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알자노 마술학원의 안뜰 부지ㅡ.

"아~ 여기? 껌이구만. 자, 원소 배열이 이렇게ㅡㅡ."

글렌을 찾아온 한 여학생이 모르는 부분을 물어봐서, 글렌이 친절히 가르쳐주는 중이었다.

"아하! 그런 거였군요. 이렇게 쉽게 푸시다니······ 저, 진짜 놀란 거 있죠?! 대단하세요!"

"뭘 이 정도 갖고. 뭐, 모르면 얼마든지 갖고 와. 내가 아는 선에서 최대한 알려주마."

여학생이 동경과 존경의 눈길을 보내자 내심 기분이 좋아진 글렌은 자신만만한 목소리로 말했다.

"예! 아, 그리고 저기······ 선생님. 이거, 선물······ 그, 그럼······!"

그녀는 뺨을 수줍은 듯 붉히더니 글렌의 손에 선물 상자를 하나 건네준 후 쏜살같이 도망쳐버렸다.

"······응? 난데없이 웬 선물······? 아니, 그야 기쁘긴 한데······."

어리둥절한 얼굴로 글렌이 여학생이 준 선물을 응시한 순간.

"선생님."

뒷쪽에서 귀에 익은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시스티나였다.

하지만 그 목소리는 어딘가 평소보다 살짝 차가웠다.

"응? 네가 여긴 어쩐 일이냐, 하얀 고양이."

"······."

시스티나는 글렌의 질문에도 대답하지 않고 이쪽을 향해 천천히 다가오더니 이렇게 물었다.

"······방금 그 여자······ 누구예요?"

"여자? 아~ 방금 걔? 잠시 모르는 게 있대서 가르쳐주던 참이었는데······ 근데 그건 왜 물어보냐?"

"······선생님. 왜 자꾸 저 말고 다른 여자들이랑 대화하시는 거예요? 이젠 제가 싫어졌나요?"

"뭐?"

"방금여자랑대화하셨잖아요시치미떼지마세요."

"아니 대체 뭐가 여자랑 대화했다는 건데? 네 말의 의미를 도통 모르겠다만? 진짜 어디 아프기라도 한 거야? 역시 세실리아 선생님께······."

그게 대체 뭔 소린가 싶어 글렌은 그녀가 어디 아픈 줄 알고 의무실에라도 데려가려 했지만ㅡ.

"그러니까, 이건 전부, 선생님이 나쁜 거 맞죠? 5분이었으니까. 게다가 방금. 또 여자 얘기 꺼내셨네요."

글렌의 말을 중간에 가로챈 시스티나는 착 가라앉은 눈으로 갑자기 입에 영문을 알 수 없는 수수께끼의 말을 담았다.

'아······ 설마, 이건······.'

"선생님이 그 여자랑 대화한 시간. 그 여자랑 눈을 마주친 시간. 그 여자의 목소리를 들은 시간."

"······너."

그리고 글렌은 뭔가 알아챈 듯 잠시 침묵하더니ㅡ.

"설마 이거, 말로만 듣던 얀데레? 나 곧 죽는 거야······?"

그제야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깨달은 모양이었다.

"아뇨, 죽이다뇨. 제가 선생님을요? 그럴 리가요. 대신······."

시스티나는 주머니에서 한 자루의 식칼을 꺼내들더니 그것을 글렌을 향해 겨누었다.

"아니아니아니아니아니, 저기저기, 저기······?! 하얀 고양이 님?!제가 도대체 무슨 잘못을 했다고······. 아무 잘못도 안 했거든요, 저는?!"

"흐응······ 아직 자기 처지를 깨닫지 못한 것 같네요, 우리 선생님은. 이참에 깨닫게 해드려야겠네."

그렇게 선언한 시스티나는 서늘하게 웃으며 손에 마력을 실는 동시에 글렌에게 식칼을 투척했다.

"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글렌의 귀 윗쪽 머리카락을 간발의 차로 스치며 날아간 식칼은 뒤에 있는 나무에 수직으로 꽂혔다.

"말했잖아요. 죽이진 않는다고. 제가 하는 말만 순순히 따르신다면 살려드릴게요."

"부, 부부, 부디! 아, 아무거나 맡겨, 아니 시켜주십쇼! 그러니 목숨만으으으으으으으은!"

"저, 저기······ 들어가세요. ······잔말 말고."

"······응?"

시스티나가 얼굴을 푹 익힌 채 떨리는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가리켰고 글렌도 그 손가락을 따라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그 곳은ㅡ.

"······수풀? 웬 갑자기······."

"······선생님. 안 들어가실 거예요? 그렇다면······."

"드, 드, 들어가! 지금 들어간다고! 그러니 네 등 뒤에 식칼은 좀 치워주라! 응?!"

시스티나가 등 뒤에 있는 또 다른 여분의 식칼을 꺼내자 글렌은 마지못해 따를 수밖에 없었다.

"이, 이제 됐지······? 그럼, 나 이제······ 진짜 간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결국 복종할 수밖에 없었던 글렌은 수풀에 들어온 후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 예. 이제 끝났어요. 그리고 걱정하지 마세요. 방금 건 그냥 선생님을 시험해본 것뿐이니까요"

"여, 역시 그렇지······? 하하하, 그래 그럼 그렇지. 그 하얀 고양이, 네가 그럴 리가 없잖아? 나 참, 괜한 걱정을······."

상쾌하게 웃는 시스티나를 보며 일단 안심한 글렌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다리를 들어 수풀을 빠져나가려 했다.

"윽······?!"

하지만 곧 자신을 밀치는 무언가에 의해 그만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아니 나 참······ 오늘 따라 왜들 이러실까? 거, 누군진 모르겠지만 사람 좀 함부로······."

언짢아진 글렌은 눈살을 찌푸리며 고개를 위로 치켜들었지만 이내 할 말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아까처럼 죽은 눈을 한 시스티나가 서 있었던 것이다.

"저기요. 저. 아직 가도 된다고는 안 했는데요, 선생님?"

그것도 웃으면서 피로 물든 식칼의 날을 혀로 핥은 모습으로······.

"아니, 예······?"

"1초에 1번이면 5분이니까······ 총 300번이네요. 뭐, 아무튼 그렇게 됐으니 선생님. 오늘만 잠시 수업 좀 빼주세요, 아셨죠?"

"아니······ 예? 제가 이해를 못 했다니까요? 저기, 뭐가 300번이라는······."

······.

"헤윽······! 하앙······! 앗, 앗······! 흐앙······! 조아앗······ 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