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 이번에도 출국 전에 급하게 후다닥 완성하느라...ㅠㅠ
대충 점심시간에 식당에서 밥 먹다가 떠오른 건데 또 완성하자니 어떻게 하지 하다가 간단하게나마 조사해서.. 뭐 그렇게 썼습니다... 잘 부탁드려요...
왼손을 사랑해줘
타인과의 접촉은 불쾌하다. 어쩔 수 없다. 접촉은 세균을 옮긴다. 접촉으로 다른 사람을 일부러 불쾌하게 만드려는 사람도 있다. 꼭 그렇진 않더라도, 접촉당하는 입장에서는 그 의도를 쉬이 간파할 수 없으니 불안하다. 물론 태생적으로, 아니면 학습으로 다른 사람들과 늘상 친하게 지내는 사람은 많다. 하지만 그들도, 분명 접촉은 싫을 것이다. 길을 가면서 굳이 다른 사람과 부딪치고 싶지는 않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결국 우리는 체념하고 다른 사람과 접촉하고 만다. 살기 위해선 접촉할 수 밖에 없다. 출근하기 위해선 만원 지하철과 버스를 참고 버텨야 한다. 다른 사람이 나의 영역을 무자비하게 침범해와도 어쩔 수 없다. 의사가 진찰하기 위해선 접촉해야 한다. 간병하기 위해선, 넘어진 나를 일으켜세워주려면, 누군가가 나를 만질 수밖에 없다.
그래도 역시 불쾌하다.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면 사절이다. 나만의 온전한 시간만은 다른 사람과 접촉하고 싶지 않다. 나만의 시간이 아니더라도, 제발 일할 때만은, 밥먹을 때만은 다른 사람과 접촉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불쾌한 일도 가끔은 좋은 일로 돌아오곤 하기 마련이다. 아니, 다른 사람이었다면 불쾌한 일이었겠지만, 오히려 제발 접촉해줬으면 하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직장의 점심 시간은 축복이다. 하지만 나에겐 마냥 기쁘지 못한 축복이다. 이 사회는 도무지 혼자 먹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물론 마음만 먹는다면 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로 인해 겪어야 할 불이익과 불편 때문에 엄두가 나질 않는다. 차라리 그 정도라면 다행일지도 모른다. 심하면 혼자서 밥을 먹는다는 것만으로 직장이라는 작은 사회에서 사형 선고를 받을 수도 있으니까. 점심에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싶어도, 그로 인해 감수해야 할 결과와 저울질하면 어쩔 수가 없다. 결론은, 나는 그날도 팀원들과 함께 구내식당에 가서 줄을 서고, 식판에 밥과 반찬을 덜고, 적당한 자리를 찾아 오른쪽 끝자리에 앉았다는 거다.
점심 시간의 구내식당은 당연하지만 만원이다. 마치 퍼즐조각을 맞추듯이, 일행 수에 맞는 자리만 있으면 그 옆자리가 누구더라도 자연스럽게 앉게 된다. 모르는 사람이 옆에 있다는 건 분명 불편한 일이지만, 그것도 식사 시간에 서로 내밀한 이야기를 하는 와중에는 더없이 위험할 수도 있지만, 구내 식당에서는 모두 어쩔 수 없다고 받아들인다. 먹고 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가 없다. 그래도 모두는 최소한의 예의를 지킨다. 서로 접촉하지는 말자. 내가 오른손으로 식기를 쓸 테니, 당신의 왼쪽은 비워다오. 그렇다면 우리의 손이 서로 부딪칠 일은 없으니.
하지만 그 날은 예외였다. 그 날 나는 내 오른쪽에 앉아있던 사람과, 하필 내가 숟가락으로 수프를 떴을 때 부딪쳐 버렸다.
“앗뜨뜨.”
숟가락이 한 바퀴 휭 내 눈앞에서 돌면서, 원심력을 받은 끈적한 수프가 마치 무중력 공간에 있는 듯 둥실 허공에 떠올랐다. 그것도 찰나. 내 치마에 희멀건 반죽이 되어 착륙했다. 사실 뜨겁다고 외친건 수프가 치마에 묻어서 그 온기를 느끼기도 전이었다. 미리 말해둬서 나쁠 건 없겠지.
“죄, 죄송합니다!”
그리고 내가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에, 내 오른쪽에서 얫된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어쩌면 내가 뜨겁다고 느끼기 전에 이미 외쳤을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내가 반사적으로 엄살을 떨기 전에 이미 그랬을지도. 그 목소리에 바로 고개를 돌리니, 목소리만큼이나 얫되어 보이는 여성이 새파래진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무얼 숨기랴. 그때 화가 난다기보다도, 그냥 내 취향이라고 생각해버렸다. 그리고 내가 그렇게 한 눈에 반해버린 상대방 뒤로, 별로 누군지 알고 싶지 않은 얼굴들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내 머리 뒤에서 시선이 느껴졌으니 분명 내 팀원들도 무슨 일인가 싶어서 보고 있었겠지. 그렇게 우리 팀의 가장 오른쪽에 앉은 나와, 다른 일행의 가장 왼쪽에 앉은 그녀는 원치않게 분단된 식탁의 통일을 이뤄내버렸다.
“어... 어떡하죠. 이걸 어째...”
그녀는 울먹이면서 식탁 위의 냅킨을 몇 장 뽑아 내 치마 위의 수프를 닦아냈다. 다른 사람 같았으면 암만 그 사람 책임이었어도 내 치마에 그렇게 함부로 손을 대는 게 불쾌했을 텐데, 그녀는 아니었다. 수프를 흘려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더 닦아주세요. 내일도, 내일 모래도 해주셔도 돼요.
“아뇨, 괜찮아요. 별거 아닌데요.”
“이걸 어째, 정말 죄송해요. 저 때문에 옷이...”
옷이 대수인가요. 당신 같은 분이 눈앞에서 울먹이는데. 약간 곱슬거리는 머리카락에 저 투명한 눈망울이라니. 하필 구내식당만 아니었더라면 바로 추근댔을 텐데. 아쉽게도 우리 팀이나 상대방 일행이나 모두의 시선이 쏠려 있으니 함부로 그럴 수도 없었다.
“세탁비, 세탁비라도 드려야. 아, 지갑, 지갑이...”
내 치마를 닦아낸 그녀는 허둥지둥대면서 외투의 호주머니를 뒤졌다. 아무래도 세탁비를 주려고 지갑을 찾는 모양이다. 우리 구내 식당은 출입증으로 태그만 하면 정산이 되는 시스템이라 지갑도 들고 나오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그녀도 그런 사람이었는지, 아무래도 지갑을 찾지 못하고는 어쩔줄을 몰라 더욱 허둥지둥대기 시작했다. 그렇게 허둥지둥대는 그녀도 너무 귀여웠지만, 그녀 앞에 놓인 식판을 보고 무심코 어떤 사실을 깨달았다. 그녀의 식기는 모두 왼편에 놓여 있었다. 나의 식기는 내 오른편. 우리 팀원들도 모두 오른편. 저쪽 일행들도 오른편. 그렇구나. 왜 그녀는 맨 왼쪽 자리에 앉았던 걸까. 아마 매일 밥을 먹을 때마다, 일부러 가장 늦게 앉거나 가장 일찍 앉아야했겠지. 안 그러면 일행들과 팔을 부딪치면서 먹어야 했을 테니까. 하필 오늘은, 왼쪽에 다른 사람이 앉아서 팔이 부딪쳐 버렸던 거다. 하필 내가 무의식적으로, 티가 나지 않게 몸을 일행들의 바깥쪽으로 최대한 끌어낸 탓에.
그러니까, 대놓고 말할 수는 없지만 내 탓도 있는 셈이다. 그녀가 왼손잡이라서 그랬듯이, 나도 다른 사람들, 팀원들과 너무 가까이 앉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정말 별 수 없는 일이네. 물론 이것도 눈앞의 그녀가 너무 귀여우니 괜찮은 거지만.
“어떡하죠, 지금 지갑이 없어서...”
그녀는 내게 사과를 하면서도 불안한 표정으로 슬쩍 자신의 뒤를 곁눈질했다. 보아하니 그녀의 일행은 이미 식사를 끝냈는지 대부분 잔반이 수프가 있던 국그릇에 담겨져 있다. 그녀가 눈 앞에서 허둥거리는 게 이해가 갔다. 자신이 사고를 쳐버린 덕에 나머지 일행들도 일어나지 못하고 있으니까. 일행도 매정하게 그냥 내버려두고 먼저 가진 못하겠지. 그런 애매한 친절이 오히려 더 불편한 법이지만. 나는 최대한 매력적으로, 방긋 웃었다.
“괜찮아요. 그냥 가셔도 돼요.”
“아, 하지만... 그래도...”
으음. 내색하지는 못했지만 살짝 걱정했다. 그냥 가도 된다고 말했다고 바로 가버릴까봐. 얼굴만큼이나 예의도 갖춰서 다행이다. 너무 치사한 짓을 하는 것 같아서 양심의 가책이 느껴지지만, 나는 내가 진짜 하고 싶었던 말을 꺼낼 수 있었다.
“그럼 전화번호, 알려주시겠어요? 이따가 연락드릴게요.”
그녀는 고개를 연신 끄덕이면서, 내가 건넨 핸드폰을 받아 바로 자신의 번호를 입력했다. 번호를 하나하나 열심히 꾹꾹 누르는 그 모습도 너무 귀여웠다. 취소, 양심의 가책 따윈 느끼지 않습니다. 이렇게 귀여우면 어쩔 수가 없다구요.
“진짜, 진짜, 너무 죄송해요! 세탁비는 꼭!”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면서도, 마지막까지 내게 연신 허리를 숙이면서 그렇게 외쳤다. 그녀의 일행은 적당히 해결되어서 만족했는지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잔반처리대로 향하고 있었다. 훼방꾼들이 사라져서 고맙다고 외치고 싶지만, 안타깝게도 내 팀원들이 아직 자리에 앉아 있다. 이쪽도 대충 일이 해결되서 흥미를 잃었는지 각자 먹던 밥을 마저 먹고 있다. 마음만 같아서는 추파를 날리고 싶지만, 나는 간신히 유혹을 참고 마지막으로 그녀에게 말했다.
“괜찮아요. 세탁비는 필요없어요.”
대신 데이트해주세요, 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리고 대신 데이트했다. 물론 처음부터 데이트를 하진 않았고. 그냥 연락해서 같이 밥이라도 먹겠냐고 물어봤을 뿐이었다. 물론 그쪽 팀에도, 내 팀에도 비밀로 하고. 그쪽도 예상 외로 간단하게 수락했다. 그쪽이 내겠다고 극구 주장했지만 나는 결사 반대했다. 그녀가 내봐야 내가 세탁비 대신 밥을 얻어먹을 뿐이다. 그게 아니란 걸, 그냥 같이 놀고 싶을 뿐이란 걸 전하고 싶었다. 내 그런 의도가 전해졌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우리 둘은 그 주 주말에 따로 만나서, 같이 밥도 먹고, 카페도 갔다. 그때 만난 그녀는 생각보다 훨씬 차분하고 명랑했다. 아무래도 내 옷을 더럽힌 데다가 나머지 일행이 기다리고 있어서 평소보다 당황했던 모양이다. 이상할 것도 없지. 아마 나라도 그 상황에선 허둥지둥댔을 거다. 그래도 여유가 넘치는 모습도 귀여우니까 상관 없어.
참고로 우리가 같이 밥을 먹은 식당은 라멘집이었다. 내가 아니라 그녀 쪽에서 좋은 식당을 안다고 소개했다. 다행히도 나도 라멘은 좋아했다. 아니, 싫었어도 아마 그때부터 좋아했던 것 같다. 다만 식당은 그녀가 추천할 만큼 인기가 많았는지, 두 명인데도 부엌쪽에 붙은 자리에 나란히 앉아야만 했다.
“다행이다. 끝이 비어 있어서.”
그녀는 가게에 들어가서 점원의 안내를 받았을 때 그렇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가 말한대로 우리는 왼쪽 끝자리에 안내받았다. 아아, 우리가 왜 만났는지 다시 떠올렸다. 그녀의 왼팔과 내 오른팔이 부딪쳤지. 그녀는 누가 거길 차지할라 냉큼 왼쪽 끝자리에 앉고는 살짝 웃으며 그 옆자리를 내게 권했다.
“제가 여기 앉을게요. 라멘 국물까지 흘리면 큰일이니까.”
생각해보면 그런 일이 있었는데 라멘 집도 아니지 않나, 라멘 국물은 스프보다도 뜨겁고 기름진데. 라고 잠깐 생각했지만 귀여우니까 상관 없었다. 라멘 국물도 흘리셔도 전 좋습니다.
잠시 후, 식당 점원의 우렁찬 목소리와 함께 우리 앞에 라멘이 하나씩 놓였다.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나고 기름도 둥둥. 안그래도 주중에 너무 피곤했던 참이다. 모름지기 주말엔 기름진 걸 먹어서 체력을 체워야 한다. 물론 그녀가 추천했으니 맛까지 있었다.
“어때요, 괜찮으세요?”
그녀는 왼손에 젓가락을 든 채로 조심스럽게 물었다. 너무 맛있는 나머지 약간 땀까지 흘려가면서, 흘러내리려는 머리카락을 뒤로 넘겨가면서 너무 열심히 먹고 있었다. 이크, 이런 모습 보이면 안 되는데. 꼴사나운 모습을 보여서 얼굴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다행히도 라멘에서 뿜어나오는 열기 탓으로 돌릴 순 있을 것 같지만.
“아, 이거 맛있네요. 원래 라멘 좋아하긴 하지만요. 아, 뜨끈해라.”
“입에 맞아서 다행이에요. 너무 느끼한 걸 먹자고 했을까봐.”
“아뇨, 아뇨. 하나도 안 느끼해요. 구수하고 맛있는 걸요. 이걸 어째, 손이 안 멈추네.”
내가 약간 과장스럽게 국수를 한 입 더 삼키자 그녀가 가볍게 깔깔 웃었다. 아, 이걸 어째. 웃는 것까지 너무 귀여운 걸. 하지만 마냥 맑게만 보였던 웃음은 어느새 자조 섞인 미소로 변했다.
“오늘은 다행이에요. 제가 왼쪽에 앉았으니까.”
그녀는 대체 지금까지 몇번이나 모르는 사람과, 혹은 아는 사람과 밥을 먹으면서 팔이 부딪쳤던 걸까.
“그런데 정말 괜찮을까요? 밥도 따로 내고. 커피는 아예 사주시고.”
라멘도 먹고 입가심으로 커피까지 함께 즐기고, 마지막으로 각자 집으로 돌아가기 전에 그녀가 물었다. 내가 온갖 생떼를 부려가며 커피를 계산 한게 아무래도 마음에 걸렸던 모양이다. 그녀에게 딱히 마음의 빚을 만들려던 것도 아니고, 그냥 너무 귀여워서 그랬을 뿐인데. 괜한 짓을 한 걸까. 하지만 이럴 때 진짜 하고 싶은 말을 해야지.
“그럼 다음엔 사주실레요? 밥은 아니고 커피만이라도.”
“고작 그 정도로 괜찮을까요? 애초에 저 때문에 그렇게..”
아뇨, 당신 때문이라고 할 건 하나도 없어요. 당신 때문이 아니에요. 덕분이에요. 당신이 오늘 내 치마에 라멘 국물을 흘리고, 커피를 흘리더라도 나는 기뻤을 거라구요.
“그냥 같이 밥 먹고 커피 마신 게 재밌어서 그래요. 식당에서의 일은 신경쓰지 말고 또 같이 놀아주세요.”
“저도, 저도 즐겁긴 했지만...”
그녀는 뺨을 살짝 붉히면서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그걸 보면서 내가 무슨 생각을 할지는 이제 굳이 말할 필요도 없겠지. 나도 진심으로 즐거웠다. 물론 내 이상형이라서도 그랬지만, 그녀는 친구로서도 너무 즐거웠다. 그녀도 분명 나와 만나서 나쁘지 않아 보였는데, 왜 저렇게 복잡한 표정을 짓고 있을까.
“모르겠어요. 제가 잘못한 건데... 너무 과분한 것 같아요.”
“과분하지 않아요. 우리 사이에 그런 게 어딨어요.”
아뿔사, 무심코 말해버렸다. 우리 사이라니. 우린 아직 아무 사이도 아니다. 나만 친구라고 생각하고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녀는 우리 사이라는 말에는 아무 지적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는 마지막까지도, 자기 탓을 하고 있었다.
“저와 함께 지내면... 피곤하실 거에요. 제 가족도. 친구들도. 팀원들도...”
“오늘 전혀 피곤하지 않았어요.”
“왜냐면 오늘은... 라멘 집에선 제가 왼쪽에 앉았고... 카페에선 마주 봤잖아요. 그래서 괜찮았던 거에요. 하지만 다들... 같이 지내면 지낼수록...”
아, 그렇구나. 그녀는 내가 싫은 게 아니구나. 오히려 그래서 무서워하고 있었다. 나와 지내면서 또 멀어질까 봐. 그럴 때마다 매번 자기 탓을 하면서, 자신이 왼손잡이라서 그렇다고 깍아내렸구나.
“괜찮아요. 다음 번엔 제 오른편에 앉아도.”
나는 그렇게 밖에 말할 수 없었다.
그 뒤로는 지단한 과정이었다. 함께 영화를 보고, 기회를 봐서 함께 술을 마시고. 그럴 때마다 그녀는 자신을 깍아내리려고 하고, 나는 그걸 막으려고 했다. 그러면서 오히려 더 절절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녀가 왜 자신을 그렇게 깎아내리려고 했는지를.
“처음이 아니었어. 그 전에도, 옆자리 사람이랑 팔이 부딪쳐서 옷을 더럽힌 적이 많았어. 그쪽 옷도, 내 옷도.”
처음엔 나와 만났을 때처럼, 식당에서 모르는 사람과의 이야기였다.
“초등학교 때부터 가위는 싫었어. 어제도 팀원들이 별것 아닌 말투로 원망했어. 똑바로 자르지 못했다고. 하지만... 그 가위는 오른손잡이용인 걸? 내가 따로 쓰는 가위가 있어도 문제야. 무신경한 팀원이 맘대로 빌려 쓰고 갖다놓지 않으면 일일히 찾아야 해. 그걸 찾아다니면 대충 아무 가위나 쓰라 그러고.”
가위. 우리 팀에서는 가위를 모두 섞어 썼다. 어차피 다들 오른손으로 종이를 자르면 됐으니까. 내가 바로 그런 무신경한 팀원이었을까.
“영화관에서도, 영화에 집중했더니 음료수를 내 왼편에 놔버렸어. 그런데 하필 옆 사람도 음료수를 거기 둬서, 나중에 지나가면서 한 소리를 하더라고. 그래서 이제 영화관에서는 음료수를 안 시켜. 내가 신경 쓰면 되지만, 영화를 보다보면 계속 잊고 내 왼편에 음료수를 놓게 돼.”
함께 영화를 본 날, 그녀는 음료수를 사지 않았다. 저녁을 먹으면서 그 이야기를 듣지 않았더라면 그저 음료수를 안 마시는구나 하고 넘어갔을 터였다.
“나도 대학교에서 컨닝 시비가 걸릴 적이 있었어. 강당에서 시험을 봤는데, 하필 오른편 팔걸이에서 책상이 나오는 자리였단 말이야. 왼손으로 계산하고 답을 쓰려면, 몸을 완전히 틀어버려야 했어. 그렇게 30분 넘게 끙끙대서 허리까지 아파오는데, 나중에 조교가 부르더라. 컨닝 때문에 문제 제기가 있었다고. 설명하니 오해는 풀렸는데, 어느 새 학교에서 이런저런 소문이 다 돌더라. 누가 컨닝을 했네 말았네, 조교랑 친해서 그냥 넘어갔네 아니네.”
서로의 대학 시절에 대해 이야기할 때였다. 나도 그런 책상에서 시험을 보기도 했다. 책상은 시험지보다도 작고 튼튼하지도 않아서, 시험을 보는 내내 불쾌했다. 하지만 그래도, 시험을 보기 위해 허리를 틀 필요까진 없었다. 오른손으로 시험을 본다고 컨닝 의혹을 받지도 않았다.
“어차피 다 내 탓이야. 내 탓이 아니지만 그냥 내 탓이야.”
내가 누굴 좋아하는지, 왜 계속 만나자고 했는지 밝혔을 때도 그녀는 싫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렇게 말하며 눈물을 흘릴 뿐이었다. 살면서 있었던 모든 일, 그리고 앞으로 있을 모든 일이 자기 탓이라는 듯이.
고백하는 건 어려울 게 없었다. 분위기가 무르익었고, 그녀도 좋건 싫건 대답해줄 것 같았으니까. 그래서 대답 대신 울었을 땐 당황스러웠다. 그렇게 자기 탓을 하면서 울면, 대체 무슨 의미일까. 좋다는 걸까, 싫다는 걸까. 그녀는 뭐라 말을 더 하지는 않고, 눈물을 한 번 훔친 뒤에 내 손을 꼭 잡았다.
“다 내 탓인데도, 정말 괜찮아?”
“다 네 탓도 아니고, 괜찮고 말고 할 것도 없는데.”
“그렇지만, 우린 처음 만남부터... 내 왼쪽에 앉아서...”
“그때 네 왼쪽에 앉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해. 안 그럼 평생 말도 못 붙여봤을 때니까. 네가 왼손잡이가 아니었다면 만나지도 못했을 거야.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해.”
그렇게 말하면서, 내 손을 그녀의 손에서 잠시 뺐다가, 반대로 꽉 붙잡아줬다. 내 오른손은 그녀의 왼손을, 그녀의 오른손은 내 왼손을. 서로 익숙한 손과, 익숙하지 않은 손끼리.
“처음인 것 같아.”
“뭐가?”
“내가 왼손잡이라 좋았다고 한 사람.”
엑, 이럴 땐 나를 좋다고 해준 사람, 이라고 대답하는 흐름이 아니었단 말인가. 그런 내 당혹감을 눈치 챘는지, 그녀가 아직도 물기 어린 눈매로 살짝 웃었다.
“아, 그래도 나를 좋다고 해준 남자는 있었어. 질렸다고 차여 버렸지만.”
이런, 알고 싶지 않은 걸 알았다. 혹시 지금 애인이 있는지만 은근슬쩍 물어보느라 연애 경험을 묻질 않다니. 그보다 어떤 놈의 자식이 그랬단 말인가. 그녀를 좋다고 할 정도면 남자치곤 보는 눈이 있지만, 그러고서 차버리니 더 괘씸하지 않은가.
“그럼 안타깝지만, 네 왼손의 첫 사랑이라도 되게 해줘.”
“그게 뭐야. 그래도 내 왼손마저 좋다면...”
“마저가 아니야. 왼손부터 좋은 건데.”
그녀는 씩 웃으면서, 내 손에 감싸진 자신의 손을 들어올렸다. 그녀의 입김이 내 손까지 닿는다.
“좋아, 내 왼손의 첫사랑이 되어 줘. 나도 내 왼손을 사랑하지 않으니까.”
“지금부터 같이 사랑하자.”
“노력해 볼게.”
뭐든지 시작이 반인 셈이다.
시작이 반이라고 하긴 했지만, 그 뒤는 정말 쉽지 않았다. 그녀는 정말 노력했지만, 자기 혐오는 그리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점심 시간에 따로 약속이 있다고 빠져나와 함께 밥을 먹을 때도, 주말이나 휴일에 데이트를 할 때도, 나중엔 함께 살게 됐을 때도 그녀는 늘상 내 눈치를 보는 듯했다. 그런 시선이 오히려 나도 답답해서, 처음에는 몰랐던 아쉬운 감정을 자주 느끼기도 했다. 그래도, 어떻게든 계속 함께할 수 있었다. 내 오른손을 그녀의 왼손과 꽉 잡으면, 또 그 상태로 끌어안으면 어떻게든 해나갈 수 있었다. 왜냐하면, 그녀 말고는 아무도 내게 그러지 않았으면 했으니까.
“오늘은 내가 이쪽이야.”
어느 날 분위기 좋은 바에서, 나는 빈 자리를 확인하자마자 잽싸게 그렇게 선언했다. 내가 그러고 앉은 자리는, 바의 가장 왼쪽이었다. 물론 그녀는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거기 앉으면 나랑...”
“그러고 싶어서 그래. 오늘 내 생일이니까 봐주라.”
내가 비겁하게도 생일을 운운하자 그녀도 마지못해 내 오른편에 앉았다. 사실 그녀가 내 오른편에 앉는 일은 거의 없었다. 식당에서 혹시 나란히 앉게 될 때도, 함께 영화를 보러 갈 때도 그녀는 내 왼편에 앉으려고 했다. 자기혐오는 조금씩 고쳐지고, 이제 함께 걸을 땐 내 오른편에 서기도 하지만, 앉는 습관만큼은 변하기 쉽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러다가 술 흘려도 난 몰라.”
그녀는 약간 새침하게 반응했다. 나는 일부러 바짝 그녀쪽에 붙어 앉으며, 내 유리잔을 오른손으로 들어올렸다.
“있지, 나는 남이랑 접촉하는 걸 진짜 싫어해.”
“그런 것치곤 너무 들러붙으시는 걸요?”
그녀의 가벼운 비아냥에 히죽 웃었다. 그게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였으니까.
“당연히 자기라서 그런거야. 우리 처음 만났을 때도, 내 오른쪽이 자기가 아니었음 나도 그 자리에서 식탁 뒤집어가며 노발대발 화냈을지도 몰라.”
“그게 뭐야, 오버하긴.”
그녀는 내 말에 피식 웃었다. 사실 조금 과장을 섞긴 했다.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야 하는 이미지는 있으니까. 하지만 가장 중요한 사실은 과장이 아니다.
“그러니까, 내 오른편엔 얼마든지 앉아도 돼. 자기랑은 언제든지 부딪치고 싶거든. 그건 자기 탓도 절대 아니고, 내가 싫지도 않으니까. 좋지 앟아?”
슬쩍, 몸을 더 오른쪽으로 기댄다. 그녀와 내 어깨가 맞닿는다. 손등도 맞닿는다. 그녀는 왼손으로 잔을 들고 있다. 내가 손목을 아주 살짝만 기울여도, 우리의 잔이 서로 가볍게 키스한다. 그녀는 그 촌극에 살짝 웃었다.
“아직 익숙하지가 않아.”
“뭐가?”
“모든 게. 내 왼손을 사랑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거, 내 왼편에 앉으려고 하는 사람이 있다는 거. 이런 이상한 추파 받는 거.”
“이상하다니, 너무하다.”
나름 역작이었는데, 슬프다. 그녀는 가벼운 웃음소리를 내면서 내 어깨에 머리를 살며시 기댔다.
“다른 사람이랑 접촉하는 게 싫다고?”
“싫지. 아주 징그러워.”
“매일 지하철 타잖아.”
“살려면 어쩔 수 없지. 그래도 요즘은 자기랑 꼭 붙어서 타니까 행복해.”
“응큼하긴.”
그녀의 머리카락에서 좋은 냄새가 난다. 접촉은 촉각만 있는 게 아니다. 어떤 의미에선 후각이야말로 가장 무섭다. 냄새는 막을 수가 없으니까. 하지만 그녀의 향만큼은, 얼마든지 내 코에 받아들일 수 있다.
“정말로 네 오른쪽에 앉아도 돼?”
“그럼.”
“다행이다. 나도 내 왼편에 누가 앉는다면, 너였으면 좋겠어. 내 왼편에 누가 앉아서 좋은 일이 생긴 건, 네가 앉을 때 뿐이야.”
이번엔 그녀가 살짝 왼손을 기울인다. 그녀와 나의 잔이 또 가볍게 쪽. 남사스러운 잔들일세. 잔들이 질투났는지, 나와 그녀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따라했다.
“앞으로는 좋은 일뿐일 거야. 나도 자기랑 부딪쳐서 좋은 일만 있었어.”
“거짓말. 그래도 솔직히 힘들 때가 많지?”
이런, 사실 아니라고 말할 순 없다. 그래도, 대체로 좋은 일이 있었던 건 맞다. 그렇지 않다면 이렇게 함께할 리가 없다.
“그래도 고마워. 나는 이렇게 부딪쳐도 좋아해줘서.”
“나도 고마워. 내 오른편에 앉아줘서.”
“나도 이제 내 왼손이 사랑스러워. 너랑 만나게 해줬으니까.”
살짝 취기가 돈다. 그리고 처음 만났을 때처럼, 우리 팔이 기분 좋게 부딪쳤다. 덕분에 기분 좋은 감정이 잔에서 가득 흘러넘쳤다. 그녀가 내 오른편에 앉으면, 역시 좋은 일 뿐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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