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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잔드레크의 고백, 그리고 기타 개인적인 이야기

번역크립텍(50.67) 2020.10.21 11:59:32
조회 6413 추천 55 댓글 20
														


지난 이야기)

한참동안 정신을 놓고 있었던 잔드레크. 오바이런은 세테크가 제안한 잔드레크 암살 건을 가슴 속에서 되뇌이며 잔드레크의 지휘함으로 향한다.

그러나 그가 발견한 것은, 갑자기 정신을 차리고 나사 풀린 모습으로 돌아다니는 잔드레크였다!

옛 모습 그대로인 상관의 모습에 충성심 뽕을 가득 채우고 잔드레크가 하자는대로 휘둘리기 시작하는 오바이런.

그 둘은 과연 무엇을 할 것인가...

(아직 번역 안된 내용, 궁금하면 Severed를 읽어볼 것.)


'잔드레크,'

'네메소르 잔드레크님이라 해야지,' 여전히 하던 일을 계속하며, 늙은 장군님이 대답했다. '그래도 대답은 해주마.'

'정원에서 말입니다, 무언가 필기하실 때 말이죠*... 저보고 누구냐 하셨죠. 제가 누군지 기억하십니까, 각하?'

하던 일을 멈춰야 할 순간이 오자, 잔드레크는 작게 한숨을 내쉬고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그는 바가드가 후회라고밖에 해석할 수 없는 표정으로 오바이런을 바라보았다.

'오바이런, 나는 네가 누군지 똑똑히 기억한단다. 하지만 그 때엔, 말하기엔 부끄럽지만, 너를 의심했다.'

'의심이라 하셨습니까, 네메소르?' 오바이런은 갑자기 발전기가 누수되거나, 그의 가슴이 가스를 배출하는듯한 기분을 느꼈다. 그가 그의 주군**을 실망시켰던가?

'나의 충성스러운 바가드야, 나는 혼란에 빠져있었단다. 그리고, 솔찍하게 고백하자면, 너무나도 가슴아팠다. 너도 알겠지만, 세테크가 내게 해로운 수를 쓸 것이란 것이 점점 확실해졌다. 이 사실부터 나를 흔들었지.'

'세테크는 장군님의 의형제 아닙니까?'

세테크가 꾸민 짓을 모른척하며, 오바이런은 반론했다.

'예전엔 그랬을수도 있지. 지금은, 솔직하게 말하건대, 좋은 일을 꾸미는 것 같지 않더구나. 스스로 주문을 독차지하기 위해 우리를 이 곳으로 끌여들인 것 같다. 그의 계획을 더욱 이해한 지금, 나는 최악의 상황이 닥칠까 두렵다. 그가 마법을 써 사악한 기계 군단을 일으키고 이모테크 폐하에 반기를 들까 한다.'

잔드레크가 바라보는 현실이 뒤틀렸을지언정, 그의 분석은 정확했다. 오바이런은 세테크와 나누었던 대화를 돌이켜보았고, 도아흣의 보물을 이모테크의 발 앞에 바치겠다는 창백한 로드의 의도가 얼마나 진실되었는지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그가 생체전이의 비밀을, 혹은 이 아래에 잠겨있는 그 무엇이든, 취하려 했다면, 이 사실을 왜 공유한 것일까? 그가 다른 식인귀 행성***에서 약탈한 보물들을 나누어가진 것도 아니지 않은가? 오바이런은 잔드레크에게 야마에서 있었던 암살기도에 대해 이야기할까 했지만, 때마침 네메소르가 짜증 석인 목소리로 주제를 바꾸었다.

'악! 지금 그는 문제되지 않으니, 세테크 이야기는 그만하지. 궁극적으로, 그는 언제나 역심을 품고 있었지. 그는 내 스스로 감당할 수 있다. 하지만 끔찍했던 것은, 그가 너를 유혹하려 했다는 점이다. 내가 너를 가장 필요로 했을 때, 네가 나를 대적할까 두려웠다.'

오바이런의 몸이 경직되었다. 잔드레크는 꿈에서 오바이런의 눈을 통해 세상을 보았다 했다 (주: 지휘관급 네크론은 하위 네크론의 시점으로 바라볼 수 있음. 가령 최전방의 리치가드의 눈에 무엇이 보이는지, 전장은 어떤 모습인지 원격으로 볼 수 있다는 이야기). 축제 후, 세테크와 나눈 대화를 본 것일까?

'내가 정원에서 너를 쫓아낸 후, 나는 내 스스로가 너무나도 원망스러웠다. 정말 침울했다, 오바이런. 아침해가 뜨는 매일이, 내 마지막 날일거라 확신했단다. 세테크가 이야기했듯, 어쩔 수 없다는 이유로, 최선이라는 이유로 날 침탈할거라 생각했단다. 내 어찌 이리 어리석을 수 있었나? 오바이런, 그 개자식은 뱀같이 교활할 수 있다. 그러나 뱀니는 강철을 뚫지 못하는 법이다. 그리고 너는 강철과 같은 마음을 지녔지****. 너를 더욱 믿어야했다. 전장을 살필 마음이 돌아왔을 때, 여전히 전방에서, 그의 압박에도 꿋꿋하게 서있으며 나를 기다린 너를 바라보는 내 영혼이 얼마나 눈물 흘렸는지***** 네게 말할 수 없었다. 넌 여전히 나를 신뢰했고, 그렇기에 난 돌아올수밖에 없었단다.'

그가 그의 주군을 배신하기 일보 직전이었다는 사실에, 수치심이 오바이런을 매웠다. 그의 주군의 목을 치고자 하는 바람이 목 끝까지 차오르지 않았던가. 잔드레크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더라면, 그의 계획을 정말로 실현하지 않았을까?

'아니다,' 오바이런의 상처투성이 갑주 위에 손을 올리고, 잔드레크가 말했다. '내가 설령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하게 된다 하더라도, 나는 나의 오바이런을 알 것이다. 진실로, 가끔씩 내가 재치를 잃진 않았나 싶다. 혹시나, 내가 바라보는 세상이 진실이 아닌가 싶단 생각마저 든다. 그러나 네가 나와 함께한다면, 그 어떤 것도 상관 없다. 너는, 여러 의미로, 나보다 강한 반쪽이다. 더 나은 반쪽이다. 설령 네가 사막에서 험하게 자란, 우둔한 멍청이라 할지라도.' 잔드레크는 부드럽게 웃었고, 오바이런의 등을 두드렸다. '자, 오글거리는 이야기는 그만하도록 하자꾸나. 눈 앞에 놓인 복잡한 기계 덩어리는 내가 해결하도록 하마. 이왕 세테크보다 두 수 앞선 거, 빠르게 마법사를 죽이자꾸나.'

'그러도록 합시다,' 오바이런이 대답했다. 생체전이 이후 사라진 줄 알았던, 가슴 깊은 곳에서 타오르는 석탄같은 것이 빛을 발했다.



* As you worked on these notes.

** Master. 잔드레크와 오바이런의 주종관계와 유대 때문에 개인적으로 어색하다 생각해도 주인이라 번역함. -> 주군으로 수정. 피드백 감사합니다!

*** Ghoul star. 어떤 이유가 되었든 무덤 행성을 지배할만한 모든 개체의 자아가 날라가버린 행성. 4판 시절의 영혼도, 자아도, 생각도 없는 네크론들이 드글거리며, 특히 도아흣은 수도행성이었기 때문에 멀리서 보면 여러 강이 중력을 거슬러 흐르는 것처럼 보일만큼 어마무시한 물량의 좀비 네크론들이 잠겨있음.

**** That bastard might have a silver tongue, Obyron, but silver cannot dent steel, and that is what you are. 가장 의역을 심하게 한 부분이고, 한국어로 의미와 글 둘 다 맞추는게 굉장히 힘들었음. Silver tongue 는 그럴듯한 말빨을 갖춘 사람을 뜻하는데, 반대로 steel 은 강철처럼 우직한 충심을 의미함. 잔드레크가 오바이런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부분임. 혹은, '그 개자식은 아첨꾼의 혀를 갖고있다, 오바이런. 그러나 세 치 혓바닥이 강철같은 심지를 굽힐 수는 없는 법이란다. 그리고 너는 강철같이 굳은 심지를 가졌지.' 라 번역해도 될 것 같음. 나중에 다시 번역할 일이 있으면, 피드백 받은 것처럼 세 치 혀로 번역하는게 조금 한국어로 받아들이기 쉽지 않을까 싶음. 은의 굳기 때문에 죽어도 강철에 흠집을 낼 수 없는 것처럼, 혓바닥으로 강철 심을 굽힐 수는 없을테니 의미도 어느정도 통하고.

***** Swelled. 붓다는 뜻인데, 한글로 마냥 붓다고 하니까 좀 어색하고 어차피 맥락상 눈물을 펑펑 흘려 탱탱 부운 그거라 눈물 흘렸다로 해석.


Severed, 87쪽에서 89쪽까지.


개인적으로 '단절된'을 읽으며 가장 감동받았던 부분인데 이 부분을 언급하는 걸 보지 못해 아쉬워서 번역함.

권력욕에 미쳐 날뛰는 네크론티르 사이에서, 순수하고 인간적인 잔드레크의 모습이 빛과 어둠처럼 대비되는 장면이고, 개인적으론 이 장면 하나로도 책을 전부 읽을 가치 있다 생각함.


그건 당분간은 The Infinite and The Divine을 읽느라 번역 할 시간이 많이 날 것 같진 않음. 다만 다 읽으면, 하루에 몇 쪽이라도 Severed를 번역해 올리고싶은 마음임.

짧은 길이에도 정말 완성도 높은 책이라, 많은 사람들이 읽고 음미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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