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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팬픽] 사면초가(四面楚歌)

아니그냥없어요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2.06.26 21:30:02
조회 791 추천 5 댓글 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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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번 편에서 이어집니다. ]



이브에 의해 그녀의 집으로 강제송환된 글렌.


그런 그의 이마엔 지금 비지땀이 철철 흐르고 있었다.


"저 녀석은······ 지금의 이브는 어딘가 미쳐 있어, 제대로 미친 게 틀림없다고! 큭······ 분명 이대로라면······!"


이브가 곧 집으로 돌아올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그나마 한 가지 다행인 점은, 자신을 속박했던 화염 속성 속박 마술, 【파이어 링】이 수명을 다한 덕분에 몸이 가까스로 풀려났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얼마 있지 않아 이브는 자신이 지금 머리를 싸메고 있는 이 집으로 찾아올 터.


군 시절 때에는, 자신과 똑같이 열아홉으로 유일한 동갑내기였던 이브는 자신이 알기로 분명 저런 인물이 절대 아니었다.


제국 궁정 마도사단 특무분실 넘버 1, 이브 이그나이트. 가문의 비전인 불꽃 마술을 계승한 그녀의 또 다른 이명은 《마술사》.


특무분실의 실장 직책을 맡았던 데다 일처리도 확실해서 깐깐하기로 소문난 상부도 그녀를 군에는 무조건 없어선 안 될 유능한 인재라고 평할 정도였다.


게다가 마치 당장에라도 화려하게 화염처럼 타오를 법한 선홍색의 머리카락. 자주색의 또렷한 홍채.


그렇기에 누가 봐도 미인이라고 부를 수 있는 외모의 소유자였던 그녀가 『냉철의 미녀』라고 불리게 된 이유······.


그건 바로 남한테 민폐만 부리는 히스테리 기질이 있는 여자였던 데다, 귀여운 구석은 하나도 없어서였다.


그래서 한때는 자신을 대놓고 싫어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글렌에게 모질게 굴곤 했다.


결국 그런 일이 있었기에 갑자기 자신을 납치하고 이런 데에 가둬놓는 이유가 아무리 생각해도 납득이 가지 않는 것이다.


'······지금 이러고 있을 시간은 없어. 언제 저 녀석이 찾아올지도 모르는데. 그나마 길어봐야 10분 남짓이겠지. 빌어먹을······!'


마음 속에서부터 올라오는 강렬한 조바심에 무심코 글렌은 바닥을 주먹으로 강하게 내려쳤다.


그리고 스스로를 질타하며 정신을 차린 후 황급히 집 안을 두리번거렸다.


혹시라도 탈출구가 있을 경우, 지금이라도 찾으면 이브가 오기 전엔 빠져나갈 수 있을 것이다.


"······역시 맨션이란 건가. 집이라기엔 지나치게 좁군······. 아니, 내가 워낙 저택 같은 데서만 살아와서 그런지는 잘 모르겠다만."


창문이라고는 겨우 하나만 달려있는 데다, 그마저도 건너편의 다른 건물들에 가려져 햇빛이라곤 거의 들지 않는 상태였다.


용케 이런 환경에서도 살아온 이브가 글렌은 왠지 처량해졌다.


"나가고 싶어도 집 내벽은 전부 【화염 결계】로 막힌 상태······ 그렇다면, 방 안에는······."


이번에는 가구 쪽을 살폈다.


방 안에 있는 가구라곤, 고작해야 싱크대, 화장실, 작은 옷장, 석탄을 이용해 가열하는 화덕 뿐······.


그리고 글렌은 한 가지 기이하고도 충격적이기 짝이 없는 광경을 발견했다.


"············."


이게 대체 뭔가 싶어서 충격을 하도 받은 나머지 입을 다물어버린 글렌의 앞에는 현재ㅡ.


벽 한쪽에 겨우 알아볼 수 있을 법한 작은 글씨로 『글렌이 좋아 미치겠어. 어떡하면 좋지?』 같은 문구들이 수없이 도배되어 있었다.


"······그 히스테리녀, 이브가 날 좋아한다고? ······진짜야? 아니······ 이건 좋아한다기보단······ 진짜, 말도 안 돼······."


글렌이 경악하며 벽 앞에 멈춰서 있는 순간ㅡ.


터벅터벅터벅.


맨션 복도 끝쪽에서 이쪽을 향해 천천히 걸어오는 소리가 다가오기 시작했다.


"······헉?! 벌써 왔다고?! 아직 시간이 좀 남아있을 텐데?! 큭······ 젠장!"


저 묘하게 차분한 발소리는 아무리, 어떻게 생각해봐도 이브였다.


외통수를 거하게 얻어맞은 글렌은 이렇게 된 김에 할 수 있는 선에서 최대한 몸을 숨기기로 했다.


"하아~. 또 어디로 도망간 거야······ 정말이지, 사람 참 힘들게 한다니까."


현관문을 열쇠로 따고 들어온 이브는 집 안에 있어야 할 글렌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한숨부터 푹 내쉬었다.


'제발 이리로 오지 마! 아니 그냥 밖으로 나가줘, 부탁이니까!'


한편, 글렌은 현재 방 한 켠에 있는 작은 옷장 안에 들어가 숨은 상태였다.


'신이시여! 왜 이런 미천한 제게 이런 쓰디쓴 시련을 주시나이까?! 애당초 잘못도 없는 내가 왜 숨······ 어······?'


글렌이 속으로 그렇게 빌고 있자, 비통하게도 이브의 그림자가 점점 옷장 쪽으로 다가왔다.


'신님 미워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


또 다시 배신당한 설움에 속으로 감정이 폭발한 순간ㅡ.


"하아······ 당신. 여기 있는 거, 이미 다 알고 있거든? 얼른 나와."


"안에 사람 없어요. 잘못 보셨슴다."


"······."


글렌의 말 같지도 않은 말에 이브는 잠시 입을 꾹 다물었다.


"······또 나 화나게 할 거야? 이번엔 진짜 안 봐줄 거야. 5초만 셀게, 나와. 5······ 4······ 3······ 2······ 1······ 연다?"


"히이이이이이익?!"


지금 이 순간, 글렌에겐 마치 저 카운트다운이 자신의 남은 목숨처럼 느껴졌다.


이젠 정말 남은 방법이 없었다.


그야말로 사면초가(四面楚歌)였다.


"주제 넘은 짓을 했습니다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지금 당장 나올게요! 나온다고요! ······허억······허억······."


그래서 밖에서 잠군 옷장 문을 억지로 발로 차서 열어제낀 후, 냉큼 바닥에 넙죽 엎드려 애원할 수밖에 없었다.


"당신, 거기 숨어있던 이유가 뭐야. 내가 분명 집안에서 얌전히 기다리라고 했을 텐데?"


"아니, 이건 말이죠?! 그, 그그 뭐냐······ 아! 물론 깜짝 이벤트인 게 당연하잖슴까! 암, 그렇고말고요!"


"······흐응~."


하지만 이브는 글렌의 필사적인 변명에도 그저 게슴츠레하게 흘겨볼 뿐이었다.


"무, 무슨 문제라도······ 있으실깝쇼······? 이브님."


"그렇다고 하기엔······ 내가 멀리서 원견(遠見) 마술로 봤을 때, 당신······ 내 집을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더라? 그것도 꽤나 열심히."


"······."


이브가 반론하자 글렌은 그저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전신에 폭포수처럼 식은땀이 흘렀다.


하지만······.


'······여기서 더 물러난다면, 이 녀석은 틀림없이 날······.'


쭈그려 앉아있던 글렌이 갑자기 바닥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이브를 진지한 표정으로 응시했다.


"뭐, 뭐야······ 갑자기. 당신 설마······."


'나한테 지금 고, 고백하려는 거야······? 서, 설마······ 그럼 그게 진짜 서프라이즈 이벤트였다구······?! 후훗······ 귀여워라. 이런 면도 있었······.'


하지만 이브의 상상은 곧 무참히 산산조각나고 말았다.


"예. 저도 더 이상은 안 되겠습니다, 이브 씨. 전 저만의 인생이 있거든요. 그럼 이만······."


"······."


고개를 숙인 채 입을 다문 이브를 뒤로 하고 글렌은 문을 통해 나가려고 했다.


집주인인 이브가 이 집 안에 있는 이상, 곳곳에 쳐져있는 【화염 결계】가 주인인 이브를 인식해서 자동으로 해제될 테니까 말이다.


'이야~ 진짜로 이게 먹히네?! 아니······ 그래도 뭐랄까. ······생각보다, 조금 허무한걸. 아무튼, 이대로 집에 가서 와인이나 한 잔 할까, 핫!'


그렇게 수고로운 자신을 위로하며, 현관문 손잡이를 돌리려 한 순간ㅡ.


"······커헉?!"


뒷쪽에서 자신의 머리를 강타한 무언가의 둔탁한 소리가 들려왔다.


무방비한 상태에서 맞았던 터라 아무 대비도 못한 글렌의 의식은 그대로 어둠 속의 심연으로 가라앉았고ㅡ.



······.



······그리고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으······응······?"


어두운 바닷속을 헤메던 글렌의 의식이 서서히 깨어났다.


"······여······긴?"


뒷쪽의 갑작스러운 충격을 느낄 겨를도 없이, 주위를 천천히 둘러봤다.


밖은 아무래도 벌써 해가 지고 새벽녘이 된 모양이다.


역시나 장소는 아까와 똑같은 이브의 집.


그리고 옆에는······ 그의 팔뚝을 두 팔로 꼭 껴안은 채 곤히 잠든 이브가 있었다.

"새근새근······."


"해도해도 너무한 거 아냐? 나한테 그런 짓까지 벌여놓고. 잘도 잠이 오나 보다······ 에휴······. 그래 뭐, 잠들었으면 상관없겠지······."


이제는 아예 체념한 듯한 글렌이 한숨을 쉬며 자리에서 일어나려 한 순간ㅡ.


"······어디 가?"


옆에서 공허한 눈을 한 이브가 한없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 시간이 어두워졌잖아. 게다가 루미아도 아직 그 집에 묶여있을 텐데. 한 시라도 빨리 가지 않으면······ 컥?!"


그 순간, 이브가 글렌의 뺨을 세차게 후려쳤다.


얼굴의 일부가 가속을 실은 손바닥에 얼얼해진 나머지 빨갛게 부어올랐다.


"······야, 너! 이게 대체 무슨 짓이야?! 나도 참는 데 한계가 있어, 적당히 좀······."


"시끄러. 닥쳐."


"너······ 이젠 진짜······."


"글렌. 내가 왜 내 집으로 당신을 보냈는지 알려줘?"


그리고 이브의 영문을 모르는 질문에 글렌은 어안이 벙벙했다.


"······뭐? 갑자기 뭔 헛소리야, 그게?"


"당신, 최근에 그 루미아라는 애랑 몇 번인가 카페에 놀러간 적 있었지?"


"······아, 뭐. 그야 그렇긴 한데······ 너, 그게 지금 이거랑 무슨······."


"······나랑은 그런 데······ 안 갔으면서······ 진짜, 글렌······ 이러기야?"


자기가 말하면서도 부끄러운지 뺨이 붉게 상기된 이브는 글렌에게서 시선을 딴데로 피하면서 말했다.


"아니, 야. 난 지금 네 말이 당최 뭔 소린지 하나도 이해가 안 되거든? 애당초 왜 내가 좋아하지도 않는 너랑······ 크헉?!"


황당한 표정의 글렌이 갑작스러운 질문 공세에 따지고 든 순간ㅡ.


이번에는 난데없이 이브가 배를 가격하자, 글렌은 갑자기 엄습해온 충격에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었다.


"······끄윽······ 큭! ······이제 그만······ 적당히 하라고오오오오오오오오!"


그러자 마침내 글렌의 인내심도 한계에 도달했다.


왜 맞아야 하는지도 제대로 된 이유 하나 설명을 안 해줬는데 뭐가 저리 당당한 걸까.


"역시······ 그렇구나. 아무래도 당신은······ 좀 교육이 필요할 것 같네."


하지만 이브는 개의치 않고 그저 담담하게 그녀의 손에 이그나이트 가문만의 시크릿 비전, 【제7원】의 불길을 깃들었다.


모든 걸 태워버릴 법한 지옥의 업화(嶪火)가 사나운 기세로 주변을 밝게 비추듯 그을리기 시작했다.


"말로 해서 안 된다면······ 힘으로라도 할 수밖에. ······뭐, 결국은 이렇게 될 줄은 알았지만. 되도록이면 이 방법은 쓰고 싶지 않았거든?"


"······너, 너어······ 대체 나한테 무슨······."


글렌은 본능적으로 공포심에 질렸다.


고유 마술인 【광대의 마술】ㅡ 마술의 발동을 억제하는 마술을 사용한다 쳐도, 【제7원】은 『퀸트 액션』을 모두 생략할 수 있다.


즉, 다시 말해······ 발동이 필요없어도 마술 자체가 이미 발동이 끝난 상태이기에 효과가 소용없다는 뜻이다.


자신의 고유 마술이랑은 상성이 극히 최악이었다.


······이대로면 자신은······ 높은 확률로, 아니. 틀림없이, 죽을 것이다.


"난 분명 좋게 끝내려 했는데, 당신은 내 말을 거역했어. 자꾸 내 손바닥에서 벗어나려고 하잖아? 당신이 그렇게 나오면 나도 강경책 밖에 없다구."


하지만 이브의 선전포고에도 불구하고 글렌은 움츠러드는 기색없이 허세를 부렸다.


"······하! 궤변 늘어놓는 것도 그쯤 해두지 그래? 네가 뭐래도 난 어쨌든 반드시 내 집으로 돌아갈 거다. 그렇게 알라고."


"······있잖아, 당신. 뭔가 착각하나 본데. 이건 전부 당신이 내 울타리를 자꾸 벗어나려고 한 탓에 벌어진 일이거든? 뭐, 지금이라도 빌면 용서해줄게."


"아니, 그것도 입바른 거짓말이겠지. 분명 범죄도 공공연하게 저지른 네가 날 탈출시켜줄 리는 없을 테니까."


"하아······ 말이 안 통하네. 정말이지······."


그렇게 두 사람, 글렌과 이브는 서로를 노려보며 대치했다.


······정적.


상대방의 발만을 바라보며 원을 그리는 가운데, 그저 고요한 침묵만이 방 안에 감돌았다.


ㅡ톡.


그리고 마침내 부엌에 있던 수도꼭지의 물방울이 싱크대에 뚝 떨어진 순간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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