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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테라 공성전 : 종말과 죽음 2부] 6:xxviii 네 뒤를 걷는 자

말카도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3.12.05 17:48:42
조회 505 추천 26 댓글 8
														


[시리즈] 종말과 죽음 2부 : 6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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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테라 공성전 : 종말과 죽음 2부] 6:vii 침묵의 전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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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테라 공성전 : 종말과 죽음 2부] 6:xi 벽 안에서
· [테라 공성전 : 종말과 죽음 2부] 6:xii 파편들(몰락)
· [테라 공성전 : 종말과 죽음 2부] 6:xiii 약탈자들의 연회
· [테라 공성전 : 종말과 죽음 2부] 6:xiv 죽음에 임박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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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xxviii 네 뒤를 걷는 자



로켄은 한순간도 주저하지 않는다. 싸우려 하지 않는다. 끔찍한 거인이 피의 강에서 완전히 솟아날 때까지 기다리지 않는다.


바로 돌아선 로켄은 달리기 시작한다.


최대한 빠르게, 진하고 끈적한 액체를 해치며 달린다. 온몸에 핏방울과 선혈이 튄다.


그의 뒤에서 흥분한 듯 꽥꽥대는 목소리가 유지보수 터널을 따라 울려 퍼진다.


“사무스는 내 이름이로다. 너는 알고 있노라. 그 이름이 너를 아노라. 너는 항상 그 이름을 알았노라.”


아주 오래된 목소리. 속삭이는 산맥에서 들었던 것과 똑같이 골수처럼 축축하고 뼈처럼 말라붙은 깩깩대는 소리. 악마의 긁어대는 소리다. 하지만 다른 목소리들이 뒤엉켜 있다. 수없이 많은 목소리들이 밧줄을 구성하는 가닥처럼 뒤엉켜 있다. 주발, 인장관, 메르사디까지, 수백 수천의 목소리가 뒤엉킨다. 로켄은 메르사디의 말투를 뚜렷하게 알아듣는다. 태양계 전쟁의 음울한 요동 속에서, 악마는 메르사디를 삼켜 그녀의 목소리와 형태를 이용하고선 그녀를 파괴했다. 그 이후로 로켄은 거듭 메르사디의 유령을 보았다. 더 이상 그의 사적인 이야기들을 나눌 수 없는 유령이다. 그리고 지금 그를 괴롭히는 것이 바로 그녀의 목소리다.


로켄은 돌아서고 싶다. 놈과 싸우고 싶다. 놈을 죽이고 싶다. 놈이 메르사디 올리톤에게 저지른 짓의 대가를 치르게 하고 싶다. 태양의 제국 전체에 놈이 저지른 짓의 값을 치르게 하고 싶다.


대신, 로켄은 계속 움직인다. 근느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 피로 가득 찬 어두운 유지보수 터널이 저런 야수와 정면으로 맞서 싸울 수 있는 곳이 아님을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 함선 속에서, 그에게 보탬이 되는 공간이어야 한다.


어떻게든 말이다. 어떻게든. 로켄은 이 함선의 배치가 비틀리고 움직이지 않았다는 전제 하에 이 함선의 전체 구조를 완벽하게 기억할 수 있다.


그리고 그는 어깨 너머로 한번 돌아보는 것만으로도 그가 끝장날 수 있음을 잘 알고 있다. 단 한번 힐끗 보는 일별만으로도 그는 끝날 수 있다.


“나는 네 뒤를 걷는 자로다.”


목소리가 웃음을 터뜨린다.


그러면 계속 내 뒤에나 있어라.


로켄은 거품투성이의 굳어버린 파도를 힘겹게 헤치며 그의 육신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최대한 빠르게 움직인다. 그는 뒤돌아보지 않는다. 거대한 형체가 그를 뒤쫓아 움직이기 시작하며 물보라를 일으키는 소리가 들릴지라도, 거대한 놈의 머리와 어깨가 머리 위 배관에 부딪히며 긁히는 소리가 들릴지라도, 그를 잡으려는 놈이 움직일 때마다 들끓은 파도가 그를 휩싸며 움직일지라도, 그는 절대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


파도가 거의 그를 쓰러뜨릴뻔 한다. 그는 몸을 힘겹게 가누며 계속 달린다. 붉은 액체가 사방으로 튀며 휘저어진다.


“사무스, 네가 들을 유일한 이름이로다.”


잡음이 잔뜩 낀 것 같은 목소리가 메아리친다. 저 악마가 나타나기 전 그의 시선에 스쳤던 인장관의 일별은 진짜였을까? 아니면 놈의 또 다른 거짓말이었을까?


30미터. 로켄의 직관적인 기억이 속임수에 당한 것이 아니라면, 배수구까지 30미터만 더 가면 된다. 20미터, 그의 다리에 물살이 느껴지기 시작한다. 10미터. 다가오는 괴물이 밀고 오는 파도가 터널 벽을, 그의 허벅지를 연이어 때린다.


“살필지어다! 사무스가 여기 왔노라!”


저기다. 왼쪽. 터널을 가득 메운 엄청난 유체 속에 배수구 그릴이 보인다. 피와 연조직 덩어리들과 침전물이 그릴 위를 가득 덮은 채다.


그는 뒤돌아보지 않는다. 체인소드를 낫처럼 휘두른다. 윙윙대는 톱니가 금속을 깎아내고 거대한 핏방울을 튀긴다. 더 깊이 베어낼 생각으로 체인소드를 물에 담그자 거친 기침 같은 소리와 함께 연기가 피어오른다. 피가 익어가며 불타는 냄새, 지독한 갈색 연기가…


그릴이 그대로 무너진다. 로켄은 물길의 흐름이 거세짐을, 그리고 자신을 향해 밀려오고 있음을 느낀다. 로켄은 그대로 핏속으로 뛰어든다.


피에 실린 로켄이 나아간다. 아마 그의 길 잃고 저주받은 형제들의 피였으리라. 피는 그를 하수구로 밀어붙이며 소용돌이치며 나아간다. 하수구로 그의 몸이 들어간 순간 사지와 갑주가 하수구의 벽에 부딪히며 요란한 소리가 난다. 다음 순간, 성인 남성만한 크기의 발톱 달린 거대한 손이 하수구 입구를 후려쳐 금속을 위고 터널 벽을 일그러뜨린다. 하지만 늦은 뒤다.


모든 것이 붉게 물들었다가 이제 검어진다. 로켄은 피투성이가 된 채, 마치 깡통 안에 넣어 둔 전사회 메달처럼 덜컹댄다. 격류의 먹먹한 흐름 속에 귀가 먹은 그는 마치 죽은 나뭇가지처럼 배수관으로 떠밀려 내려간다.


급류가 그를 침수 집수갱에 뱉어낸다. 로켄은 몸부림을 치며 수면 위로 떠올라 손발을 휘저으며 간신히 보도 가장자리를 붙들고 몸을 끌어 올린다. 온몸에서 피가 흐른다. 어찌어찌 체인소드는 잡은 채다. 그의 뒤로 유지보수 터널의 유출구에서 쏟아진 피가 분홍빛 안개를 일으키며 흘러내린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피로 범벅이 된 로켄이 미끄러지듯 움직이기 시작한다. 집수갱은 거대한 공간이다. 갑판을 관통하는 공학 갱도의 마지막이 바로 이 집수갱이다. 그 위로 솟은 공학 갱도 곳곳에는 배관과 도관 골조를 경계로 삼아 지주대와 교각이 설치된 채다. 저 멀리서 희미한 빛이 보인다.


체인소드를 꽉 쥔 로켄은 벽에 고정된 유지보수 사다리를 타고 오르기 시작한다. 다음 순간, 그의 아래에서 피가 괸 저수지의 수위가 치솟으며 휘몰아치기 시작한다. 광란이다. 마치 거대한 바다생물이 수면 위로 떠오르듯, 소용돌이 속에서 무언가가 공중으로 치솟는다.


“네가 들을 유일한 이름이로다!”


목소리가 그를 향해 울려 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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