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융은 어느 날 갑자기 선조들의 어진을 잘 보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저번에는 어머니에게 효심이 들었으니 이번에는 선조들에게 효심이 생긴 것이리라.

"20년마다 다시 그리면 어떻겠습니까?"

이 제안은 갑자기 마음에 안 들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제대로 돌아가지 않을 것 같았다.

그 순간, 갑자기 머릿속에 뭔가가 번뜩였다. 이해는 할 수 없지만 지난 날 자신이 갑자기 영감이 들어 발전시킨 인쇄기와 비슷했다. 이번엔 활자를 급격히 개선시킬 수 있을 것 같았다.

"금으로 선조들의 어진을 전부 찍어서 전국에 뿌려라!"

"전하! 그것은 사치이옵니다!"

"금불상을 만드는 것과 뭐가 다릅니까!"

"저놈들을 수군으로 보내라!"

이융은 자신이 효도하겠다는데 말리는 놈들이 싫었다. 왜 수군으로 보내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그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마땅히 선조들의 어진은 금으로 만들어야 할 것. 그래야 자신도 나중에 금으로 찍히지 않겠는가.

"지정조격이 발견되었다고? 홍문관은 그것을 인쇄해 전국에 돌려라!"

"저, 전하? 홍문관이 하는 일이 지금 얼마나 많은데 어찌 그런 하교를 내리시나이까?"

그러게. 왜 그런 생각이 들었지? 곰곰히 생각한 이융은 그럴듯한 논리가 떠올랐다.

"이는 세종과 세조의 사업을 잇는 일이다. 성군이신 두 대왕께서도 옛 서적을 편잔하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았는데 어찌 내가 그리하지 않으랴?"

이게 다 효심이구나. 이융은 자신이 이리도 효심이 깊은지 처음 알았다.

이후에 청기와를 사찰에 올린다는 보고를 들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융은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자기도 궁궐에 청기와들을 올리며 미친듯이 사치하고 싶었다. 대간들에 대한 반발인지 뭔지. 그러다 보니 청기와를 어마어마하게 싸게 조정에 공급할 수 있는 방도가 떠올랐다.

"금란권이라는 제도를 시행하겠다. 금란서를 세우고 각종 공인들의 지혜를 모아서..."

이해는 할 수 없는 지식이 자꾸 머릿속에 들어온다. 선조들의 은혜인가, 효심으로 인한 사상의 발호인가.

이융은 어머니도 추존하고, 약간 정통성이 미묘한 증조부의 사업도 계승하고,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도 금으로 찍어서 언제든지 볼 수 있게 되었고, 궁궐의 모든 건물에는 청기와를 올리면서 대간도 때려잡고 아내와도 사이 좋고 있는 사치란 사치는 다 부리면서도 조정의 신하들은 자기를 칭송하기에만 바빴으며, 백성들의 삶은 나날히 나아지고 군대는 더없이 강성해졌다.

'혹시 나, 조종조 제일의 성군?'

고조부인 세종 때부터 이어진 성군의 자질이 드디어 자신에게서 온전히 개화하고야 만 것인가.

이대로 럭셔리한 라이프를 즐기면서... 잠시만, 이건 또 무슨 뜻인가?

호화찬란한 삶을 즐기면서, 자신의 경세술을 널리 펼쳐 나라와 백성을 이롭게 하리라 다짐하는 이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