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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엄마를 닮은 딸 - 기숙사에서

삼일월야공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0.09.16 22:47:43
조회 741 추천 20 댓글 5
														

어머니는 웃지 않았다. 어머니는 슬픔에 젖은 채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었다. 아버지의 바람이 원인일수도 있다. 도저히 말을 들어주지 않는 딸에게 크게 실망해서 우울감에 사로잡혀 있던 것일지 모른다. 감정을 이해하기 시작한 유년시절부터 지속된 내 의문은 달갑지 않은 날 해소되었다. 내가 친구를 꼭 끌어안았던 날, 그 친구의 어머니에게 흠씬 두들겨맞은 날. 주저앉아 울부짖는 나는 어머니에게 있어 어떤 아이였을까.


“미안하구나... 이런 나를 꼭 닮아서...”


집에 돌아온 뒤, 어머니는 말했다. 비참한 사과.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혀 끝에서 비릿한 맛이 느껴졌다. 아마 이 때부터, 나고 자란 고향이 싫어졌던 것 같다. 나를 걷어찬 사람이 있는 동네, 자신의 아내를 내팽겨 친 남자가 있는 집, 그리고 그런 곳에서 우울하게만 사는 여자. 기숙 학교에 입학하는 것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마치 그래야 했던 것 처럼, 내게 주어진 과제처럼.


“돌아오지 않아도 괜찮단다...이런 곳.”


출발하기 전, 어머니가 말했다. 매정하다고 느끼지는 않았다. 그건 그녀가 해 줄 수 있는 충고가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그 눈에 서린 비애는 당사자가 아니고서야 담을 수 없는 것이었으니.


'잘 계세요.'


차마 입밖으로 내뱉지는 못하고 씹어 삼켰다. 안타깝게도 우리 모녀는 그런 순간에서 조차 따스한 말을 주고 받을 수가 없었다. 달리는 기차의 안에서 고향은 푸르른 하늘에 삼켜졌다.


기숙학교라는 건 각지에서 온 다양한 사람들의 틈바구니 속, 개인의 사정은 여기선 그리 큰 문제가 아니었고 그보다 중요한 것은 지금의 태도였다. 착하고 배려심 많은 아이로. 나는 빠르게 적응했다. 사람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조용히 섞여서…


여름의 푸르른 심록이 노을져가며 내 삶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였다. 그 즈음이 되어 나는 구 도서관의 관리직을 맡게 되었다. 신도서관이 지어진 이후로 구 도서관 건물을 철거하기로 하였지만 이사장의 로비 문제가 언론에 퍼지면서 어영부영 남아 그대로 애물단지가 되었다.


"반년 안으로. 그렇게만 있어줘. 그 안에 어떻게든 해결될테니까."


구 도서관은 그 이름대로 일부 사람에게만 주목을 받았다. 고서를 찾으려는 사람이나, 구 판본을 찾으러 오는 선생님들.


"이런 곳에 고생하는구나."


"아니에요, 생각보다 안 힘들어서 괜찮아요."


그 말대로였다. 가끔 먼지를 털면서 가만히 창밖을 바라보며 상념에 젖어드는 사치스러운 일. 내게도 행운이 있다고 생각했을 때, 현수와 만났다. 여느 날 처럼 서고 정리를 끝내고 도서관을 나서던 때.


“아직 사람 있는데.”


"아...미안, 있는지 몰랐어. 정말 미안해, 정말..."


"아니 그렇게까지 굽히면 내가 다 미안해 지잖아."


현수의 얼굴에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냥 말 좀 걸어본거야. 아, 이거 망했네.”


현수는 멋쩍게 웃었다. 그 모습에 긴장이 풀려 안심할 수 있었다.


“그래도 미안, 멋대로 닫을 뻔 했네.”

“그래, 그래도 괜찮아. 아예 닫은 건 아니잖아?”


그 후로 현수는 도서관을 닫을 때 즈음에 맞춰 찾아왔다. 현수의 방문이 자연스러운 일이 되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않았다. 그 아이가 올 때면 나는 미리 차를 끓여놓는다. 우리는 테이블에 앉아 차와 함께 이야기를 나눈다. 재밌던 일이건, 슬픈 일이건, 아니면 흥미로운 이야기건.


"그건 귀신이 아니라 그냥 토끼였던거지."


"바보같네, 그거에 속은 사감때문에 몇 명이 고생한거야."


이렇게 이야기를 할 때 면 현수는 싱긋 하고 웃었다. 눈웃음 진 얼굴엔 한없는 행복이 있었다. 어떤 집이었을까, 어떤 부모님이셨을까.


'그러는 나는?'


어머니의 슬픈 말로. 다른 여인을 탐하는 아버지. 그런 부부를 싫어하는 아이.


"넌 그렇게 인상 쓰는 게 문제라 그랬잖아."


지금은 폈잖아, 그렇게 답했다. 지금은 괜찮아, 괜찮은 거야…


형편없이 떨고 있었다. 갸날픈 손을 움직이며 칠판을 닦지만 이따금 멈춰 흐느꼈다. 치욕스러운 어구, 그리고 끊이지않는 조소. 아이러니하게도 그녀가 속한 공간에 그녀를 위한 틈이란 남아있지 않았다. 창문 너머로 눈이 마주쳤다. 그런 얼굴에 한없는 행복 같은 건 없었다. 복도를 내달렸다. 마음 속에서 울컥하고 무언가 치밀어 올랐다.


금색 틀에 검은 필기체로 206이 휘갈겨져있었다. 그 문을 노크했다. 문을 연 현수는 선뜻 놀라 허둥지둥 했다.


"가끔은 내가 찾아가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싶어서."


"...응, 맞아."


현수가 내오는 차를 마시며, 평소와 다름없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웃기도 하고, 서로의 말에 맞장구를 치기도 했다. 아까 내가 본 그 수치에 젖은 얼굴은 과연 꿈 속의 일이었을까? 조롱받는 현수나 그 모습을 보고 도망친 나나 실재하는 것일리가 없지 않은가? 하지만 이따금 떨리는 현수의 손이 나의 같잖은 상상을 현실로 끌고 내려왔다.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도 오늘로 마지막이야."


"...아까 그거 때문에?"


"응."


차를 한 모금하고선 긍정의 표시를 했다. 자기 딴에는 별 것 아닌것처럼, 흔들리는 동공을 감추지 못하면서 말을 이어나갔다.


"나는 있잖아, 편히 있을 곳이 없었어. 아까 봤잖아. 반에 있어봐야 그런 일이나 당하고, 또 기숙사로 도망쳐오려면 사감이 있고. 그래서 구 도서관에 자주 갔었어. 아는 사람도 없이 혼자 마음을 추스릴 수 있으니까."


떨어진 눈물 한 방울이 손목을 타고 흘렀다.


"그래도...그래도 외로워서 누군가 필요했어. 그 왜, 그런 말 있잖아. 사람은 사회적인 동물이라는 거. 본능적으로 누군가를 찾았어. 그런 와중에 네가 있었던거야. 옆 방에 사는 너."


"나는 네가 옆 방에 사는지도 몰랐는데."


"그렇지. 그래서 오히려 더 편안했어. 안심할 수 있었던 거 같아. 나를 몰랐으니까. 내 비참한 꼴을 모르는 너였으니까. 그래서 나는, 나는 너랑 친구가 되고 싶었고 그리고...그리고 또…"


말이 제대로 안 나온다며 웃음을 짓고는 잠깐 숨을 골랐다. 그런 너스레가 불편했다.

"이제 그런 말은 그만해도 좋으니까."


"그래, 이런 모습은 보기 흉하겠지..."


"그게 아니야, 그런 게..."


제대로 된 말이 나오지 않았다. 자칫 잘못하면 내 안에 있는 것이 끓어넘칠 것만 같아 두려웠다. 조심조심히 말을 꺼내는 것 조차 죄스러운 순간.


"나도 너와 같아. 나도 너와 똑같아."


내가 운을 떼자, 현수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같잖은 동정이 필요한 게 아닌데."


"아니, 동정 같은 게 아니야. 견디지 못해서 이 학교로 도망쳐 온거야...아버지는 다른 여자랑 놀아났어. 마리라고 했었나, 그런 여자 때문에 어머니와 나를 내팽겨 쳤어.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와 살면서 불평 한 마디 하지 않았지. 어머니가 왜 그랬는지, 알게 되었을 때 부터는 어머니도 좋게 바라볼 수가 없었어. 어머니와 닮은 딸이라서, 나도 그리 될 것만 같아서..."


말을 꺼내기 전의 고민이 무색할 정도로, 마음 속의 모든 것을 쉽게 털어놓을 수 있었다.


"너는 있지, 나와 있으면 안심할 수 있다고 했어. 나도 마찬가지였어. 너가 웃음지을 때마다 나도 편안해졌던거야. 이런 걸로 헤어..헤어지는 건 너무..너무…"


벅차오르는 감정을 억누를 수 없어 말을 이어나가지 못했다. 이런 나를, 현수는 안아주었다. 등에서 따스한 온기가 전해졌다. 서로의 마음을 어루 만져주는 그런 손길. 타지에서 조차 소외된 둘이었다. 그래도, 우리에겐 서로가 있었다. 그렇게 그 날의 밤이 지나갔다…


----------------------------------------


“오늘은 여기까지로 하자.”


“아니, 뭘 이리 중요한 순간에 끊어버리는 건데.”


“감정이입을 너무 했어, 우리 딸 미안.”


“아 미안하면 이야기 끝내라고!”


이 다음으로 끌고 나가고싶지 않다. 다른 누구도 아닌 나의 마음이 너무 아파온다. 현수가 떠나고, 만나지 못했던 그 몇 년 간의 나는 온전히 사람으로 있지 못했었다. 누구와도 소통하지 못하고 홀로 외로이 살던 그 몇 년 간.


“됐어, 뭐, 엄마한테나 물어봐야지.”


“나?”


“말고 다른 엄마.”


“그렇게 그냥 엄마라고 하면 헷갈리잖아.”


“아니 그렇다고 엄마를 ‘현수야’ 라고 부를 수는 없잖아.”


듣고보니 맞는 말이었다.


“그래, 엄마한테 물어보렴.”


“엄마는 치사해서 다 안 알려주니까.”


그러고는 한 바탕 웃었다. 이런 모녀관계도 있을까, 이런 어머니와 딸도 있을까. 나와 어머니도 이런 사이가 될 수 있지 않았을까. 지금이 즐거우면서도 만감이 교차했다. 다음에는 반드시 고향으로 가자. 현수와, 딸과 함께 고향으로 가자. 그렇게 다짐했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


자식은 부모를 닮는다는 말이 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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