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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 배경이라든가 관련 인물에 대해서는 작년 헤이안 시대 씹덕이 말하는 무라사키시키부 편은 링크에서 확인하시고....

아 이번에는 본달창은 뽑지 못했음. ㅇ<-<.......

시벌 그래서 내가 못 뽑은 세이쇼나곤.

지난 게시물을 확인하면 알겠지만 무라사키시키부가 섬기던 황후 쇼시의 정치적 라이벌, 중궁 데이시의 개인 뇨보(시녀).

이치조 천황이 데이시를 총애한 데에는 세이쇼나곤을 비롯해 재기발랄한 시녀들이 자아내는 데이시의 거처 분위기도 상당히 기여했다고 추측할 정도로, 세이쇼나곤은 헤이안 시대의 재녀였다.

특히 세이쇼나곤은 한시.. 즉 중국시에 대한 지식과 재치가 뛰어났다. 당시에는 여자는 가나로 편지나 시를 쓰고 한문은 어디까지나 남자의 영역이었는데 세이쇼나곤은 그 영역을 침범하는 데에 조금도 주저하지 않은 셈이다.

무라사키시키부도 지식이 결코 딸리지는 않았지만 학자 가문인 친가에서 오빠들보다 더 재능을 드러내서 칭찬을 받자 오히려 창피하게 여겨 '나 낫 놓고 기역자도 몰라요~ 한문 몰라유~'하고 말하고 다니고, <서기>(일본서기 등의 한문 역사서)를 잘 안다는 소리를 듣고 기겁해서 일기에 줄줄 변명을 늘어놓았을 정도다.

세이쇼나곤은 특히 당나라 시인 백거이의 시를 인용하거나 어레인지해서 잘 써먹어서 당시 유명한 문학가인 후지와라노 긴토와도 시를 교환한 적이 있었다.(이 긴토는 무라사키시키부도 엄청 좋아해서 와카무라사키라 부르며 들이대었다는 기록이 있다...)

이번에 보구로 나온 마쿠라노소시는 그녀의 대표적인 수필.

봄은 이런 풍경이 좋고~ 여름은 저런 풍경이 좋고~ 뿐만 아니라 귀한 이야기책을 빌려 필사하려고 하면 꼭 더럽히고 만다든지, 부채 그림을 의뢰했는데 예쁘게 그려져서 돌아오면 존나 기분 좋다든지 하는 일상의 희노애락이나 보고들은 이야기를 굉장히 솔직하게 표현해서 현대인들에게도 공감을 산다.(적어도 무라사키시키부일기나 겐지이야기보다는 납득할 수 있는 내용....)

또 남자와의 관계를 기록하기를 굉장히 꺼려했던 무라사키시키부와 달리, 마쿠라노소시 속에서는 남자 이야기도 꽤 많이 나온다.

전 남편이라든가 전 남친이라든가 시녀들이 동경하던 궁중의 아이돌이라든가 현남친 격인 남자 이야기를 상당히 아무렇지도 않게 쓰고 있다. 꺼려하는 뉘앙스는 전혀 없고, 심지어 세이쇼나곤이 남긴 몇 안 되는 시인 함곡관 오사카관문 운운하는 시... 내용만 보면 여자가 '나 허벌이라 생각하지 마셈'이라고 쫑크 주니 남자가 '님 허벌이잖슴'하고 답하는 내용인데 그걸 아무렇지도 않게 싣고 있으니....

다만 마쿠라노소시는 해석이 좀 다른 경우도 있는데, 이 수필이 쓰여진 시기는 이미 데이시가 몰락해서 쇼시에게 밀리는 처지였던 걸로 추정된다. 그런데도 그런 우울한 분위기는 거의 드러나지 않고(얻어맞고 내쫓긴 개의 일화에서 어렴풋이 비칠 뿐), 데이시와 그 시녀들이 깨발랄하게 지내는 모습이나 과거 회상만 소재로 나온다.

이를 두고 <초역 백인일수 우타코이>(만화 원작, 애니 있음)에서는 이치조 천황이 좋아하던 데이시의 살롱 분위기를 그대로 유지하는 척하여 정치적으로 밀리지 않게 하기 위한 전략으로 묘사되고 있다. 마쿠라노소시에 멋지고 근사한 귀공자로 등장하는 인물들도 그렇게 묘사해서 궁궐 사교계에서 쌉인싸로 소문내줌과 동시에 데이시를 비호해주길 바라는, 말하자면 윈윈 전략인 셈이다.

.....그렇다고 해도 세이쇼나곤의 나대는 성격이 패스되는 건 아니지만....

진짜 무라사키시키부랑은 하늘을 같이 일 수 없지 않을까 싶을 정도의 쌉인싸.

그걸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마쿠라노소시 에피소드가 오절(고세치, 궁중행사) 때. 이때는 지방관이 고르고 고른 여자들이 궁궐에 들어와 천황한테 춤을 바치는데, 고세치의 무희라고 부른다.

같은 행사를 무라사키시키부 일기에서도 묘사하고 있지만 이때 무라사키시키부는 '쟤들 남자들한테 얼굴 다 드러내고 허벌로 소문나게 생겼다.. 근데 나도 궁궐에서 시녀로 일하면서 존나 허벌됐다...'라고 우울해하는 서술을 한다.

반면 세이쇼나곤은 완전 기분째진다~~~~~~~~~~~~~!!!! 모드로.... 무희들이 어떻게 치장하는가 보고싶어서 친한 시녀들이랑 함께 말리는 시종을 쌩까고 대기실 문을 밀고 들어가거나, 무희들이 귀공자들과 썸씽 있을 거 같으면 아무도 부탁도 안 했는데 대신 연애편지를 써주거나.....(심지어 그 상대는 이년 옛날 남친이었음)

'궁궐에서 일하면 허벌로 좀 소문나도 궁궐 일을 잘 알고 있으니 남편이 궁궐에 일할 때는 도움될듯 ㅋㅋ' '나 궁궐 시녀들을 다 모아서 하숙집 차리고 싶음. 높으신 분들 소문도 주고받고 존나 재미질듯ㅋㅋㅋㅋㅋㅋㅋㅋㅋ' 같은... 미친 포지티브 멘탈을 보여줌.

두견새 노랫소리 듣고 시 짓겠다고 시녀들이랑 비도 오는데 우 몰려나갔다가 남의 집에서 노닥거리다가 시 짓는 건 까맣게 잊어먹고 돌아와서 데이시가 '그래 두견새 시 지었음?' '테헷-☆'하고 주고받는 대화도 있을 정도....

페그오에 나온 세이쇼나곤은 이런 똘끼에 초점을 맞춘 것 같은데...

무라사키시키부와의 관계는 절대 세탁 안 됨. 애들 성격 절대 노답임. 무리수 두지 마라 딜라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