 배가시킬 수 있고, 끈끈한 수비와 끈끈한 리바운드 능력 또한 기대할 수 있습니다."


홈쇼핑의 광고처럼 90%의 거짓을 10%의 진실로 교묘히 포장한 말이 아닐 수 없었으나 진실을 알 리 없는 스티븐스는 그만 깜빡 속아 넘어갔다. 기뻐하며 수하들을 시켜 벌집의 문앞에 호포드를 심고 연봉을 있는대로 뿌려 무럭무럭 자라나게 하니, 보스턴 골밑의 방비가 겉으로 보기에는 꽤나 그럴듯해 보였다. 그리고 이렇게 만반의 채비를 갖춘 셀틱스 꿀벌들의 앞에 릅비콘 강을 넘어 진격하는 릅뚜기의 카이사릅 군단이 나타나는데,


"킁킁, 오 이건..? 내가 제일 좋아하는 꿀꿀이주걱이구나!"


억센 턱을 휘두르며 보스턴 골밑에 다다른 르브론이 별안간 풍겨오는 향기로운 냄새에 코를 킁킁거리더니 코트 바닥을 기어다니며 몹시 기뻐하는 것이 아닌가! 그 앞에는 과연 과도하게 뿌려진 연봉을 돼지처럼 쳐먹은 알 호포드가 끈끈이주걱이 아닌 꿀꿀이주걱으로 자라나 르브론이 가장 좋아하는 동부개꿀을 마음껏 분비하고 있었으니 눈이 뒤집힌 채 순식간에 밀려오는 말벌 군단의 쓰나미같은 맹공에 셀틱스 벌집이 그대로 초토화되었다.


"크아아악!" "살려줘!"


아비규환이 된 골밑에 파이널로 향하는 레드 카펫이 부드럽게 깔리고, 한껏 꿀맛을 즐기던 르브론이 껄껄 웃으며 슬램덩크를 치켜들고 돌진한다. 그러나 이를 가만히 지켜볼 수만은 없었던 아이재아 토마스가 용감하게 달려들어 르브론의 발목에 낮은 자세의 장점을 십분 살린 회심의 일격을 가하니, 어지간한 릅뚜기 또한 외마디 비명과 함께 코트 구석에 널부러질 뿐이었다. 그 광경을 본 토마스가 보스턴 벤치를 바라보며 의기양양하게 외친다.


"왔노라, 보았노라, 담갔노라! (veni, vidi, kimchi)"


아아, 그러나 그가 어찌 알았으리오. 르브론의 괴물같은 신체는 하찮은 일개 곤충의 힘으로 담굴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오직 에어컨의 고장만이 그의 육신을 쇠하게 할 수 있었으니 몇차례 절뚝이며 걸음을 옮기던 그가 곧 회복을 마치고 더욱 분노하여 달려든다. 끝내 당해내지 못한 아이재아 토마스가 처참한 야투율만을 남긴채 속절없이 벤치로 물러나니 이를 지켜보던 스티븐스가 믿을 수 없다는 듯 눈물을 흩뿌린다.


"크흑.. 브록투스(broken tooth) 너마저..!"


그리고는 식물 센터 호포드를 뽑아 황급히 자리를 피하니 아직 배가 고픈 클리블랜드의 말벌 군단이 깃발을 휘날리며 그 뒤를 추격해 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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