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기업조선을 읽어내려가는 데에 있어서, 가장 유의해야 할 점은 바로 블랙기업조선은 일반적인 대체역사의 문법을 따르지 않는다는 것임.

보통 대체역사물에서 주인공을 제외한 실존인물이 등장할 경우, 그 인물에 대한 역사적 해석에 맞는 캐릭터를 구성하는 것이 일반적임.

이순신은 우국충정에 불타는 킹갓울트라어드미럴로 나오고, 원균은 출세를 위해서는 나라도 팔아먹을 수 있는 소인배로 나오는 식으로 말임.

그래서 만약 일반적인 대체역사물에서 세종 시기를 다룬다고 하면, 세종은 역대급의 천재이며 세종의 신하들 역시 드림팀 급으로 묘사되는 것이 일반적.

그런데 블랙기업조선은 이런 식의 일반적인 캐릭터 해석을 거부하고, 실존인물들의 캐릭터를 전혀 다른 방향으로 바꿔 놓았음.

분명히 세종 때는 성리학이 교조화 되던 때도 아니고, 고려 말의 기풍이 상당히 남아있던 때라 성리학 탈레반들이 등장하기에는 너무 이른 시기인데,

세종 때부터 벌써 신하들이 성리학 탈레반들이 되어서는 별별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빼액대기만 하는 모습을 보임.

현대적 시각에서 바라보는 성리학의 폐혜를 모두 몰아넣은 것 같은 신하들의 모습을 보면, 작가가 바라보는 성리학이라는 것은 쓸어버려야 할 적폐 비슷한 것임.

뭐, 보통 창작물에서 성리학이 나올 때의 해석이 대개는 이런 식이긴 하지만, 문제는 지금 세종시대인데 벌써 성리학이 무슨 적폐 쯤으로 자리잡아 있다는 거임.

유럽 역사로 표현을 하자면 프랑수아 1세(1494-1547) 때의 프랑스를 가지고 앙시애 레짐의 폐혜가 심해서 어쩌구 하는 식임. 아무리 봐도 띠용하지.

이야기의 중심이 주인공(세자 시절 문종)으로 나오고 세종은 주인공의 서포터 쯤으로 나오다 보니 무리수한 전개도 많이 보임.

보통 대체역사물을 쓴다고 하면 세종에게 이런저런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세종이 이 아이디어를 받아서 정책으로 실행시키는 식인데

여기서는 주인공이 이런저런 정책을 내놓으면 세종은 '아이고 우리 아들 잘한다' 라면서 지원하는 역할로 많이 나옴.

주인공을 부각시키려는 의도도 있겠지만, 이게 너무 과하다 보니까 세종이라는 캐릭터가 너무 뒤틀어지는 것 같음.

이런 식의 전개가 어디서 많이 봤다 싶어서 다른 웹소설들을 뒤지다가 얻은 건, 이 소설은 재벌물 웹소설의 문법을 그대로 대체역사에 가져온 것이라는 것을 알아냄.

주인공 - 재벌가 후계자

세종 - 재벌 기업 회장

신하들 - 따까리 1, 2, 3 ......

로 해석해 보면, 재벌물 웹소설의 전개와 블랙기업조선의 전개가 굉장히 흡사하다는 것을 알 수 있지.

재벌물 웹소설의 근본에는 '나도 재벌가 후계자가 되어서 갑질하고 싶다' 라는 게 있고, 블랙기업조선의 문법도 재벌물 웹소설의 그 근본 심상을 상당히 따라가는 중.

그렇기 때문에 기존 대체역사물 독자들은 블랙기업조선의 문법이 이질적이고, 그렇기 때문에 여기에 대한 비판도 기존의 대체역사물의 시각에 맞추어져 있지.

(나 역시도 대체역사물 독자기 때문에 여기의 비판도 대체역사물의 시각이 짙음)

하지만 블랙기업조선 작가는 아마 여기의 비판에는 신경도 안 쓸 것임, 왜냐하면 카테고리는 대체역사물이지만 문법은 대체역사물의 문법을 따르는 게 아니거든.

블랙기업조선이 문피아에서 잘 나가는 것도 웹소설 시장에서 잘 팔리는 문법을 그대로 가져온 덕분이고, 작가는 지금의 문법에서 바꾸지 않을 것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