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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갤문학/크로스오버] 얼티밋 스파이더맨-프로즌 웹 25화

차빙수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0.04.05 11:5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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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GAAAAAAAAAAAAAAAAHHHHHH!!!!"


눈앞이 캄캄했다. 말 그대로.

단 한줄기 빛도 들어오지 않아 완벽하게 캄캄한 어둠 속에 갇혀버린 스핑크스는 고통스럽게 울부짖으며 날카로운 손톱으로 눈의 화살을 뽑아냈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것은 여전했다. 고통스럽게 울부짖는다? 사실 그것도 맞는 표현이 되지는 못했다. 스핑크스는 아무런 감정도, 고통도 느끼지 못하는 주인님의 도구일 뿐이니까. 포효와 비명과 같은 스핑크스의 반응은 모두 주인님이 스핑크스의 머릿속에 입력해준, 말하자면 프로그램과 같았다. 적을 만났기에 포효를 내질렀고, 공격을 맞았기에 비명을 질렀다. 이러한 감정 표현들이 너무 자연스럽게 잘 만들어져 있어서 평범한 사람들은 눈치채지 못하는 것 뿐이었다.

스핑크스의 주인님이 무려 수천년이 넘는 세월 동안 마법을 갈고닦아왔음을 고려하면 이 정도는 당연한 것이었다. 비록 지금은 거의 모든 마력을 잃고 예전에 내던 힘의 반은 커녕 4분의 1도 낼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렸지만, 주인님은 여전히 위대했고 그 누구보다 강력한 마법사였다. 스핑크스는 주인님의 영혼이 박살나는 지경에 이르렀는데도 주인님은 왜 스스로를 위대하다고 칭하는지 항상 의문이었지만, 그것을 굳이 지적해야 할 이유는 없었다. 스핑크스는 오로지 주인님에게 봉사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존재니까.

스핑크스의 가장 큰 관심사는 주인님의 명령을 수행하는 것이었고, 그 다음 관심사는 움직이는 모든 것들을 파괴하는 것이었다. 스핑크스의 형제들도 마찬가지였다. 형제들 중에 어떤 녀석은 엄청나게 작고 어떤 녀석은 비쩍 말랐고 또 어떤 녀석은 너무 유순하게 생겼지만, 모두의 관심사는 하나로 통일되어있었고 그것만이 스핑크스와 형제들이 살아가는 유일한 이유였다.

주인님은 스핑크스와 형제들에게 아주 간단하고 명확한 명령을 내렸다. 엘사 여왕이 사랑하는 모든 것을 부수고 주인님을 되찾아오라는 것이었다. 스핑크스는 물론이고 다른 형제들도 처음에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주인님이 여기에도 있고 저기에도 있나? 저쪽의 주인님이 이쪽의 주인님이랑 다른 게 뭐지? 왜 저쪽의 주인님은 직접 움직이지 않는 걸까? 그러나 스핑크스는 물론이고 다른 형제들도 그 이유를 굳이 물으려 하지 않았다. 무슨 상관인가? 주인님의 명령을 수행하는 것 말고 우리에게 중요한 것이 더 있단 말인가? 아니지, 그럼.

그래서 스핑크스와 형제들은 아렌델을 향해 긴 여정을 시작했다. 도중에 형제들의 발길질에 바위가 밟혀 박살나든 나무가 통째로 뽑혀나가든 상관없었다. 이들의 목표 1순위는 주인님의 명령이었다. 주인님을 위해서라면 다들 기꺼이 목숨을 바칠 각오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잘 풀려나갈 것만 같던 스핑크스와 형제들의 여정은 하늘 저편에서 들려온 우렁찬 굉음과 함께 제대로 틀어지고 말았다.

스핑크스는 싸움을 기억했다. 지축이 우르르 울리고, 칼바람이 쌩쌩 휘몰아치고, 강물이 울컥울컥 흘러넘치고, 불길이 확 피어오르는 싸움을. 형제들이 갈라진 땅 아래로 곤두박질치고, 폭풍에 휘말려 산산조각나고, 강물을 뒤집어써 녹아내리고, 타오르는 불길에 흔적도 없이 사라지던 치열한 싸움을. 정확히 그곳에서 정확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까지는 기억하지 못했다. 스핑크스는 기억하라고 만들어진 도구가 아니었으니까. 중요한 사실은 형제들이 그 무시무시한 놈들에게 학살당하고 있는 동안 오로지 스핑크스만이 몰래 빠져나올 수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스핑크스는 동료들이 모두 죽어버렸다는 사실 따위에는 관심이 없었다. 약해빠진 놈들. 죽든 말든 상관없다. 자신이라도 살아남아 주인님의 명령을 수행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 제일 기쁠 뿐이었다. 더군다나 주인님은 이미 여왕에게 자신의 의지를 전달할 수단으로 스핑크스를 선택했으니 명령을 수행하는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이 되어야 했다. 스핑크스가 인간과 비슷한 얼굴과 구강구조를 가지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었다. 말을 못하면 의지도 못 전달하니까.

그렇게 스핑크스는 아렌델에 도착해 모든 것을 마구잡이로 부수기 시작했고, 그를 막을 것은 아무것도 없어보였다. 웬 인간처럼 생긴 괴상한 벌레놈이 나타나서 훼방을 놓기 전까지는 말이지. 주인님은 이 벌레의 정체를 알고있는 듯 자신을 통해서 벌레에게 계속 말을 걸었지만, 주인님이 벌레에게 무슨 말을 하는지 따위에는 관심없었다. 애초에 스핑크스는 저 벌레놈이랑 이야기를 나누러 온 것이 아니었으니까.

눈 한쪽을 잃고, 양 날개가 다 녹아버리고, 꼬리의 눈 두 개 마저 봉쇄당한 상태에서도 스핑크스는 거미와 치열하게 싸워 승리를 거두기 직전의 상태에 이르렀다. 그러나 거미의 숨통을 끊으려 하는 그 순간, 어디선가 날아온 날카로운 무언가가 스핑크스의 남은 눈 하나를 찔러 멀게 만들어버렸다. 명령을 수행할 수 없게 되어 당황한 스핑크스는 앞다리 한 쌍을 여기저기에 쾅쾅 구르고 공중에 쉭쉭 휘두르며 제자리에서 발버둥치듯 돌기를 반복했다. 그 형상은 마치 거대한 개 한 마리가 자신의 꼬리를 쫓아 뱅뱅 도는 모습을 연상케 했다.


"RRRRRAAAAAHHHHHHHHH!!!!!!"


어디로 사라졌지? 어디 있는거야? 왜 아무것도 안 보이지? 감히 주인님의 명령을 수행하는 나를 방해하다니. 거미 녀석, 잡히면 죽여버리겠어. 이성 따위 존재하지 않는 스핑크스의 속에 내재된 투쟁본능이 속으로 수십 가지 욕을 퍼부어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것은 여전했다. 혹시 꼬리에 감긴 거미줄을 잘라내버리면 다시 앞을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래. 꽁무니에 달린 눈이라고 하더라도 눈은 눈이었다. 왜 지금까지 그 생각을 못했을까? 뭐 상관없었다. 스핑크스는 생각하기 위해 만들어진 도구가 아니니까.

스핑크스는 마구 발버둥치는 꼬리를 앞발로 콱 잡고 자신의 날카로운 발톱으로 꼬리 끝에 달린 뱀 머리의 정수리 부분에 길게 칼집을 내어 거미줄을 힘겹게 잘라냈다. 투두둑 하고 거미줄이 끊기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끈끈한 거미줄은 여전히 뱀의 머리에 단단히 붙어 양 눈을 가리고 있었다. 피터 파커 특제 거미줄을 과소평가한 스핑크스는 불같이 화를 내며 이번에는 아예 이빨로 뱀 머리를 물고 우두둑 우두둑 거미줄을 뜯어내려고 애를 썼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꼬리 부분에서 뜯어져나간 것은 거미줄이 아니라 뱀의 머리였다. 의도치 않게 꼬리 끝을 뜯어먹은 스핑크스는 화를 못 참고 크게 울부짖었지만, 어째서인지 곧 잃었던 양 눈의 시력이 서서히 돌아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이스 몬스터들은 공통적으로 얼음을 흡수해 상처를 치유하거나 자신을 강화시킬 수 있지 않은가? 따지고 보면 스핑크스의 몸은 온통 얼음으로 이루어져 있으니 꼬리를 뜯어먹으면 얼음을 흡수한거나 마찬가지인 격이었다.

물론 이런 사실을 애초에 생각조차 해보지 못한 스핑크스는 그저 돌아온 시력을 십분 활용해 자신의 목표를 찾아 파괴하는 데에만 온 신경을 집중했다. 목표. 목표를 찾아서 파괴하고 여왕이 사랑하는 모든 것들을 부숴야 한다. 그러나 그 전에 목표 달성을 방해하는 성가신 거미 녀석을 찾아 해치우는 게 먼저였다. 스핑크스가 스파이더맨을 찾기 위해 뒤룩뒤룩 눈알을 굴리자 가장 먼저 성벽이 눈앞에 들어왔다. 아니야. 성벽은 다음 목표다. 첫 번째 목표는 거미를 찾아서....

그런데 성벽이 저렇게 작았던가? 거기다 뭔가에 매달려있는 것 같은데? 왜 날 향해서 가까이 다가오는 것 같지? 아니 그냥 가까이 다가오는 수준이 아니라 거의 돌진하다시피 하고 있ㅡ


퍽석!!


"GAAAAAAAOOOOOOOOOO!!!!"


경쾌한 콰지직 소리와 함께 스핑크스의 눈앞이 다시금 깜깜해졌다.



~~~~~~~~~~~



두려움. 엘사에게 있어 두려움은 최대의 적이자 자신을 항상 따라다니는 스토커같은 존재였다.

젊은 나이에 매서운 파도로 인해 부모를 잃고 왕권을 물려받은 엘사는 혹여 자신이 신하들과 국민들의 기대에 못 미치는 사람이 될까봐, 그리고 동시에 자신이 가진 최대의 비밀이 들킬까봐 항상 두려움에 떨며 지냈다. 엘사가 가진 힘은 여태까지 민간에 목격되었다 전해진 어떠한 종류의 마법보다도 강력해보였고, 그녀의 부모조차도 그 힘을 두려워해 평생을 숨기고 살라고 명령할 정도였다. 그러나 그 누구보다도 엘사가 가진 힘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다른 누구도 아닌 엘사 자신이었다.

마법을 가지고 놀다가 안나를 거의 죽일뻔한 사건은 엘사의 마음속에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트라우마로 남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어린 시절에 대한 기억은 점차 희미해져갔지만 그 사건 하나만큼은 어제 일처럼 또렷이 기억에 남았다. 그 날의 기억을 머릿속으로 몇백 번이나 다시 되돌아보며 그렇게 스스로를 몇 번이나 자책하고 원망하고 또 혐오하면서 홀로 지낸 세월만 해도 무려 13년이었다. 세상으로부터 스스로를 격리시켰던 엘사는 부모님이 돌아가시자 자기혐오와 두려움을 그대로 간직한 상태로 어쩔 수 없이 세상 밖으로 나왔고, 그 결과 불과 하루도 안 되어 또다시 스스로를 고립시키며 온연히 혼자가 되는 길을 선택했다.

해가 떠오르는 북쪽 산 위에서 엘사는 지금껏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자유에 환희하고 전율했지만, 한편으로 이것이 완벽한 해결책이 될 수 없음 또한 인지하고 있었다. 이성적으로 판단하는 것을 좋아하는 엘사에게 있어 자신의 행동은 그 자체로 모순투성이였고, 그것을 이미 알고 있음에도 엘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마음 속 깊이 자리잡은 두려움이라는 괴물은 이미 엘사의 이성을 눌러버린지 오래였다. 엘사는 자유로웠지만, 책임을 걸레짝처럼 내던지고 획득한 자유만큼 덧없고 공허한 것은 없었다.

그 뒤 엘사는 자신을 찾으러 온 동생을 또다시 상처입혔고, 한스에게 납치당해 아렌델로 돌아왔다. 또한 눈앞에서 안나가 자신을 구하려다 얼어붙어버리는 것, 또 진정한 사랑의 행동으로 인하여 다시금 녹아내리는 것을 지켜보았다. 또한 사랑이 모든 것의 해답임을 깨달아 마법을 완벽하게 제어할 수 있게 되었고, 얼어붙은 모든 것을 원상태로 되돌린 뒤(애초에 아렌델은 사시사철 겨울이나 다름없으니 의미가 없긴 했지만) 영원히 성문을 닫지 않을 것임을 약속했다. 그러나 자신의 마법을 녹인 사랑이라는 감정조차도 엘사가 가진 죄책감을 없애주지는 못했다.

안나와 크리스토프, 카이, 라그나르, 그리고 아렌델의 국민들은 이미 열린 마음으로 엘사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었지만, 엘사는 여전히 자기 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다. 국민들에게 누를 끼쳤다는 죄책감에 엘사는 자신이 입힌 위해를 배상하기라도 하듯 닥치는 대로 일거리를 만들어 많이 과하다 싶을 때까지 스스로를 혹사시켰고,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아무리 작은 불평불만이라도 직접 나서서 해결해주었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엘사는 버틸 수 없었다. 마음 속에 깊이 박혀버린 두려움과 자기혐오는 그렇게 쉽게 사라지는 것이 아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여왕의 마음은 차츰 안정되어갔지만 어디선가 갑자기 나타난 괴물들의 습격은 엘사의 마음 속에서 잠들어있던 극심한 두려움을 다시금 깨우고 말았다. 마치 모든 것이 자신의 탓인 것만 같았다. 괴물들이 어디서 오는지, 뭘 원하기에 아렌델 사람들을 이토록 괴롭히는 것인지도 모르는 채로 계속되는 공습에 신음하는 수비대원들과 시민들을 바라만 보아야 한다는 것이, 자신이 그토록 두려워하고 억제하기 위해 노력해온 마법이 저들 앞에서는 아무런 소용도 없다는 것이 원망스러웠다.

끝없이 이어지는 공격과 점점 여유를 잃어가는 시민들의 얼굴을 보며 엘사는 속으로 몇 번이고 자신의 무능함을 자책했고, 종국에는 모든 것을 잃고 말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일어나 엘사의 정신을 갉아먹었다. 희망이 보이지 않았다. 그 어떤 것도 자신들을 구해줄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스파이더맨이 나타났다.


"GAAAAAAAOOOOOOOOOO!!!!"


엘사의 투석기가 성벽에서 떨어져나온 잔해 하나를 공중으로 팍 쏘아올렸다. 하늘 높이 붕 떠오른 성벽 조각이 괴물에게 투쾅 부딪혀 박살나면서 양 눈이 박살나고 안면부에 큰 균열이 생겨나자 괴물의 움직임이 눈에 띄게 굼떠졌다. 투석기가 제 몫을 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한 스파이더맨은 안나가 응급처치를 모두 끝내자 어깨를 몇 번 돌려 뻐근함을 털어낸 뒤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엘사 일행에게 고개를 돌렸다.


"좋습니다. 저 괴물은 몇 번을 때려부숴도 자기 몸을 뜯어먹으면서 회복할 수 있다는 걸 이미 학습했어요. 그러니까 지금부터는 놈에게 여유를 줘선 안돼요." 스파이더맨이 말했다. "그러니까 우선은 놈의 시력이 회복되는 대로 제가 나서서 시선을 끌거예요. 녀석이 제게 정신이 팔린 동안 동안 안나 공주님과 크형이 스벤의 썰매를 타고 괴물에게 가까이 접근해서 녀석의 다리에 히팅 웹 용액을 끼얹어야 해요."


"다리에? 왜 하필 거기야? 다리를 녹여도 다시 재생하면 말짱 꽝이잖아?" 크리스토프가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재생할 여유가 없게끔 막아야죠. 제가 스핑크스의 얼굴 부분에 집중적으로 달라붙어서 마크할 테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스파이더맨은 스벤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두 분이 다치지 않으려면 네가 최대한 신속하게 움직여줘야 해. 괴물의 발에 밟히지 않게 조심하고.할 수 있지 스벤?"


"푸르르르륵!" 스벤은 마치 뿔 난 황소처럼 머리를 거칠게 흔들고 앞발로 땅을 긁었다. 긍정의 뜻인 모양이었다.


"그, 그럼 난? 난 뭘 하면 돼?" 엘사가 살짝 초조한 눈길로 양 손을 모아쥐었다. "나도 어떻게든 도움이 되고 싶은데..."


"그렇게 초조해하지 마세요, 여왕님. 여왕님의 역할이 가장 중요해요. 일단 다리 하나가 녹아내리면 여왕님이 녹아내린 물을 다시 얼려서 땅에 고정시키는 거예요. 나무 뿌리처럼 단단하게, 아예 움직일 수 없게 말이예요." 스파이더맨이 엘사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이렇게 계속 반복하다가 스핑크스가 완전히 움직일 수 없게 되면 그 때 투석기랑 화살을 몽땅 쏟아부어서..."


"끝장을 내는 거구나! 간단하네!" 안나는 히팅 웹 용액병을 잔뜩 꺼내들고 자신감 넘치는 미소를 지었다. "저 녀석한테 우리 가족의 연계공격을 보여주는 거야! 언니, 잘 할 수 있지?"


"어? 어, 응. 그럼. 당연하지." 엘사는 긴장한 표정으로 연신 심호흡을 하며 무언가를 계속 중얼거렸다. "후우 후우. 난 할 수 있다. 난 할 수 있다. 무섭지 않다. 무섭지 않아..."


"너무 그렇게 스스로를 몰아붙일 필요는 없어요, 여왕님." 스파이더맨이 엘사의 어깨를 몇 번 톡톡 두들겼다. "마음을 편히 가지세요. 여왕님은 무슨 일이든 항상 잘 해내오셨잖아요. 이번이라고 다를 게 뭐 있겠어요?"


또다시 스파이더맨의 여유롭고 친근한 어조가 엘사의 마음을 어루만졌다. 엘사는 긴장이 눈 녹듯 사라지는 것을 느끼며 스파이더맨에게 미소로 화답했다.

엘사가 지금까지 믿어왔던 온갖 상식과 관념들은 이 남자 앞에서는 모두 무용지물이었다. 아렌델에 온지 채 하루도 지나지 않아 스파이더맨은 수비대 전 병력이 매달려도 완전히 쓰러뜨릴 수 없었던 적들을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단숨에 박살내버렸다. 자신은 며칠은 걸려야 처리할 민원들이 스파이더맨의 손에서 삽시간에 해결되었고, 자신은 손도 못 대던 괴물들은 스파이더맨의 주먹 몇 방에 산산히 분해되었다. 그와 이야기를 나눌 때마다 엘사는 이 동생뻘 되는 청년의 작은 머릿속에 자신 이상으로 많은 지식이 들어있음을 느꼈고, 그가 몸을 움직일 때마다 엘사는 경외감과 부러움이 섞인 시선으로 그의 뒷꽁무니를 쫒았다.

가만히 앉아서 바보가 되어버린 느낌이었다. 딱히 자신보다 더 나은 사람에 대한 질투라기보다는 왜 자신은 저만큼 하지 못할까 하는 자책에 가까운 감정이긴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등감이 생겨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엘사는 스파이더맨을 보며 자신은 결코 이렇게 대단한 사람이 될 수 없을 것이라고 또다시 스스로에게 프레임을 덧씌웠다.

하지만 스파이더맨은 그런 엘사의 부정적인 마인드를 정확히 짚어주며 엘사의 강점에 대해서 열변을 토했다. 여왕님, 누군가가 자신보다 더 뛰어난 것 같다고 해서 개의치 마세요. 여왕님은 이미 그 자체만으로 정말 훌륭하고 위대한 사람이잖아요, 한 나라의 군주가 되기 위해서 굳이 완벽할 필요는 없어요. 그냥 평소대로, 여왕님이 제일 잘하는 방식으로 사람들을 이끌어주시기만 하면 돼요.

돌아가신 어머니조차도 자신에게 해주지 않았던 말이었다. 안나를 제외하고는 어느 누구에게도 듣지 못했던 말을 이방인에게서 듣는다는 것은, 그리고 그 말 몇 마디로 인해 마음속에 자리잡은 열등감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다는 것은 참 신기한 기분이었다. 스파이더맨은 이렇게 여왕의 마음을 긍정적인 부분으로 이끌어주며 그녀의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던 두려움을 천천히 지워버리고 있었다.

그때서야 엘사는 스파이더맨의 진정한 강점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었다. 친근함. 편안함. 스파이더맨은 마냥 우러러볼 수 밖에 없는 하늘같은 존재가 되기를 거부하고 사람들과 직접 소통하며 그들의 마음을 일일이 어루만져주는 친절한 이웃의 역할을 선택했다. 누군가에게는 사소한 고민으로 보이는 문제들도 스파이더맨은 함께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주었고, 누군가가 슬퍼하고 있으면 스파이더맨은 그 아픔에 마음 깊이 공감하고 그 사람을 다시 웃게 만들기 위해 열심히 뛰어다녔다. 명예나 영광은 스파이더맨에게 있어 부수적인 것에 불과했다. 그가 진정으로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자신이 지키고자 하는 시민들, 그리고 그의 눈앞에 서 있는 엘사 자신이었다.

이러한 스파이더맨의 존재는 엘사의 마음가짐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두려움은 여전히 엘사의 온몸을 칭칭 휘감고 그녀를 완전히 삼켜버리기 위해 눈을 부라리고 있었지만, 엘사는 오늘만큼은 그 공포의 또아리에 당당히 맞설 준비가 되어 있었다.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무섭고 떨렸지만, 아주 조금이라도 스파이더맨에게 도움이 될 수만 있다면. 나의 국민들을 지키기 위해 묵묵히 목숨을 던지는 저 아이에게 아주 조금이라도 보답을 해 줄 수만 있다면!


"네 말이 맞아, 피터." 스파이더맨의 이름을 부르는 엘사의 목소리는 여느 때보다 다정했다. "우린 할 수 있어. 함께라면 뭐든지 해낼 수 있어."


"바로 그거예요! 자, 신속하게 움직입시다. 아렌델의 모든 시민들의 목숨이 우리에게 달려있어요! 이제 우리는 아렌델 사상 최초의 히어로 팀이 되는 겁니다!" 스파이더맨은 다시 마스크를 뒤집어쓴 뒤 썰매의 등받이를 박차고 스핑크스를 향해 뛰어들었다. "워리어즈 오브 아렌델(Warriors of Arendelle), 어셈블!!"


스파이더맨의 구령이 떨어지자마자 엘사는 날개를 크게 퍼덕이며 푸른 하늘로 솟구쳐올랐고, 스벤은 안나와 크리스토프를 태우고 엄청난 속도로 달리기 시작했다. 스파이더맨은 거미줄을 타고 도약해 그새 꼬리를 한입 더 뜯어먹고 시력을 회복한 스핑크스의 한쪽 눈을 주먹으로 쳐서 또다시 박살냈다. 스파이더맨의 강철 건틀릿은 눈을 파괴하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연속해서 괴물의 얼굴을 내리치며 안 그래도 못생긴 얼굴을 더욱 못생기게 콰직 콰직 일그러뜨려버렸다.


"{{이-거-미-새-끼!!!!!}}" 오늘만 해도 벌써 4번째로 눈을 잃은 스핑크스는 뒷발을 땅에 단단하게 디디고 매우 큰 소리로 울부짖으며 얼굴에 달라붙은 스파이더맨을 향해 앞발을 휘둘렀다. "{{죽-어-버-려!!!}}"


"미안한데 난 100살까지 살 예정이거든? 지금 죽을 계획은 없다 이거야!" 스파이더맨은 한층 감각을 곤두세우고 괴물의 앞발을 요리조리 피해냈다. 도중에 거미줄을 쏘아 스핑크스의 얼굴을 덮어 화를 돋구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나저나 와우, 손님! 마스크 디자인 정말 끝내준다! 어디서 사셨어요?"


"GAAAAAAAAAAAAAAAAHHHHHH!!!!"


괴물이, 아니 괴물 너머의 무언가가 울분을 못 참고 마구 악을 쓰고있는 동안, 스벤의 썰매가 괴물의 뒷꽁무니에 도달했다. 공중에서 붕붕 소리를 내며 이쪽저쪽으로 흔들리는 꼬리를 피해 몸을 숙인 크리스토프와 안나는 서로 마주보고 고개를 끄덕인 뒤 히팅 웹 용액이 담긴 병을 마구 흔들어 스핑크스의 발등에 던져 팍 깨트렸다. 뒷발 한쪽이 순식간에 녹아내리자 스핑크스는 중심을 잃고 휘청거렸지만, 스파이더맨이 얼굴에 달라붙어 시야를 가리고 있었기 때문에 뒷발에 정확히 무슨 일이 생겼는지까지는 파악하지 못했다.

엘사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허공에서 급강하해 곤죽이 되어버린 괴물의 왼쪽 발을 향해 냉기를 팍 쏘았다. 여왕의 손에서 뻗어나온 차갑고 건조한 기운은 방금 전까지만 해도 한없이 녹아내리고 있던 괴물의 뒷발을 급속히 냉각시켜 바닥에 단단히 뿌리를 내리게 했다. 스핑크스가 발을 움직일 수 없다는 것을 확인한 후 세 사람은 방금 전과 같은 방식으로 오른쪽 뒷발까지 마저 꽁꽁 얼려버린 뒤 신속하게 자리를 이탈했다. 순식간에 뒷발이 봉쇄당한 스핑크스는 제자리에서 발버둥을 쳤지만 이미 땅바닥에 깊숙히 뿌리를 내린 뒷발은 움직이지 않았다.


"1단계 완료! 와후우우!!" 아드레날린이 머리까지 치솟아오르자 잔뜩 흥분한 안나는 폴짝폴짝 뛰며 스파이더맨을 향해 손을 마구 흔들었다. "스파이디! 뒤쪽은 다 끝냈어!"


"잘했어요! 이제 가장 어려운 부분만 남았어요! 2단계 시작!" 스파이더맨은 안나를 향해 엄지를 치켜세운 뒤 아크로바틱하게 공중제비를 넘으며 땅바닥에 내려선 후 괴물의 양 앞발을 향해 굵은 거미줄을 쏘아 아래로 있는 힘껏 잡아당겼다.


"우리 차례야 스벤! 최대 속력으로!!"


스핑크스의 양 발이 쾅 소리와 함께 땅에 떨어지자 크리스토프는 고삐를 강하게 쥐고 경사로에서 드리프트하듯 매끄럽게 괴물의 가랑이 사이로 스벤을 몰았다. 스벤의 썰매가 스핑크스의 앞다리 사이로 빠르게 통과하는 순간 안나는 양 손으로 마구 흔들고 있던 히팅 웹 용액병을 각각 오른쪽 왼쪽으로 던져 양쪽 앞발 발등에 정확히 명중시켰고, 뒤이어 스벤의 썰매를 따라온 엘사 또한 스핑크스의 앞다리 사이로 몸을 날려 양쪽 앞발에 냉기를 쏘아 꽁꽁 얼려버렸다.

자신을 향해 돌진하는 친구들을 본 스파이더맨은 다시 한 번 공중으로 뛰어올라 백덤블링을 하며 자신 바로 위를 스쳐지나가는 엘사와 한 차례 하이파이브를 한 뒤, 스벤의 썰매 위로 정확히 착지해 안나와 크리스토프와도 하이파이브를 나누었다. 스벤의 썰매와 함께 투석기의 공격 범위에서 벗어난 엘사와 스파이더맨 일행을 확인한 노장 라그나르는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부서진 성벽 위에서 화살을 겨누고 있는 아렌델 수비대와 시민들을 향해 명령을 내렸다.


"지금이다! 발사!!"


"((우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


슉슉슉슉슉슉슉. 우레와 같은 함성과 함께 수백 발의 화살이 허공을 가르며 하나의 시커먼 구름과 같은 형상을 띠었다. 아렌델의 푸른 하늘 한가운데 갑자기 나타난 죽음의 징조는 곧 그 검은 그림자를 있는 대로 모조리 쏟아부어 한 자리에서 움직일 수 없게 된 스핑크스를 뒤덮었다. 뜨거운 업보의 화염을 온몸으로 맞은 스핑크스는 새된 비명을 지르며 자신에게 닥쳐올 운명을 피하기 위해 발버둥쳤지만 이미 때는 늦어있었다.


"GUUUUUAAAAAAAAAAAHHHHHHHHH!!!!!!"


수백 발의 화살들이 일제히 스핑크스의 온몸에 꽂혔다. 스핑크스는 스파이더맨의 히팅 웹 용액으로 인해 고열을 내뿜는 화살들에 맞아 온몸이 흉측하게 녹아내리면서도 괴성을 지르고 발버둥치기를 멈추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엘사의 투석기가 날린 커다란 성벽 조각이 가한 마지막 일격에 와장창 소리와 함께 여러 조각으로 분해되어야만 하는 숙명은 피할 수 없었다.

생기를 잃은 얼음 괴물의 몸이 완전히 박살나 커다란 얼음덩이들이 이곳저곳에 나뒹굴고 흉측한 얼굴이 달린 머리가 땅바닥에 쿵 소리를 내며 떨어지자 성벽 위에 올라와있던 아렌델 수비대원들과 시민들이 지르는 승리의 함성이 하늘 높이 쩌렁쩌렁 울렸다. 환호 소리와 함께 긴장이 한번에 풀린 엘사는 그제야 내내 참고있던 숨을 깊게 뱉으며 스파이더맨의 옆자리로 푹 주저앉았다. 엘사의 등 뒤에 달려있던 얼음 날개는 이미 사라져있었다.


"진짜로 해냈어..." 엘사가 힘빠진 얼굴로 스파이더맨에게 활짝 웃어보였다. "우리가 해냈어, 피터."


"이야호오오!! 우와, 나 지금 엄청 흥분한 거 있지! 방금 전에 나 완전 멋있지 않았어? 막 그렇게 빨리 달리고 있는데 무슨 쓰레기 버리듯이 병을 무심하고 시크하게 툭 던져버리고! 올라프가 내 모습을 봤어야 하는데!!" 안나는 아직도 흥분이 가시지 않는지 크리스토프를 붙들고 마구 흔들며 기관총처럼 말을 다다다 뱉었다. "크리스토프랑 스벤의 운전 솜씨도 엄청 멋있었어요! 역시 내가 반한 남자답다니까!!"


"으갸갸갹! 안나! 칭찬은 고마운데 이것 좀 놓고 말하면 안 될까요??" 크리스토프는 안나의 강력한 허그에 몸을 가눌 줄 모르고 얼굴을 붉히고 있었다. 스벤은 그 모습을 보며 푸르륵 웃었다.


"휴우. 어찌됐든 이걸로 한 고비 넘겼네요. 다들 정말 잘해주셨어요." 스파이더맨은 뒷좌석에서 몸을 일으키려다 아픈 곳이 있는지 왼쪽 옆구리를 감싸고 다시 좌석 위로 몸을 눕혔다. "윽... 밤도 늦었고 하니까 오늘은 이만 돌아가서 푹 주무세요. 가족 게임은 내일 또 하면 되죠."


"피터, 왜 그래? 너 어디 다쳤니?" 찬찬히 피터의 몸을 살피던 엘사는 스파이더맨의 질긴 스판덱스 슈트를 살짝 찢을 정도로 날카로운 무언가가 왼쪽 옆구리에 베인 듯한 상처를 남긴 것을 발견하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세상에, 언제 또 이런 상처가! 설마 방금 전에 싸우다가 베인거니?!"


"아무래도 스핑크스의 발톱에 베인 것 같네요. 싸움에 열중하다 보니까 확인도 못 했네. 저도 아직은 미숙한가봐요." 스파이더맨이 멋쩍게 웃어보였다. "이 정도는 잘 치료하면 다 나아요."


"치료가 문제가 아니잖아. 아이스 몬스터한테 공격을 당하면 그 부위가 눈으로 변한단 말이야!" 이제 아예 스파이더맨을 끌어안다시피 하고 있는 엘사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해지며 울음 섞인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다 내 잘못이야. 내가 좀 더 빨리 움직였어야 하는 건데. 나 때문에 이렇게 된 거야. 다 내 탓이야. 이제 곧 있으면 상처 부위가 눈으로..."


"어, 크리스토프?" 피가 살살 배어나오기 시작한 스파이더맨의 상처 부위를 가만히 쳐다보던 안나가 불쑥 말을 꺼냈다. "아이스 몬스터한테 공격당한 부위가 눈으로 변하려면 시간이 얼마나 걸린다고 했었죠?"


"시간이고 자시고 할 것도 없어요. 그냥 즉시 눈으로 변해버리.... 지 않았네?" 크리스토프는 스파이더맨의 상처가 멀쩡한 것을 확인하고 당황한 듯 눈을 꿈뻑거렸다. "딱 봐도 발톱에 베인 상처인데 왜 눈으로 변하질 않았지?"


"아무래도 이 화염 수정이 절 지켜준 것 같아요." 스파이더맨은 패비 장로가 선물해준 주먹만한 크기의 화염 수정을 주머니에서 꺼내 보여주었다. "패비 장로님께 이걸 받은 이후로 항상 지니고 다녔어요. 가지고만 있어도 몸 전체가 따뜻해지는 게 아주 좋더라고요. 여왕님 마법 덕분에 추위는 커녕 차가움도 못 느끼긴 하지만 이게 워낙에 기분이 좋아야 말이죠."


"그렇구나! 화염 수정의 마법이 아이스 몬스터의 마법을 막아준 거야!" 안나는 안도한 듯 가슴을 쓸어내렸다. "어휴 다행이다. 난 또 심장이 철렁했지 뭐야."


"그런 것 같네요. 들으셨죠 여왕님? 전 괜찮대요." 스파이더맨의 말에도 엘사는 피터의 어깨에 머리를 묻고 훌쩍거리기를 멈추지 않았다. "어.... 여왕님? 여왕님? 여보세요?"


"난 네가.... 난 네가 정말 어떻게 되는 줄 알고..." 엘사는 스파이더맨의 슈트 위로 안도와 기쁨의 눈물을 쏟아내면서 그의 양 어깨 뒤로 팔을 둘러 꼬옥 끌어안았다.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야... 우리 스파이디..." 스파이더맨은 몹시 당황했지만, 크리스토프도 안나도 엘사의 행동을 제지하지 않고 그저 자신을 향해 따뜻한 웃음만을 보내주고 있는 것을 보고 긴장을 풀었다.


"에이, 여왕님. 제가 언제 쉽게 당하는 거 보셨어요? 말씀 드렸잖아요, 제가 악운 하나는 끝내주게 좋다니까요." 스파이더맨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엘사의 등을 조심스레 토닥토닥 두들기며 엘사를 달래주었다. "자, 자. 눈물 뚝. 여왕님이 울면 나도 슬퍼요. 옷이야 수선하면 되고 상처야 푹 쉬면 다 나으니까 괜찮아요."


"{{하지만 영혼 깊이 새겨진 상처는 절대로 낫지 않는 법이지.....}}"


오싹한 목소리가 등골을 스치고 지나가자 스파이더맨 일행은 일제히 놀란 표정으로 등 뒤를 돌아보았다. 분명히 와장창 박살난 뒤 생기가 빠져나가 미동없는 얼음 조각이 되어있어야 할 스핑크스의 일그러진 얼굴이 조금씩 움직이며 크게 벌린 채로 고정된 입 안에서부터 목소리가 새어나오고 있었다. 그것도 매우 또렷하고 정확한 어조의, 매우 굵고 거친 어조를 가진 여성의 목소리가.


"방금 저 머리가 말한 거야!?" 안나는 크게 당황한 표정으로 크리스토프에게 달라붙었다. "이건 말도 안 돼!!"


"설마 저 녀석 아직도 살아있나?!" 스파이더맨은 썰매에서 재빨리 뛰어내려 엘사 일행을 등 뒤에 두고 전투 테세를 취했다. "다들 물러서요! 여긴 제가-"


"{{이 쓸모없는 얼음 괴물은 진작에 작동을 정지했다, 거미 토템의 소유자여. 더 이상은 너희를 공격하지 못할 것이다.}}" 괴물 너머의 무언가가 매우 차갑고 날이 선 어조로 내뱉었다. "{{축하한다. 벌써 적어도 열 번은 넘게 내 계획을 방해했군. 너무 고마워서 다음 번에 만날 때엔 갈가리 찢어죽여버리고 싶을 정도야.}}"


"넌 대체 뭐야? 누군데 아렌델을 계속해서 공격하는 거지? 목적이 뭐냐고?" 스파이더맨이 미간을 찌푸리며 화가 난 듯 말했다. "말해. 당장!"


"{{글쎄, 눈앞에 주어진 현실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녀석에게 내가 왜 설명을 해야 하지?}}"


"뭐라고?!"


"{{말하지 않으면 어쩔 거냐? 날 죽일 테냐? 하! 네가 아무리 거미 토템의 소유자라 하더라도 나를 죽일 수는 없다.}}" 괴물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는 스파이더맨을 조롱하듯 뜻모를 비웃음을 흘렸다. "{{불쌍한 녀석. 넌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있어. 네가 서 있는 이 땅, 네가 들이마시는 이 공기 하나하나에는 아주 큰 비밀이 숨겨져 있거늘, 그 한낱 정의감 때문에 가장 중요한 것을 보지 못하는구나.}}"


"대체 혼자서 무슨 소리를 지껄이는 거야?!" 안나가 분통을 터뜨리듯 말했다. "이봐, 네가 누군진 모르지만 이건 장난이 아니야. 수백명이 넘는 시민들이 매일같이 너 하나 때문에 목숨을 위협받고 있다고! 네가-"


"{{닥쳐라 이 쓰레기만도 못한 녀석!}}" 괴물 너머의 무언가가 안나를 향해 매우 위협적으로 으르렁거렸다. "{{잘 들어라, 거미여. 내가 이 멍청한 얼음 짐승의 입을 빌린 것은 너와 협상을 하기 위함이 아니다. 너에게 경고를 하기 위함이지. 이 이상 나와 저 여자 사이의 일에 관여했다가는 아무리 거미 토템의 소유자인 네녀석이라 하더라도 죽음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는 경고 말이다.}}"


"난 당신이 누군지도 몰라." 엘사가 엄청난 분노를 간신히 억누르며 말했다. "당신과 나 사이에는 아무런 관계도 없어. 아렌델 시민들도 마찬가지고!"


"{{아, 그러나 나는 너를 잘 안다, 여왕이여. 아주, 너무나 잘 알지. 너는 모를 테지만 우리는 오랜 시간 동안 함께 지내왔으니까.}}" 괴물 너머의 무언가는 스파이더맨을 향해 다시 시선을 돌렸다. "{{네가 섬기는 여왕은 네가 생각하는 그런 존재가 아니다, 거미 토템의 소유자여. 저 여자에게 꽁꽁 숨겨져있던 이 세상의 진실을 알아챘을 때 너는 과연 예전과 같은 눈으로 여왕을 볼 수 있을까? 네가 믿는 모든 것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그런 상황에서도?}}"


"그럴 일은 절대 없어." 스파이더맨이 이를 빠드득 갈았다. "네가 하는 말을 믿을 줄 알고? 우리들 사이를 이간질시키려는 속셈인 거 다 알아."


"{{네 멋대로 생각해라. 그 날은 오고야 말 것이니. 그 날이 오면 너는 선택을 해야 할 것이다. 나의 편이 될지, 아니면 저 쓰레기들과 함께 비참한 죽음을 맞을지.}}" 괴물 너머의 무언가가 협박하듯이 말했다. "{{후자를 선택한다면 네 인생에서 가장 끔찍한 마지막을 선사해주마. 네 몸을 조각조각 썰어 피를 모조리 뽑아내고 영혼은 얼음 감옥에 영원히 가두어 끝없는 고통과 추위를 느끼게 해 주겠다. 선택은 온전히 네 몫이지만, 후자를 선택해서 좋을 것은 없다고 감히 말하고 싶군.}}"


"...................." 스파이더맨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가만히 괴물의 머리를 노려볼 뿐이었다.


"{{나의 이름은 파르바우티. 사상 최강의 서리 거인이다.}}" 괴물 너머의 무언가가 매우 자만심 넘치는 어조로 말했다. "{{나의 이름과 요툰헤임의 높은 산맥에 걸고 말하건대, 너는 나의 앞에 무릎 꿇을 것이다, 거미 토템의 수호자여. 나는 무적의-}}"


콰직!!!


괴물 너머의 무언가가 말을 다 마치기도 전 스파이더맨의 주먹이 번개처럼 날아들어 괴물의 정수리를 강타했다. 스파이더맨이 온 분노를 담아서 내지른 강철 건틀렛이 스파이더맨의 몸뚱이보다 더 커다란 스핑크스의 얼굴을 완벽하게 콰장창 깨부수자 얼굴에 난 금을 시작으로 괴물의 머리통 전체가 빠직빠직 갈라지고 쪼개지기 시작하더니 결국 수없이 많은 얼음 부스러기로 흩어졌다.

스파이더맨은 분노를 삭이려는 듯 굳게 쥔 주먹을 부르르 떨며 한동안 제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 엘사는 걱정이 되는 듯 몸을 일으켜 스파이더맨에게로 다가갔다. 괴물 너머의 무언가가 내뱉은 말에 혼란스러운 것은 엘사도 마찬가지였지만, 지금 이 순간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피터, 이제 됐어. 그만하면 된 거야." 엘사는 피가 나올 정도로 세게 말아쥔 스파이더맨의 주먹을 보드랍고 하얀 손으로 조심스레 감싸쥐었다. 부르르 떨리던 손이 스르륵 풀리자 엘사는 그 단단하고 거친 손을 힘있게 잡아주었다. "집에 가자."


".....여왕님. 전 저런 사기꾼의 말 따위에 속아넘어가지 않아요." 스파이더맨은 엘사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마스크에 가려져 있음에도 엘사는 스파이더맨의 신뢰에 가득 찬 눈빛을 느낄 수 있었다. "전 언제나 여왕님을 믿어요. 아시죠?"


"알아. 나도 너를 믿어." 엘사는 스파이더맨의 눈빛에 화답하듯 가벼운 미소를 띠었다. "언제나 믿고 있어."


ULTIMATE SPIDER-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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챕터 25 - 아렌델의 전사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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