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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팬픽] 어딘가 한심한 이야기

아니그냥없어요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2.06.29 21:3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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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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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올려보는 ㅗㅜㅑ짤...



[ 저번 편에서 이어집니다. ]



시호크 근처의 역참에서 비교적 싼 가격에 임시로 빌린 마차 안에서ㅡ.


"이젠 정말로 페지테까지 얼마 안 남았다는 게 실감되네요. ······뭐랄까, 굉장한 여행이긴 했지만요. 여러 의미로."


시스티나가 쓴웃음을 지으면서 뭐라 형언하기 어려운 복잡 미묘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야 그렇겠지. 마왕 토벌에, 거기다 세라의 부활까지······. 무엇 하나 까무러쳐도 놀랍지 않은 것들 투성이었니까. 나도 솔직히 믿기지가 않는군······."


글렌도 달리는 마차 위의 창문 너머 풍경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래도 그 한숨은 안도감이라기보단 지긋지긋함이나 체념의 의미가 더 큰 모양이었다.


"······."


하지만 나머지 둘과는 달리 세라만은 아무 맞장구도 치지 않은 채 그저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마침 그 광경을 본 시스티나가 의아하게 여기며 물었다.


"······세라 씨? 혹시 어디 속이라도 불편하세요?"


"······으응, 별 것 아냐. 시스티나 양. 단지 오랜만에 고향 땅을 밟아보는 거라서. 음~ 뭐라 해야 할지, 다들 어떨지 궁금하기도 하고, 기대되기도 하고."


그러자 그 시선을 알아차린 세라는 부드럽게 미소지으며 밝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 확실히 그렇겠네요."


하지만 시스티나는 한 순간 세라의 표정이 살짝 희미해진 걸 눈치채지 못했다.


그리고 그 순간ㅡ.


"에휴······ 너 말야. 머지 않아 교사가 될 사람이 학생한테 거짓말을 쳐서야 쓰겠어?"


갑자기 창가에 앉아있던 글렌이 어이없는 목소리로 끼어들었다.


"······예?"


느닷없이 튀어나온 말에 시스티나는 둘을 번갈아보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거짓말이라······ 뭐, 내가 할 말은 아니다만. ······세라, 너. 실은 불안한 거잖아? 네가 날 지켜주고 전사한 건 엄연한 사실이야. 하지만 군인으로서 


군의 책무를 다하지 못한 것도 사실. 그래서 과거에 얽매인 네가······ 과연 다른 길로 나아가도 되는지 계속 의구심을 품었겠지. 내 말이 틀려?"


"······!"


역시 세라는 정곡을 찔린 모양인지 몸을 움찔거렸다.


"아······."


그 말을 들은 시스티나는 그제야 통감했다.


그렇다.


역시 이 두 사람은······ 글렌과 세라는 어딘가 많이 닮아 있다.


성격은 정반대일지 몰라도, 두 사람은 수많은 임무를 함께 해온 파트너나 다름없는 사이였다.


그렇기에 스스로 혼자서 끙끙 앓고 있다는 점에서ㅡ.


모든 짐을 자신이 묵묵히 떠맡으려고 한다는 점에서, 두 사람은 서로를 꼭 닮은 것이다.


세라가 난처한 듯 쓴웃음을 흘렸다.


"아하하······ 역시 들켜버렸나. 설마 이렇게 쉽게 들킬 줄은 몰랐는걸."


"너랑 같이 알고 지낸 기간만 해도 어언 3년이다. 오히려 모르는 게 이상한 거지. 역시 이런 점은 바뀌질 않는다니까. 바보 같은 점이."


글렌이 다시 창가 쪽으로 눈을 돌리고 턱을 괴며 퉁명스럽게 말하자 세라는 귀엽게 볼을 부풀렸다.


"아앗~?! 너어~! 바보라고 부르지 말랬잖아!"


"그럼 바보 보고 바보라고 부르지, 뭐라고 부르게? 예예~ 또 한 명의 왕바보 행차하십니다요~."


"으으으으으~! 글렌 군 진짜 미워!"


과장스럽게 어깨를 으쓱이는 글렌과 바보 취급에 완전히 삐쳐버린 세라 사이에서 시스티나는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동시에 마음 속에 이런 감정도 존재했다.


'······이건 이브 씨 때의······. 그래······ 맞아. 그 때도 분명······.'


이브와 글렌은 자주 다툰다. 싸운다는 표현도 아니다. 그저 다툰다······ 딱 그 정도가 적절한 정도였다.


하지만 그건 세라와 글렌도 마찬가지였다.


아마 평소에도 이런 모습이라면 자주 투닥거리는 횟수는 아마 이쪽이 많았으면 많았지, 더 적진 않았으리라.


분명 옛말에는 이런 말이 있지 않은가. 싸울수록 사이가 좋다고.


그래서 시스티나는 자기도 모르게 머리를 쥐어싸멜 수밖에 없었다.


이브와 세라가 글렌에게 호감 이상의 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적어도 한 명의 사춘기 소녀인 자신도 어렴풋이 눈치챘기 때문이었다.


여전히 투닥거리는 두 남녀를 보면서 시스티나는 강렬한 조바심에 휩싸인 나머지 그들을 불안한 눈초리로 지켜보았다.



······.



어느덧 해는 중천 쪽에서 기울더니 마치 가을날의 단풍잎 같은 형형색색의 장관을 연출하고 있었다.


석양의 휘황찬란한 빛줄기가 마차 안을 어슴푸레하게 비추며 은은한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지금은 근처 역참에서 말을 한 번 갈아채운 뒤, 저녁을 먹고 마차에 타려던 참이었다.


"와아······."


그리고 다른 둘보다 먼저 마차에 올라타려던 시스티나는 무심코 그 장대한 운치에 할 말을 잃고 말았다.


고운 빛깔의 빛방울들이 휘황찬란한 태양빛을 반사하며 지평선 너머까지 밝게 비추었고,


높고 험하면서도 차차 밤의 장막으로 펼쳐지는 밝은 하늘은 쑥스러운지 연극 전 무대에 커튼을 치듯 저 너머로 숨기 시작했다.


모든 것을 집어삼킬 듯한 검은 그림자의 구름들이 하늘 여기저기에 퍼지며 만들어내는 한 폭의 그림 같은 장면은 경외심마저 들 정도였다.


"페지테에서 본 하늘도 충분히 멋지지만······ 이건 차원이 달라······."


지상절경에 시선을 빼앗긴 시스티나는 한동안 그곳을 멍하니 응시했다.


"음, 뭐냐. 나도 이번만큼은 거기에 동의."


"······선생님?"


그러자 어디선가 갑자기 나타난 글렌이 시스티나에게 말을 걸었다.


"제법 흔치 않잖아? 이런 광경은. 일생에 몇 번 볼까 말까라고. 확실히 눈에 새겨두지 않으면 아까울 정도야."


그리고 두 손으로 머리 뒤에 깍지를 낀 채 드문드문한 목소리로 말했다.


"음~ 그래! 뭐, 식후 디저트로는 딱이잖아, 안 그래? 아무리 이게 멋지다고 한들, 내 지갑을 열 정도는 안 되니까 말이지!"


"으으, 정말이지! 지금 한창 분위기 좋았잖아요! 왜 하필이면 지금 분위기를 깨시는 거예요?! 여하튼 이 인간은 진짜······."


모처럼의 아름다운 경치를 돈으로만 여기는 여전히 변변찮은 생각에 시스티나가 버럭 화를 냈다.


······아무래도 방금 자기가 무슨 오해를 살 만한 발언을 했는지는 깨닫지 못한 모양이다.


"후후~ 두 사람 분위기가 꽤 좋은걸~?" 


그리고 또 다시 어디선가 때마침 등장한 세라가 석양 앞에 나란히 서 있는 두 사람을 놀렸다.


"예에에?! 그, 그그럴 리가 없잖아요! 제, 제가 왜 애초에 이런 인간이랑······!"


시스티나는 그 즉시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반발했지만 정작 표정은 말과는 정반대로 완전히 새빨개진 상태였다.


아니 뭐······ 솔직히 말하자면, 무지 기뻤다.


"에엑~? 그건 솔직히 나도 싫거든? 왜 이 내가 너 같은 귀여운 구석이라곤 하나도 없는 녀석이랑······ 어······?"


하지만 정작 글렌은 말하는 도중 끊을 수밖에 없었다.   


"그······ 저기, 하얀 고양이······?"


"훌쩍······."


어째선지 시스티나가 젖은 눈으로 글렌을 매섭게 노려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흑······ 진짜, 너무해······."


그러더니 당장에라도 떨어질 법한 눈물을 필사적으로 참으며 가느다란 팔뚝으로 고개를 가리고 마차로 먼저 올라탔다.


"아니······ 내가 했던 말 중에 그다지 문제가 될 만한 발언이······ 아얏?!"


대체 왜 저러는가 싶어 글렌이 황당해 한 순간, 갑자기 뒷쪽에서 날아온 충격에 그는 원망스럽게 뒤를 돌아보았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범인은 세라였다.


"글렌 구운~? 나한테 아까 분명 교사가 될 사람은 거짓말을 쳐선 안 된다고 하지 않았어~?"


"그, 그랬습죠······."


웃으면서도 뺨을 씰룩거리는 세라의 묘한 압박감에 글렌은 저절로 몸이 움츠러들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지금 이게 뭐야?! 정작 지금 교사인 사람은 자기 학생을 보살피진 못할 망정, 울리기나 하고! 흥, 아무래도 내가 사람을 잘못 본 것 같아."  

 

세라가 보기 드물게 분노를 터트리며 고개를 홱 돌려버리자, 글렌은 이마에 비지땀이 철철 흘렀다.


"무무, 물론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아아?! 당장 사과할게요, 사과할 테니까!"


"······너, 그 말, 진심이지?"


"······예."


글렌 입장에서는 단순히 여행으로 인해 누적된 피로 좀 풀어주려고 내심 농담조로 건넨 말이었건만, 이건 아무래도 솔직히 너무 심한 처사였다.


지금 세라 앞의 글렌은 마치 길가에 버려진 강아지처럼 몹시 처량하고 불쌍했다.



같은 시각, 해가 완전히 지기 직전의 어두컴컴한 마차 안에서ㅡ.


"훌쩍······ 히끅······ 흑."


시스티나는 좌석에 앉아 무릎을 끌어안은 채 평소보다도 더 서럽게 울고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까지······. 심하게 말씀하실 건 없잖아······! 나는······ 그래도, 흐윽······.'


만약 평소의 총명한 그녀였다면 단순한 농담이라는 걸 알아챘으리라.


하지만 이미 적잖은 충격을 먹을대로 먹어버린 지금의 시스티나로선 평정심이고 뭐고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진정으로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 한 명의 여자로 인정받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만 있을 뿐이었다.


시스티나가 하얗고 매끄러운 허벅지를 눈물 자국으로 적시고 있자ㅡ. 


"······그, 들어가도······ 될까?"


마차의 커튼 너머로 글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상관 없어요······."


그러자 시스티나는 마치 방금 막 부모에게 혼난 어린아이처럼 울먹이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렇게 서로를 향해 맞댄 좌석에 앉은 두 사람은 한동안 침묵을 유지했다.


"들어줄래? ······먼저 사과해야 할 게 있어."


그러나 그것도 잠시, 이윽고 글렌이 먼저 침묵을 깨트렸다.


굳이 세라가 아니더라도 사과는 했을 것이다. 


이유야 어찌 됐건 제자를 울린 스승이 자기 자신임에는 변함이 없으니까.


"사실 그건······ 노, 농담으로 건네려다가 나도 모르게 실수를······ 해버렸던 거였어. 너한테 큰 상처를 주고 말았네······ 미안하다."


글렌은 다시 한 번 정중하게 고개를 떨구었다.


"······."


그의 진정 어린 사과를 들은 시스티나는 잠시 침묵하더니ㅡ.


"······ㅡ해주세요······ 그럼 용서, 해드릴······ 테니까."


이쪽도 표정을 숨기려는지 고개를 푹 숙인 채 아주 작은 목소리로 얼버무리듯 말했다.


"······응? 방금 뭐라고? 미안, 너무 작아서 뭐라는지 안 들렸어."


물론 그걸 들을 리 없었던 글렌은 다시 한 번 되물었다.


"아아, 정말이지! 그, 그러니까! 포, 포, 포옹······ 한 번으로······ 용서, 해드리겠······다구요······!"


얼굴이 터질 것처럼 새빨개진 시스티나는 말을 메트로놈처럼 떨리는 목소리로 겨우 이었다.


참고로 머리 위에서는 실시간으로 수증기가 뿜어져나오는 상태였다.


"······어어······ 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엑?!"


그 말을 들은 글렌은 고장난 인형처럼 어버버거리더니 결국 예상대로 화들짝 까무러칠 수밖에 없었다.


"아니, 야! 너 지금 그거 맞아?! 나, 나나난 진짜 모른다?! 네가 해달래서 하는 거라고!" 


사실 부탁이 아니라 반협박에 가까운 형태라 그런지 퇴로가 모두 막혀버린 글렌은 눈을 휘둥그레 뜬 채 머리를 벅벅 헤집었다.


덤으로 말 한 번 잘못했다가 불상사를 당하는 건 불 보듯 뻔하다는 것도 이번 기회에 아주 잘 알 수 있었다.


"제, 제제가 이런 부, 부부부탁을 아무렇게나 할 것 같아요?! 잔말 말고 하라면 하란 말이에요!"


"내, 내가 사회적으로 매장당하는 건 전부 네 탓이어도?! 그래도 할 거야?!"


······그리고 바보 두 명이 이 자리에 있었다.


"······단지 아, 안기만 하는 것 뿐인걸요. ······으으~ 자, 말은 이제 그만! 어, 얼른요!"


눈이 핑핑 돌아간 나머지 시스티나는 이제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를 지경이었다.


"너어어어어어어! 난 진짜 모른다 했다아아아?! ······흐읍!"


그 순간ㅡ.


"~~~~~~~~~?!"


글렌의 가슴팍에 안긴 시스티나의 표정이 수치심, 기쁨, 망설임 같은 감정들로 가득 채워지기 시작했다.


자기 자신도 오늘만큼은 주체할 수 없었다.


원래 자신은 이렇게 어리광부리는 성격이 아니었을 텐데······.


사실 글렌에게 안긴 기억은 몇 번이라면 있었지만 이토록 직접적으로 안는 건 이번이 처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 사실을 증명하듯 그 여느 때보다도 심장이 터질 것처럼 세차게 요동치기 시작했고, 눈동자는 이미 시계바늘처럼 빙글빙글 돌아간 뒤였다.


초점은 맞지 않아 온세상이 흐릿하게 보였고, 뜨거워진 뺨은 온몸을 후끈 달아오르게 했다. 


무엇보다도 시스티나의 몸으로 글렌의 체온과 감촉, 체취가 그대로 전해져왔다.


'후아······ 따듯해······. 이대로······.'


결코 든든하다고는 못할 비교적 왜소한 체구였지만 그럼에도 시스티나에게는 지금 이 순간이 따듯한 담요를 뒤집어쓴 것 같았다.


한 겨울, 뼈가 시려울 정도의 추위가 모처럼 정화가 되는 기분이 든 순간.


시스티나는 그 자리에서 굳어버릴 수밖에 없었다.


세라가 입구 쪽의 커튼을 손가락으로 살짝만 열고 이쪽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응? 하얀 고양이, 너. 갑자기 왜 팔을 안 빼······."


그녀의 행동을 의아하게 여긴 글렌도 시스티나의 시선을 따라서 고개를 돌리고 이내 식은땀을 철철 흘릴 수밖에 없었다.


"······."


죽을 정도로 부끄러웠다.


이미 이런 행동을 남한테 보여줬다는 것 자체가 수치사하는 게 더 나았다.


그리고ㅡ.


"하으으으으으으으으~?!"


역시 뒤늦게 반응이 왔는지 시스티나는 결국 얼굴이 새빨개지더니ㅡ.


"위······."


"······위?"


"위, 위, 위······《위대한 바람이여》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


그리고 갈 곳 잃은 분노를 오늘도 억울하기만 한 당사자에게만 분풀이할 뿐이었다.

  

"네가 하라는 대로 했을 뿐인데, 어째서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 ······커억!"


태풍보다도 더한 위력의 흑마 【게일 블로】를 정통으로 직격당한 글렌은 그대로 날아가 마차 근처 건물의 외벽에 틀어박힐 수밖에 없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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