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xii 견딜 수 없는

존은 눈을 뜬다.

우리가 죽은 겁니까? 곧장 존이 묻는다. 수어를 보내는 그의 손은 덜덜 떨리고 있다.

"더 나쁘다."

리투가 입을 연다.

"우린 살아있다."

리투는 고통스러운 기색이 역력하다. 손상된 그의 신체 기관이 스스로 수복에 나선 것처럼 보인다. 그의 갑주에는 말라붙은 피가 묻은 채다.

존은 에르다의 부상당한 전사를 도와 그를 일으켜 세운다. 온몸이 욱신거린다. 부러진 얼굴과 엉망이 된 팔의 고통은 견디기 어려울 지경이다. 몸은 떨리고 열이 난다. 이미 여러 번 죽어봤기 때문에, 손상된 신체가 작동을 멈추고 끝을 향해 가는 순간 이런 느낌이 든다는 것은 잘 안다. 그의 마지막 삶은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끝을 내고 싶지 않다.

루나 울프 군단병, 로켄은 이미 일어선 뒤다. 몇 미터 떨어진 먼지 속에 선 채, 그들을 등지고 선 상태다. 그는 무언가를 못박힌 듯 응시하고 있다.

너무도 강렬하고 밝은 빛이다. 메스꺼움이 느껴질 지경이다. 하지만 그 빛에 열기는 없다.

존은 올을 바라본다. 움직이지 않는 거대한 형상과 마주한 채다. 오벨리스크처럼 위풍당당하고 그을려 있는 형상이다. 그리고 다른 형상들이 보인다. 꼿꼿이 몸을 세운 채 마치 정렬이라도 된 듯한 형상들이다. 오랜 세월에 닳고 닳은, 원을 이룬 돌이나 다름없다. 눈부신 빛 속에서 하얀 먼지가 흩날린다. 저 멀리, 그리고 온 사방에서, 침묵하는 벼락의 폭풍이 세상을 두른다. 마치 꿈틀대며 딱딱대는 사슬의 장막처럼 보인다.

그리고, 그제야 존은 자신의 눈에 먼저 들어왔을 것을 알아본다. 올 너머의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는 거대한 존재다. 그 규모와 힘이 너무도 강대해, 처음 깨어난 존의 정신이 저 존재를 보는 것을, 혹은 그 존재를 받아들이기를 거부했음을 알아차린다. 제정신을 유지하기 위해서 말이다.

광택이 나는 구체. 흑요석 구슬. 거울처럼 빛나는 구형. 그 형태는 단순하지만, 그의 언어적 역량으로도 그 형체를 설명할 간결한 용어는 떠오르지 않는다. 그 크기를 묘사하기조차 어렵다. 그 아래의 대지 위에 부드러이 놓여 있지만, 마치 추락한 달을 지켜보는 것처럼 느껴진다. 아니, 그보다도 훨씬 더 거대하다. 그 무한한 깊이를, 무한한 너비를, 무한한 음의 회귀를 느끼기 시작한 존은 울고 싶어질 지경이다. 저것은 전혀 사물이 아니다. 힘이요, 발현이며, 의식의 매듭이자, 존재 그 자체다. 은하의 시원이 되는 아일렘(Ylem, 각주 1)의 냄새가 난다. 하늘이 처음 드리웠던 색, 나일의 사제들이 신들의 피부를 칠할 때 썼던 색채, 이집션 블루(Hsbd-iryt, 각주 2)의 푸른 빛을 띄는 기운이 구체로부터 발해진다.

헤아릴 수 없으리만큼 고요하면서도 지극히 격렬한 기운이 발해진다. 천천히 타오르는 향처럼 분노가 스며 나오고, 그 분노가 존의 피부에 닿는 순간마다 공포가 드리운다.

견딜 수 없다. 소리를 지르고 싶다.

그는 죽고 싶다.

바로 곁의 로켄은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인다.

존은 리투의 손을 뿌리치고, 올을 향해 먼지를 뚫고 절룩이며 나아간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공포의 빛 깊숙이 들어가는 느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존은 계속 나아간다. 이것 때문에 여기까지 왔으니까.

각주 1 : 최초의 창조 전, 모든 물질이 한 덩어리로 뭉쳐 있었던 시기를 상정한 가상의 물질.

각주 2 : 한국어 발음을 못 찾았음. 어쨌든 고대 이집트에서 사용된 세계 최고(最古)의 인공 안료. 인공 청금석이라는 의미가 있음.

이제 반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