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 : https://gall.dcinside.com/board/view?id=frozen&no=3686952
2편 : https://gall.dcinside.com/board/view?id=frozen&no=3729330

어렴풋이 말소리가 들렸다.
"...스트레스로 인한 듯 합니다."
처음 듣는 목소리였다. 의사인 것 같은데, 억양으로 봐서 아렌델 의사는 아닌 듯 했다. 그리고 안나의 목소리도 들린다.
"스트레스요? 무슨? 아니 왜?"
"그건 선왕께서 깨어나신 뒤에야 알 수 있으실 테니, 일단 가서 좀 쉬셔야 합니다. 벌써 3일째 주무시지 않으셨습니다!"
카이의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3일을 특히 강조하는 목소리 로 봐서 꽤 피곤한 듯 했다.
"먼저 언니가 일어나면요. 무슨 일이 있었는지 다 듣기 전에는 이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을 거에요."
안나는 단호하게 말했지만 그녀의 목소리에도 피로감은 역력했다. 엘사는 당장이라도 일어나 안나를 눕히고 싶었지만, 지금 일어나면 빼도박도 못하게 안나에게 붙잡혀 모든 이야기를 털어놓아야 할 것이다. 그런 일은 방금 깨서 몸도 안좋고 현재 상황을 아무것도 모르는 엘사에게도, 피곤한 안나에게도 좋지 않았다. 일단 지금 어떻게 되고 있는지를 아는것이 먼저였기 때문에, 엘사는 박차고 일어나려는 충동을 가까스로 누르고 죽은 듯 기다렸다. 안나가 3일째 잠을 자지 않았다면, 곧 쓰러지길 기다리는 건 시간문제였다. 아니나 다를 까, 두 시간이 채 지나지 않아 안나는 엘사의 다리를 베고 잠들었고 카이는 조용히 시녀들을 불러 안나를 침실로 옮겼다.
카이가 낮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기다리고 있었다는 말투였다.
"일어나셔도 됩니다, 선왕폐하."
"...알고 있었어요?"
"아까부터 계속 손이랑 눈이 움찔움찔 하시더군요. 여왕님께서 피곤하셔서 놓치신거지, 굉장히 티가 많이 났습니다."
"아.. 그런줄도 모르고 혼자 누워있었네. 왜 안깨우셨어요?"
"일어나셨는데 일부러 누워계시는데는 이유가 있을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평소 생각 없이 행동하시는 분도 아니고요."
카이는 마지막 문장에 특히 힘을 주고 말했다. 그 일을 말하는 게 분명했다. 이번엔 엘사가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 말 없이 일어나 천천히 걸어가 창문 밖을 내다보는 순간 엘사는 경악할 수 밖에 없었다. 분명 자신의 마지막 기억은 가을이였는데 밖은 눈이 두껍게 쌓인 한겨울의 모습이였다. 엘사가 급히 물었다.
"제가 몇 일만에 깨어난거죠?"
"3일입니다. 폐하. 깨신걸 보고 아까 일부러 3일이라고 넣어 서 말한건데요."
그걸 모르는 게 아니였다. 가을이 3일이 지났다고 함박눈이 내리는 겨울이 되지는 않는다. 적어도 아렌델에선. 그런데 이런 일이 일어났다는건..
"...제가 만든 겨울인가보군요."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좀 쉬셨다가 치우세요."
카이가 바로 눈을 치우려다 갑작스런 어지럼증을 느끼고 비틀거린 엘사에게 말했다. 3일을 내리 기절한 채로 있었는데, 일어나자마자 능력을 쓰는 건 무리였다.
"생각을 정리하시고 일을 다 듣고 하셔도 늦지 않습니다. 아 직 선왕 폐하께서 깨신 걸 아는 사람도 저 밖에 없으니."
"어떻게 된 거죠?"
밖은 공사가 한창이였다. 인부들이 항구와 성, 마을 입구쪽에 박힌 거대하고 날카로운 얼음 조각들을 제거하려고 애쓰는 중이였다. 피해는 생각보다 심했다. 성의 벽은 온전한 곳이 없었고, 항구의 한쪽 방파제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마을에는 파편들이 군데군데 박혀 있었고, 너무 날카로워 만지면 크게 다칠까봐 섣불리 손을 댈 수도 없는 상황이였다.
"보시는 대로입니다. 최대한 빨리 보수 공사를 진행....
"사상자는요?"
"가벼운 자상을 입은 사람이나 감기에 걸린 사람은 좀 있지만 크게 다친 사람은 없습니다. 여왕님께는 언제 깨어났다고 말씀드릴까요?"
"안나 잠 좀 잔 다음에 말해주세요. 내일쯤이 나을 것 같은데.."
"알겠습니다. 편히 쉬고 계세요. 식사는 시녀 대신 제가 직접 오겠습니다."
저 사려 깊은 노집사는 내가 어쩌다 그런 미친 짓을 했는지도 물어보지 않아주었다. 항상 내 곁에는 과분한 사람밖에 없다. 부모님이 계셨을 때는 왕명이였다 할 지라도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에도 친부모처럼 따를 수 있던, 성 안에서 안나 다음으로 가장 믿을 수 있는 사람이였다. 고생 참 많이 하셨지, 지금까지도 그래오셨고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당장 3 일동안 안나는 내 곁에만 있었다는 건 그동안의 모든 사고상 황 파악과 복구작업, 피해보상, 그리고 밀린 업무를 누군가 대신 했다는 것이고, 그건 권한이 있는 자신과 안나를 제외한 유일한 사람인 카이일 것이다. 자신은 또 주변 사람에게 피해만 주었다. 기껏 두 달 만에 온 고향에서조차.
엘사는 도통 잠이 오질 않았다. 3일 내리 누워있었기 때문은 아니였다. 엘사 자신을 이렇게 만든 부모님의 죽음은 결국 자신 때문이라는 생각이 오늘따라 도저히 머릿속을 떠나 지 않았다.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는 힘을 원망했다. 이 저주받은 힘만 없었다면 자신은 평범한 이들과 다름없이 평범한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보내고 무탈히 여왕이 되어 가족들과 행복하게 살았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힘은 오히려 아렌델이 더 강한 나라로 성장하는 것을 도와주었다. 악의로 사용할 리 없다는 것을 잘 알았지만 분명 존재하는 마법은 주변 국가들이 아렌델을 좀 더 신경 써서 대우하도록 해주었고, 일상생활에서도 나름 쓸모 있었으며 그 힘을 가진 지금의 자신이 다섯 번째 정령이라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무엇보다 이 힘은 어릴 적 안나와의 잊을 수 없는 추억들을 만들어 줬다.
그 다음으로 원망한 건 부모님이었다. 언젠간 엘사 자신이 이 힘을 통제할 것이라고 믿어왔지만 결국 그들이 더 이상 기다리지 못하고 성급히 떠나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렇게 한심할 수 없지만 그 때는 그렇게 자신을 위로하고 더 마음을 걸어잠그며 버텼다. 하지만 부모님의 잘못 역시 아니였다. 자식을 위한 부모님의 행동이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 자식은 없다. 결국 엘사가 원망한 건 자기 자신이였다.
목표를 찾은 원망의 화살은 주체할 수 없이 쏟아졌고, 상처는 뜯은 손가락처럼 덧나기만 하고 아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자신에게 주어진 이 힘도, 그런 자신을 위해 목숨을 내던 진 부모님의 잘못도 아닌 통제하지 못한 자신의 잘못이였다. 애초에 처음부터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인정하기 싫어 다른 곳에 원망을 표출할 대상을 만드려 애썼지만 현실은 그대로였다. 달라진 것이라곤 옛날에는 그 생각을 하며 힘들어 할 때 안나에게 기댈 수 있었다는 것이고 지금은 더 이상 기댈 수 없다는, 아니 기대서는 안된다는 것이였다. 안나에게까지 미친 생각은 붙잡고 있던 마침내 어거지로 붙잡고 버티던 마지막 이성의 끈을 잘라버렸고 엘사는 미친 듯이 소리를 질렀다.
"으아아아아아아악!"
너무 싫었다.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지 못하고 남들만 탓하던 과거의 자신도 싫었고, 결국 이런 상황에서도 남에게 기댈 생갈만 하는, 나아진 것 현재의 자신은 더욱 혐오스러웠다. 받았던 도움들을 언젠가 돌려줄 수 있을 거란 믿음과 현실, 그 둘 사이의 괴리감에서 오는 고통은 이번을 기폭제로 터져버려 더 이상 버티기 힘들었다. 그저 소리만 질렀다. 이 소리를 듣고 깬 누군가가 자신을 죽여버렸으면 했다. 복도에서 나지막히 누군가 뛰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카이겠지, 이 성에서 내가 깬 걸 아는 사람은 카이밖에 없으니. 그는 이런 날 보며 괜찮을 거라고만 말했다. 언젠간 괜 찮아질 거라고, 언젠가는 다 웃어넘길수 있는 때가 온다고. 미안해요 카이, 그건 아닌 것 같아요. 엘사는 남은 온 힘을 써 서 얼음을 모아 총을 한 자루 만들었다.
"폐하!"
숨이 넘어갈 듯 헐떡이며 문을 박차고 들어온 카이가 본 건, 정령은 자신의 손으로 자신을 어떻게든 해할 수 없다는 걸 알 고 미친듯이 울고 있던 엘사였다.
설정상 자해는 못함 타살은 몰라도
총 나오는건 이해좀 해줘 고증하기엔 머리가 아파서
읽느라 수고했다
댓글 영역
획득법
① NFT 발행
작성한 게시물을 NFT로 발행하면 일주일 동안 사용할 수 있습니다. (최초 1회)
② NFT 구매
다른 이용자의 NFT를 구매하면 한 달 동안 사용할 수 있습니다. (구매 시마다 갱신)
사용법
디시콘에서지갑연결시 바로 사용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