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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모타리온: 창백한 왕 - 11장 (3)

톨루엔환각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3.01.22 00:4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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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타르키아의 지휘소에서 베키아즈는 공황에 빠지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도망칠 곳이 없기에 공황에 빠져선 안 되고, 혹시라도 있을 살아남을 기회를 위해서 침착해야 했다.


“왜 항복을 받아주지 않는거지?”


“아무런 해답도 없으니 그만 물어보도록. 당신에게 좋을 건 하나도 없습니다.”


중앙에 있는 화면은 온 하이브에 퍼진 도륙의 현장을 보여주었다. 침략자들은 여러 곳에서 성벽을 뚫어 지상층의 방어선을 터트리며 장갑차들은 도시의 간선 도로를 뒤흔들고 있었다. 군함들은 더욱 많은 병력을 중간지점과 복합탑 꼭대기 근처에 떨어트렸다. 자동 방어 체계는 쓸모 없었다. 보잘 것 없는 전투였다는 듯 적과 싸울 사람이 남아있지 않았다. 거대한 전사들이 기계와도 같은 체계성으로 페이타르키아의 강당과 제조소 사이를 돌아다녔다. 노동 단위들은 그대로 살려둔 채 모든 감독관들을 보이는 족족 학살했다.


“어떡하지? 이제 어떡하지?” 페이타르키아의 재정 고위 감사관 타벤 크라시안은 공황과의 투쟁에서 지기 직전이었다.


“환영해줍시다.” 베키아즈가 말했다. 다른 생각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항복을 받아주지 않을텐데?”


“이거 말고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거 같습니까? 우린 싸울 수도, 도망칠 수도 없죠.” 이들에게 남은 것은 완전하고 열렬한 순종뿐이었다. “결사단의 진실을 보여줍시다. 우리가 저들에게 유용하다는 걸 보여줍시다.”


“맞아!” 크라시안은 죽을 힘을 다해 헛된 지푸라기를 움켜쥐었다. “우린 굉장히 유용하다고!”


“문을 열으세요.” 베키아즈가 명령했고, 제어실의 장교 중 한 명이 따랐다. “저흰 거역하지 않을테니, 우릴 죽일 필요도 없을 겁니다.” 그녀는 지휘소로 통하는 복도를 내려다보며 문 앞에 자리를 잡았다. 맨 끝에는 중력 승강기의 문이 있었다.


총성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 온 하이브에 잔혹한 죽음의 소리가 울려 퍼진다.


이제 승강기의 웅웅대는 소리가 들려온다. 베키아즈는 문이 열렸을 때 느낄 공포에 대비하며 문을 바라보았다.


“거의 다 왔다.” 베키아즈가 말했다.


크라시안은 흐느꼈다.


승강기의 문이 열리자 죽음의 회색 갑주를 두른 다섯 거인들이 지휘소를 향해 회랑을 따라 내려갔다. 전사들은 앞으로 총을 겨누고 있었다.


군단원들이 지휘소 입구에 가까워져 오자 베키아즈는 팔을 벌리고 몸을 숙였다. “페이타르키아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그녀를 위한 대답도 역시 총구 끝 화염이었다.






땅파개와 긁개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침실안에 숨어 세상이 뒤흔들리고 울부짖는 동안 어둠 속에 웅크려 있었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확실한 건 신들께서 갈라스파에 멸망을 내려주고 있다. 이것이 끝나길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영원하던 우렛소리가 멈추니 침묵이 흘렀다. 우렛소리만큼이나 두려운 이 고요함에 그 누구도 감히 문을 열고 대피소를 떠날 용기를 내지 못했다. 결국 공복과 갈증이 땅파개와 다른 노동 단위들을 목도로 몰아냈다.


가스관이 터져 환하게 불타오르는 곳 말고는 모든 게 어둠에 휩싸였다. 땅파개는 이 복도를 알고 있었다. 한 노동 단위가 붕대로 땅파개의 상처를 감싸주고, 긁개는 땅파개가 칠흑같이 어둡고 희끄무레한 어둠 속을 절뚝이며 걸어가는 걸 도왔다. 몇 층 아래로 내려가자 식품 제조소에 도착했다. 기계는 작동을 멈췄지만 미완성 회색 음식이 담긴 통은 열려있었다. 군중들이 이 쓰레기 위로 뛰어들었다. 모두를 위한 충분한 양이 있었다. 땅파개는 생애 처음으로 배불리 먹을 수 있었다. 온 몸을 괴롭히는 격통에 아무런 맛도 느껴지지 않았지만, 이 고통에 몸에 활력이 돌았다. 땅파개는 자신이 얼마나 더 오래 살아있을지는 모르지만, 전쟁의 끝과 결사단의 끝을 보기로 결심했다.


땅파개는 교대근무 없이 시간을 가늠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제조소에 도착한 후 아마 하루 후, 어쩌면 겨우 몇시간 후 누군가가 보조 발전기를 작동시키자 빛이 조금이나마 들어왔다.


신들의 귀환을 보기에는 충분한 빛이었다.


신들은 더욱 많은 발전기를 되살리고, 프로타코스의 모든 구역을 돌아다닐 수 있을 정도의 빛을 안겨주었다. 제조소는 약품 공정을 하지 못하는 채 식품 생산 작업을 다시 시작했다.


신들의 진노로 도시의 지붕과 벽이 박살난 부분에서도 바깥의 빛이 새어 들어왔다. 저 구역들로 나가기엔 독성이 너무 강하지만, 땅파개는 숨을 참고 신화에 나올 법한 빛을 살짝 볼 수 있을 정도로 가까이 갔다.


신들은 결사단의 잔당들을 붙잡고 프로타코스를 거쳐 지나갔다. 이들은 하이브의 점령을 알리며, 전 주인들을 복도를 통해 침략자들의 함선이 만든 커다란 동굴로 끌고갔다. 땅파개와 긁개는 행렬이 지나가는 것을 보았을 때 쓰레기를 헤집고 있었다. 땅파개는 저 죄수들이 누군지 알고 있었다. 저 사람들은 고위 감사관들이다. 심지어 최고위 감사관까지 사슬에 묶여 있었다. 땅파개가 기억하기로는 제조소의 선전 화면에 저 사람들의 얼굴이 매일 보였었다. 스테방께선 육신을 입은 결사단 그 자체였다. 그분께선 영원히 변치 않을 갈라스파의 통치자였다. 모든 것이 변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죄수라는 광경은 충격적이었다.


그녀와 긁개는 그 뒤를 따라 동굴에 모인 노동 단위의 거대한 군중에 합류했다.


이곳의 공기는 그리 좋지는 않았다. 함선 주변에 무너져 내린 잔해들이 밀폐제 역할을 했지만 바깥에서 스며들은 공기에 땅파개의 폐가 아파져 왔다.


수만 명의 노동 단위들이 동굴의 빈 공간에 모여들어 함선 앞쪽에 관심을 쏟았다. 죽음 그 자체이신 분이 경사로 중간쯤에 자리잡고 있었다. 그분의 아래, 경사로 바닥 앞에는 그분의 전사들이 포로로 잡힌 주인들을 지키고 서 있었다.


갈라스파의 통치자들은 노동 단위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무릎을 꿇고 있었다.


“무릎을 꿇고 있다니.” 긁개가 경외신에 차 속삭였다. “우리 앞에서 무릎을 꿇었어!”


땅파개가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죽음께서 말하기 시작하자, 그분의 목소리가 동굴 가득 울려 나갔다. 땅파개는 복도에서도 메아리치는 소리를 들었고, 프로타코스의 모든 사람들이 그분의 말을 듣고있다는걸 깨달았다. 이 분의 목소리가 다른 도시에서도 들릴까? 그래야 한다. 죽음은 온 갈라스파에 통보하고 있다. 땅파개는 이 점을 믿었다.


땅파개가 죽음의 모습을 올려다보자 그 두려운 정적과 위엄은 그녀의 마음 속을 침통한 공포로 가득 채웠다. 이분은 죽음 그 이상이요, 갈라스파의 진정한 주인이시다. 죽음과 위대하신 존재이신, 창백한 왕이로다.


“너흰 자유다.” 창백한 왕이 읊조렸다. “결사단은 이제 없다. 다시 돌아올 일도 없을것이다. 너희 앞에 있는 이 가없는 자들이 하이브의 마지막 지배자들이다. 이제 놈들의 최후를 보거라.”


죽음의 전사들은 낫을 들어 이들을 내리 베었다. 마치 단칼에 내리치듯, 통치자들의 머리가 땅바닥에 나뒹굴었다. 잘린 목에서 피가 뿜어져 나오며 몸뚱이는 쓰러졌다.


땅파개가 숨을 헐떡였다. 공포스러우면서도 섬뜩한 광경이었지만 짜릿한 마음도 맴돌았다. 마지막 공포가 서린 스테방의 머리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고위 감사관 한 명은 살려두었다. 화면에서 노동 단위의 절망을 내려다보던 제조소 감사관 레스타반이었다.


“갈라스파의 모든 하이브에 고한다.” 창백한 왕이 말을 이으셨다. “이것이 결사단의 운명이요, 너희의 전 주인들 중 그 누구도 살아남지 못할것이니라.” 그가 잠시 말을 멈췄다. “이걸로 우리의 임무는 끝이다.” 동굴에서 그의 호흡장치에서 희미하게 세어나오는 가스 소리만 흘렀다.


“이제 너희의 임무를 시작할 때다.” 그분이 말하시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한 전사가 붙잡고 있건 레스타반을 풀어줬다.


감사관은 절망으로 얼굴이 일그러진 채 전사들에게서 뛰쳐나갔다. 신들은 그를 내버려두기만 했다. 레스타반은 앞도 보지도 않고, 돌무더기 위로 넘어져가며 땅파개를 향해 곧장 달려나갔다.


이건 선물이다. 창백한 왕께서 내리신 선물이야.


새로운 전향과 광신의 힘이 그녀의 까맣게 그을린 몸을 통해 솟아올랐다. 땅파개는 남은 손으로 락크리트 조각을 잡아들고 레스타반의 앞길을 막았다. 겁에 질린 감사관은 멈춰 섰지만 땅파개는 그에게 돌덩어리를 내리쳤다. 뾰족한 모서리가 감사관의 두개골에 박히자 그녀의 얼굴에 피가 튀고, 레스타반이 주저앉았다. 긁개가 그에게 달려드니 다른 노동자들도 몰려들었다.


레스타반은 갈기갈기 찢겨 나갔다.


땅파개는 여전히 돌을 들고 서서 창백한 왕을 경건히 바라보았다.


“곧 다른 이들도 올 것이다.” 그가 선언했다. “그 사람들이 너희를 인류제국에 완전히 순종할 수 있도록 만들것이네. 너희에게 마지막 명령을 내리마. 죽은 결사단원의 수를 세거라. 놈들은 네게 번호를 매겼으니, 이제 너희가 번호를 매길 때다. 놈들의 모든 시체를 찾아내 수를 세어라. 너희의 노예화의 척도를, 너희의 자유의 척도를 알아보거라.”


그리고 그는 돌아서서 함선에 올랐다. 그의 전사들은 결사단의 시체를 남겨둔 채 그 뒤를 따랐다.


경사로가 올라가고, 함선의 거대한 문이 닫히면서 동굴을 뒤흔드는 덜컹이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귀청을 찢을 듯한 뱃고동소리가 뿜어져 나오자 땅파개와 다른 노동 단위들이 도망쳤다. 땅파개는 동굴을 떠난 마지막 사람 중 한 명이었다. 그녀는 달리면서 복도를 돌아보자 함선의 엔진에서 불꽃이 터져 나오는 것을 보았다. 그 진동으로 동굴의 천장이 무너지고, 땅파개는 어둠과 먼지 속에서 절뚝거렸다.


신들께서 떠나셨다.


시간이 지나고, 노동 단위들이 벽에 기대어 앉아 자신들이 본 것을 회상할 때 긁개가 물었다. “떠나신건가?”


“그런 건 상관없어. 그분께선 우리가 뭘 할지 알고계서. 모든 걸 다 알고계서. 창백한 왕께서 우릴 지켜보실거야.” 땅파개가 답했다.


그녀는 몸을 떨며 수를 셀 생각밖에 할 수 없었다.




곧 있으면 이 소설도 끝


챕터 12는 에필로그와 함께 올릴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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