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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구네집 이야기 시즌 2] 서울구치소 66 "이숙영 파워FM"

김유식 2010.06.17 10:39:30
조회 9313 추천 5 댓글 43


  12월 4일 금요일.


  시간이 빨리 간다.  조금 있으면 구속 두 달째다. 기상 점검 후 어제 읽다 남긴 ‘GQ’를 마저 읽고 아침식사를 했다. 떡국이 나오는 날이라 연두부는 먹지 않고 떡국 안에 들은 떡 4개만 먹었더니 배가 좀 고픈듯해서 국물도 마셨다. 사회에서는 절대 이런 다이어트 못한다. 여기에서만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주위 죄수들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것도 쉬운 건 아닌 것 같다. 여기 안에서는 할 수 있는 일이 극히 제한되어 있는데 그중에서 그나마 할 수 있는 것이 먹는 일이다. 나도 다이어트 초기에는 옆에서 무말랭이만 맛있게 먹어대도 침이 질질 고이고 뇌가 요동을 쳤지만 이제는 어느 정도 단련이 되어서 그렇게 배고프다는 생각도, 먹고 싶다는 생각도 없어졌다. 하지만 술은 예외다. 잘 말은 윈저 + 맥주 또는 잭 다니엘 싱글배럴 한 잔이 눈앞을 가린다. 그 때문에 잡지에서 술 광고가 나오면 오려두는 버릇이 생겼다. 맛있게 보이는 음식 사진은 안주감으로 같이 오려서 모아두고 있다.


  오전 7시부터는 SBS 라디오를 통해 ‘이숙영의 파워FM’을 한 시간 동안 들려준다. 무슨 노래가 나오는지, 무슨 뉴스가 나오는지 다들 관심 있게 듣는다. 나는 2007년 하반기쯤에 이 프로그램에 몇 달간 게스트로 나온 적이 있었다. 목동 SBS 빌딩에 가서 커피 한 잔 뽑아 마시고 기다리다가 사인이 나면 방송실 안으로 들어가 이숙영 씨가 묻는 것에 대답을 하는 코너였다. 사실 잘하지는 못했다. 내 이름이 ‘유식’이라서 했던 프로그램이었는데 좀 버벅거리는 바람에 몇 달간 하다가 잘리고 말았다. 아침에 일찍 하는 프로그램이라 귀찮기는 했지만 출근길에 들었다는 지인들의 문자 메시지 격려 때문에 나름 열심히 하기는 했다.


  구치소 안에서 자꾸 듣다 보니 이숙영 씨가 읽어주는 사연에 내 이야기도 나오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같은 방 사람들한테는 말하지 않고 아내를 통해서 방송국에 사연을 적어 보내라고 했다. 내용은 이렇다.


  “얼마 전에 그 프로그램에서 몇 달간 게스트로 나왔던 사람의 아내다. 남편은 현재 그 방송밖에 듣지 못하는 곳에서 살고 있다. 남편의 요청으로 신청곡을 적어 보낸다. 곡명은 빌리 조엘의 Just the way you are. 꼭 들려주길 바란다.”


  그래서 내심 방송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또 두식이는 곧 출소하면 연말에 친구들과 송년 파티를 할 텐데 팝송 하나 부를 수 있어야 된다고 하기에, “Just the way you are.” 가사를 적어주고는 외우라고 시켜 둔 것도 있다. 사실 음치 수준에 가까운 내가 불러줘 봤자 제대로 배우지 못할 것이기에 방송에서 나오기를 고대하고 있는 중인데 오늘도 나오지는 않았다.


  뜨거운 식수를 더 받아 머리를 감고 오전 점검 후에는 귤 하나를 까먹었다. 커피도 한 잔 마시고 운동을 나갔다. 오늘은 교도관이 운동장 배분을 헷갈렸다. 처음에는 1, 2호실 운동장에서 뛰라더니 잠시 후 5, 6호실이란다. 한 창 돌고 있는데 이번에는 다시 1, 2호실 운동장으로 옮기란다. 21바퀴 뛰고 와서 보니 권 변호사의 접견신청이 와 있다. 후다닥 옷을 갈아입고 가서 만났다. 오늘도 주수도 씨는 커다란 서류 뭉치를 들고 왔다갔다 바쁘다. 얼굴에 인자해 보이는 미소가 떠나지 않는 것도 신기하다. 그래서 대형 사고를 칠 수 있었던 것인가?

  방으로 돌아오니 오전 11시. 동생과 직원, 아내의 인터넷서신이 와 있다. 편지를 읽으며 답장을 쓰다가 점심으로 돼지찌개와 훈제 닭다리를 먹었다. 닭을 먹어서 연두부는 또 생략. 이러다가 연두부가 쌓여서 버릴 수밖에 없겠다. 양치를 하고 이재헌 사장이 4방에서 얻어온 고우영의 ‘십팔사략’ 만화책 1권을 읽고선 스르르 눈이 감겨 잠들고 말았다.


  깨어보니 오후 2시 30분. 갑자기 까마귀라고 불리는 경비교도대 한 명이 문을 열고 들어오더니 형광등 가리개를 뜯어간다. 뭐 한 달에 한두 번씩 있는 일이다. 뜯어 가면 또 달면 된다. 사실 나는 빛의 유무와 자는 것에 별로 큰 차이를 느끼지 못하는 올빼미 족이다. 예전에는 거의 아침 동이 틀 때면 잠자리에 들었다. 그런데 다른 죄수들은 그게 아닌가 보다. 형광등 가리개가 없으면 방 안의 형광등 두 개를 다 켜고 자야 하는데 그걸 참지 못한다. 조선생과 두식이가 잡지를 뜯어내어 풀로 덕지덕지 붙여서 두껍게 만든 다음에 구멍을 내고 실로 엮어 다시 만들었다. 평소에는 형광등이 두 개 다 보이지만 잘 때 이 가리개의 실을 당기면 형광등 하나를 가릴 수 있게 된다.


 귤 하나를 까먹으며 신문을 읽고 있는데 또 접견이 안 들어온다. 인터넷서신이 한 통 왔는데 직원인 줄 알았더니 명의만 빌린 아내의 편지다. 인터넷서신은 한 사람이 하루에 한 통밖에 보내지 못해서 직원 명의로 보냈나 보다. 어제 온다고 했다가 접견을 펑크 낸 친구는 아내가 전화로 출발시간 확인까지 했는데도 늦게 도착해서 신청을 못 했단다. 오후 4시까지 오면 접견 신청을 할 수 있는데 오후 4시 5분에 도착을 했단다. 이 친구는 원래 밖에서도 항상 약속 시간에 늦는 친구라 그러려니 했다.


  오후 3시가 넘어 접견이 왔다. 아내와 후배다. 이런저런 이야기하기엔 시간이 너무 부족하다. 내일은 오전에 일찍 온다니 좀 더 이야기 할 수 있겠지. 밖에서 일 정리가 제대로 안 되는 듯해서 마음이 무겁다. 후배는 내 눈이 다시 팬더가 됐다고 말했다. 사실 밖에 있을 때 나는 다크서클이 심해서 팬더 아니면 너구리라고 불린다. 내가 후배에게 이곳에서는 술도 못 마시는데 무슨 다크서클이냐고 했더니 아내도 못 본지 하루 사이에 눈 밑이 시커멓게 됐다고 한다. ㅠㅠ 아마 일이 잘 풀리지 않아서 그런 것이 아닐까?


  접견을 마치고 다시 방으로 돌아오니 오후 4시다. 책상을 펴고 일기를 썼다. 오늘 저녁 메뉴는 처음 먹어보는 계란찜.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지만 그래도 군대에서 먹던 것보다는 야채가 좀 많이 들어 있기는 했다. 계란찜을 먹어서 이번 끼니에도 연두부는 패스~ 결국 오늘은 한 개도 먹지 않았다. 계란찜이 짜지만 않아도 좋으련만 좀 짠 게 흠이다. 아마 싱겁게 하면 죄수들이 마구마구 퍼먹어서 소금을 많이 넣었는지도 모르겠다.


  식사 후에는 죄수들이 제일 좋아하는 ‘아이리스’ 6, 7회를 봤다. 그렇게 무지 재미있는지는 모르겠다. 엉성한 점도 많고, 한국 드라마라 그런지 멜로 부분만 부각되는 점도 그렇고 너무 미드 ‘24’를 의식했다는 느낌도 지울 수 없다. 여하튼 나한테는 ‘소이현’이 나오는 ‘보석비빔밥’이 더 재미있는 듯. 뉴스를 보고 나서 ‘십팔사략’ 2편을 읽다 잠들었다. 내일부터는 본격적으로 추워진다는데 걱정이다.



  12월 5일 토요일


  눈을 떠보니 오전 6시다. 얼굴에 한기가 느껴진다. 이불을 깐 방바닥은 뜨끈뜨끈한데 밖의 공기는 확실히 차졌다. 기상해서 이불을 개고 보니 밖에서 눈발이 내린다. 거의 첫눈이나 마찬가지. ‘십팔사략’ 3권을 읽다가 아침을 먹었다. 미역국이 많이 나왔기에 건더기를 먹고 연두부도 하나 먹었다. 씻고 나서는 오전 점검 후 평상복과 아내가 좋아하는 ‘폴라티’를 입고 접견을 기다렸다. 어제 아내가 오늘 오전 9시 36분으로 예약을 해뒀다. 12분짜리 접견이라 아무래도 평소보다는 시간이 넉넉하다. 접견을 마치고 돌아오니 아내와 직원의 인터넷서신이 두 통, 접견 민원서신이 한 통 들어와 있다.


  신입 장오는 바닥에 매일경제를 깔아놓고 읽다가 갑자기 화를 낸다. 이재헌 사장이 왜 그러느냐고 물으니 신문에는 연말 입시철이라 대학특집 간지를 냈는데 그 많은 대학 광고 중에서 자기가 다녔던 대학이 없다고 투덜거린다. 사실 투덜거리는 이상으로 화를 냈다. 이재헌 사장이 물었다.


  “니 대학 오데 나왔노?”


  “저요?”


  “니 말이다.”


  “저는 영상정보대학교요.”


  “그기 뭐꼬? 4년제가?”


  “네. 공주영상정보대라고 공주에 있어요.


  이재헌 사장은 대학을 나오지 않았다. 이재헌 사장이 더 묻지 않자 학창시절 운동을 열심히 했던 조선생이 질문을 이었다.


  “장오야. 전공이 뭐니?”


  “저요?”


  “.....”


  “저는 인테리어 학과예요.”


  “인테리어라.....”


  인테리어 학과 출신이 오토바이 택배를 하고 있다는 게 신기하다. 뭐 오토바이 택배도 열심히만 한다면 훨씬 더 돈을 많이 벌 수 있다. 이번에는 내가 궁금해졌다.


  “야. 장오야. 인테리어 학과 나온 녀석이 왜 택배 하냐?”


  “저요? 저 인테리어 일도 했었어요. 공주에서 친구랑 인테리어 가게 차렸다가 다 말아먹었어요.”


  “무슨 인테리어 했는데?”


  “실내도 했고, 실외도 했고 이것저것 다 했어요.”


  “오! 그래? 그러면 인테리어 잘 알겠는데?”


  “웬만하면 제가 다 할 줄 알죠. 사실 여기도 재료만 있으면 싹 다시 꾸미고 싶어요. 호텔방처럼.”


  역시 대학을 나오지 못한 두식이가 신기한 듯이 옆에 끼어들었다.


  “장오형! 지방 대학교에서는 MT가면 서로들 다 따 먹는다면서요? 그거 진짜예요?”


  두식의 뜬금없는 질문에 장오가 움찔하는 모습을 보였다. 장오가 대답했다.


  “뭐 그런다고들 하는데 나는 안 해봐서 잘 모르겠다.”


  두식이의 질문이 이어졌다.


  “에이~ 형 왜 그래요? 특히 예술 쪽들은 더 심하다던데요. 인테리어도 예술 쪽이니까 형도 그랬을 거 아니에요? 말해봐요.”


  “예술? 아냐 인마. 인테리어는 예술 쪽이 아니라 공학 계열 쪽이야. 뭐 다들 MT 가면 그렇게 논다고 하는데 나는 잘 모르겠다.” 


   - 계속 -

세 줄 요약.

1. 이숙영 파워FM에서 사연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2. 팬더처럼 다크서클이 심해졌다.
3. 장오는 공주영상정보대학 인테리어학과를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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