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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테라 공성전 : 종말과 죽음 2부] 5:xii 테라의 지표

말카도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3.11.09 18: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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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xii 테라의 지표



루퍼칼의 궁정, 속삭이는 어둠 속에서 당신은 길을 헤맨다. 가려진 시야 너머, 손을 뻗어 길을 찾는다. 당신이 그러하듯 이곳 역시 이리저리 휘고 변화한 채다. 일전과 같은 것은 하나도 없다. 어둠조차도 일전의 어둠과는 다르다.


당신은 테라를 비물질의 홍수에 빠뜨려 익사시키는 중이다. 모든 것이 그와 함께 씻겨 내려가 하나로 뒤섞인다. 비로 씻긴 벽의 그림이 흘려내는 안료처럼. 일전에 그려진 것이 무엇이건,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사람이었을까? 풍광이었을까? 어쩌면 어떤 동물이었을까? 더 이상 의미가 없으니 아무 상관 없다. 염료와 색이 새어 나와 서로 뒤섞이고, 비물질계의 홍수 속에 희석되어 새로운 어둠이 빚어지고 있다.


그 어둠 속에서 당신의 손가락이 더듬는다. 당신은 그렇게 새로이 빚어진 사물의 형태와 모습을 느낄 수 있다. 복수하는 영혼과 온 세상이 뒤섞인다. 함선과 황궁. 하늘과 대지. 강철과 돌. 안과 밖. 위와 아래까지. 모든 것이 하나로 뒤얽힌 매듭이 되어 더 이상 길을 읽어낼 수조차 없다. 당신의 아버지가 용맹스럽게 걸음을 옮겨 강습을 감행한 순간 당신은 불가능을 여기 펼쳐내 그를 함정에 가두었다. 그에게는 빠져나갈 길도, 돌아갈 길도 없다. 당신이 그에게 허락한 길은 오직 한 곳으로 이어질 것이니.


미래가 없는 이 새로운 어둠 속에 존재하는 것은 당신뿐이다.  당신과 당신이 앉을 옥좌, 그리고 그 옥좌를 감싼 궁정, 그리고 궁정을 둘러싼 궁전까지. 당신의 궁전은 도시가 되리라. 영원한 도시. 은하계를 모두 아우르는 도시. 이렇게 될 운명이었다. 이 결말을 향해 가고 있었다. 피할 수 없는 운명이었다.


당신의 필연적인 도시. 당신의 왕국.


당신은 보기로 결심한다. 당신은 호루스 루퍼칼이고, 준비가 되어 있다.


당신은 빛을 부른다. 빛을 부른 순간 빛이 나타난다. 당신의 손에 엉긴 불을 든 순간, 궁정이 밝아진다.


다섯 옥좌가 있다. 잠시 당신은 놀란다. 하지만 당신은 본디 다섯 옥좌를 두었기에 놀랄 것이 없음을 기억해낸다.


다섯 옥좌. 하나는 당신을 위한 옥좌다. 확실히 그럴 것이다.


그리고 나머지 넷은 당신의 승천을 빚은 네 힘을 기리기 위한 자리다. 변화, 피, 기쁨, 부패. 혼돈의 영역에 자리한 네 추기경. 8망성의 네 사분면. 강대한 넷은 그 힘을 담아낼 구현체를 기다린다. 그들이 곧 선물의 부분일지니.


당연히 그러하다. 그것이 당신의 계획이다.


여기 카오스의 네 힘이 펼쳐지리라. 둘은 당신의 우편에, 둘은 당신의 좌편에 거하리라. 어느 쪽이 당신의 마음을 더 끌 것인가? 당신은 항상 정중한 주인이다. 당신은 당신을 향해 오는 이들을 존중한다. 그들 중 누가 당신을 거부하고 당신의 초대를 거절할 것인가?


당신의 선물은 관대했다. 손수 만들었고, 상대에게 들어맞도록 만든 엄청난 선물이다. 아름다운 천사를 위해서 준비된 선물, 부패. 필멸의 상처를 이겨내고 부활할 것이다. 친애하는 로갈을 위해서 준비된 선물, 피. 엄격한 정신이 자아낸 숨막히는 질서에 닥쳐올 광란의 해방이요, 마침내 결정의 책임을 잊고 그가 항상 갈망하던 생각 없는 전사로 화하게 해 줄, 카오스의 망각이 베풀어 줄 자애로운 해방이다. 엄격한 콘스탄틴을 위해서 준비된 선물, 변화의 해방. 가혹하고 좁은 시야 속에 펼쳐진 삶의 구속을, 맹목적으로 순종하는 신하의 운명을 벗어나 자유로이 사고하는 존재로, 그에게서는 항상 감춰졌던 비밀을 일깨우는 존재로 거듭나리라.


그리고 당신의 아버지를 위해서 준비된 선물, 기쁨. 기쁨의 보상이요, 자부심의 보상이 되리라. 마침내 그의 진정한 모습을 누릴 자격을 얻게 되리라. 더 이상 책임도 운명도 그를 짓누르지 않으리라. 그를 얽어매던 인도와 명령을 내릴 운명에서도 자유로워지리라. 3만 년에 걸친 계획 속에 사로잡혀 절뚝일 일도 없으리라. 이곳에 앉아 쉬며 마음껏 탐닉하며, 오직 권력 그 자체에 흠뻑 취할 수 있으리라. 인류는 그 없이도 가련한 여정을 계속 나아갈 수 있으리리. 그는 더 이상 인류라는 종을 떠올릴 필요가 없으리라.


그리고, 그 계획들은 모두 당신의 것이 되리라.


만약 그들이 당신의 선물을 받아들인다면… 경이가 펼쳐릴 것이다. 이 궁정은 충만하고, 기쁨과 영광이 넘치는 곳이 되리라. 모두의 위로, 정해진 바에 걸맞게 승천한 당신, 그리고 네 힘의 모임. 당신의 명령을 따르고, 당신의 말을 옮길 새로운 모니발.


그들이 받아들일까? 일부는 그럴지도. 슬프게도, 당신은 그들 모두가 받아들이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승천한 정신으로서, 당신은 그런 것들을 분명히 읽고 있다. 어떤 것들은 결코 변화하지 못한다. 과거와 미래, 이곳과 저곳의 구분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고 한 덩이로 화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들이 일전에 어떤 존재였는지를 뒤집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지금의 운명이 불가피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당신은 로갈은 당신의 것이 되리라고 확신한다. 그의 안에서 들끓는 피를 결코 멈출 수 없으리라. 당신이 항상 사랑했던 생귀니우스 역시 당신의 선물을 받아들일 것이다. 형제의 손이 내미는 생명의 선물을 누가 거절하겠는가? 그는 여기 이르러 당신의 곁에 앉을 것이다. 게다가 당신은 그가 항상 만물의 진실을 보는 데 근접했노라고 생각한다. 그는 항상 다른 이들보다 더 많은 것을 시야에 넣어 왔다. 필연적인 도시는 그에게 구원처럼 보이게 되리라.


콘스탄틴은 어떠할까, 당신은 그에 대해서는 다소 망설인다. 그는 당신이 태어나기 전부터 당신을 의심하던 존재 아니던가. 당신과 당신의 형제에 대해 그가 품고 있는 질투는 너무도 깊다. 할 수만 있다면, 오래 전에 당신과 당신의 형제들을 다 죽여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그 시절의 그는 진정한 인간이 아니었다. 그에게는 자유 의지도 없고, 이해력도 모자라다. 그저 당신의 아버지가 만든 도구에 불과하다. 물론 의심의 여지 없이 비길 바 없는 훌륭한 도구이나, 검이나 창에게 무기가 되기를 그만두라 명령할 수 있겠는가. 가련한 콘스탄틴, 그는 인간의 껍질을 뒤집어 쓴 의무와 복종의 현신에 불과하며, 더 나아가기 위한 것들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으리라.


그리고 당신의 아버지가 있다. 지금 당신에게 오기 위한 여정을 밟고 있는 그는 당신의 선물을 받아들일 가능성이 가장 높은 존재다. 하지만 그의 자아가 곧 장애물이니. 그는 스스로의 앎이 으뜸이라 여겼으며, 그러한 자기 신념은 수천여 년의 세월 동안 화석처럼 굳어 있다. 그 신념은 부러질지언정 결코 휘어지지 못하리라.


그리고 당신은 그 신념이 부러지기를 바란다. 당신의 선물은 진심이되, 만약 거절당한다면 당신의 손에 주저함은 없을 것이다. 놀랍게도 당신의 아버지가 수락한다면, 진정 기쁨이 되리라. 긴 세월 전 그와 함께 보냈던 완벽한 30년처럼, 다시 당신들은 함께 하게 되리라. 그러나 당신은 아버지가 그리하리라 여기지 않는다. 또한, 당신의 심중에는 그러지 않았으면 하는 희망이 거한다. 그의 시간은 이제 끝나야 한다. 그는 종말을 맞아야 하며, 당신은 그 종말을 직접 베풀기 바란다. 한때 당신은 그 누구보다도 아버지를 사랑했지만, 이제 당신은 그의 허위와 거짓으로 인하여 그를 증오한다. 나의 선물을 거절하소서, 아버지여. 주먹을 들고 저와 싸우소서. 당신을 죽이고 싶나이다.


당신은 한숨을 쉰다. 어둠이 속삭인다. 당신의 이름을 속삭인다. 당신은 최소한 그것이 당신의 이름을 속삭인다고 확신한다.


당신은 저 중 어느 옥좌가 당신을 위한 것인지 궁금해한다. 다섯 번째 옥좌. 하지만 무엇이 다섯 번째 옥좌인가? 가장 큰 옥좌? 틀림없다. 그것이 당신의 옥좌다. 신을 위한 옥좌다.


시계는 멈췄다. 시간은 사라졌다. 하지만 당신의 인내는 이제 한계에 이른다. 가까이에 있을 터인데, 왜 이리도 오래 걸린단 말인가. 이 모든 것을 끝낼 시간이다. 최소한, 죽음을 베풀어야 할 시간이다.


당신은 살아 숨 쉬는 어둠을 헤치고, 거미줄처럼 뒤엉킨 속삭임을 털어내며 궁정의 문으로 걸어간다. 그 문은 당신의 의지를 거스를 수 없기에 당신을 위해 열린다. 당신은 이제 전당에서 당신을 위한 새로운 모니발을 기다릴 것이다. 그들이 제 옥좌에 앉을 수 있도록, 안내를 베풀 준비를 갖춘다. 당신의 안에서 힘이 노래한다.


광활한 바깥의 전당은 음울하기 그지없다. 극도의 침묵이 서려 있다. 복수하는 영혼이 여기 거하지만, 이곳은 그 이상을 위한 곳이다. 필연의 도시가 당신의 승천을 기리기 위해 그 문을 연다.


당신은 그 안으로 발을 디딘다.


루퍼칼의 궁정에서 거대한 전당으로 당신이 발을 디딘다. 이 모든 것이 시작된 이래 처음으로, 당신이 테라의 지표에 발을 디딘다.





내일 연차라 내일 올리려 했던 분량까지 한꺼번에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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