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세상을 바라보는, SNS

어느 메모장에 옮겨놨던 기억

201x년 x월 x1일

어떻게 하다가 이렇게까지 된 걸까.

졸업 후, 내 인생 내 스스로 살겠다며,

한사코 말리던 엄마, 아빠를 뿌리 치고는 그 길로 집을 나와 독립을 했다.

뭔가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은 없었지만,

나 혼자서도 충분히 잘 살수 있을 것 같았다.

못할게 없다고 생각했다.

그 구질구질 하던 '밤동네'에도 다녀왔으니까.

뭘 못하겠어? 하고 생각했었지.

하지만 지금은,

정말이지 내 힘만으로는 할 수 있는게 별로 없는 것 같다.

당장에 자고 먹는 일조차 해결하기가 힘들다.

음식을 걱정해야 하고,

다음달 월세를 걱정해야 하고,

옷이나 신발을 살 돈은커녕 당장의 교통비도 없다.

그 와중에 언니란 년은 빌려간 보증금을 갚으라며 하루 걸러 독촉질이다.

정말이지 짜증난다.

왜, 이렇게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는 걸까.

과거의 기억들 속에 나는,

그리고 주위 사람들의 기억 속 내 모습은 적어도...하...

눈을 뜨면 해가 중천에 떠있다.

딱히 할 일이 없다.

대충 끼니를 때우고 TV를 보며 멍하니 있다 보면 어느새 해가 기운다.

지난 주, 뮤지컬극단 오디션 제의가 들어왔지만

너무 마이너 한 곳이라 거절 했다.

그런 곳에서 시작하기엔 뭔가 너무 억울하다.

뜨내기들 모이는 곳에 나 같은 정통 무용학도가 낄 수는 없잖아?

내가 생각하는 내 커리어는 적어도 그 이상이다.

졸업을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과 비용을 투자했는데!

그럼 그럼! 절대 안되지.

201x년 x월 x2일

오늘 페이스북 알림이 떴다.

들어가보니 유진희의 '친구요청'이 있었다.

왠지 모르게 가슴이 답답해 졌다.

그년의 '친구 요청'만은 받으면 안될 것 같았다.

일단 요청 수락을 미뤄뒀다.

이놈, 저놈, 얼굴도 모르는 놈들까지 넓은 아량으로 다 받아주긴 했지만

유진희의 것만은 받아주기 싫었다.

 친구들에게만 공개해 놓은 내 일상 사진들을 죄다 훔쳐볼 것 같았다.

그것도 하나하나 비웃어가면서 말이다.

아니, 이 참에 모르는 놈들,

친하지 않은 년놈들, 재수 밥맛인 년들은 '친구'에서 제외시켜야겠다.

그 중에 재수 밥맛인 년들부터 삭제해야겠다.

이런 저런 자랑질들, 웃기지도 않다.

학교 다닐땐 눈도 못 마주치던 년들이,

유행 다 지난 가방따위를 들고 국산차 조수석에서 웃고 있는 사진을 올린다.

별 거지 같은 남자새끼들을 옆에 끼고 말이지.

뭐 어쩌란 거지?

내가 부러워 할거라고 생각하나?

어차피 그런 싸구려 사진들 올려봤자, 아무도 눈길 하나 안 준다구.

아, 진짜 밥맛이야.

201x년 x월 x5일

유진희의 페이스북 친구 요청을 받아줬다.

다시 생각해 봐도 내가 그년의 친구 요청을 안 받아줄 이유가 없다.

내가 왜?

나 윤영아야. 알겠어?

네가 아무리 잘난 척, 있어 보이는 척해봤자,

늘 나한테 밀려서 안달내던 그 유진희 밖에 안된다 이거야.

코에 또 손댔더라?

풉, 완전 이상해.

201x년 x월 x7일

대학 들어와서 제일 처음 사귀었던 김홍석.

오늘은 그 놈의 페북에 몰래 들어가 봤다.

어느새 전역을 하고 복학을 한 것 같다.

살이 좀 빠지긴 했는데 여전히 잘 생겼다.

돈이 어디서 났는지 벤츠를 뽑은 것 같다.

프로필 사진에 벤츠 차키를 찍어 올려놨다.

원래 집이 잘 살았던가?

약간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그러고 보면 좀 괘씸하기도 하지.

아무리 내가 그 놈 군대 가있을 동안, 아주 '잠깐' 다른 남자를 만났다고는 하더라도,

그리고 그 짜증나는 콜렉트 콜들을 다 씹었다고는 하더라도

휴가 중이나 전역 후에 전화 한 통은 할 수 있는 거잖아?

참나, 군대 갈 때 울고 불고 할 때는 언제고, 그렇게 매정해 진다 이거지?

그래, 너도 이젠 완전히 아웃이야. 아웃.

201x년 x월 x9일

내가 왜 그랬던 건지는 모르겠는데

오늘 유진희의 페이스북을 완전히 다 훑어봤다.

왜 그랬지?

진짜 존나 짜증나.

유진희는 그 고라파덕과 잘 사귀고 있다.

그 바보같이 느끼한 눈빛은 여전했다.

둘이서 해외 여행도 자주 다니는 것 같다.

지난 해에는 칸쿤에 다녀온 것 같고.

칸쿤, 나도 진짜 가보고 싶기는 했는데...

난 아직 해외여행 한번 안 가봤는데, 솔직히 부럽...!

아니지! 아냐, 절대 부럽고 그런건 아니다.

내가 왜?

유진희 지가 능력이 있어서 간 것도 아니고, 그 얼빠져 보이는 놈의 돈으로 갔다 온거잖아?

흥, 아무리 그래봤자 둘이 헤어지면 네가 낙동강오리알 신세 밖에 더 돼?

남자 능력에 업혀 살아봤자, 기 못피고 살면 말짱 꽝이야.

절대 돈 많다고 행복하고 그런 건 아니라고!

내가 능력이 있고 내가 잘나야 행복한거지, 안그래?

유진희 너 같은 밥맛 성격은 그냥 대충 가지고 놀림 당하다가 팽 당할 걸?

201x년 y월 x2일

곧 있으면 월세를 내야 한다.

어제는 한끼 밖에 못 먹었다.

그제도 거의 굶었지 아마?

막상 뭘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잘 안들 뿐더러 밖에 나가기도 너무 귀찮다.

무기력하다.

짜증나... 짜증나...

유진희 그년은 지금 일본에 있다.

어제 교토에서 찍은 사진이 올라왔다.

사진 속의 유진희는 미슐랭 3성급 요릿집에서 재수 없게 웃고 있었다.

존나 밥맛이다.

재수 없게 웃지 말라고, 악플이나 달까?

201x년 y월 x3일

오늘 참 놀라운 걸 보게 되었다.

어쩌다 '정말'! 우연히! 들어가본 김홍석의 인스타에서

그놈이 우리과 후배년과 같이 찍은 사진을 본거다.

주민주라는 년인데, 분위기로 봐서는 둘이 사귀고 있는 것 같다.

아이고 홍석아, 만나도 그런년이랑 만나냐.

그년이 어떤 년인지 잘 모르고 있겠지?

민주 그년 진짜 여우같은 기집인데...

학교 다닐때 나한테 눈흘기고, 인사 잘 안하고, 선배들이랑 같이 하는 수업에

맨날 늦고, 아무튼 진짜 개념 없는 년인데,

아마 김홍석한테 꼬리를 살랑 살랑 쳤을거다.

사실, 뭐 난 전혀 그 두 년놈에게 관심은 없다.

그럼... 없고 말고.

나. 윤영아다.

무용과 퀸카, 윤영아.

니들이 올리는 대기업 입사 소식, 무용단 입단 소식, 오디션 합격 소식,

전혀 부럽지 않다.

그딴 싸구려 소식, 싸구려 음식사진으로 나한테 염장질 할 수 있을 것 같아?.

웃기지도 않아...

얼굴은 죄다 빻아가지고...

201x년 y월 x5일

페북, 시발 안해.

하늘이 우중충했던,

그래서 유난히 더 이불 밖으로 나오기 어렵던 어느 날,

점심때가 되어서야 겨우 일어난 영아는 버릇처럼 스마트 폰을 들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페이스북이라는 걸 확인했다고 해요.

어느 누가 어떤 회사에 들어가고, 어떤 곳으로 이사 가고,

어떤 생일을 보냈으며, 또 어느 누구와 사귀고 있는지 까지 알 수 있는 그 공간 안에서

영아는 꽤 충격적인 사진을 봤다고 합니다.

어느새 일본에서 미국으로 날아간 유진희와 그의 남자친구,

영아는 유진희가 올린 수십장의 사진들을 보다가 휴대폰을 집어 던졌다고 해요.

두사람이 뉴욕이란 멋진 도시의 구석 구석에서 굉장히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고 합니다.

저같은 무지랭이도 한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관광지에서,

또 앞뒤가 길쭉한 최고급 승용차의 뒷자석에서,

그리고 너무 화려해서 눈물이 날 뻔했다는 초호화 호텔의 스위트 룸에서,

유진희는 약오를 만큼 행복하게 웃고 있었다고 했어요.

그리고 그 수십장의 사진들 중 마지막 사진 속엔

유명 귀금속 브랜드의 2캐럿 다이아 반지가 '재수없게' 반짝 거리고 있었다고 하네요.

'오빠와의 약혼식 전야'라는 문구가 반지 사진의 맨 밑에 함께 있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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