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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픽]Say You Love Me 26

버트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0.10.03 15:2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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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는 ‘꽃’의 문 손잡이를 잡고 신음했다. 엘사가 만나자는 청을 들어준 건 정말 다행인 일이었으나 이곳에서 만나잔 소릴 한 건 실수였을지도 모르겠다. 바글거리는 사람들 틈에서 할 이야기는 전혀 아니었으니 불쑥 정해버린 약속 장소의 특성상 둘의 만남은 영업이 끝날 시간대까지 미뤄졌는데, 엘사의 반응이 어떻든 이 말만은 꼭 전하겠노라고 용감히 굳혀놓은 마음은 약속 시각이 오길 기다리는 동안 눈에 띄게 흐물흐물 녹아있었다. 안나는 엘사에게 전화를 걸기 전 충분한 각오를 했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통화가 연결되고 나니 휴대폰을 사이에 두고 나눈 침묵만으로도 숨이 막혔다. 남은 시간 동안 그 침묵을 계속 곱씹어보니 어떤 각오를 하든 엘사를 바로 눈앞에 두고 부정적인 반응을 견딜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안나는 출입문에 난 창으로 눈을 흘겼다. 가게는 영업을 마친 뒤였고 창 너머로는 주홍빛 작은 불만 은은히 빛나고 있을 뿐이라 낮 동안의 활기에 비하면 내부는 어둡고 무거워 보이기만 했다. 엘사가 정말 기다리고 있는 건 맞는지 의문이 들었다. 몇 시간 사이 엘사가 만남에 대한 마음을 바꿨다면? 손잡이를 당겨봤자 굳게 닫힌 문만 버티고 있다면? 내가 견딜 수 있을까? 


안나는 손잡이를 쥔 손에 힘을 주고 입술을 깨물었다. 제 마음, 어쩌면 엘사의 마음까지 잔뜩 흔들기 충분한 시간을 줘가면서까지 이 장소를 원한 이유는 새로 의식한 이곳의 의미 때문이었다. 안나는 이곳에 처음 온 날 사랑을 만났다 생각했지만, 그건 사랑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이 곳이 아무 의미 없는 장소는 아니었다. 어떻게 아무 의미가 없을까. 안나는 이곳에서 엘사를 만났다. 엘사를 알고, 사랑하게 됐다. 같은 장소, 같은 말이지만 이젠 달라진 무게로 전하며 안나는 이곳을 조금 더 의미 있게 가꾸고 싶었다. 안나는 환상에 휘둘려 이 모든 일을 벌여놓고도 자신이 결국 드라마틱한 맺음을 포기 하지 못했단 걸 느끼고 있었다. 그래도, 이 정도는 괜찮잖아. 그렇게 생각했었다. 안타깝게도 안나는 약속 시각까지의 기다림 동안 이 곳을 좀 더 의미 있게 만들기 위한 계획에 몇 가지 긍정적인 가정이 섞였다는 걸 알아챘다. 의도는 멋지지만 엘사가 그 멋진 의도를 위한 시간 동안 아예 숨어버렸다면, 문 뒤에 엘사가 기다리고 있더라도 의미 있게 기억될 만한 장소에서 완전히 끝나버리게 된다면, 이게 다 무슨 소용일까. 추억으로나마 남길 수 있었을 장소를, 근처를 지나기만 해도 눈물 쏟을 지뢰밭으로 만들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안나는 무거운 마음으로 문을 당겼다. 닫힌 문 앞에서 무너지는 모습을 상상했던 게 부끄러울 정도로 문이 가볍게 열리자 안나는 저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카운터에 등을 기대고 서 있던 엘사가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들었다. 엘사의 옆으로 작은 탁상 등 하나가 빛나고 있는 덕에 안나는 엘사가 잠시 움츠러든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안나는 조심스레 가게 안으로 발을 내디뎠다. 등 뒤로 문을 닫을 수 있을 정도로만 나아갔을 뿐, 안나는 말없이 저를 보고 서 있는 엘사와 한참의 거리를 두고 우뚝 서버릴 수밖에 없었다. 엘사는 기운이 없어 보였다. 나른하게 늘어뜨린 몸을 살짝 비틀어 안나 쪽으로 향하게 했지만 카운터에 붙여둔 손과 등은 뗄 생각이 없어 보였다. 엘사는 덤덤한 표정으로 안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엘사를 부른 건 안나였다. 안나는 무슨 말이든 먼저 꺼내야만 했다. 하지만 엘사의 표정을 보며 무거운 침묵을 견디고 있자니 덜컥 겁이 났다. 이젠 정말로 가게 앞을 지나가기만 해도 눈물 쏟게 생겼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나가 이 만남에서 그나마 긍정적으로 얻어갈 만한 것은 상황이 닥치기 전의 각오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다는 사실에 대한 깨달음뿐인 듯했다. 내 잘못이니 내가 상처 받는 게 맞다고? 어떻게 그런 용감한 생각을 했을까. 옳은 일이라고 무섭지 않은 건 아니었다. 사랑을 앞에 두고서도 안나는 목을 조르는 듯한 침묵에서 도망가고 싶었다.     


완전히 끝이라는 상상에 질식해 숨을 헐떡이던 안나는 순간, 카운터 위에 비스듬히 얹힌 엘사의 손 뒤로 빨간 튤립 한 송이가 놓여 있는 것을 보았다. 안나는 크게 숨을 내뱉으며 제 가슴에 손을 얹었다. 안나를 위한 게 아닐 수도 있었다. 손질하다가 남은 꽃 한 송이에 불과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안나는 그 꽃이 저를 위해 그곳에 놓인 것임을 알았다. 튤립, 튤립이잖아.. 크게 뜬 눈으로 고개를 끄덕이자 문득 두려움이 눈 녹듯 사라졌다. 안나는 잔뜩 벅차 일그러진 얼굴을 펴지 못한 채 엘사에게 성큼 다가갔다. 날 밀어낼 거라고? 아니, 아니야. 안나는 엘사가 저를 위해 팔을 벌려줄 것을 믿었다. 안나가 코를 훌쩍이며 다가서자 엘사는 카운터에 올려뒀던 손을 안나를 향해 나긋이 뻗었다. 거 봐... 안나는 엘사의 품에 와락 안기고는 엘사를 정신없이 끌어안았다. 엘사의 품 안에 얼굴을 박고 크게 숨을 들이쉬니 다시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엘사는 그런 안나를 얌전히 끌어안더니, 곧 안나의 어깨에 고개를 파묻으며 몸을 기댔다.



“저번부터 묻고 싶었는데...”



허리에 감은 손을 토닥이던 엘사가 안나의 귓가에 속삭였다.



“왜 네가 울어?”



그 말에 울음이 터진 안나는 엘사의 품 안에서 고개를 저으며 웅얼거렸다.



“머, 멍청, 해서, 요-”



어어어엉-! 안나는 엘사의 허리를 힘껏 끌어안고 어깨까지 들썩이며 꺼이꺼이 울기 시작했다. 울면 안 되는데, 이러려고 온 게, 아닌데. 울음에 목이 막혀 토막토막 잘린 말 밖에 나오지 않는 것을 확인한 안나는, 제 어깨에 고개를 파묻고 작게 키득거리는 엘사가 고백에 선수를 칠 것을 직감했다. 계획했던 바는 아니지만 나쁠 거 없었다. 아니, 오히려 울음이 감당 못 하게 차오를 정도로 벅차 기분이 좋았다. 엘사는 제 품을 파고든 안나의 머리칼을 부드럽게 쓸며 안나를 토닥였다.



“그만 울어. 왜 불렀는지는 말 해줘야지.”


“아- 알면, 서-”


“몰라.”



엘사는 안나의 어깨를 잡고 품에서 살짝 떼어냈다. 적나라하게 드러날 눈물범벅 얼굴이 부끄러웠던 탓에 안나는 양팔의 소매로 눈과 뺨을 가렸다. 그러자 엘사는 안나의 팔을 얼굴에서 떼 제 허리에 감아놓았다. 엘사는 안나의 뺨에 흐르는 눈물을 손가락으로 몇 번 훔치고는 말라가는 뺨을 가볍게 감싸 쥐었다. 



“정말 몰라. 나도 그렇게 생각했었지. 보면 아는 거지 꼭 말로 해줘야 하냐고. 근데, 아무리 노력해도 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는 모르겠더라. 넌 아닌 것 같을 땐 맞다 그러고 맞는 것 같을 땐 아니라고 해.”



엘사는 안나와 이마를 맞대고 눈을 감았다.



“네가 전에 했던 말들은 너도 알다시피, 믿은 적 없어. 이젠 믿을 수 있는데 넌 입을 닫아버렸고 그러면서도 나한테 안겨서 울고 있어. 나보고 어쩌라는 거야? 네 눈물이 무슨 뜻인지는 알 것 같은데...”



엘사는 작은 웃음소리를 내며 눈을 떴다. 그리곤 안나와 눈을 맞췄다. 



“그래도- 이걸론 아무것도 확신 못 해. 넌 그런 애니까. 그러니까 헷갈리게 하지 말고 제대로 대답해. 믿을 게, 한마디만 해주면 다 믿을게... 내가 살면서 처음으로 사랑한단 말을 소리 내 했잖아. 대답도 못 해주는 사람을 계속 안고 있을 순 없어.” 



안나는 엘사의 것과 붙여둔 이마를 슬쩍 떼고 크게 뜬 눈을 깜박였다.



“처음이었어요?”



엘사는 잠시 말이 없었다.



“그게 중요해?”



안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엘사는 안나를 바라보며 잠시 생각에 잠긴 듯하더니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릴 때 부모님께 한 거 빼면, 내가 기억하기로는 그래. 난, 이런 말 하는 거 안 좋아해.”


“사랑이... 처음이에요?”


“지금 꼭 그런 걸 물어야겠니?”


“궁금해요.”


“미안한데, 그건 아니야.”



안나의 얼굴에 얼핏 실망한 기색이 감돌자 엘사는 작게 눈썹을 구겼다.



“아니.. 모르겠다. 소리 내 말 해 본 적도 없었고 그러고 싶었던 적도 없었거든. 그 정도 마음이었던 건지... -잠..- 깐, 이게 뭐야. 너 때문에 옛날 일까지 다 헷갈리잖아.”


“근데, 나한텐 말해주고 싶었어요?”



안나는 엘사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소곤거렸다. 그런 안나를 가볍게 끌어안은 엘사는 잠시 조용히 있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그래.”



엘사는 안나의 등허리를 쓰다듬던 손을 잠시 떼고 카운터 위를 더듬거렸다. 



“솔직해지자면, 하고 싶어졌다고 그 말이 쉬워지는 건 아니더라. 여전히 어려워.”



안나는 엘사가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지 느낄 수 있었다. 안나는 잠시 눈을 감고 엘사의 어깨 위에서 얌전히 숨을 골랐다. 엘사가 안나의 어깨를 슬쩍 밀었고, 안나는 눈을 떴다. 



“그래서-”



엘사는 안나의 목을 가볍게 끌어안고 함께 고개를 기울였다. 기울여진 안나의 눈앞에 빨간 튤립 한 송이를 든 엘사의 손이 보였다.



“너무 뻔했나?”



엘사는 말 없는 안나를 두고 어색한 헛기침을 뱉으며 웃었다.



“그럼 어때. 가끔은 뻔한 것도 괜찮더라고.”


“튤립?”



안나는 꽃잎을 손가락으로 슬슬 쓸며 나른히 물었다. 엘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도 대답 못 해줄 것 같으면...”


“...꽃말은요?”


“뭐?”


“꽃말, 알아요?”



엘사는 멍하니 튤립을 보며 침을 꼴깍였다. 



“난, 꽃집 하는데... 아는 거라곤-”



엘사는 안나의 손을 쥐었다. 그리곤 들고 있던 튤립을 안나의 손에 들려주었다.



“튤립뿐이야.”



안나는 엘사의 목에 와락 팔을 감았다. 안나가 예고도 없이 들이받은 덕에 엘사는 카운터에 등을 박으며 몸을 기우뚱 기울였다. 안나가 엘사의 뺨과 입가에 입을 맞추며 몸을 기대오자 엘사는 웃음을 터트리며 안나의 이마를 밀었다.



“어딜 어물쩍 넘어가려고. 내가 널 사랑한다고 하잖아.”



엘사는 헐떡거리는 안나의 뺨을 쥐고 살짝 입을 맞췄다. 엘사는 안나의 뺨에 입술을 붙이고 속삭였다.



“넌 날 사랑해?”



안나는 코를 훌쩍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엘사는 안나의 뺨에 제 뺨을 부비며 한숨 같은 신음을 가볍게 흘렸다.



“말로 해줘-”


“...해요, 사랑... 해요-”



엘사는 안나의 허리를 힘껏 끌어안고 입을 맞췄다. 엘사는 입술이 떨어진 순간의 틈을 타 ‘더 크게..’ 같은 말을 중얼거렸는데, 그러면서도 도무지 안나가 말할 기회는 주지 않는 통에 안나는 로맨틱한 상황이 벅찬 와중에도 저도 모르게 웃음을 흘렸다. 뭐 어때. 앞으로 계속해 줄 말인데. 안나는 엘사의 입속에 중얼거리는 걸로 오늘의 고백을 마치기로 마음먹었다. 엘사를 끌어당기는 팔과 몸에 점점 힘이 들어갔고, 그렇게 몸이 기울던 둘은 서로를 끌어안은 채로 와당탕 넘어졌다. 엉덩이가 얼얼하게 아려왔지만, 둘은 그대로 가게 바닥을 뒹굴며 하던 일을 마저 이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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