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말 열심히 했었다.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도 몰랐다.
수업이 끝나자마자 자취방으로 달려가, 거의 매일접속했다.
주간 숙제를 다 끝내고도, 그냥 마을에 들어가 멍하니 돌아다니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다.
투기장에서 번 돈을 다 날려도 재미있었고, 반대로 크게 벌었을 땐 주변 사람들에게 뽀찌를 주는 것도 기분 좋았다.
최상위 던전을 깨기 위해선 하루 이틀이 아니라 일주일 넘게 시간을 쏟으며 빌드를 갈아엎기를 반복했다.
힘들었지만, 그 시간마저도 진심이었다. 진짜 열정이었다.
그 시절이 아직도 생생하다.
정말 행복했고, 그만큼 그 게임을 진심으로 사랑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게임이 삐걱이기 시작했다.
느려진 업데이트, 반복되는 이벤트, 매너리즘에 빠진 콘텐츠들...

(2017 서비스 시작)
알고보니 그토록 믿고 따라줬던 유저들을 외면한 채, 배틀그라운드라는 신작 개발에 자금을 쥐어짜기 위해,
좆같은 BM수단, 스펙업 과금을 유도해도 해줬다.
그래도 했다. 재밌었으니까,
그리고 배틀그라운드는 대박을 쳤다.
그래서 기대했다.
“이제는 우리 차례가 아닐까?”
“운영 인력도 충원되고, 업데이트도 나아지지 않을까?”
이상했다. 달라진게 없다.
아니 오히려 더 악화되었다.
분명 몇달전에 팔았던 치장템이 색만 바뀌어서 재판매 뺑뻉이만 돌린다.
전전 시즌 있었던 던전이 색만 바뀌어서 돌아왔다. 던전도 같은 모델링 같은 패턴으로 뺑뺑이만 돌린다.
그래도 기다려본다.
“동생 게임이 너무 잘 돼서 일손이 부족한 거겠지…”
서로 위로하며 그렇게 생각했다.

(2020 서비스 시작)
... 신작 RPG 개발을 한다고 한다.
그럼 우리는?...
버려진걸 깨닳기에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개발비는 동생이 벌고, 개발 인력은 엘리온으로 쏠렸다.
우리는 다시 몇 년간 같은 콘텐츠로 반복만 하며 방치됐다.
그래도 생각했다.
“엘리온이 정말 잘 만든 게임이면, 우리 다 같이 넘어가도 괜찮겠다.”
작은 기대도 품었다.


테라 엘리온


테라 엘리온
..
...
....
몇 년동안 방치하고 내놓은 신작이 모델링 복붙, 패턴 복붙, 치장템에 펫 탈것 복붙한 C+V 게임이라니.


그리고 이어지는 우리의 사망 선고였다.
망한 건 거긴데, 서비스 종료는 왜 우리가 먼저 당해야 하는가.
운영진들의 생각을 알 수가 없다. 아니 알고 있는데 모른 척 하고있다.
이쪽 문을 닫고 저쪽으로 유저층을 그대로 흡수하는 그림을 그린다는 강한 확신이 들었다.
그러나 우리를 죽였어도 둘째 동생은 살아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결국 둘째 동생은 죽었다.
고작 6개월 숨쉬게 하려고 10년을 해온 우리를 죽였다.
그 시절은 아직도 못 잊는다.
그때 함께 웃고, 화내고, 밤을 새던 사람들. 그 공간. 그 시간.
하지만 동시에, 그걸 망가뜨린 이들의 이름도 잊지 못한다.
크래프톤. 그 이름을 떠올릴 때마다 마음 한구석이 시리다.




나는 블루홀이 밉다.
나는 크래프톤이 밉다.
나는 카카오게임즈가 밉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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