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DEC, 2011 AM 13:32]
LHC의 링 내부는 춥다. 지하라는 점도 있어서 바깥보다도 서늘한 느낌이다.
거의 쉬지 않고 계속 달리다보니 달아오른 몸으론 그 추위가 오히려 기분 좋다.
역시나 10km나 되는 거리를 달리기만 하는 건 무리였고 운동엔 능력이 없는 나와 크리스로선 제법 건투한 편이었다.
지옥의 고통이었던 데다 목구멍도 바싹 말랐지만 덕분에 합류지점에는 예정보다 30분 빨리 도착할 수 있었다.
「오히려……너무 서둘렀잖아……하아, 하아……」
더는 못 걷겠다는 분위기로, 크리스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버렸다.
나도 서늘한 바닥에 다리를 뻗고 젖산이 쌓인 육체를 쉬게 했다.
조명이 비춰져서 어슴푸레한 머리 위를 지긋이 올려다본다.
그 이상할정도로 높은 천정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CMS.
고요히 정적에 휩싸인 관측소에는 신비감마저 느끼고 만다. 마치 제단 같다고 할까.
소립자 충돌 실험 때에 그 소립자의 움직임을 관측하기 위한 LHC에 복수 존재하는 관측소중 하나. 그것이 CMS다. 그 수직 터널은 6층 빌딩과 비슷한 높이.
중앙에 치솟은 마치 만다라 같은 외견을 가진 거대한 관측 장치의 모습에는 경외감마저 들었다.
드러나 있는 무기질함과 완전한 대칭성.
다루는 이전에 곧잘 이 영상을 보며 "모에하다"고 떠들어댔던 물건이다.
현재진행중인 Z프로그램 실험은 다른 관측소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지금의 CMS는 가속된 양자에게 있어선 통과점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나와 크리스에게 있어선 여기가 현재의 골 지점이었다.
여기까지 지나온 10km 가까운 길에서와 같이 공동에 인기척은 없었다.
역시나 아직 나이트하르트는 오지않은 듯하다.
다루와도 여기서 합류하는 것으로 되어있다. 만약을 대비해 휴대폰에 전화를 걸어본다. 하지만 한참을 기다려도 다루는 받지 않았다.
「그 녀석, 뭐하고 있는 거야……」
어쩌면 지금은 이동 중인지도 모르지만.
불안하게 하지 말란 말이다. 정말이지.
일단 휴대폰을 집어넣었다. 잠시 후 다시 연락해보자.
벽에 등을 붙이고 있는 크리스의 옆으로 이동한다.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시간이 생겨버렸다.
이 시간은 크리스와 이야기하는데 쓰고 싶다.
늘어져서 숨을 고르고 있던 크리스는 옆에 앉은 내 옆모습을 슬쩍 쳐다봤지만 곧 얼굴을 묻었다.
물이라도 있으면 건네주겠지만. 유감스럽게도 그런 형편 좋은 물건은 없다.
「……이 1년 반, 뭐하고 있었어?」
「너와 같아. 계속 감금되어있었다」
식사는 직원들과 같은 것으로 매일 삼시세끼 준비되었고 목욕도 가능했다. 희망하면 책이나 DVD, 게임도 주어졌다.
24시간, 계속 카메라로 감시당하고 있었고, 외부와의 연락을 취하는 건 금지되어있었지만 그 외에는 아무런 부자유도 없었다.
다루와 같은 방이었지만, 녀석은 내가 자력으로 재기할 때까지 아무런 간섭도 하지 않았다.
감금당한 방에는 인터넷은 연결되어있지 않았지만, 다루는 어찌한 건지 협력자--나이트하르트--와 연락을 취해, 이 오퍼레이션·발할라를 착착 준비해오고 있었던 것이다.
「……실험은 보여줬어?」
「실험? 무슨 소리지?」
「Z프로그램의……인체실험」
거기서 크리스는 고통스러운 듯 표정을 일그러트렸다.
「참석시키지 않았어?」
「……아니」
「나는, 참석을 강요받았어. 그뿐 만아니라 실험내용에 대해 자세한 설명까지 들었어. 마치, 내가 그 프로젝트에 참여하도록 기대하는 듯이」
확실히 크리스의 두뇌는 SERN으로서도 부디 이용하고 싶었을 터다.
전화렌지(가칭)을 만든 건 다루고, 그것을 타임리프머신으로 개량한 것은 크리스였다. 사실상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저 거들먹거리며 이러쿵저러쿵 망상을 늘어놨을 뿐이다.
그런 의미로, 이곳에 끌려온 후 우리들에 대한 녀석들의 대응의 차이는 납득할만했다.
「그럼, 피험자가 젤리맨이 된다고 알고 있는 실험을, 보게 됐던 건가?」
「피험자로 선택된 사람들은, 누구도 지금까지의 실험결과를 알지 못했어. 오히려 그들은 인류역사 최초의 타임트래블러가 되는 거라고 바람이 넣어져 실험에 참가하고 있었어」
「…………」
실험에 참석하다는 것. 그건 다시 말해, 살인에 가담하는 것과 같다.
하지만 크리스에겐, 피험자를 구해주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나는……나는, 아무것도 당하지 않았고, 어디에도 끌려가지 않았고, 어떤 실험에 참석을 강요받은 적도 없다.
나와 크리스와는, 머리의 구조자체가 다르니까. SERN이 필요로 하는건, 내가 아니라, 마키세 크리스의 두뇌였다.
라니, 질투해서 어쩔 거냐. 바보 같으니!
「저기, 오카베」
크리스는 나를 보려하지 않는다. 어슴푸레한 가운데, 웅크리고 있는 그녀의 표정은, 어딘가 허무하게도 보였다.
이 1년 반, 크리스는 홀로, 마음의 안식조차 없이 하루하루를 보내왔는지도 모른다.
「여길 탈출하면 어쩔 셈?」
「난, 아키하바라에 돌아가서, 그리고, 과거를 바꾼다……」
다시 한 번.
과거를 바꾸는 것으로 미래를 바꾼다.
리딩 슈타이너라는 능력이 있는 나라면, 가능하다.
「나는, 마유리를……」
마유리를, 구하고 싶다.
1번은, 포기해버렸던 죄책감. 그것이 지금 나의 원동력이 되고 있다.
「바꿀 방법은, 찾은 거야?」
질문에, 나는 그만, 말을 잃어버렸다.
그래, 바꿀 방법따윈, 모른다.
내 안에 있는건 그저.
--과거를 바꾸고 싶다.
--1년 반 전에 잃은 소꿉친구를 되찾고 싶다.
그 생각뿐.
「과거를 바꾸고 싶다면, 여기서 도망칠 필요는 없어」
「……뭐?」
「아마네양의 이야기 기억해?」
1년 반 전, 일본 인터넷 게시판에 나타난 미래인 존·타이타. 그 "본인"이며, 라보맨 넘버 008로서 내가 동료로 맞아들인게, 아마네 스즈하였다.
「2034년, 지금으로부터 23년 뒤, 인류는 역사상 최초의 타임머신 실용화에 성공한다. 개발한 것은 ……SERN이야」
「……그래서?」
「과거를 바꾸고 싶다면, 여기서 도망칠 필요따윈 없어」
크리스는 다시 한 번 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바꾸고 싶다면, 오히려, 넌 SERN의 실험에 협력해야해」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진심으로, 말하는거냐?」
「마유리를 구할 해법만 생각한다면, 그게 나아. 적어도 앞으로 23년만 기다리면 2010년의 아키하바라에 "간섭"할 방법이 생겨」
「마유리를 죽인건 라운더와 SERN이다」
주먹을 꽈악 쥐며, 분노를 삼켰다.
「그 녀석들에게, 힘을 보태라니, 그런 말은 꺼내지도 마……!」
「미안……, 나, 그런 의도는……」
나의 반응에, 크리스는 언뜻 보기에도 당황하고 있었다.
물론 나도, 크리스가 진심으로 말한게 아니란 건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분노를 숨길 수가 없다. 이 1년 반, 포기해버렸던 내 안에, 아직도 이렇게 끓는 듯한 감정이 남아있다니, 스스로도 의외였다.
「가능성의 이야기를, 한거야……. 감정을 완전히 배제한 채, 마유리를 구하는걸 최우선으로 한다면, 최선의 해법은 무엇일까 하는……」
「그렇네, 합리적 판단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 하지만 나는, 합리적이지도 현실적이지도 않아」
한때 나는 광기의 매드 사이언티스트를 자칭하며 "목적을 위해선 수단을 가리지 않는다"라던가 떠들어댔었다. 하지만 막상 그런 상황에 직면하자, 그런건 자신의 감정이 허락하지 않았다.
「저기, 아키하바라에 돌아가서, 그리고 어쩔거야……?」
크리스는 머뭇거리며 물어온다.
「마유리를 구할 방법에, 짐작가는건, 있어?」
「……다시 한 번, 타임리프 머신을 만들겠어」
「무리야」
크리스는 눈을 내리깔고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그건, 기적 같은 우연이 겹쳐져 완성된 물건이야. 노리고 만든게 아니야……」
「너는, 설마, 여기 남고 싶은건가!?」
참지 못하고 소리쳐버렸다. 지나치게 감정적이 되어있다. 자중해야한다고 이성이 호소하고는 있지만, 억누를 수가 없다. 이전에 크리스는 이렇게 비굴하지도 부정적이지도 않았다. 한마디 한마디에 자신이 흘러넘쳤다.
크리스도, 변해버린건가. 1년 반의 감금생활로, 내가 썩어버렸던 것처럼.
. .
이런 조수는, 보고 싶지 않았다.
「그럴 리, 없잖아……. 하지만 1년 반이나 시간이 있으면 이것저것 생각해버리는걸……」
그래, 확실히 나도, 꽤나 생각했었다. 무엇이 옳은가. 자신은 잘못되어있었는가. 무엇을 하면 좋은가.
그 끝에, 내가 내린 결론이, 이 오퍼레이션·발할라였다.
「스즈하는, 나와 다루가 만든 레지스탕스의 멤버였다. SERN에 의한 디스토피아 지배를 저지하려 싸우고 있었다. 그 녀석은, 무엇을 타고 왔지? 대답해라, 크리스!」
크리스는 내 목소리에 몸을 떨고는, 자신의 두 팔을 끌어안듯이 했다.
「타임……머신」
「그래. 나와, 다루가 마든 타임머신이다. 미완성이었지만, 과거로는 갈 수 있었다. D메일도, 타임리프도 아닌, 물리적인 타임트래블을 실현시켰다. SERN을 제치고 말이지……!」
우리들은, 자력으로 타임머신을 만들 수 있다.
SERN의 힘따위, 필요 없어. 여기에 남을 필요따위, 없어.
남아선, 안된다.
「아마네양의 일……가능한, 생각하지 않으려 했는데……」
하지만 크리스는, 말하기 어려운 듯 입술을 깨물었다.
뭐지?
「네가 타임머신에 대해 말한다면, 얼버무리지 않는 편이, 좋겠지」
무엇을?
「그녀가 "관측"한 2036년의 일을, 생각해봐」
「관측……?」
「25년 후의, 나와, 너와, 하시다의, 상황」
「…………」
무심코, 꿀꺽하고 숨을 삼키고 말았다.
크리스는 양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살짝 고개를 흔든다.
그 모습에서, 얼마나 고뇌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었다.
「그 점을 파고들면, 난……알 수 없었어. 알 수 없어졌어. 이 1년 반, 계속 생각해봤지만, 생각하면 할수록, 머릿속이 엉망진창이되서, 무엇이 옳은지, 냉정하게 판단할 수 없게 되서……」
거기서 얼굴을 든 크리스의 눈은, 빨갛게 되어있었다.
울고 있는……건가?
「우리들은, 아마네양이 말했던 미래와 같은 결말로, 나아가고 있는 기분이 들어」
「같은, 결말……?」
. . . .
「아마네양이 타고 온 미완성품 타임머신은, 너와 하시다가 만들었어. 마유리의 죽음과 SERN의 디스토피아 지배를, 없었던 걸로 하기위해서」
「아아, 그래」
「그래서, 어찌됐지?」
그만해.
「아마네양은? 그 타임머신은? ……마유리는?」
그만해!
「실패했어. 아마네양은, 실패했어. 그 편지를, 잊어버리진 않았겠지……」
더 이상 말하지 마.
내가 애써 눈감고 있던 "결론"을, 말하지 마!
「나는, 같은 실패를, 두번이나 반복하……」
. . .
「수속해버리는거야, 오카베」
말하지마!
「같은 결말로」
「어트랙터……필드……!」
세계의 의지.
결정론적 미래.
설령 과정을 바꾸어도, 미래는, 같은 결과로 수속된다.
마치, 세계 자체가 의지를 가지고 그쪽으로 인도하는 듯한 절대성을 가지고.
사실, 1년 반 전, 나는 몇 번이고 타임리프하여 손을 썼었지만, 마유리는 매번 목숨을 잃었다. 나는 결국 그 수속에서 빠져나갈 수 없었다.
그것이, 어트랙터 필드.
다세계 해석도 아니고, 코펜하겐 해석도 아니다. 2036년에 정립된 "세계"의 원리.
「어트랙터 필드가, 계속, 족쇄가 되고 있어. 우리들이 어떻게 발버둥 쳐도, 헛수고가 아닐까하고……. 다른 결과에 다다르는 해답 따윈, 존재조차 하지 않는게 아닐까하고……」
크리스는 말하며, 눈 주변을 손가락으로 훔치고 있었다. 눈물에 목이 막혀온다.
「넌, 그래도, 여기서 도망가겠어? 실패한다고 알고 있어도, SERN에 대항하는 거야?」
「나는……」
「애초에, 바꿀 수 있다는 생각 자체가, 잘못된 건지도 몰라……. 오카베가 리딩 슈타이너라고 하는 HENTAI스러운 힘을 가지고 있다 보니, 착각해버리지만. 내 쪽에서 보자면……아니, 너 이외의 모든 인간입장에서 보자면, 세계선의 변동조차 인식할 수 없는 거야. 그렇다면, 결과는 커녕 과정조차 바꿀 방법이 없어……」
나의 능력은 치트.
본래라면 있을 수 없는 것.
「가지고 있기에, 나는, 바꿀 수 있는 찬스가, 있는 거야」
착각이라고 해도.
그 주어진 찬스를, 나는, 사용하겠어……!
「너만큼, 나는, 강해질 수 없어……」
크리스는 자학하듯 웃는다. 눈물로 범벅이 됐으면서 그런 식으로 웃는 언밸런스함이, 그대로 그녀의 정신 상태를 나타내고 있다. 지금의 크리스는, 너무 불안정하다.
「아마네양의 "관측결과"가, 무겁게 짓눌러와, 그 무게에 부글거리며 가라앉아, 아무 행동도 할 수 없게 되어버려」
스즈하가 관측한, 2036년의 마키세 크리스에 대한 평가. 그건--
「"타임머신의 어머니"인가……」
인류역사상 최초의, 타임머신 개발자.
디스토피아 성립의 원흉.
..... . . .
SERN의 연구원.
「세계선이 수속한다면, 나는, 어찌해도, SERN으로부터 도망칠 수 없어. 그렇지? 지금부터 20년 이상을, 이 장소에서, 타임머신 연구에 쏟게 되는 거야……」
「그걸 증명하는건 아무도 불가능해」
「모순되어있어, 오카베. 너는 2010년의 아키하바라에 "타임머신이라고 생각되는 것"으로 왔던, 자칭 "하시다의 딸"의 말을 믿었다. 그렇다면, 그녀가 말했던 2036년의 상황도, 믿지 않으면 안돼」
「그건--」
「너도, 미래를 "예언" 당했어. 그걸,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되는거야……」
「나의 미래……」
나는, 14년 후에, 죽는다.
스즈하에게--존·타이타에게, 그렇게 예언되었다.
아니 예언이 아니다.
그건 스즈하에게 있어선 "과거에 일어난 사실"이었다.
예측이 아니라.
결과.
하지만 적어도 지금은.
「나는 그걸 부정해주겠어!」
크리스에게 다가섰다. 어깨를 붙잡고, 똑바로 그 눈을 들여다본다.
「모순이야……」
「아니 모순되지 않아!」
「하지만, 알 수 없는걸. 알이 먼저인거야? 닭이 먼저인거야? 응, 어느 쪽 인거야……!」
「D메일이다, 크리스. 그건 확정되어있는 과거에 간섭함으로써, 현재를 바꾼다. 그것과 같은 거야. 과거를 바꾸면 미래도 바뀐다.」
중요한건 무엇이 "결말"을 결정하는가다.
「세계에는 지금 이 순간에도 , 무수한 "결말"이 생겨나고 있다. 그리고 동시에, "과정"도 생겨나고 있어! 무엇이 과정이고, 무엇이 결과인가. 그런건 신이라도 모르는 거다! 영화나 소설과는 달라. 명확한 구분같은건 없어!」
나는, 자신의 미래를 확정시키지 않을 테다.
반드시, 바꿀 수 있다.
마유리를 구하는 방법은 분명 있다.
나는 14년 후에 죽거나 하지 않는다.
「수속을 회피하는 방법은 분명히 있어. 스즈하도, 그렇게 하려했다. 때문에 그 녀석은 1975년에 향했던 거야」
어트랙터 필드에서의 탈출.
세계의 운명을 크게 분기 시키는 "원인"에 간섭하는 것으로, 다른 분기로 탈출할 수 있다. 스즈하는 우리에게 그렇게 말했다.
스즈하에게 있어서 그건 IBN5100이었다.
「실패하긴 했지만, 바꿀 수 있는 가능성은 남아있다. 나는 그렇게 믿어……!」
근성론이라는건 알고 있다. 크리스가 그런 사고방식을 좋아하지 않는다 것도.
하지만, 기적을 일으키기 위해서는, 논리적이기만 해서는 안 된다.
「크리스. 너는, 어떤거야? 믿는 건가, 믿지않는건가. 어느 쪽이야?」
「…………」
각오를.
묻는다.
나는, 나 자신의 각오를, 보였다.
크리스는?
눈으로, 묻는다.
너 자신의 각오를.
들려줘.
「믿고 싶어……」
그것이, 대답이었다.
내 품에 매달려오는 그녀를.
살짝 끌어안았다.
떨리고 있는 그녀의 머리카락을, 등을, 살며시 쓰다듬어준다.
줄곧, 만나고 싶었다.
1년 반이나 떨어져있었던, 동료.
마유리를 구하기 위해서, 함께 싸웠던 동료.
홀로, 시간과의 싸움에서의 버팀목이 되어준, 이해자.
크리스가 있었기에, 나는 그 당시 힘을 낼 수 있었고.
타임리프머신 이라는 "되돌릴 수 있는 찬스"를 얻었고.
지금부터의 고난에도, 맞부딪칠 수 있을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 정도로, 든든한 동료인거다, 너는.
크리스와, 다루가 없다면, 나는, 마유리를 구할 수 없다.
「절대로, 도망쳐주겠어. 우리들은, 아키하바라에, 돌아간다」
「벗어나게 해줘, 오카베……. 세계선의 수속에서, 나를……」
수속따위 시키지 않겠다.
그 미래를, 우리들은, 반드시 회피해보이겠어.
SERN으로부터 도망치는 것은. 오퍼레이션·발할라는. 세계의 의지가 아닌, 오카베 린타로의 의지다.

[21, DEC, 2011, AM 15:04]
합류예정시간을, 5분정도 오버하고 있다.
다루도, 나이트하르트도,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크리스와 손을 잡은 채로, 숨을 죽이고 계속 기다렸지만, 아무래도 불안해져왔다.
절대로 늦지마라, 라고 입이 닳도록 이야기하던건 다루 쪽이다. 정작 그 다루가 오지않을뿐 아니라, 여기까지 거의 완벽한 움직임을 보이던 나이트하르트마저 나타나지 않는건, 어찌된 건가.
다루에게 다시 한 번 전화해본다. 이미 이렇게 전화를 거는게 5번째였다. 그리고 한번도, 연결되지 않았다.
「조용하네……」
후련해진 표정을 한 크리스가, 머리위의 환풍구를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다.
무음.
들리는건, 내가 귀에 댄 휴대폰에서 울리는 통화 연결음뿐.
이 세계에는 우리들 이외에는 아무도 없는게 아닐까 하는, 착각마저 든다.
시간마저 정지한 듯한 느낌이 든다.
이곳은, 세계와 단절되어있다고, 실감한다.
무엇보다, 이곳은 지하 100미터다.
다루, 어째서 전화를 받지않는거냐……?
나이트하르트도, 다루도, 예정시간에 이곳에 없는건, 어째서다?
지상에서 나이트하르트와 라운더가 충돌하여 총격전이 됐다던가 하는 개그는, 하지말아달라고…….
아니면 설마, 먼저 탈출해버렸다?
아니, 다루가 배신해서 무슨 의미가 있다고. 그렇다면, 무언가 사고가 일어난 건가. 그렇지 않으면, 내가 합류지점을 착각한 건가? 하지만 여기가 CMS라는건 틀림이 없다.
그럼 달리 생각해볼만한 요인은?
--날카로운 구두소리가, 울려 퍼졌다.
깜짝 놀라, 나와 크리스는 등을 떼어, 자세를 다잡는다.
휴대폰은 집어넣었다. 다루는 결국 받지 않았다.
크리스는 달라붙듯 몸을 기대온다.
구두소리의 행방은.
우리들이 온 방향과는 반대쪽 터널.
그곳에, 인영이 보였다.
혼자뿐이다.
역광으로 인해, 확실히는 보이지 않는다.
이쪽으로 다가온다.
이 구두소리로부터 알 수 있는건.
초조함마저 느낄 정도로, 느긋한 발걸음.
.
그리고, 그 구두가, 힐이라는 것.
나이트하르트는--
「여자……」
고개를 갸웃거린건 크리스였다. 하지만 그 이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루는……함께가 아닌건가.
그렇다면 그 녀석, 어째서 전화를 받지않는거지?
「저기……」
크리스는 내게 달라붙은 채, 속삭였다.
그런 작은 소리도, 이정도로 조용하면, 나이트하르트가 있는 곳까지 들릴지도 모른다.
힐의 소리가, 6층짜리 CMS내에 반향한다.
「너무 조용하지 않아?」라는 크리스.
실루엣만으로 판단하자면, 나이트하르트라고 생각되는 여자의 스타일은, 일본인과는 거리가 있었다.
키도 크다. 어쩌면 나와 비슷할지도.
검은 슈츠와 타이트스커트로 몸을 감싸고, 거침없이 걸어가는 모습은, 헐리우드 영화에 나오는 미녀 커리어우먼같은 모습이었다.
일본인이 아닌건가? 얼굴이 확실히 보이지 않는 것이 답답하다.
「지나치게 조용하다고? 당연하잖아. 그것보다 다루는 어디서 노닥거리고 있는지--」
「지나치게 조용하다고, 오카베」
크리스는 왜인지 같은 말을 반복했다.
"중요하니 두 번 말했습니다"라는 인터넷 유행어를 생각해내고, 크리스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여기 내려왔을 때는 '소리'가 났었잖아?」
났었다.
땅울림과도 닮은 저음이, 단락적으로 들려왔었다.
그건 LHC의 가동음이거나, 아니면 공조기의 소리일거라고 막연히 생각해왔다. 그 이상으론, 생각하지 않았다. 생각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 신음 같은 소리가, 멈춰있어」
「멈춰있다……고?」
귀를 기울여본다.
크리스가 말한 대로, 멈춰있다.
그 중저음은 지금, 전혀 들리지 않는다.
CMS에 도착한 직후에는 어땠지?
여기서는 소리가 들렸던가?
알 수 없다.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 정도로 의식하고 있지는 않았다.
LHC는, 실험중일터. Z프로그램, 양자-양자 충돌실험. LHC를 바로 멈출 수는 없을 텐데, 어째서, 그 소리가 들리지 않지……?
「미스터 오카베와, 미스 마키세죠?」
곤혹해하고 있는 나에게, 나이트하르트가 말을 걸어왔다.
「질풍신뢰의 나이트하르트입니다. 후후, 이 이름으로의 자기소개는, 부끄럽네요」
그 목소리는. 침착하고, 지적이고, 중2병과는 연이 없을듯해서, 질풍신뢰라는 핸들네임과는 전형 어울리지 않았다--
「여자……였던가?」
또다시, 크리스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 의문이, 혼란 직전의 내 사고를 중단시켰다.
. . . . . . .
「본명은, 히이라기 아키코라고 합니다. 당신들과 같은, 일본인」
크리스는 무엇에 대해서 의문을 가지고 있는 거지?
나이트하르트가 남자인가 여자인가 보다도, LHC가 멈춰있는 점을 신경써야지!
「LHC가, 멈춰있다. 금방은, 멈출 수 없을 터인데……!」
크리스의 손을 떼어내고, 나는 만다라 모양의 관측 장치로 달려갔다. 터널에서 뻗어온 "파이프"는 그 거대한 관측 장치를 관통해, 나이트하르트가 온 터널 쪽으로 뻗어나간다.
「녀석들이, 어째서 멈춘거지?」
그 "파이프"의 표면을 만져보려했다.
만질 수 있었다.
식어있었다. 감상은 그것뿐. 그 안에 양자가 빛에 가까운 속도로 지나고 있는지 어떤지는, 만져본것만으로는 알 수 있을 리가 없다.
직후.
앞뒤의 터널에서 비치고 있던 빛이, 사라졌다.
단락적으로, 차례대로 스위치를 끄듯이.
형광등이, CMS를 중심으로, 차례차례 꺼져간다.
빛이, 도망가고 있다.
어둠에 눈이 적응하지 못해,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됐다.
--힐의 소리가 끊겨있었다.
「나이트하르트!? 어디지! 이대로라면 위험하다, 라운더가--」
「진정해주세요, 미스터 오카베」
침착한 나이트하르트의 목소리가, 널따란 CMS 공동 내에 울려 퍼진다. 결코 어조를 높이지 않았음에도, 그 목소리는 확실히 내 귀에 들려왔다.
하지만--
그 목소리가 어디에서 들려오는건지, 아직까지 파악할 수 가 없다. 조명이 사라진 탓에, 내 방향감각이 망가져버린건가?
크리스는, 어디에 있지? 주변을 둘러봐도, 어두워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만지고 있던 "파이프"로부터, 손을 뗄 수가 없었다. 손을 떼면 어둠에 삼켜져버릴 것만 같아서, 두려웠다.
그도 그럴게, 이곳은 지하 100미터. 바로 근처에서, 미니 블랙홀이 생성되고 있는 장소. 마유리를 살해한 녀석들의, 본거지.
. . . .
「아무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전부, 예정대로니까요」
나이트하르트가 그렇게 말했다. 위화감을 느낀다. 어째서 그렇게까지 침착할 수 있는 거지?
「당신, 정말로 나이트하르트인거야……?」
생각보다 가까이에서, 크리스의 목소리가 들린다.
기척이 있다. 그쪽으로 손을 뻗는다.
「크리스?」
「오카베……」
크리스의 몸이, 내 품으로 뛰어 들어왔다.
「미스 마키세는, 제가 나이트하르트가 아니라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실례되지만, 이전에 인터넷상에서 만난 적이 있던가요, 『밤오반과 카메하메파』씨?」
또다시 나이트하르트의 목소리에선, 위치관계를 파악할 수가 없다.
아니 그보다, 크리스는 방금, 뭐라고 했지?
「만난 적은 없어. 하지만 에스퍼 소동때 시부야의 스크램블 교차점에 나타난 고교생은, 남자였어」
「그 인물이 나이트하르트라고, 누가 증명했죠?」
「그건……」
「미스 마키세는, 직감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사람이군요. 조금 실망했어요」
이 두 사람은, 무슨 얘기를 하는 거지?
「이봐, 가르쳐줘. 예정대로라는건, 조명을 끈건 다루인건가? 다루는 어디 있지? 설마 잡혔다거나 하는건 아니지?」
「오카베, 뭔가 이상해, 이사람--」크리스가 속삭인다.
「그보다, 라운더가 내려올 가능성이 있다. 빨리 탈출을!」
그걸 위해서라도, 다루와 빨리 연락을 취하고 싶다--
「라운더라면」나이트하르트의 목소리는, 어째선지 즐거운 듯.「이미 있어요」
그 말의 의미를, 나는 순간, 이해하지 못했다.
시야의 구석에서, 무언가가 움직이는 기척.
잽싸게 시선을 돌렸다.
어둠속에서 떠오른 것은, 2개의, 작은 녹색 광점.
아니--
2개가 아니다.
점점 증식해간다.
6……10……14……20……
어둠속에 숨은, 녹색 악마들.
이건.
눈이다.
인간 10명의 붉은 눈이, 우리들을 향하고 있었다.
본능적으로 공포를 느꼈다. 비명을 지를 것만 같았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이녀석들은누구지어디에서튀어나왔지발소리가전혀나지않았어이광점은적외선고글이다이녀석들이있는방향은아마도우리가2시간가까이걸려지나온터널이고이녀석들은우리의뒤를쫓아온건가다루나나이트하르트는이걸눈치채지못한건가그렇다면어째서알려주지않았지CMS는정말로조용하고LHC에서의폐부를울리는듯한가동음조차멎어있고들리는건나이트하르트로생각되는여자의힐소리뿐이었건만10명이나되는병사가따라오는발소리도기척도전혀느끼지못했다자동차나자전거로쫓아온건가엔진소리도페달을밟는소리도들리지않았다게다가뛰어오는구두소리도마찬가지다모르겠다모르겠다--
「움직이지 않는 편이 좋을 거라 생각해요. P90의 총구가 당신들에게 겨눠져있는데다, 움직여버리면 "실험"이 되지 않기 때문에」
나이트하르트의 어조는 어디까지나 평온했다.
「라운더……!?」
내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러내린다. 어느 샌가 목구멍도 바싹 말라있었다.
크리스도 말을 잃고 있었다.
무장한 남자들이 쫓아오는 소리는, 전혀 없었다. 전혀다. 애초에 조명이 사라지고, 녀석들의 존재를 눈치챌 때까지, 시간은 30초도 되지 않았다.
그것이 의미하는 것.
잠복하고 있던게 아니다. 이 CMS에 도착했을 때, 누군가 숨어있는듯한 기척은 전혀 없었다.
「바로, 근처에 있었다……?」
「대략, 500미터쯤 떨어져있으면, 충분하답니다」
나이트하르트이자 히이라기 아키코라고 자칭한 여자의 목소리가, 의미 불명의 말을 한다.
「LHC링 정도의 커브라면, 그정도 떨어져있으면 보이지않아요」
이 여자,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돌연 내 주머니속의 휴대폰이 진동했다.
누군가로부터의 전화. 상대방은 자명하다. 이 번호를 알고 있는건, 다루밖에 없다.
하지만, 그걸 받는건 불가능했다. 이 어둠속에서 보이진 않겠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더, 10개의 총구에 겨누어지고 있는 공포에,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다. 휴대폰의 진동음조차 시끄럽다, 빨리 끊어달라고 기도해버린다.
「계속 뒤에서 쫓아오는 줄도 몰랐던 건 두 사람이 무능해서는 아니랍니다」
마치 위로하는 듯한 말투. 차분하며 냉정하며, 신경을 긁는 말투.
「라운더 여러분이, 우수할뿐이니」
「역시 저사람, 나이트하르트가 아니야!」
떨리는 목소리로 크리스가 외친다.
「아뇨」자칭 나이트하르트이자 히이라기 아키코는, 크리스의 그 말을 예상했다는 듯이 즉시 부정했다.
「나는, 당신과 미스터 하시다와 같이, 오퍼레이션·발할라를 입안했던, 나이트하르트랍니다. 전화, 받아보는게 어떤가요?」
전화……라고……?
「오카베, 이건, 함정이었던 거야……」
나는 휴대폰을 주머니에서 끄집어냈다. 어둠속에서 휴대폰 디스플레이의 빛이 쓸데없이 눈부시게 느껴진다. 표시된 번호는, 다루의 번호가 아니라.
「이해하셨나요?」
휴대폰으로부터 들려오는 목소리와, 내 귀에 직접 닿고 있는 히이라기 아키코의 목소리가, 싱크로했다.
말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크리스의 어깨를 무의식중에 끌어 당겼다.
「너도……라운더냐!」
「후훗」
여자의 비웃음 소리.
「그럼, 실험을 시작해볼까요」
「실험이라니 뭐냐!? Z프로그램인가!?」
「세계선 수속의 실증실험, 이랍니다」
「뭐……엇……?」
터무니없는 살기.
쭈뼛하고, 온몸에 닭살이 돋는다.
싫은 예감이 든다.
녹색의 악마들이 총을 고쳐 잡는 기척이 느껴진다.
죽음의 기척.
토하고 싶을 정도의 기분 나쁨.
손가락 끝이 사악하고 식어가는 감각.
공기가 끈적인다.
「크리스, 도망쳐--」
총격음이 귀를 잡아 찢는다.
총구불꽃이 섬광이 되어 어둠을 가른다.
나는 크리스를 밀어 넘어트리듯이, LHC "파이프"의 그림자에 쓰러지듯 들어갔다.
다음은 그저, 몸을 숙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크리스가 무언가를 외쳤지만, 총격음에 덮여 사라져버렸다.
난사. 너무나도 일방적인. 질서도 뭐도 없는 공격.
머리 위를, 무수히 흩뿌려진 총탄이 날아다닌다.
전장에 선 경험따윈 한 번도 없지만, 내부까지 울리는 이 소리와 작렬하는 폭력에, 나는 절규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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