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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라리는 왜 영국에 지사를 차리지 않는거죠???
라는 의문이 많은데 이건 놀랍게도 실현된 적이 있다. 그것도 엔초페라리 살아계실 적, 그의 주도하에 이뤄진 일이다. 그 페라리가 자존심을 굽히고 한사람만을 위해 영국에 사무실을 따로 차려준 역대급 사건이었다. 그의 이름은 존 버나드맥라렌의 황금기를 시작한 당대 최고의 엔지니어였다. 1981년에는 모두가 회의적이었던 카본 모노코크 소재의 섀시를 도입하는데 성공하며 엄청난 혁신을 일으켰으며,1984~1986년에는 맥라렌 MP4/2로 니키 라우다와 알랭 프로스트라는 두명의 드라이버 챔피언을 탄생시켰다.이러니 당시에는 거의 뉴이급 위상의 엔지니어였다고 보면 된다. 하지만 버나드는 1986년부터 론 데니스와 사이가 안좋아졌고, 맥라렌의 카본 신소재와 에어로 기술에 밀려 쳐망해가고 있던 페라리는 버나드를 영입하기 위해 달려들었다. “야 돈 많이 줄게 페라리 와서 차좀 만들어주라”“싫은데? 느그 이탈리아 절대 안감 ㅋ 파스타 존나 맛없고 차도 못만들면서 정치질만 해대는 새끼들이랑 같이 일 못함 난 영국에 눌러앉을거니까 나랑 일하고 싶으면 영국에 사무실 하나 차려주든가”“(ㅅㅂ...) ㅇㅋ 딜”당시 엔초 페라리는 지병 때문에 거의 죽어가고 있었고, 죽기 전에 꼭 한번은 페라리가 다시 우승하는걸 보고 싶다는 열망에 자존심을 굽히고 이걸 승낙한 것이다. (하지만 결국 끝까지 못보고 1988년에 사망)그렇게 탄생한 최초의 페라리 영국 지부 “GTO(Guilford Technical Office)"버나드는 영국 지부에서 페라리 마라넬로 본사와 소통하면서 일을 해야 했는데, 여기서 여러가지 문제가 발생했다. 당시에는 인터넷도 없었기에 손으로 설계한 도면을 팩스로 보내고 전화로 소통하는 방식이었다. “음.. 어디 보자 도면을 이렇게.. 섀시 설계 완료. 이정도면 공장에서 구현 가능하겠지? 팩스로 보내야겠다”“너네 받았지? 이거 xx까지 부품 조립해와”“ㅇㅇ 근데 우리 파스타좀 먹고 하겠음““이새끼들 뭐지? 업무중에 점심시간을 2시간이나 갖는다고?”제대로 만든건지 확인차 이탈리아 공장에 도착한 버나드“미친놈들이 대낮에 술을 마시고 조립을 쳐한다고? 정신나간거아니냐?““진정해 버나드 이건 술이 아니라 음식이야 ㅎ 이탈리안의 피에는 와인이 흘러 우린 이거 안마시면 손떨려서 조립을 못함 이해좀“(실제로 페라리는 장 토드가 와서 뜯어고치기 전까지 2시간 점심시간 + 와인 한잔 문화를 쭉 유지했다고 한다...)“ㅅㅂ 이게 뭔 개좆같은소리야 그래도 조립은 제대로 했겠지?“”아니 시발 이거 서스펜션 각도가 안맞잖아!!! 나는 완벽하게 설계해서 보냈는데 뭔짓을 한거야 도대체!!““니가 보낸 그대로 한건데 뭔소리냐 이 건방진 영국놈아? 서스펜션 구멍 크기가 안맞는데 니들은 자도 없냐?“알고보니 영국에서 이탈리아로 보내는 과정에서 팩스 용지가 늘어나서 도면의 치수에 오차가 생긴거였고 이는 비효율적이었던 페라리의 업무 방식과 소통 오류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그외에도 버나드는 레이스 현장에 따라다니는걸 싫어했는데, 이탈리아 매카닉들은 설계자가 현장에 모습조차 비추지 않는다며 화를 냈고 영국인이 페라리를 무시하고 팀을 망치고 있다며 서로간 불신만 쌓여갔다. 당시 이탈리아 언론과 드라이버 게르하르트 베르거도 버나드를 대놓고 비판했을 정도니 관계는 점점 최악으로 치닫는듯 했다. 그래도 이런 개판 속에서 탄생한 희대의 역작이 있으니바로 “패들 시프트”(반자동 기어박스)다. 스티어링 휠에 날개 모양의 패들을 달아 기어를 변속할 수 있게 한 건데이게 왜 대단했냐면패들 시프트가 등장하기 전까지 드라이버들은 왼손으로는 핸들을 잡고 오른손으로는 기어봉을 잡아서 수동으로 변속해야 했다.게다가 클러치 페달을 같이 밟아줘야 했기에 손과 발이 미친듯이 바빴으며 이걸 코너마다 0.5초만에 해야 했다. https://youtu.be/auXfAHHNSFo?si=Wi_eI-ud-PGhWAZw(그시절 온보드를 보면 확실히 한손으로 기어를 꺾는게 보임)페라리와 버나드의 혁신적인 이 기술로 인해 드라이버들은 더이상 한손으로 운전할 필요가 없었고 훨씬 더 빠르게 주행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이 기술은 얼마 안가 다른 팀에서도 전부 도입하였고, 현재까지 우리가 타는 상용차에도 널리 쓰이는 f1의 최고의 발명품으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버나드는 드라이버가 편하게 하려고 만든게 아니라 공기역학 효율을 높이기 위해 콕핏을 좁게 설계하려다 보니 기어봉이 거슬렸고 이걸 핸들에 달아버리면 되겠다 판단했을 뿐이라고 밝혔다.이 혁신과 함께 나온 페라리 640는 처음에는 완주할 수 있을지조차 의문이었다. 혁신은 인정하나 신뢰성에 대해서는 모두가 의문을 가졌고, 변속을 실패하는 즉시 리타이어할거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테스트마다 3바퀴를 넘지 못하고 전자장비가 고장났고 나이젤 만셀은 경기 직전까지 “리타하면 집에 가면 되지 뭐”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하지만...페라리 640은 개막전에서부터 존나게 빨랐고, 만셀은 맥라렌을 꺾고 곧바로 우승을 차지해버린다. https://youtu.be/MnMBrlHEGPI?si=jgYZNnqnaUa19qcQ만셀은 “믿을 수 없다”며 기뻐했고 이제 드디어 페라리가 챔피언을 따나 했는데...그냥 운이 좋았던 거였고, 차는 시즌 내내 퍼져버렸으며버나드는 이탈리아놈들과 끝내 섞이지 못하고 결국 베네통으로 튀어버렸다는 페라리다운 결말로 끝난다. (나중에 한번 더 오긴 함)하지만 페라리 640이 남긴 유산은 영원하며 버나드가 이탈리아 놈들과 싸워가며 만들어낸 혁신은 앞으로도 높이 평가받을 것이다....
작성자 : ㅇㅇ고정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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