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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백년전쟁. 부르주 왕국 (1423-1428)

prevot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4.01.17 10: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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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아, 뭐가 남았어,

우리 도팽에게, 참 고귀한 그분께?

오를레앙, 보장시,

노트르담 드 클레리, 그리고

방돔, 방돔!

-프랑스 동요, 방돔의 종



1. 르 크로투아 포위전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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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5세의 유언에 따라 프랑스의 섭정으로 임명된 베드퍼드 공작 존은 지나치게 신중하다는 점을 제외하면 여러모로 형 헨리를 닮았다는 평판을 듣는 인물이었다. 즉 신실하고 금욕적인 성격이었고 유능한 행정가이자 정치인이자 군사 지휘관이었다. 하지만 그는 형과 달리 아쟁쿠르 전투 같은 전설적인 위업을 세운 기사로서의 명성을 가지지 못했다.


게다가 프랑스인 관료들은 샤를 6세 시기의 법과 관습을 고수하며 잉글랜드 정복자들을 위한 새로운 법을 승인하는 것을 꺼렸다. 파리고등법원은 샤를 6세가 사망한 직후 어린 헨리 6세의 프랑스 왕위 계승을 인정했지만 베드퍼드 공작의 섭정 권한은 인정하지 않았다. 프랑스 법에 따르면 미성년 국왕의 정부는 섭정이 아니라 왕족과 고관들이 포함된 의회로 구성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베드퍼드 공작이 프랑스와 프랑스 국민의 안녕을 위해 평생을 바치겠다고 파리 시의 관료들 앞에서 맹세하는 조건으로 간신히 합의가 이루어진다.


부르고뉴와의 동맹 역시 당장 파기되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위태로웠다. 왕세자 샤를은 파리 삼부회에서 무법자로 선언되고 상속권을 박탈당했지만 프랑스 인구의 절반 이상이 여전히 그의 왕권을 지지하고 있었고, 부르고뉴 공작 필리프는 패배하는 편에 서느니 아버지의 원수와 타협하는 길을 선택할 현실적인 정치가였다. 역대 부르고뉴 공작들이 북부 프랑스 도시들의 지지를 얻고 파리 시와 정부를 장악할 수 있었던 원동력인, 간신들로부터 왕을 보호한다는 명분은 샤를 6세가 마침내 사망하면서 효력이 다했다. 15세기 잉글랜드 직물 산업의 부상으로 잉글랜드 도시들과 저지대 도시들 간에 경쟁 관계가 싹트면서 부르고뉴와 긴밀한 동맹을 유지하기도 어려워졌다.


베드퍼드 공작의 동생이자 잉글랜드의 호국경인 글로스터 공작 험프리와 부르고뉴 공작 간의 개인적인 갈등 역시 불안 요소였다. 1423년 1월, 글로스터 공작은 에노 백작부인 자클린과 갑작스럽게 결혼했다. 자클린은 원래 부르고뉴 공작 필리프의 사촌인 브라반트 공작 요한의 아내였지만 그녀가 홀란트와 질란트의 상속권을 놓고 바이에른의 요한과 벌이고 있었던 분쟁에서 남편이 그녀의 동의 없이 양보를 한 일로 크게 다툰 뒤 결혼 무효를 선언하고 잉글랜드로 망명해 있었다. 당시 잉글랜드 국왕이었던 헨리 5세로서는 저지대의 상속권으로 어떤 이득을 얻을 수 있는 상황도 아니고 오히려 프랑스 점령지 유지에 필수적인 부르고뉴 공작과의 동맹 관계가 흔들릴 위험이 있었지만, 기사도적인 군주로서의 명성 또는 개인적인 동정심 때문에 자클린의 망명을 받아들였다. 그런데 헨리 5세가 죽자마자 동생인 글로스터 공작이 거기에 기름을 부은 것이다.


같은 시기, 프랑스군이 센강의 요충지 묄랑을 기습해 점령했다. 하지만 지원 부대와 전비 마련이 예정보다 지체되었고, 잉글랜드군은 3월 1일 묄랑 시를 탈환한 뒤 여세를 몰아서 몽테리와 에탕프 등 파리 인근의 요충지들을 점령한다.


4월 17일, 아미앵에서 열린 정상회담에서 잉글랜드, 부르고뉴, 브르타뉴의 동맹이 공식적으로 선포되었고, 베드퍼드 공작은 부르고뉴 공작의 여동생 안과 결혼했다. 하지만 부르고뉴 공작과 브르타뉴 공작 모두 샤를 7세와 비밀리에 협상을 계속했다.


같은 시기, 랠프 버틀러가 지휘하는 잉글랜드군이 솜강 하구의 요충지 르 크로투아를 포위했다. 하지만 주둔군의 격렬한 저항에 포위공격은 몇 달째 진전이 없었다.


5월 초, 프랑스군이 센강의 요충지인 노장을 포위했다. 이곳은 파리 시의 식량 공급을 통제할 수 있는 수운 중심지이자 랭스로 향하는 주요 길목이었다.


5월 말, 파리로 돌아온 베드퍼드 공작은 즉시 군사를 이끌고 노장으로 진군했다. 곧 노장의 포위를 풀고 몽테귀용 성을 제외한 인근의 모든 요새를 탈환했지만, 몽테귀용 주둔군의 격렬한 저항에 잉글랜드군의 발목이 잡힌 사이 프랑스군이 이브리를 기습해 점령하고 보스 지방에서 파리 시로의 식량 공급을 방해했다. 이렇게 되자 베드퍼드 공작은 파리를 지키기 위해 르 크로투아 포위군에 대한 지원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베드퍼드 공작은 존 파스톨프를 보내 파리 북동부의 주요 프랑스군 주둔지인 파시를 점령하게 했고 자신은 직접 오르세를 점령한다.




2. 크라방 전투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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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3년 6월 22일, 몽테귀용의 포위를 풀고 랭스로 가는 길을 열기 위해 버컨 백작이 지휘하는 프랑스군이 부르주에서 출발했다.


그러나 6월 26일경, 버컨 백작의 군대가 오세르 인근에 도착했을 때, 크라방의 수비대장인 잉베르가 찾아와 지원을 요청했다. 크라방은 고작 며칠 전 부르고뉴군에 점령되었으나, 잉베르는 버컨 백작을 설득하기 위해 부하들 중 일부가 크라방의 아성에서 저항하고 있고 나머지는 도시 안에 포로로 잡혀 있다고 거짓말을 했다. 크라방에 도착한 버컨 백작은 곧 자신이 속았음을 깨달았지만, 도시 성벽이 낮고 허술하며 방어용 대포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포위 공격을 계속하기로 결정했다. 도시는 예상보다 잘 버텼지만 한 달도 못 되어 함락 직전에 몰린다.


한편 잉글랜드군은 가용한 모든 야전 병력이 르 크로투아와 몽테귀용과 파리 인근에 묶여 있었다. 베드퍼드 공작은 어쩔 수 없이 몽테귀용 포위군 일부를 분리해 솔즈베리 백작의 지휘하에 파견했다. 이들은 7월 30일 오세르에 도착해 부르고뉴군과 합류했다.


8월 1일 아침, 잉글랜드 부르고뉴 연합군과 프랑스군이 크라방 시 앞에서 욘 강과 다리 하나를 사이에 두고 대치했다. 정오 무렵 잉글랜드군이 강 건너편의 프랑스군 대열에 대포 사격을 가한 뒤 기습적으로 화살을 퍼부으면서 전투가 시작되었다.


프랑스군이 혼란에 빠져 있는 동안 솔즈베리 백작이 직접 선봉대를 이끌고 다리를 건넜고, 백병전으로 적진을 밀어붙였다. 그동안 강 상류에서도 잉글랜드 맨앳암즈들이 장궁병들의 엄호를 받으며 도하를 마친 뒤 프랑스군의 측면을 공격했다. 마지막으로 전세가 유리하게 기운 것을 확인한 크라방의 부르고뉴 주둔군 수백 명이 출격해 프랑스군의 후방을 공격하면서 대학살이 시작되었다.


이 크라방 전투에서 스코틀랜드군은 전체 병력의 1/3이 전사하고 나머지는 모두 흩어지면서 사실상 전멸했고, 버컨 백작을 비롯해 대부분의 지휘관들이 포로로 잡혔다. 이 전투에서 입은 피해 때문에 프랑스군은 이후 반년 이상 전면적인 공세를 시도하지 못했고, 따라서 잉글랜드군은 노르망디 주둔군을 감축해 르 크로투아와 몽테귀용의 포위공격을 강화하는 등 전략적 이득을 누렸다.


하지만 부르주에서 샤를 7세와 그의 고문들은 전투의 소식을 놀라울 정도로 무관심하게 받아들였다. 잉글랜드는 지금까지 확장된 전선마저 감당하지 못하고 있었고, 결국 전쟁의 성패는 부르고뉴와 브르타뉴와의 협상에 달려 있었다. 그리고 이대로 교착 상태가 계속될 경우 이들이 최종적으로 어느 편을 선택할 지는 너무나 분명했다.




3. 라 브로시니에르 전투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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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3년 9월 7일, 라 뷔시에르의 프랑스 주둔군이 항복하는 척 접근한 뒤 기습을 가해 부르고뉴군 원수 장 드 툴롱종을 포로로 잡았다. 이 소식은 부르고뉴의 국경 지역에 공황을 일으켰다. 부르고뉴 공작은 급히 파리를 떠나 트루아로 향했고, 그곳에서 지휘관들과 대책을 논의했다. 결국 장 드 툴롱종의 동생 앙투안이 원수 대행으로 임명되었고, 부르고뉴 전역에 소집령이 내려졌으며, 잉글랜드에도 지원을 요청해 명성 높은 지휘관인 윌리엄 글래스데일이 솔즈베리 백작의 대리인으로서 파견되었다. 글래스데일은 1417년 헨리 5세의 노르망디 침공에 궁수로 참전해 솔즈베리 백작의 집사가 된 입지전적인 인물이었다.


한편 서퍽 백작의 동생인 존 드 라 폴은 2000여 명의 병력을 이끌고 몽생미셸을 포위공격하라는 지시를 받았지만, 알 수 없는 이유로 명령에 따르지 않고 앙주 지방으로 진군해 기마약탈을 벌였다. 그러나 수많은 포로와 소떼와 전리품을 가지고 귀환하던 중, 9월 26일 새벽 라 브로시니에르 마을에서 오말 백작이 지휘하는 프랑스군에게 퇴로를 차단당한다.


잉글랜드군은 황급히 말에서 내려서 대기병 말뚝을 박고 참호를 파기 시작했지만, 그 사이 측면으로 우회한 프랑스 기병대가 진영에 들이닥쳤고 정면에서는 하마한 맨앳암즈들이 도보로 진군해 왔다. 7시간 동안의 치열한 전투 끝에 잉글랜드군은 문자 그대로 전멸한다.


오말 백작은 여세를 몰아서 아브랑슈를 포위하지만, 베드퍼드 공작이 직접 지휘하는 잉글랜드군이 이브리 포위공격을 포기하고 진군해오자 재빨리 후퇴한다.


11월, 라 이르가 300여 명의 지원군과 함께 기즈에 도착했고 12월 13일, 기즈의 수비대장인 포통 드 생트레유는 솜 강의 요충지인 앙을 기습해 점령했다. 부르고뉴군은 곧 앙을 탈환했지만, 이를 위해 기즈 포위공격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12월 23일경, 부르고뉴군이 작년에 빼앗긴 루아르강의 요충지 라 샤리테를 기습해 탈환했다.




4. 낭트 회담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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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4년 1월 7일, 라 이르가 지휘하는 프랑스군이 콩피에뉴와 크레이를 기습해 점령했다.


2월, 몽테귀용이 마침내 잉글랜드군에 의해 점령되었다.


같은 시기, 제임스 1세가 잉글랜드 왕족 조앤 보퍼트와 결혼했다. 그는 포로 생활에서 풀려나는 조건으로 잉글랜드와 7년 휴전을 맺었지만, 프랑스와의 동맹을 계속 유지했고 이미 준비된 대규모 지원군이 프랑스로 출발하는 것을 막지도 않았다. 하지만 스코틀랜드 전선이 안정화되면서 인력과 자원에 여유가 생겼고, 프랑스에 도착한 지원군은 베르뇌유에서 전멸하니 결과적으로 그를 풀어준 것은 잉글랜드에 이득이 되었다.


2월 말, 더글러스 백작이 이끄는 스코틀랜드군이 라로셸에 상륙했다. 주민들의 열광적인 환영을 받으며 거리를 행진한 뒤, 샤를 7세는 더글러스 백작에게 전통적으로 프랑스 왕족에게만 수여되는 작위인 투렌 공작위를 수여하고 그를 프랑스 전역에서 지휘권을 가진 국왕 대리인으로 임명했다.


3월 3일, 르 크로투아가 마침내 잉글랜드군에 의해 점령되었다.


4월 중순, 베드퍼드 공작이 직접 지휘하는 잉글랜드군이 콩피에뉴와 크레이를 탈환했다. 이후 솔즈베리 백작이 상당한 규모의 야전군과 포병 부대를 이끌고 샹파뉴로 향했고, 프랑스군이 주둔한 소규모 요새들을 점령하면서 또다시 기즈 포위공격을 준비했다.


5월, 샤를 7세의 장모인 앙주 공작부인 욜랑드의 중재로 낭트에서 브르타뉴와 부르고뉴와 프랑스 대표 간의 회담이 열렸다. 베드퍼드 공작은 이제 매우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었다. 주요 동맹인 브르타뉴와 부르고뉴는 그를 버리겠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었고, 샤를 7세는 12000명 이상의 병력을 이끌고 노르망디 침공을 준비 중이며, 잉글랜드 군대는 모두 북부 프랑스의 넓은 전선에 흩어져 작전을 수행하고 있었다.




5. 베르뇌유 전투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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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2일, 잉글랜드군이 다시 이브리를 포위했다. 스코틀랜드 지원군의 도착과 낭트 회담으로 자신감을 얻은 샤를 7세는 주력군을 보내 이브리의 포위를 풀기로 결심한다. 이에 베드퍼드 공작도 프랑스 주력군과 야전을 벌이기로 결정하고 예비 병력을 모두 이브리와 베르농 인근에 소집했다.


8월 14일, 베드퍼드 공작은 총 8000여 명의 병력을 이끌고 적의 접근이 예상되는 이브리 남쪽 고지대에 진을 쳤다.


다음날인 15일 아침, 이브리 인근에 도착한 프랑스군 지휘관들은 베드퍼드 공작의 진지를 정찰한 다음 이곳에서 싸우면 이길 가능성이 낮다고 결론을 내리고, 뒤처진 이탈리아군의 도착을 기다릴 겸 잉글랜드군을 유인하기 위해 이브리 서쪽에 있는 주요 잉글랜드군 주둔지인 베르뇌유로 진격했다. 베드퍼드 공작도 프랑스군을 거리를 두고 추격해 에브뢰에 도착한다.


그날 저녁 베르뇌유에 도착한 프랑스군은 스코틀랜드인 수백 명을 잉글랜드인 포로처럼 변장시키고는, 도시에 사절단을 보내 이브리 인근에서 잉글랜드군을 크게 이겼다고 거짓말을 했다. 이 말에 속아넘어간 주민들이 성문을 열면서 도시와 성채가 점령되었다.


16일 아침, 프랑스군의 상황을 들은 베드퍼드 공작은 군대를 이끌고 베르뇌유로 향했다. 곧 결전이 벌어질 것임을 예감한 그는 행군 도중 부대들을 방문해 그들이 정의롭고 가치 있는 대의를 위해 국가, 고향, 부모, 자녀, 아내의 품을 떠나 주권자를 위해 봉사하고 있다고 격려했다.


잉글랜드군이 접근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프랑스군 지휘관들은 작전 회의를 시작했다. 오말 백작 등 프랑스인 지휘관들은 잉글랜드군과 결전을 벌이는 것을 반대했지만 더글러스 백작과 버컨 백작은 아군이 병력, 사기, 지형에서 모두 유리하다며 야전을 고집했다.


17일 오후, 유리한 위치에 방어 진형을 이루고 있는 프랑스군을 향해 잉글랜드군이 먼저 공격을 개시했다.


거리가 충분히 좁혀지자 양 측면의 프랑스와 이탈리아 기병대가 돌격했고, 궁수 부대를 짓밟고 맨앳암즈 전열을 돌파해 잉글랜드의 후방에 도달했다. 그러나 이탈리아 기병 중 일부는 도망치는 잉글랜드군을 보고 자신들의 임무가 끝났다고 생각하고는 후방의 짐마차를 약탈하기 시작했다.


그러는 동안 잉글랜드군은 베드퍼드 공작의 깃발을 중심으로 재집결했고, 이런 위기를 대비해 후방에 대기하고 있던 예비대 궁수들이 패잔병을 추격하거나 짐마차를 약탈하러 가지 않고 남은 기병들을 향해 화살을 쏟아부었다. 이에 프랑스와 이탈리아 기병들은 아군 진영으로 후퇴했고, 마침 공격을 개시한 프랑스군 하마 맨앳암즈들은 후퇴하는 아군 기병들 때문에 진형이 흐트러진 채 잉글랜드 맨앳암즈들과 백병전을 시작했다.


치열한 전투 끝에 프랑스군은 전멸했다. 전체 병력의 60%에 달하는 7262명이 전사했고, 그중 도보로 싸운 하마 맨앳암즈와 궁수대의 전사자 비율은 80%에 달했다. 버컨 백작, 더글러스 백작과 그의 아들 제임스 더글러스, 오말 백작과 나르본 자작 등 대부분의 지휘관이 전사했고, 알랑송 공작은 운이 좋게도 살아남아 포로로 잡혔다.


베르뇌유 전투에서의 승리로 프랑스의 야전 전력을 소멸시킨 뒤, 베드퍼드 공작은 우선 북부 프랑스의 프랑스군 요새들을 완전히 제거하는 데 집중했다. 결국 기즈와 비트리의 주둔군은 각각 내년 3월과 4월까지 구원군이 오지 않으면 항복하기로 약속한다.


다음 목표는 메인 지방이었다. 1424년 9월 12일, 잉글랜드군 분견대가 몽생미셸을 포위하는 동안 존 파스톨프가 이끄는 잉글랜드군이 보몽을 점령했고, 다시 르망으로 진군해 도시 주변의 요충지들을 장악하며 포위공격을 준비했다.


11월 27일, 글로스터 공작 험프리가 아내인 에노 백작부인 자클린과 함께 에노 백령의 수도인 몽에 입성했다. 다음 날, 에노 백령의 삼부회는 자클린의 전 남편인 브라반트 공작에 대한 충성을 거부하고 자클린과 그녀의 현 남편인 글로스터 공작을 영주로 인정하기로 의결한다. 이에 부르고뉴 공작 필리프는 사촌을 돕기 위해 군사를 소집했다.


11월 30일, 마콩에서 다시 브르타뉴와 부르고뉴와 프랑스 대표 간의 회담이 열렸다. 부르고뉴 공작 필리프는 아버지의 암살 건에 대하여 샤를 7세가 어려서 나쁜 조언에 쉽게 넘어갈 수 있다고 말하며, 그런 조언을 한 신하들을 해임해야 한다고 요구를 밝혔다. 브르타뉴 공작 역시 같은 의견이었지만 더 직설적으로, 아르마냑파가 궁정에서 축출되지 않는 한 브르타뉴의 지원을 기대하지 말라고 대답했다. 그러나 샤를 7세는 결국 아르마냑파와 완전히 결별하지 못했다. 아르튀르 드 리슈몽을 프랑스군 총사령관으로 임명하고 브르타뉴 공작이 정부에서 지분을 받는 대가로 장 루베 등 아르마냑파 지도층은 지위를 유지한다는 어정쩡한 타협이 이루어진다.




6. 몽 포위전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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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세기 내내 평화로웠던 에노 백령과 브라반트 공국의 국경 지대에서는 이제 잉글랜드군과 부르고뉴군 습격대들이 번갈아가며 마을과 도시를 불태우고 약탈하는 지옥이 펼쳐졌다. 심약한 인물이었던 브라반트 공작 요한은 이러한 위기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고, 결국 1425년 1월, 브라반트 공국의 삼부회는 그의 동생이자 유능하고 경험 많은 군인인 생폴 백작에게 군사 지휘권을 넘기라고 요구한다.


같은 시기, 홀란트와 질란트의 통치자이자 자클린의 정적인 바이에른의 요한이 자클린의 제부의 손에 암살당했다. 그는 자식이 없었고, 죽기 1년 전 부르고뉴 공작 필리프를 상속인으로 지명했었다. 법적으로 그는 자클린의 섭정에 불과했고 홀란트와 질란트의 합법적인 영주는 자클린이었다. 하지만 부르고뉴 공작은 이 소식을 듣자마자 재빠르게 군대를 보내 두 백작령을 장악하고는 자클린의 전 남편이자 자신의 동맹인 브라반트 공작 요한을 영주로 선포한다.


2월, 시농에서 아르튀르 드 리슈몽이 프랑스군 총사령관으로 임명되었다.


3월 11일, 생폴 백작이 동부 국경의 요충지 브렌을 점령하고 글로스터 공작을 지지한 도시 유력자들을 처형했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폭설 때문에 군사작전은 그대로 중단되었고 지루한 대치가 이어졌다. 전쟁이 중단된 동안 글로스터 공작은 부르고뉴 공작과 편지로 열심히 논쟁을 벌이다가 결투 날짜까지 잡는다.


3월 말, 글로스터 공작은 갑작스럽게 에노 백령을 떠나 잉글랜드로 향했다. 그는 추밀원에 브라반트 공작과의 전쟁에 대한 지원을 요청했지만 당연히 냉담한 반응만 돌아왔다. 베드퍼드 공작의 중재로 결투는 취소되었다.


4월, 장 루베의 반대 파벌인 앙주 공작부인 욜랑드, 아르튀르 드 리슈몽, 그리고 탄기 뒤 샤텔이 '사악한 반역자들'로부터 샤를 7세를 구출하겠다며 군사를 소집했다.


5월 중순, 글로스터 공작이 없는 사이 브라반트군이 몽을 포위했다. 몽의 주민들은 처음에는 강경히 맞섰지만 결국 6월 13일 항복한다. 글로스터 공작의 지지자들 중 일부는 처형되고 자클린은 부르고뉴 공작의 '보호' 아래 헨트에 감금되었다.


6월 초, 부르주 인근에서 장 루베와 샤를 7세의 군대가 리슈몽과 욜랑드의 군대와 대치했다. 아르마냑파 관료들은 비록 무능하고 폭력적이며 그동안의 악행으로 프랑스 전역에서 악명이 넘쳤지만 샤를 7세는 왕세자 시절부터 그들과 개인적인 친분을 쌓아왔다. 하지만 브르타뉴 공작의 충성을 얻고 부르고뉴 공작과 화해하기 위해서는 결국 아르마냑파를 숙청할 수밖에 없었다. 욜랑드의 설득에 넘어간 샤를 7세는 부르주로 돌아와 귀족들과 도시 유력자들 앞에서 그동안의 잘못된 통치를 반성하는 연설을 하고는 장 루베를 해임한다.




7. 르망 포위전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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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5년 7월 20일, 솔즈베리 백작이 지휘하는 잉글랜드군이 르망을 포위했다. 포병들이 2주 동안 3000파운드 이상의 화약을 소비하며 포격을 쏟아부었고, 8월 2일 도시는 결국 항복한다. 이후 잉글랜드군은 사방으로 흩어져 요충지의 요새들을 점령하거나 파괴하기 시작했다.


9월 2일 새벽, 헨트 시에 감금돼 있었던 자클린이 남장을 하고 탈출해 홀란트의 주요 도시인 하우다에 도착했다. 이에 부르고뉴 공작의 지지 세력인 '대구파'의 반대 세력인 홀란트의 지주 귀족들이 도시로 모여들어 자클린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신서를 하기 시작했다.


10월 초, 소뮈르에서 브르타뉴 공작 장 5세와 샤를 7세의 만남이 성사되었다. 이전까지의 협상 조건을 재확인한 뒤, 브르타뉴 공작은 샤를 7세에게 신하로서 신서를 했다. 그리고 부르고뉴 공작에게 서신을 보내, 아버지의 원수인 아르마냑파가 숙청됨으로써 그와 샤를 7세의 화해의 유일한 장애물이 사라졌다고 지적했다. 베드퍼드 공작은 이에 격노하며 2년 전 아미앵에서 맺은 조약에 따라 헨리 6세를 프랑스 왕으로 인정하지 않으면 브르타뉴 공작을 적으로 취급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브르타뉴 공작의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브르타뉴 침공을 준비한다.


10월 중순경, 아르튀르 드 리슈몽이 지휘하는 소규모 프랑스군이 르망을 기습하러 갔지만 인근의 작은 마을 생줄리앙에서 잉글랜드 부대 하나와 마주친 뒤 도망쳤다.


같은 시기, 잉글랜드군이 마옌 시를 포위했다. 6주 동안의 치열한 포위공격에도 불구하고 잉글랜드군은 큰 성과를 얻지 못했고, 결국 협상 끝에 주둔군에게 유리한 조건으로 항복이 이루어진다.


10월 22일, 부르고뉴 공작의 신속한 대응으로 대구파 도시들에서 대규모 민병대가 소집되어 하우다로 진격했지만, 자클린의 군대의 매복에 걸려 학살당하고 부대 깃발을 전부 빼앗긴다. 사기가 오른 자클린 지지 세력이 대구파 도시들을 습격하면서 자클린의 탈출 사건은 본격적인 내전으로 확대되었다.


11월 초, 프랑스군이 라페르테를 기습해 점령했다.




8. 생잠 포위전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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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6년 1월, 서퍽 백작이 지휘하는 잉글랜드 기병 500명이 브르타뉴를 침공해 렌 시 인근까지 기마약탈을 벌였다. 이에 브르타뉴 공작은 국경을 지키기 위해 군사를 소집한다.


1월 13일, 부르고뉴군이 로테르담 인근 해안에 상륙했다. 자클린의 군대와 글로스터 공작이 잉글랜드에서 보낸 지원군이 뒤늦게 요격에 나섰다. 전초전에서 잉글랜드 장궁병들이 부르고뉴 쇠뇌수들을 압도했지만, 숫자가 더 많은 부르고뉴 맨앳암즈들의 돌격에 잉글랜드 맨앳암즈 전열이 돌파당하면서 전투는 부르고뉴군의 대승으로 끝난다.


2월 2일, 솔즈베리 백작이 지휘하는 잉글랜드군이 라페르테를 포위했다.


2월 중순, 아르튀르 드 리슈몽이 지휘하는 브르타뉴군이 퐁토르송을 점령한 뒤 남쪽으로 진군해 생잠을 포위했다.


3월 6일, 생잠의 성벽에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전투 도중 리슈몽이 아브랑슈 인근에 파견했었던 브르타뉴 기병대가 아군을 지원하기 위해 돌아왔다. 하지만 브르타뉴군은 이를 잉글랜드의 지원군으로 오해하고는 무질서하게 패주하기 시작했고, 생잠 주둔군이 성문을 열고 출격하면서 대학살이 벌어졌다. 브르타뉴군은 전멸했고, 서퍽 백작이 남은 병력을 모아서 무방비 상태인 브르타뉴를 침공하자 브르타뉴 공작은 4500프랑을 배상금으로 내고 굴욕적인 휴전을 맺는다.


4월 초, 잉글랜드군이 라페르테를 탈환했다.


같은 시기, 아르튀르 드 리슈몽이 브르타뉴 공작의 상서인 장 드 말레트르와를 납치해 시농으로 끌고 갔다. 리슈몽은 생잠에서의 패전의 책임을 말레트르와에게 돌리며, 그가 잉글랜드와 내통하면서 전비를 횡령했다고 주장했다. 아마도 단순한 책임회피가 아니라 브르타뉴의 이탈을 막기 위한 인질로서의 목적도 있었을 것이다.


6월, 자클린의 군대가 대구파의 주요 도시인 하를럼을 포위한 뒤, 플랑드르에서 파견된 구원군을 전멸시켰다. 부르고뉴 공작은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 직접 군대를 이끌고 홀란트로 돌아가야 했다. 이후 전황이 역전되어 하를럼 포위공격은 실패로 끝나고 자클린의 파벌이 수세에 몰린다.


7월 말, 브르타뉴 공작은 부르고뉴 공작에게 또다시 사절을 보내, 잉글랜드인들이 글로스터 공작을 위해 그를 암살하려는 음모를 꾸미고 있다고 주장하며 정교하게 위조된 문서들을 증거로 제시했다. 하지만 워릭 백작이 지휘하는 잉글랜드군이 브르타뉴 국경 지역을 침공해 무자비한 학살과 약탈을 벌이기 시작하자 절망에 빠진 브르타뉴 공작은 다시 잉글랜드에 휴전을 제안한다.


12월, 워릭 백작은 브르타뉴 공작의 휴전 제안을 거부하고, 샤를 7세와의 모든 관계를 끊고 헨리 6세에게 충성을 맹세할 것을 강요했다. 이에 브르타뉴 공작은 부르고뉴 공작의 답변을 기다리며 시간을 끌었지만, 부르고뉴 공작의 고문들은 제시된 증거들이 위조문서임을 간파하고 작성자를 찾아내서 고문해 자백을 받는다.




9. 퐁토르송 포위전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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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7년 2월 8일, 샤를 7세의 총신인 피에르 드 지악이 욜랑드와 리슈몽의 파벌에 의해 납치되었다. 그는 고문 끝에 첫 번째 아내를 살해하고 세금을 횡령한 혐의를 인정한 뒤 모의 재판에서 사형 선고를 받고 살해당했다. 지악과 마찬가지로 오베르뉴의 소귀족 출신인 시종무관 장 뒤 베르네가 그를 대신해 시종장으로 임명된다. 하지만 베르네 역시 샤를 7세의 총애를 독점하며 다른 신하들을 견제했고, 리슈몽은 곧 '베르네가 지악보다 더 나쁘다'고 불평하기 시작했다.


2월 말, 워릭 백작이 지휘하는 잉글랜드군이 퐁토르송을 포위했다.


4월 17일, 자클린의 전남편인 브라반트 공작 요한이 갑작스럽게 병사했다. 이로써 부르고뉴 공작은 에노, 홀란트, 질란트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한 모든 명분을 상실했다. 그러나 부르고뉴의 법률가들은 글로스터 공작과의 재혼이 합법적인 결혼이 아닌 간통임을 자클린이 공개적으로 인정하지 않는 한 통치자의 자격이 없다고 우기면서, 그녀의 가장 가까운 친척인 부르고뉴 공작 필리프가 영주권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기에 법적인 근거는 거의 없었지만 부르고뉴의 막강한 권력에 위압된 에노 백령의 삼부회는 결국 부르고뉴 공작을 영주로 인정한다.


같은 시기, 프랑스군이 퐁토르송을 구원하기 위해 몽생미셸 동쪽 해안 도로에서 잉글랜드군 식량 수송대를 매복 공격했지만 오히려 큰 피해를 입고 퇴각한다. 이에 사기가 꺾인 퐁토르송 주둔군이 항복하면서 잉글랜드군이 퐁토르송을 탈환했다. 브르타뉴 공작은 저항 의지를 상실하고 베드퍼드 공작에게 협상을 제안한다.


5월 초, 존 탈보트가 지휘하는 잉글랜드군이 라발을 점령하면서 잉글랜드의 메인 정복이 거의 완료되었다.




10. 몽타르지 포위전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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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말, 리슈몽의 부하들이 결국 푸아티에 인근에서 장 뒤 베르네를 습격해 살해했다. 하지만 베르네의 후임인 조르주 드 라 트레무아유는 이후 6년 동안 정부를 장악하며 리슈몽의 숙적이 될 운명이었다.


7월 15일, 워릭 백작이 지휘하는 잉글랜드군이 몽타르지를 포위했다. 이에 리슈몽은 가용한 모든 병력을 자르고에 소집한다. 하지만 그는 왕국의 마지막 전력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막대한 부담감에 짓눌려 출정 직전 계획을 변경했고, 이에 격분한 샤를 7세는 리슈몽의 지휘권을 박탈하고 '오를레앙의 사생아' 장 드 뒤누아를 대신 지휘관으로 임명한다.


9월 4일, 결국 프랑스군이 자르고에서 출정했다. 다음날 아침 오를레앙의 사생아와 라 이르의 지휘하에 프랑스군 기병대가 숲을 통과하여 몽타르지를 포위한 잉글랜드 진영을 기습해 대승을 거두었다. 같은 시기 프랑스군 분견대가 몽두블로를 점령하고 방돔 포위공격을 위해 그곳에 옮겨진 대포를 전부 노획하면서 잉글랜드의 작전 계획에 상당한 차질이 생겼다. 훗날 샤를 7세는 몽타르지 전투를 프랑스군이 거둔 최고의 승리이자 잉글랜드에 대한 반격의 시작이었다고 회상했다.


이 몽타르지 전투를 승리로 이끈 오를레앙의 사생아와 라 이르는 프랑스 전역에서 영웅으로 대접받기 시작했다. 반면 잔뜩 겁에 질린 채 작전을 반대한 리슈몽의 군사적 명성은 땅에 떨어졌고, 그는 이때부터 샤를 7세의 정부에서 사실상 배제된다.


같은 시기, 자클린은 결국 부르고뉴 공작에게 협상을 제안한다. 부르고뉴 공작은 그녀의 남편인 글로스터 공작이 자신의 숙적이자 장차 공국에 위협이 될 인물이라고 지적하며, 그와 이혼하면 영지를 돌려주겠다고 제안했다. 하지만 부르고뉴와의 동맹에 대한 베드퍼드 공작과 잉글랜드 정부의 확고한 의지를 알지 못한 자클린은 잉글랜드의 지원을 기대하며 이 제안을 거부한다. 이에 부르고뉴 공작은 직접 군대를 이끌고 홀란트를 다시 침공하지만 자클린 파벌의 강경한 저항에 어려움을 겪는다.


10월, 아르튀르 드 리슈몽이 자신과 마찬가지로 정부에서 배제되거나 소외된 귀족들을 결집해 반란을 일으켰다. 반란군은 시농을 점령한 뒤, 간신인 조르주 드 라 트레무아유를 제거하고 정부를 개혁하겠다는 선언문을 발표했다. 하지만 몽타르지 전투의 승리로 기세가 오른 프랑스군은 반란군이 뭐라고 떠들든 영향을 받지 않고 메인과 보스 지방에서 공세를 시작해 겨울 동안 최소 9개가 넘는 도시와 성채를 탈환한다.


11월, 브르타뉴 출신 군인 질 드 레와 자크 드 디낭이 지휘하는 프랑스군이 작년에 잉글랜드군에 의해 점령된 메인 지방의 요충지 르루드를 탈환했다.




11. 르망 습격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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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8년 1월 20일, 라 이르가 지휘하는 프랑스군이 라페르테를 기습해 탈환했다.


3월 3일, 잉글랜드 상원은 결국 자클린을 구하기 위해 홀란트로 군대를 파견해야 한다는 글로스터 공작의 요구를 거부했다. 이에 글로스터 공작은 빠르게 포기하고 자클린과의 결혼이 무효임을 인정한 뒤 내연녀인 앨리너 카범과 재혼한다.


이 일로 자클린은 잉글랜드 전역에서 유명인사가 되었고 그녀의 강인한 의지와 비참한 운명은 많은 사람들의 동정을 샀다. 런던 시의 여성 대표단이 의회에 출석해 자클린을 버리고 다른 여자와 결혼한 글로스터 공작을 비판하는 성명을 발표했고, 민간에서 자발적으로 지원금을 모금하기도 했다. 하지만 어떤 것도 실질적인 도움은 되지 않았고, 자클린은 결국 모든 영지의 행정권을 부르고뉴 공작 필리프에게 양도하며 앞으로 그의 허락 없이 결혼할 경우 영주권을 몰수당한다는 내용의 델프트 조약에 서명한다.


같은 시기, 샤를 7세가 리슈몽의 반란군으로부터 시농을 탈환한다.


5월 중순, 반란군이 부르주를 점령한다. 비효율적이고 부패한 정부에 불만이 많았던 부르주 시민들은 반란군이 도착하자 싸우지 않고 성문을 열었다.


5월 25일, 라 이르가 지휘하는 프랑스군이 르망을 기습했다. 주민들의 호응으로 도시 성문이 열렸지만 성채의 잉글랜드 주둔군은 알랑송에 머무르고 있는 탈보트에게 전령을 보낼 수 있었고, 28일 새벽, 강행군 끝에 르망에 도착한 탈보트의 부대가 민가에서 잠을 자고 있는 프랑스군을 기습했다. 라 이르와 부하들은 갑옷도 입지 못한 채 도시 밖으로 도망친다.


7월 초, 막상 샤를 7세가 군대를 이끌고 부르주에 도착하자 겁을 먹은 반란군은 라 트레무아유를 해임하라는 요구마저 철회한다. 대신 그들은 푸아티에에서 삼부회를 소집해 모든 국민들이 정부의 운영에 대해 자유롭게 의견을 말할 기회를 달라고 간청했고, 샤를 7세는 이를 받아들인다. 7월 17일, 반란군은 국왕의 사면을 받고 일단 해산되었다.




12. 보장시 포위전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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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중순, 솔즈베리 백작이 지휘하는 잉글랜드군이 노장을 점령했다. 이후 3주 동안 잉글랜드군은 여러 사단으로 나뉘어 보스 지방의 도시와 요새 40여 개를 점령한다.


9월 8일, 솔즈베리 백작은 보스 지방에서의 군사작전을 마치고 앙주로 향하는 척하다가 오를레앙을 기습했으나, 프랑스군 지휘관들은 이를 미리 예상하고 막아냈다. 솔즈베리 백작은 차선책으로 루아르강의 수운을 장악해 오를레앙으로의 물자 수송을 방해하는 전략을 시도했다. 잉글랜드군은 멍을 하루만에 점령하고 다음 날 보장시를 포위한다.


같은 시기, 시농에서 삼부회가 소집되었다. 리슈몽은 불출석했지만 그의 전 반란 동료들은 그를 버리고 국왕의 소집에 응했다. 오를레앙 방어를 위해 50만 프랑의 전쟁세가 승인되었고 오를레앙의 사생아가 수비대장으로 임명되었다.


9월 25일, 2주 동안의 포위공격 끝에 보장시가 잉글랜드군에 의해 점령되었다.


10월 초, 서퍽 백작의 동생인 존 폴이 지휘하는 잉글랜드군이 자르고를 점령하면서 오를레앙 봉쇄를 위한 준비가 끝났다.


10월 12일, 잉글랜드군이 다시 오를레앙을 공격했다. 솔즈베리 백작은 이번에도 속전속결로 도시를 점령하고자 했고, 도시 남쪽 다리 끝을 지키는 요새 레 투렐을 점령한 뒤 이를 거점으로 다리를 돌파한다는 대담한 작전을 시도한다.


오를레앙 방어군은 레 투렐을 지키기 위해 교외의 마을과 수도원을 철거한 뒤 요새 입구 앞에 임시 방벽을 세웠다. 솔즈베리 백작은 불타고 무너진 수도원의 잔해 위에 지휘본부를 세우고 참호를 파고 대포를 배치해 요새화했다. 그리고 일주일 동안 격렬한 포격전을 벌였다.


10월 21일, 잉글랜드군이 임시 방벽을 직접 공격하지만 많은 사상자를 내고 퇴각한다. 하지만 잉글랜드군의 땅굴이 방벽 아래까지 도달하자 방어군은 방벽을 버리고 레 투렐로 퇴각한다. 하지만 대포 사격으로 성벽이 너무 심하게 손상되어 오래 버틸 수 없다고 판단하고 다리 가운데에 다시 임시 방벽을 쌓기 시작했다.


10월 24일, 잉글랜드군이 치열한 전투 끝에 레 투렐을 점령했다. 솔즈베리 백작은 측근인 윌리엄 글래스데일을 르 투렐의 수비대장으로 임명한다. 하지만 바로 그날 저녁, 솔즈베리 백작은 도시를 정찰하기 위해 탑의 꼭대기층에 올라갔다가 방어군이 쏜 포탄에 맞아 중상을 입는다.


11월 3일, 솔즈베리 백작이 결국 사망하고 서퍽 백작이 지휘권을 이양받았다. 베드퍼드 공작과 서퍽 백작은 직접 공격을 포기하고 오를레앙을 봉쇄하기 위해 전선 곳곳의 주둔지에서 추가 병력을 긁어모으며, 부르고뉴 공작에게도 지원을 요청한다. 부르고뉴 공작은 처음에는 군대를 보내겠다고 약속했지만 알 수 없는 이유로 11월 말 갑자기 군사 소집을 취소한다. 결과적으로 오를레앙을 포위한 잉글랜드군의 규모는 약 5000명으로, 도시를 봉쇄하고 보급을 차단하기에는 많이 부족했지만 방어군이 출격해서 프랑스의 운명을 건 결전을 벌이기에도 부담이 되는 숫자였다. 그리고 엄폐물을 없애기 위해 철거된 교외 마을들에서 도시로 피난민들이 몰려들면서 식량이 부족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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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용병시대의 서막 (1360~1366)
카스티야 내전 (1366~1369)
프랑스의 반격 (1369~13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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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주 왕국 (1423-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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