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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울프스베인] 7장 : 테라를 떠나다 (1)

말카도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2.09.27 10:4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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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라 근해의 모든 우주는 함선들로 뒤덮여 있었다.


메카니쿰의 수확용 바크선들이 강철로 된 풍광을 좇아 움직이며 금속을 긁어모아 궤도에 매달았다. 궤도 장갑판은 여전히 살아있는 세계처럼 보였다. 물집처럼 자리잡은 돔과 장갑유리로부터 빛이 뿜어지고 있었다. 주변부의 신호 비콘들이 깜빡이고, 첨탑들은 데이터 입전을 확인하며 빛을 발했다.


하지만 썩어가는 고기를 탐하는 함선들은 삶이 아닌 죽음을 노래했다.


레무리아(Lemurrya)는 죽어가고 있었다. 테라의 중력과 우주의 자유로움 사이에서 균형을 이룬 마법사의 세계, 레무리아는 말 그대로 과학의 경이였다. 태양의 눈부심 속에서 밝게 빛나는, 인류의 승천에 대한 진술이나 다름없는 곳이었다. 일광 반사 신호기가 그러했듯, 통합의 메시지와 적대적인 우주를 상대로 한 번영을 선포하던 레무리아는 그 대부에 거대한 전당과 회랑들을 품고 문명화된 사람들을 위해 봉사했다. 부유한 이들을 위한 유희의 공간이었지만, 그와 동시에 전쟁이 끝나 인류의 생득권에 따른 은하 지배가 시작되면 수십억의 사람들이 거하게 될 공간이었다.


더 이상은 아니었다. 수천여 년 전 레무리아가 처음 건설된 이래, 그 종말이 마침내 도래했다. 그리고 그 종말은 적도의 손에 의한 게 아니었다. 테라의 근위장, 로갈 돈은 모든 대형 민간 플랫폼에 대한 징발을 선포했다. 모든 플랫폼들이 분리에 들어갔다. 가장 높은 궤도에 자리한 것들은 승리 이후-만약 승리할 수 있다면-다시 제 위치로 돌아가 조립될 것이다. 가장 작은 것들은 재배치되었고, 모두 전쟁의 목적에 맞게 개조되었다. 거주 구획에 거하던 이들은 징발되어 공원과 궁성에 배치된 포좌에서 복무하게 되었다. 가장 큰 녀석들은 움직일 수 없었고, 그렇다 해서 남겨두기에는 너무 위험했다. 레무리아, 로디니아(Rodinia), 그리고 나머지들은 그대로 하늘 위에서 분해 작업에 들어갔다. 반역자들이 이 플랫폼 자체를 투사 무기로 활용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였다.


금속으로 빚어진 대륙은 주인을 정복으로부터 구하기 위해 죽어가고 있었다.


하역장의 창에 리만 러스의 얼굴이 비쳤다. 장갑 유리를 뚫고 뻗어나간 날카로운 푸른 시선이 저 아래 하늘에서 벌어지는 자해 행위를 향했다. 하역장의 기능적인 철골이 러스의 양쪽으로 수 킬로미터 가까이 뻗은 채였다. 전망대와 같은 화려함은 없었다. 러스의 시선이 닿은 창은 궤도 측면을 관통해 뻗어나가는 몇 안되는 존재였다. 사람의 허리 높이에서 머리 높이 바로 위까지 돋은 작은 창을 바라보기 위해, 프라이마크는 허리를 굽혀야 했다. 먼지투성이에 지저분하고, 궤도 파편의 충돌로 금이 가 있는 이 창문은 견고한 방벽의 유일한 약점이었다. 프라이마크 옆으로 뻗은 좌우의 긴 통로는 플라스틸 격자로 짜여진 채, 거대한 공간으로 이어지는 곳이었다. 자동 하역기들이 쉴 틈 없이 굉음을 내며 부두에서 함선으로 물자를 실어 나를 때마다 질량의 움직임으로 상부 구조물이 뒤흔들렸다. 군수품, 식수, 식량, 함포를 비롯해 전쟁을 위한 물자를 끝없이 피스톤처럼 밀어 넣는 중이었다. 그릴이 벗겨진 덕분에 궤도 장갑판 내부의 뒤틀린 형상이 그대로 드러났다. 강철로 된 띠와 쉿쉿대는 파이프, 접합 상자와 작은 성채나 다름없이 자리한 강철 구조물들, 그리고 깜빡이는 빛까지. 마키나 오푸스의 음침한 사이버네틱 해골 형상이 곳곳에 박혀 있었다. 야만적이고, 실용적인 추악한 곳, 하지만 돈의 천상 대청소에서조차 살아남은 이곳은 전함들의 보급을 위해 제 기능을 다하고 있었다. 오직 군사적 용도가 남아 있을 따름이었다. 영광스러운 천상의 땅에는 그런 기능이 없었다. 그리고 이제 테라에 아름다움과 편의를 위한 공간은 존재하지 않았다. 전쟁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라면 무엇이건 쓸어버릴 뿐.


레무리아 상공에서 바크선들은 수직선과 수평선이 교차해 빚어진 네 구역 위에서 복잡한 배치에 따라 춤을 추었다. 통 모양의 예인선들이 레무리아의 주변부를 따라 배치되었고, 견인 포대가 예인 작살을 쏘아대는 동안 화염이 번쩍였다. 거리가 있다손 해도, 늑대왕의 눈에조차 제대로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작살이 레무리아 위에 꽂힐 때마다 반짝이는 금속의 폭풍이 쏟아졌다. 수백 미터에 달하는 두꺼운 케이블들이 아침 이슬을 받은 거미줄처럼 번득였다.


바크선들이 곧 조율을 마친 듯 빛을 깜빡거리기 시작했다.


발걸음에서 이는 쇳소리가 통로를 따라 움직였다. 조심스럽게 플라스틸 그리드 위에 지팡이가 놓여지는 소리가 들렸다.


“야를이시여.”

“크바.”


돌아보지도 않은 채, 러스가 대꾸했다.


“침묵하라. 생각할 것이 있다.”

“발도르 경이 접견을 청하나이다.”

“이제야? 하필 이런 때를 고르는군.”

“서둘러야 한다 전했습니다, 왕이시여.”

“흠, 기다리라고 해라!”


러스가 으르렁거렸다.


“그 친구도 날 어지간히 기다리게 했지. 그래 놓고선 이제야 내가 떠나기 전에 찾았다고? 대체 6개월 전엔 어디에 있었다지? 난 이걸 봐야만 한다.”


러스가 그의 조언자를 돌아보며 손길을 던졌다.


“와서 봐라. 높은땅이 죽어가는 모습을.”


크바의 특징 있는 발걸음이 위대한 늑대의 옆으로 다가왔다. 창에 비친 러스의 얼굴 옆에 크바의 얼굴이 비쳤다. 투구도, 가면도 없었다. 오직 룬 프리스트의 주물을 제외하면, 그의 쇠약한 형상뿐이었다.


“내 아버지는 윗골(Oververse)의 영광을 모두에게 가져오고자 하셨다. 그리고 나는 그 결과가 어떻게 되었는지 보고 있구나.”


바크선들은 황충의 무리 같은 바람에 휩쓸려 빠른 속도로 철수하고 있었다.


“이제 보거라.”


녹은 금속으로 빚어진 노란 십자가가 생명을 얻어 불타기 시작했다. 핵융합이 빚어낸 십자가였다. 예인선들이 일제히 발진했다. 흘러내리는 빙하의 인내를 담아, 그들은 분열된 장갑판을 끌어당겼다. 파편과 파편들이 갈라진 틈에서 소용돌이치며 테라의 중력 우물로 끌려들어갔고, 그대로 대기권에서 불타오르며 최후를 맞았다. 대공 사격이 날아들어 위험한 파편을 제거했다.


“나는 이런 파괴에 반대할 수 없구나.”


늑대가 조용히 말했다.


“인공위성이 궤도 아래로 낙하하는 꼴을 많이 보았다. 그 순간 지표에 가해지는 충격은 그 어떤 폭탄보다도 파괴적이지. 신들이 몰락하고, 만물이 죽음으로써 윗골의 위망이 빛난다. 이 시대는 이제 저물었다. 우리 꿈은 끝났다. 낙원의 꿈은, 찢겨진 하늘로서 마무리되었다.”

“이것은 윗골이 아닙니다, 주군이시여.”


크바가 대답했다.


“지금, 여기서 내세는 다시 빚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러스는 크바에게 죽일듯한 시선을 내쏘았다. 날카로운 이가 오므라든 입술을 깨문 채였다.


“빌어먹을, 그걸 문자 그대로 해석하지 마라. 그건 네게 어울리지 않는다. 나는 지금 시적인 분위기였단 말이다. 나뉘어진 자식아.”


러스의 투덜거림, 하지만 그 어떤 포식자의 으르렁거림보다도 더욱 가슴 깊은 곳에서 우러나는 소리였다.


“아버지의 세계를 영원히 떠나기 전, 그 정도는 괜찮지 않겠느냐.”


바크선들이 돌아왔다. 이제 더 이상 대형을 짓는 것 같지 않았다. 흡사 먹이를 뜯는 포식자들처럼, 남은 조각을 거침없이 공격하고 있었다.


“불어터진 흐로브발루 시체를 포식하는 무스벨리(Mussveli) 같군.”


러스가 다시 스캴드라도 된 마냥 중얼거렸다.


“바다는 붉게 물들고, 온 사방이 육신의 잔치로 포식하겠구나.”

“더 나쁜 놈들이 벌써 오고 있겠지요.”


크바가 대꾸했다. 러스와 크바는 함께 바크선들이 레무리아를 산산조각내고, 그들을 지휘하는 살바토르 아크(Salvator Arc)에 실어낼 금속 조각들을 나르는 것을 지켜보았다. 별빛 바다의 까마귀들, 멸망의 전조들, 그리고 공허의 전장을 청소하는 이들.


수많은 바크선들이 빠르게 일했다. 하지만 장갑판은 거대했고, 거의 위성 크기나 마찬가지였다. 한 모금씩 머금어 바닷물을 마르게 하려는 쥐새끼들이나 다름없었다.


“몇 주가 걸릴 일이거늘.”


러스가 중얼거렸다.


“시간이 부족하다. 돈이 요새화에 쏟아 붓기 시작한 시간은 연 단위로 헤아려야 할 텐데, 왜 이제까지 놔 둔 거지?”

“무언가 해야 할 일이니 말입니다. 주군의 형제께선 집중할 일이 필요하셨겠지요.”


러스가 어깨를 으쓱였다.


“그럴지도.”


레무리아를 비롯한 떠다니는 대륙들이 찢겨져 나가는 과정이 반복되고 있었다. 며칠 전 로디니아의 외부 고리가 끊겨졌고, 분해를 위해 더욱 고궤도로 실려 올라갔다. 곤다바나(Gondavana)는 이미 한참 전에 찢겨져 실려 나가는 중이었다. 하이 알바(High Alba)와 업-브라질(Up-Brasyl)의 표면은 이미 분해가 끝난 뒤였고, 메카니쿰의 파괴용 차량들이 지표를 분해하는 동안 수없이 많은 함선들이 거류민들을 실어 나르고 있었다.


테라가 둘렀던 강철의 갑주가 조각조각 찢겨져 나가며 그 주인을 우주의 추위로 내몰았다.


천둥과도 같은 으르렁거림과 함께, 러스는 비참한 테라의 현재에서 시선을 떼었다.


“그럼 발도르를 들여보내라. 뭐라고 하는지는 들어봐야지. 나에게 경고하러 왔다는 데 묘드를 걸겠다. 나한테 경고를 보내는 걸 숫제 즐기고들 있구만. 테라 사방에 제 눈물로 손을 씻는 여편네들만 가득한 꼴이라니.”


크바가 어깨를 으쓱했다.


회랑으로 이어지는 문은 한두 개가 아니었다. 가장 가까운 문을 지키는 것은 크바를 따라온 쌍둥이같은 차림의 전사들이었다. 뼈처럼 하얀 색의 갑주 위에 보호의 룬이 새겨진 채, 늑대의 부적이 둘러져 있었다.


그리고 한 존재가 문을 비집고 들어섰다. 저 문은 저중력 환경에서 자라난 하급 메니얼들에게 적합한 크기였지, 군단병에 걸맞는 크기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 존재는 거의 잠행에 가까운 모양새로 움직였고, 갑주의 한 조각조차 문에 닿지 않았다.


잠시 후, 그 존재가 정체를 드러냈다. 발도르였다. 황금빛 갑주가 빛났다.


“러스 공.”


발도르가 입을 열었다.


“행복해 보이진 않는군.”


늑대왕이 대꾸했다. 위험한 유머감각이 그의 눈에서 빛났다. 헬프로스트 블레이드에 엉긴 한기만큼이나 차가운 기운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네가 불편하게 들어오는 꼴은 꽤 재밌었네. 프로스페로 이후 네놈이 떠나지 않았다면 우리가 빌어먹을 성운에 갇히는 일 따위는 없었겠지.”


발도르는 프라이마크의 곁으로 다가들었다. 그의 시선이 창을 힐끗 향했다. 번득이는 갑주 위로 취근에 발라진 성유의 향이 풍겼다. 하지만 그의 굳어진 얼굴은 창백했다. 흡사 일광을 오랜 세월 동안 받지 못한 사람처럼. 피곤함을 감추려고 한 듯 했지만, 실패한 시도였다.


“제가 조금 더 무례했다면, 왜 이런 미개한 곳에 숨어들었냐고 물었겠지요.”

“숨어들었다, 그런가?”


발도르에게 러스가 대꾸했다.


“말씀드렸듯이, 제가 조금 더 무례했다면 그렇게 물었을지도 모르지요.”

“난 그저 혼자 있고 싶었을 뿐일세.”


러스의 목소리는 붙임성 있게 싹싹한 느낌이었다.


“내가 아무래도 서툴었던 모양이군.”

“저를 만나자 하셨지요.”

“테라에 있는 동안 청한 거였지. 이제 난 떠날 테고. 이제 자넬 봐서 무슨 소용이지?”

“죄송합니다, 전하, 지금 전쟁의 상태가-”

“어디 있었는지 말해주면 내게 당한 감점을 만회할 수 있을 걸세.”


러스가 끼어들었다.


“그리고 왜 아버지께서 내게 침묵을 지키시는지도.”


발도르는 고통스러워 보였다. 러스는 팔짱을 꼈다. 그의 눈에 빛나던 즐거움은 희미한 램프가 꺼지듯 사라졌다.


“위대한 늑대를 용서하소서. 오늘 기분이 좋지 못하십니다.”


크바가 중얼대듯 사과했다.


“내 감정은 직접 설명하도록 하지, 크바.”


물리적으로는 그대로였지만, 지금 이 버려진 통로에 있는 모든 이들의 심중에서 러스의 존재감이 거대해졌다. 흡사 그들 모두를 짓누르는 것 같은 존재감이었고, 궤도의 정점에 매달린 처형 집행인의 도끼와 다를 바 없었다. 동굴 입구에서 들려오는 곰의 뜨거운 숨결이나 마찬가지였다. 러스는 곧 두려움이었고, 웃는 가면 뒤에 자취를 감추고 드리워져 있는 죽음이었다.


그러한 공포에 맞서기 위해서는, 용기 이상의 것이 필요했다.


그리고 발도르는 최소한 불편함을 감출 수 있는 정도의 우아함을 발휘했다.


“전하, 말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행하는 바를 누구에게도 발설치 말라는 황명이 있으셨습니다. 말카도르 전하께서 부황이 바쁘심을 전했을 것으로 압니다.”

“그렇지. 그리고 솔직히 말카도르 영감보다 자네에게서 더 솔직한 답을 들을 수 있을 것 같았거든. 중요한 때만 되면 뱀처럼 혓바닥이 갈라지는 양반 아닌가. 돈 역시 침묵하더군, 아는 것이 분명한데.”


러스가 발도르에 대고 코를 킁킁댔다.


“너희는 싸우고 있어. 그 정도는 알 수 있다. 그것도 쿠스토데스 모두가. 돌아온 이후로 내가 황궁에서 본 쿠스토데스는 열도 되지 않아. 대체 어디서 싸우는 거지? 그리고 자넨 왜 이리도 기진맥진했지?”

“말할 수 없습니다, 전하. 사과드립니다.”


발도르가 대답했다.


“그럼 솔직히 이야기해 주게. 우리가 이기고 있나?”


발도르는 침묵 속에서 러스를 올려다보았다.


“좋아.”


러스가 힘차게 어깨를 으쓱여 보였다.


“내가 신경 쓸 바가 아니지. 우리는 둘 다 황제 폐하의 의지니까.”

“저기 있는 이도 폐하의 의지라 해야 합니까?”

“지금 여기서 크바에 대해 이야기하자고?”

“그러고 있음을 아시잖습니까.”


발도르는 크바의 줌루로 뒤덮인 갑주를 응시했다.


“너도 날 위선자 취급하는 건가, 발도르?”


러스가 위험한 기운을 발하며 물었다.


“그 소리는 이미 돈에게 충분히 들었다.”

“제가 그랬다면 제 목숨은 없겠지요.”


발도르의 돌덩어리같은 얼굴은 미동조차 없었다.


“다만 니케아 칙령에 대한 전하의 모순을 지적하고자 할 뿐입니다. 가장 열렬한 지지자 아니셨습니까. 주술, 분명히 그렇게 칭하셨지요. 그 오만이 호루스를 끌어내렸고, 마그누스를 지금의 꼴로 만들었습니다. 지금 전하에게서 그 두 모습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말 조심하시지.”


러스가 중얼거렸다.


크바는 스스로를 변호하기 위해 목소리를 높였다.


“캡틴 제너럴. 우리는 지금 폐하께서 가장 총애하던 아들과 전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그와 우리 모두 볼터를 가졌고, 우주선을 가졌습니다. 타이탄 군단과 사이버네티카 군단, 우리와 그의 손 모두에 쥐어져 있지요. 우리는 그가 가진 모든 것을 가졌고, 그 역시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가졌습니다. 단 하나의 치명적인 무기를 제외하면 말입니다.”


크바는 발도르의 성명판을 지팡이 머리로 툭툭 두들겼다. 뼈로 된 장신구가 짤그랑거렸다.


“호루스는 마법을 가졌습니다. 진정한 마법이지요. 저 아랫골의 썩어들어간 우물에서 직접 길어낸 마법 말입니다. 그는 더렵혀진 물을 한껏 들이켰고, 그 힘이 혈관 안에서 꿈틀거립니다. 우리에게 폐하가 계시지만, 폐하께서는 지금 나서실 수 없습니다.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크바가 계속 말을 이었다.


“비록 전지전능한 만물의 아버지라 하시지만, 폐하께서 모든 곳에 계실 수 없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분께서 왜 아들들을 필요로 하시고, 캡틴 제너럴을 필요로 하시겠습니까?”

“누군가는 자넬 마법사라 매도할지도 모르네.”


발도르가 대답했다.


“그 정의를 따르자면 말카도르 전하 역시 마법사이실 것이고, 만물의 아버지께서도 마법사이실 것입니다. 지금 캡틴 제너럴이 전쟁에서 쓰고 있는 재능 있는 남녀들 역시 마법사라 해야 할 것입니다. 모두 마법사지만, 그들을 두려워하십니까? 그들을 병기로 쓰고 계시지요. 그리고 아랫골에서 악의 없이 힘을 끌어다 쓸 수 있는 것이 그들만은 아닙니다.”

“폐하께서는 그들의 재능이 순수함을 보증하셨다. 그리고 지켜보는 시선들이 있지. 하지만 자넨 그렇지 않아.”


크바가 웃음을 터뜨렸다.


“이 힘 어디에 순수함이 있겠습니까? 아랫골에서 끌어다 쓴 힘에는 타락의 손길이 와 닿습니다. 하지만 인간의 정신으로, 세계의 정신으로 그 타락을 막고 순수함을 지킬 수 있습니다. 우리 룬 사제들은 어디서 멈춰야 할지 잘 압니다. 우리의 재능은 얼음과 펜리스의 대장간의 열기가 함께 빚어낸 것이지요. 그 한계를 넘어 모험해서는 안 됨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스스로 구속되어 있다는 것인가? 지금 황제 폐하보다 스스로가 더 잘 알고 있다 생각하는가?”

“나는 이들을 믿는다.”


발도르의 날카로운 질문을 러스가 끊었다.


“우리는 폐하의 처형 집행인들이다. 우리 삶의 방식과 투쟁의 길은 한계를 아는 것에서 출발했지. 그리고 그 한계를 넘어서는 이들을 처벌하는 것 말이다.”

“하지만 전하께서는 사제들을 드러난 표면으로 데려오지 않았잖습니까.”


발도르가 지적했다.


“위대한 늑대께서는 고집스러운 일면이 있으시지요. 하지만 바보는 아니십니다.”


러스는 크바에게 인정하듯이 투덜거렸다.


“이 대화는 소용없는 일일세, 콘스탄틴. 그러니 한번 말해보게. 그래서 날 다시 끌어내서, 어디 계신지는 모르겠지만 아버지 앞에 가져다 놓고 날 비난하러 온 건가? 아니면 내 형제를 죽이는 일을 하게 내버려 둬 줄 텐가? 이제 누군가 그래야 할 시간 같네만.”

“스스로 생각하십시오, 전하.”

“내가 생각 없는 작자로 보이나?”


러스는 발도르와 눈을 마주할 정도로 수그리고서 날카로운 이를 드러낸 미소를 지었다.


“나는 생각이란 놈을 매일 하지. 그걸로 명성이 자자하다고.”

“실로 그러십니다.”


발도르는 어떤 조롱의 뜻도 담지 않은 채, 문자 그대로 말해 보였다.


“전하의 그 훌륭한 정신이 행동으로 옮기는 걸 지켜봐 왔습니다. 하지만 부디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호루스는 전하의 야만적인 모습에 속지 않을 것입니다.”


러스가 몸을 곧추세웠다.


“그럴 거라는 기대는 없네. 이제 슬슬 여기 왜 온 건지 말하고 사라져라. 난 지금 바쁘니까.”

“부황께서는 여기 계실 수 없음에 대한 아쉬움을 전하셨습니다.”


발도르가 답했다.


“전하의 여정에 축복이 있기를 기원하셨습니다.”

“그것 때문에 자넬 보냈나? 하!”


러스가 손뼉을 쳤다.


“복스 교신 한 마디면 될 일을 가지고 말이야. 내가 성격이 고운 사람이라 망정이지, 그러지 않았다면 모욕당했다고 생각하게 됐을지도 모르잖나. 부황께 전하게. 유용한 걸 전할 게 있으시면 로갈에게 전부 전하시라고. 아들들의 노란 갑주만큼이나 성마른 작자 말이야.”

“장담드립니다만, 폐하의 구상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에 계신 것은 전하십니다. 이 군단 전체가 그렇습니다.”

“그런다고 해서 나아지는 게 없어, 발도르. 대체 여기 온 이유가 뭔가?”

“이걸 가져가시는 것을 확실히 하고자 온 것입니다.”


발도르가 복스로 한 쌍의 메니얼을 소환했다. 그들은 자줏빛 벨벳으로 둘러진 중력판을 좁은 문을 따라 어색하게 밀어내며 등장했다. 판 위에는 프라이마크가 휘두를 길이의 자루를 가진 긴 창이 놓여 있었다.


“황제 폐하의 창을 말카도르 전하의 은거지에 두고 가셨더군요.”


창에 시선이 닿은 러스가 한숨을 쉬었다.


“고맙구만.”


창을 집어들지는 않았다. 이 창을 테라에 두고 가고자 한 것이 마지막 시험이었다. 그리고, 이것이 곧 그에게 주어진 한살매였음이 분명해졌다.


“천만에요, 전하. 전하의 평화를 찾으시길 기원하겠습니다.”

“여전히 내가 숨었다고 보는 건가?”

“그렇게 생각하시겠다면 말입니다.”


발도르는 메니얼들에게 손짓해 떠날 것을 지시했다. 그들은 프라이마크에게 절하고 빠져나왔다. 겨울과 전쟁의 군주에게서 느껴지는 불편한 감정 때문인지, 발걸음이 쟀다. 발도르 역시 떠날 채비를 갖췄다.


“발도르.”

“예, 전하?”

“난 이걸 해야만 해. 자넨 이해하겠지. 이것이 곧 나고, 이것 때문에 내가 빚어졌다.”


발도르는 고개를 숙여 인사를 바치고 떠나갔다.


“사실 그가 옳다, 크바.”


러스가 입을 열었다.


“그들 모두가 옳아. 언젠가는 워프와 우리 사이의 관계를 보다 면밀하게 조사할 필요가 있다.”


러스는 일부러 유빅어 단어, 아랫골이라는 말 대신 제국에서 사용하는 공식 용어를 사용했다. 그러면서도 갑판에 침을 뱉어 액막이를 하는 채였다.


“알겠나이다, 야를이시여.”


크바가 입을 뗐다.


“하지만 오늘 할 일은 아니지요.”


잠시 크바의 말이 멈췄다가 이어졌다.


흐라픈켈에서 소식이 있었나이다. 적재 작업이 끝을 맺었고, 함대는 떠날 채비를 갖췄습니다. 오직 주군의 영을 기다릴 따름입니다.”


러스가 툴툴거렸다. 캡틴 제너럴이 떠나간 자리 너머, 다시 러스의 시선은 테라 상공에서 벌어지는 침묵 속의 파괴에 향했다.


“교향곡의 전주를 듣는 기분이구나.”

“그렇습니다. 아직 가장 시끄러운 부분은 멀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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