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약전은 생각했다.
소나무를 심는 것이 100년의 대계(大計)라면 소나무를 가꾸고 키우는 일은 500년의 일이기에, 소나무를 심는 것보다 키우는 일이 더 중요하고 더 어렵다
는 것을 잘 알았다.
애써 심은 소나무가 백성의 땔감이나 서가래, 널을 만들기 위해 잘려 나가고, 화전민의 불을 피하기는 더 어려웠다.
하지만, 조선이라는 나라도 소나무가 귀중하다는 것을 너무 잘 알았다.
소나무가 잘 자라는 해안 삼십 리 이내의 산은 소나무 벌목이 금지되었고, 개인 소유 산이든 국가 소유든 법령을 어기면 엄한 처벌이 내려졌다.
세상만사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통제방식이고 다른 하나는 원인 해결형이다.
가장 쉬운 방법이 통제이나 통제는 의도한 바와 정반대의 역효과를 내기에 십상이다.
“전하, 나라에 소나무가 부족하여 값이 서너 배로 뛰고, 사람이 죽어도 널을 만들 수 없다 하니, 소나무 채벌(採伐)를 엄히 다스리소서”하고 상소를 올리면
“그리하라”라고 단칼에 명한다.
조정에서는 이 법의 시행으로 조선팔도에 소나무가 무성할 줄 알았더니만 이 법이 시행된 이후 소나무가 씨가 마르기 시작했다.
소나무의 수요는 증가하나 공급이 부족하니 어쩌다 국유지에서 더러 나무를 베는 백성들도 있었을 터이고, 혹은 개인 소유의 산에서 나무를 베기도 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지엄하신 임금의 명으로 소나무 채벌(採伐)이 금지된 마당에 이 법의 집행은 가혹하기 이를 데 없었다.
“백성이 소나무 수십 그루를 길러 가옥과 배, 수레나 관재(棺材)에 쓸 목재로 베어내고자 하면 탐관오리가 이 법조문을 빙자하여 차꼬에 채워 감옥에 가두
고 고문하는 등 죽을죄를 다스리듯 하고, 심지어 유배를 보내기까지 했다.”
백성은 차라리 소나무 없기를 바랬다.
소나무가 사람을 못살게 구고, 소나무가 사람을 잡아가는 지경에 이르자, 백성은 소나무 싹을 아예 없애기 시작했다.
어쩌다 소나무를 만나기만 하면 독사를 죽이듯 죽였고, 그것이 자신을 편안하게 사는 길이라 여겼다.
더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 곳은 소나무가 자라기에 적합한 수군 진영의 공산(公山)이었다.
수군절도사가 있는 수영(水營)은 원래 조세(租稅) 권한이 없어 가난한 진영이며 나라의 녹봉은 그 많은 식구를 먹여 살리기에 턱없이 부족하였다.
예나 지금이나 관료들이 자신이 먹고살기 힘들 만큼 봉급을 받으면 그아래 직위인 백성을 착취한다.
그들에게는 오직 ‘소나무’라는 재화가 있었다.
공산 아래의 백성이 집을 짓기라도 하면 “이것은 공산(公山)의 소나무다.”라고 주장하고, 관을 짜기라도 하면 “이것은 공산의 소나무다.”라고 떼를 쓰면 관
에다 고발하고 사사로이 구속하여 혹독한 고문과 매질을 해 대어 갈취를 하니,
이 공포를 없애기 위해 한 집안에 징수하는 양이 수백 냥 수천 냥에 이르렀다.
“오로지 소나무로 인하여 우리들이 이 지경에 이르렀다. 소나무만 없다면 아무 일이 없으리라.”
그리하여 온갖 잔꾀를 다 내어 소나무를 없애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현상은 녹차가 명나라에 보내는 공물(貢物)로 선정되자, 백성은 그 할당량을 채우기가힘들어지고, 조정에서 성화가 극에 달하자, 백성은 녹차 나무를 베기 시작했다.
일상다반사(茶飯事), 다방(茶房), 차례(茶禮) 등 수없이 우리의 삶 속에 녹아 있었던 차 문화가 잘못된 정책 하나로 사라진 것도 같은 이치다.
나라가 하기 쉬운 가장 손쉬운 방법은 통제이다.
통제 수단의 대표적인 예가 금지다. 금지는 선택적 제한을 넘어 모든 것을 막기 때문에 부작용이 너무 크고 본질을 왜곡시킨다.
1가구 2주택도 금지요, 산에서 막걸리도 금지요, 5·18 광주 사태 비난도 금지요, 코로나19로 마스크 미착용도 금지요, 금지된 그곳에 새로운 불씨가 싹튼다.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댓글 영역
획득법
① NFT 발행
작성한 게시물을 NFT로 발행하면 일주일 동안 사용할 수 있습니다. (최초 1회)
② NFT 구매
다른 이용자의 NFT를 구매하면 한 달 동안 사용할 수 있습니다. (구매 시마다 갱신)
사용법
디시콘에서지갑연결시 바로 사용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