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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더매직썰] 하룻밤의 인연으로 서로에게 코 꿰인 엘산나썰 11(중)

늦게인간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15.08.29 00:3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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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 꿰인 썰 11(상)


짐을 옮기러 나왔는데 왜 이렇게 간지럽지. 귀도 그렇고 코도 그렇고... 감기가 오려는 건가. 결국 손에 가득 짐을 든 채로 에취. 코를 한 번 긁적이다가 안나는 자전거의 페달을 밟지.

 

그렇게 안나가 자전거 페달을 열심히 밟아 도착한 곳은, 멜리사가 일하는 병원이야.

 

평소보다 조금 늦었어. 멜리사가 안개꽃을 사오라고 해서 꽃집에 잠깐 들렸거든. 간호사 캐롤라인에게 인사하며 도시락 통을 하나 올려주고 빨리 멜리사의 진료실로 들어가.

 

제가 오기를 기다리는 게 지루했는 듯 갈색빛이 도는 가죽 앨범을 꺼내 이리 저리 뒤적이는 멜리사의 모습이 보여. 안경을 끼고 집중한 모습에 안나가 조용히 다가가 의자에 앉아. 그러자 멜리사가 앨범을 휙휙 넘겨 앞의 장으로 돌아가.

 

귀엽지 않아?”

 

앨범이 제게 잘 보이도록 들어주던 멜리사가 가볍게 물어와. 그녀가 보여준 건 엘사의 어릴 때 모습이야. 어릴 때부터 한 미모 했네. 지금처럼 땋지 않고 생머리를 길게 늘어뜨린 엘사가 웃고 있어. 지금보다도 더 톰보이스러운 멜리사가 그런 엘사를 품에 안고 브이자를 그리고 있어. 안나가 보기엔 사진 속의 표정과 지금 사진을 보여주며 웃고 있는 멜리사의 표정이 똑 닮아있어.

 

멜리사, 팔불출 같아요.”

이젠 네 몫인걸. 아침마다 엘사 배 쓸어보는 네 표정은 나보다 더해. 딸바보 납셨어.”

좋은 걸 어떻게해요.”

근데 진짜 조카 녀석 얼굴이 궁금하다. 누구를 더 많이 닮았을지.”

 

안나의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가까이하며 이리 저리 살펴보는 멜리사야.

 

보면 알 수 있어요? 난 열 살 전의 사진은 단체 사진 밖에 없어요. 어릴 때의 얼굴이 기억나지 않기도 하구요.”

 

고아원에서 일 년에 한 번 후원자님 오실 때마다 기념하며 찍던 그 단체 사진도 제게는 없어. 많은 아이들을 한 장의 사진에 담아야하니 다들 조그맣게 찍혀있어서 알아보기도 어렵겠지만, 저로 인해 망해버렸으니 더더욱 찾기 힘들거야.

 

안나 스스로도 모르게 지은 시무룩한 표정에 멜리사가 미안한 마음이 들어. 상처를 건드릴 생각은 없었는데, 미안하다는 말을 하려는데 안나가 갑자기 방긋 웃어.

 

오늘은 특별히 스페셜하게 싸왔어요! 어서 들어요.”

 

점심은 안나의 근무시간이야. 사실 이 시간은 디 오리엔트의 두 번째 피크시간이기도 한데 디 오리엔트에 돈을 주고 안나를  멜리사야. 아침에 엘사 도시락 쌀 때 제 것도 싸준다니까, 따뜻한 게 좋다고 고집부리더니 크리스토프를 어떻게 설득했는지 일주일에 세 번 정도 외근의 형식으로 이렇게 병원으로 출근해. 위에서 하라면 하는 안나는 어떤 식으로 계약이 이루어졌는 지 모른 채로 첫 날 왔다가 손님이 멜리사 인 걸 알고 기겁했더랬지. 멜리사를 필사적으로 뜯어말리려했지만 결국 멜리사의 고집은 아무도 꺾지 못했어.

 

그저 우리가 한 가지 알 수 있는 건, 그 날의 멜리사는 크리스토프가 평생을 걸쳐 만났던 이들 중 가장 무서운 멜리사였다는 거야.

 

미리 스페셜하다고 말하고 도시락을 여는 안나의 말은 과장이 아닌 듯, 평소보다도 화려한 감이 있어.오늘은 멜리사에게 부탁할 것도 있어서 특별히 신경을 많이 썼어.

 

... 그래. 어디까지 했었더라? 엘사 고등학교때 얘기까지 했었나.”

문학제에 나가서 상 탄 얘기까지 했어요.”

그래. 처음 나간 문학제에서 금상이라니, 내 동생이라지만 대단해. 그 애는 그런 걸 배운 적이 없거든.셰익스피어를 제일 좋아한다고 얘기했었나?”

 

필사도 잘 해서 아버지를 간간히 돕곤 했지.”

그 글씨가 어릴 때부터 그랬구나...”

 

이런 저런 엘사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으며 안나는 엘사에 대해서 새롭게 알아가. 알면 알수록 더 알고 싶어져. 제가 해주는 이야기 하나 하나를 허투루 듣지 않는 안나가 기특한 멜리사가 아까 전부터 제게 할 말이 있어 보이는 안나의 숨통을 좀 트여주려하지.

 

확실히 평소보다 스페셜-한데, 너 나한테 부탁할 거 있구나?”

 

해봐. 들어보자.”

 

조금은 쑥스러운 표정을 짓던 안나가 곧 진지하게 말을 해. 멜리사도 안나의 말에 집중해. 그 입술에 그 미성에. 이야기의 핵심은 찾았어. 제가 무엇을 해야할지 생각해보다가 안나를 은근히 놀려보고 싶어져.

 

내가 거절하면?”

부탁 드려요. 부족하다는 느낌 없게 해주고 싶어서요.”

공짜는 없다가 내 철칙인데, 너 뭐해줄건데?”

 

사실 어렵지도 않은 일이고 댓가를 바라는 제가 우스운 상황이야. 그런데도 안나는 살짝 눈썹이 쳐져서 고심하고 있어. 웃음이 나려는 걸 멜리사가 참아가며 계속 안나를 지켜봐.

 

사실, 멜리사가 안나를 무엇보다도 마음에 들어 하는 건-,

 

쓸데없이 돈으로 설득 하려고 들지 않아서 좋네. 마음에 들어. . 내가 훨씬 더 잘 버는 것도 있지만... 안개꽃 사왔지?루헤인 사장한테는 말 잘할테니까 쫓아와.”

 

요새 안나를 너무 칭찬하게 되는 것 같아서, 민망해지는 기분에 은근히 잘난 척을 얹어보지만더 없이 환해지는 얼굴에 제가 더 기쁜 마음이 들어.

 

멜리사를 쫓아서 온 공원.

하얀 대리석의 묘비, Agnarr Watson / Iduna Watson.

 

가져온 안개꽃을 내려놓곤 슥슥 대리석을 손으로 쓸어.

 

우리 아부지 시간이 십년이 다 지났는데 아직도 정정하시네. 화이트네 아저씨는 벌써 주름이 자글자글한데. 저저번주에 봤지? 왔다 가셨다고 하더라. 우리 엄마는 여전히 고우시고.”

 

변함이 없네. 이러다가 내가 엄마, 아빠보다도 더 늙는 날이 오겠지?

멜리사가 주섬주섬 사진을 한 장 꺼내 가까이 있던 액자에 새로 넣어.

 

엘사야. 많이 컸지? 그래, 가끔 왔다간다며. 자주 안온다고 서운해 하지는 마. 머리로 아는 거랑 마음으로 아는 게 같을 수가 없더라고. 쓰러져서 장례식 때도 못 왔었잖아. 그래서 더 그럴 수도 있고.”

 

... 이렇게 보니까, 우리 엘사. 크면 클수록 엄마를 닮아가네. 본인은 아려나 몰라.”

 

손으로 네 사람이 있는 가족사진을 쓸어봐.

 

우리 아부지 섭섭하시겠네. 딸 둘 있는데 둘 다 아부지는 안 닮아서. 난 엄마도 안 닮았는데, 아 맞다.나 친탁했지. 친탁했어도 아부지는 안 닮았어. 큰딸이 요새 이래, 아부지. 정신이 없어.”

 

벌써부터 눈이 뜨거워져. 잠깐 눈을 들어 허공을 향하다가 애써 미소 짓곤 다시 대리석을 내려다 봐. 언제부터였을까. 당신을 내가 내려다보게 된 건. 단 한 번도 바라지 않았는데.

 

내 옆에 있는 붉은 머리 쥐방울, 보여? 꽤 예쁘장하게 생겼지?”

 

내 짝이냐고? 아니. 물론 나도 빨리 결혼해야하긴 하지만, 내 짝 아니야. 저런 애 또 있으면 하늘에서 보다가 나한테 보내주던가. 엘사가 나보다 더 똑 부러진데 만날 엘사 걱정이지. 이러면 첫째 딸 섭섭해.”

 

엘사랑 결혼할 사람이야. 엘사 능력도 좋다. 이제 겨우 스물 네 살이래. 아직도 솜털 있는 것 같더라.저 녀석도 능력도 좋아.”

 

... 엄마, 아빠는 어떻게 했을 거 같아? 난 두 사람 짝 지어주려고. 그래도 그때 그 녀석과는 차원이 달라. 엘사를 진심으로 많이 좋아하더라. 눈빛을 보니까 알겠어. 지금은 이렇게 쉽게 알 수 있는 걸 그때는 왜 몰랐나 몰라.

 

차마 안나 앞에선 말을 꺼낼 수 없어 속으로만 말을 삼켜내는 멜리사야.

 

축하해. 둘째딸 결혼도 시키고 벌써, 할머니 할아버지가 다 되셨어. 엘사 임신 8주차래. 말라서 그런가 배가 생각보다 빨리 부르려고 하는 거 같아. 더 배부르기 전엔 식 올려줘야 할 거 같아서 다다음주에 결혼해. 더 미룰 수가 없더라.”

 

결혼하기 전에 한 번은 엘사 올 거 같은데 너무 뭐라고 하지는 마. 내가 통 신경을 못 썼어. 언니가 돼서 시집도 안 간 동생 배부르게 만들은 건 나중에 만나서 한소리 들을 게.”

 

부족한 거 없이 해줄게. 엄마, 아부지 해주고 싶다던 거... 고모랑 잘 상의하라고? 당연하지.

 

근데, 엘사 결혼한다고 하니까 말야. 보고 싶다... 엄마, 아빠.”

 

결국 참아내지 못하고 뱉어낸 말은, 보고 싶다.

사실 이 모든 일이 멜리사에게도 두렵고 어려운 일이니까.

내가 정말 부족한 거 없게 해줄 수 있을까? 매일을 고민하게 하거든. 안나가 좋은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면 알게 될수록. 처음엔 제 동생만을 위한 마음이 더 컸는데 결혼허락을 하면서, 가족으로 인정하게 되었고 같이 살다보니까 금세 정이 들어서 이젠 안나의 입장에서도 상황을 바라보게 된 멜리사거든. 상처 많은 동생이라 그로 인해 상처를 받게 될까봐. 종국에 두 사람이 아프게 될까봐.

 

그래도, 믿어야겠지? 하긴 왓슨 집안에 무르기같은 건 없지.


- 코꿰인 썰11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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