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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회] [건전] 호프가르텐 공원에서

꽃의폭풍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0.12.04 23:10:33
조회 356 추천 18 댓글 5
														






호프가르텐 공원에 비가 오고 있어.


나는 공원 중심가 벤치에서 너를 생각하고 있지.


샐리. 가끔 나는 이런 생각을 해. 우리가 만나지 않았다면 어떤 삶을 살고 있었을까?




대학교 기숙사에서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너는 머리도 제대로 빗지 않는 덜렁이였지. 네가 룸메이트라는 말을 들었을 때


유학 생활에서 어떤 고급지고, 깔끔한 관계를 꿈꾸던 나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어.



'젠장. 완전 망했네.'



그도 그럴게, 네가 들고온 짐은 엉망이었잖아. 가방에 옷을 다 쑤셔넣었는데, 그마저도 정리하지 않아 실밥이 튀어나와 있었지.


화장품 중 하나는 가방 안에서 쏟아져서 청바지 하나를 버려야 했잖아. 짐을 풀던 중에 그 화장품 냄새가 침대에 배어서


한동안 나는 비비크림 냄새를 맡으며 잠에 들어야 했어.




샐리. 난 정말 네가 싫었어. 너는 덜렁이였고, 지저분했고, 그러면서도 또 인기쟁이였잖아.


얼굴은 예뻤지만, 정리하지 않은 곱슬머리를 정말 거슬렸지. 많은 사람들이 널 파티에 부르길 원했어.


넌 말을 잘했고, 공부도 잘했고, 집도 좋았으니까.



나는 파티에 간다는 너의 머리를 빗어주며 항상 이렇게 말하곤 했지.



"샐리. 그 사람들은 널 이용하려는 거야. 네 집안과 너의 그 성적을 자기 트로피로 삼고 싶은거라고."



그러면 샐리 너는 거울을 보면서 이렇게 말했어.



"괜찮아. 나는 뭐든 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사람이니까."



그리고 정말 그러더라고. 넌 뭐든지 정말 네 마음대로 하더라고. 파티에선 항상 주인공이었고, 성적은 항상 1등이었지.


그리고 널 정말 싫어했던 내 마음까지 사로잡았잖아.


샐리. 넌 정말 뭐든지 할 수 있는 사람이었어.


샐리의 법칙은 혹시 네 이름을 따서 지은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지.




샐리. 나는 네 완벽함이 어디까지 적용되는 건지 정말 궁금해. 지금도 그런 궁금증에 빠져있어.


네게 푹 빠졌다는 걸 네가 알아챘을 때, 너는 이렇게 말했지.



"미안해. 난 여자는 취향이 아니라서. 그래도 우린 친구지?"



너는 뭐든지 할 수 있다고 말했지만, 그게 뭐든지 네 뜻대로 조종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니더라고.


샐리. 네 말에 나는 납득한 척 했지만, 나는 납득하지 못했어. 너는 그러면서도 많은 여자를 만나고 다녔잖아.


나는 서스페리아에 나올거 같이 예쁜 여자애들을 네 마음대로 주무르는 걸 몇번이나 봤어.


식당에서 걔 허벅지를 주무른 건 대체 무슨 의미였어? 둘이 눈을 마주치곤 무슨 이야기를 한거야?




샐리. 그리고 왜 나를 쳐다보고 웃은거야?





내가 이 문제로 화를 내면 너는 항상 말했어.



"화내는 얼굴이 넌 너무 예뻐."



나는 바보라서 그 말을 듣고도 아무 말도 하지 못했지. 왜냐면 그 말이 너무 기뻤으니까.


네가 예쁘다고 해줬잖아.




어젯밤을 기억해? 일기예보에서 그랬잖아. 오늘 아침부터 비가 쏟아질거라고. 그러니까 우산을 챙기라고 말이야.


너는 오늘 아침부터 친구들과 호수로 낚시를 가기로 했었지. 나는 그 때 네 옆에서 편지를 뜯고있었어. 그래서 네가 나한테 말했잖아.



"비가오는데, 그냥 가지 말까? 방에서 쉴까?"



나는 그래서 이렇게 말했지. 널 걱정했으니까. '친구'로서.



"위험하니까 그게 좋겠어."



그러자 너는 짓궂은 미소를 띠며 몸을 뒤로 뺐어. 내가 너를 좋아한다는 걸 놀리는 어투로, 이렇게 말했지.



"무슨 짓을 하려고?"



그 말에 난 돌아버렸지. 네 기만이 지긋지긋했거든. 매일 같이 나를 놀리는 듯 은근한 어조로 내 신경을 긁는게 너무 지긋지긋했으니까.


너는 말했잖아. 내가 화내는 얼굴이 좋다고, 하지만 샐리. 난 네게 화낸 적이 없었어. 앙탈을 부린 것 뿐이었지.


근데, 네가 날 완전히 이상한 사람 취급했다고 느낀 순간, 난 제대로 생각할 겨를이 없었어.



모든 건 우발적이었지. 알고있어 샐리. 넌 나를 화나게 만들고 싶었던거야.


어쩌면 샐리 너에겐 이건 그냥 애정을 확인하는 일과였을지도 몰라. 처음 만날 때 부터 난 너에게 인상을 구겼잖아.


그 때 너는 바보같이 헤헤 웃으며 내게 달라붙어왔지.



넌 정말 순진한 애잖아. 그냥 내 그런 표정이 좋았던 걸지도 몰라.



그래서 나는 정말로 화를 냈지.


내 손에 붉은 피가 묻어 있었어. 편지칼은 네 배에 박혀 있었어. 너는 창백한 표정으로 칼자루를 쥔 채 나를 쳐다보고 있었지.


너는 날 두려워 하고 있었어.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네가 딸꾹질을 하고, 나는 기숙사에서 도망쳐나왔어.



너를 버린거야. 샐리.



호프가르텐 공원에 비가 오고 있어.


나는 공원 중심가 벤치에 앉아서 너를 생각하고 있지.


샐리. 가끔 나는 이런 생각을 해. 우리가 만나지 않았다면 어떤 삶을 살고 있었을까?


내가 거기서 화내지 않았다면, 그 때 너는 내게 키스해줬을까?



샐리. 난 정말 네가 좋았어. 너는 덜렁이였고, 지저분했지만, 그러면서도 또 예뻤잖아.


나는 가끔 네가 했던 그 말을 떠올려.



"괜찮아. 나는 뭐든 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사람이니까."




너는 정말 뭐든지 할 수 있는 사람이었을까? 샐리. 너는 날 제대로 다루지 못했잖아.





빗방울 사이로 익숙한 실루엣이 보여. 꼭 샐리 너 같아. 그 사람은 배를 움켜쥔 채 내가 있는 곳으로 달려오고 있어.


바닥에는 피가 번지고 있어. 샐리. 아마도 내가 꿈을 꾸나봐. 꼭 네가 저 빗방울 너머에서 쓰러지는 걸 본 것 같거든.


그리고 핏물이 바닥을 흠뻑 적시는 끔찍한 광경이 보이는 것 같아.




하지만 나는 이게 꿈인지 현실인지 모르겠어.


네가 쓰러질리 없잖아. 너는 뭐든 지 할 수 있는 사람이잖아. 샐리.





호프가르텐 공원에 비가 오고 있어.


나는 공원 중심가 벤치에서 너를 끌어안고 있지.


샐리. 가끔 나는 이런 생각을 해. 우리가 만나지 않았다면 어떤 삶을 살고 있었을까?






샐리. 눈을 떠줘. 넌 뭐든지 할 수 있다고 했잖아.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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